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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3김정치 종식되고, 이념정치 확립된다

‘게임이론’으로 본 DJ의 당 총재직 사퇴

  • 모종린 <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국제정치경제학) >

3김정치 종식되고, 이념정치 확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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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25 재보선 패배 후 김대통령의 당 총재직 사퇴는 선진적인 당권 교체를 위한 전주곡이 돼야 한다. 10·25 재보선 결과는 3김 정치가 쇠퇴하고 이념 중심의 양당구조가 확립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10·25 재보선 패배로 다시 불거진 민주당 내분이 11월8일 김대중 대통령의 당총재직 사퇴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의 정국 향방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민주당 분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누구도 총재 사임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선택을 예측하지 못했고, 그 결정과정과 배경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결정은 과거 사례와 비교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충격적이다. 첫째,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당 당권은 예외 없이 대선 후보자가 결정된 이후 그 후보자에게 이양되어 왔다. 그리고 이양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후보자와 현직 대통령은 이양시기와 조건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후계자의 입장은 조기 당권 이양이었고, 현직 총재는 레임덕을 우려해 가능하면 이양시기를 연기하고자 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 후보가 신한국당 후보로 당선된 1992년 5월29일로부터 88일 지난 8월25일이 되어서야 총재직을 이양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이회창 후보에게 당권을 물려준 시기는 1997년 7월21일 후보자 선출일로부터 71일 지난 9월30일이었다. 그나마 대선 전에 후보자와 현직 총재와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완만했던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후보의 경우도 후보자 선출(6월10일)부터 당권이양(7월11일)까지 31일이 걸렸다. 전임자들과는 달리 김대중 대통령은 차기대선 후보의 직접적인 압력이 없는 상황에서 당권을 이양한 것이다.

과거와 다른 김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직을 사퇴한 뒤에 평당원으로 남기로 한 결정이 이번 사건이 이례적인 둘째 이유다. 지금까지는 전임 총재를 명예총재로 위촉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모두 당권이양 이후 궁극적으로 당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렸지만 총재직을 물려준 직후에는 명예총재라는 신분을 유지했다. 명예총재는 실권이 없다지만, 그 같은 예우는 나름대로 리더십의 연속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당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내분에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하겠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평당원 신분으로 돌아간다고 말했지만,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김대통령이 민주당과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직 사퇴를 결정한 후 지나치게 중립적 정국운영을 강조한다는 점이 이번 사태를 의아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김대통령의 당직과 관계없이 다음 정부가 출범하기까지 집권당은 민주당이고, 민주당이 이에 따른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김대통령이 총재직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정부와 민주당을 분리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대중 대통령은 아직도 민주당원의 신분이다. 민주당원인 김대중 대통령이 중립적 정부를 논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노태우 정부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중립내각을 선언했지만 이는 노대통령이 이미 당적을 떠난 뒤에 내린 결정이었다.

과거와 같이 총재 사퇴가 탈당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마지막 특징이다. 한국 권력의 속성상 일단 대선 후보가 당권을 장악하면 전임자가 당에 남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후임자에게 탈당을 공개적으로 강요받았고, 노태우 대통령의 탈당도 형식적으로는 자진탈당 이었지만 실제로는 김영삼 후보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발생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적어도 대선 후보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탈당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 사퇴 후에도 민주당의 실질적 오너로 당을 지배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김대중 대통령의 당총재 사퇴 결정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고, 과거 경험에 비해 너무도 이례적이기 때문에 대통령 의도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저의에 대해 그동안에 제기된 가설은 크게 국가적, 개인적, 정략적 포석으로 나눌 수 있다. 김대통령이 대외적으로 내세운 명분은 1년3개월 남은 임기 동안 경제회생, 남북관계, 월드컵 개최, 지방선거 및 대선 등 시급한 국정과제에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김대통령 특유의 역사의식과 사명감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요인도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의도가 개인적인 중립을 통해 한편으로는 당내 경선 및 대선에서 공정한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또 한편으로는 민주당 내부의 쇄신압력을 약화시키면서 다음 정권의 정치보복을 방지하고자 하는 포석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즉, 이번 결정이 김대통령의 개인적인 정치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김대통령이 정권 재창출 등 대선 후 정치상황에 미련이 없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고령인 점을 감안할 때 전혀 근거가 없는 가설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총재에서 사퇴한 이후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하는 부분은 이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정략적 의도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1987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총재직에서 사퇴했고, 1992년 대선 후에는 정계은퇴를 선언했지만 두 번 다 총재직으로 복귀하거나 신당 창당으로 당권을 쟁취했던 전력이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김대통령이 민주당의 당권에 의연하겠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김대통령의 신당 창당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략적 포석과 관련된 둘째 가설은 김대통령이 초당적인 정국운영의 명분을 내세워 국회와 정당의 정당한 견제를 무시하고 대(對)국민 직접정치를 추진한다는 가설이다. 현정부가 올해 초부터 강한 정부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그 후 꾸준히 대국민 직접정치를 시도해 왔기 때문에 이 같은 의심을 받고 있다. 특히 야당은 정부가 이 같은 탈(脫)정당 정치를 국민적 합의가 미약한 정책의 추진과 정권 재창출의 수단으로 동원할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셋째 정략적 가설은 차기 대선 후보를 위한 김대중 대통령의 배려라는 것이다. 조기에 당권을 차기 후보군(群)에 이양하여 그들이 김대통령과의 차별성을 주장할 수 있는 명분과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이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후보 사이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된 적은 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현정부의 업적에 대한 자부심이 유달리 크고, 또 현재는 누가 대권 후보자가 될 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다지 설득력이 높은 가설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이렇게 여러 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국민이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김대통령의 순수한 의도를 지나치게 배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일단 대통령의 공식입장을 그대로 인정하고 앞으로의 진행과정을 관망하면서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라고 본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말기에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략적 시나리오에 따라 급격한 정치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이번 사태로 인해 정반대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대통령은 레임덕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민주당의 주도권이 대선 주자들에게로 급속히 옮겨진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이와 같은 부정적 상황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총재직을 떠났다고 해도 민주당은 아직 집권당이기 때문에 민주당과의 당정협의를 강화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 과거와는 다른 수평적인 관계에 기초한 민주적 리더십으로 민주당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한편, 국정의 공정한 운영은 대통령의 당적과 관계가 없는 대통령 본연의 의무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초당적 중립론을 주장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민주당의 첫번째 리더십 교체

무엇보다도 김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한국 정당정치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마무리 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10·25 재보선과 민주당 내부갈등을 정치발전 기준에서 평가하면, 가장 긍정적인 측면으로 민주당에서 처음으로 리더십 교체의 가능성이 열린 사실과 3김 정치의 영향력이 쇠퇴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순조로운 민주당의 당권교체는 민주당이 전근대적인 1인중심 정치에서 벗어나 리더십 교체 이후에도 정당일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3김 정치의 후퇴는, 현재 진행중에 있는 정당의 이념화가 가속화되고 이에 따라 이념에 바탕을 둔 양당 구조가 형성되는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뜻한다.

정당 발전수준을 평가하는 데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특정 개인의 인맥에 대한 의존 정도다. 1인 중심은 특정 개인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고, 그 개인이 떠나면 당 자체가 정체성을 상실한다. 이러한 정당에서는 리더십 교체의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둘째 기준이 정당 리더십 교체의 정례화와 제도화다. 여기에서는 후계자 선출 방식과 전임자와 후임자의 관계에 따라 정당 발전수준이 나눠진다. 상대적으로 발전 수준이 낮은 정당에서는 현직 지도자가 후계자를 지명하고, 선진 정당에서는 자유경선이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이 되어서야 여당 대선 후보자가 처음으로 자유경선을 통해 선출됐다.

후계자가 정해진 뒤에 나타나는 전임자와 후임자의 관계가 정당 발전수준을 가르는 또 하나의 변수다. 전임자·후임자 관계 유형은 크게 당권이양 과정에서 당이 분리되는 정당해체형, 전임자가 후임자에 의해 축출되는 전임자 단절형, 그리고 전임자의 인맥과 정책이 상당부분 유지되는 네트워크 유지형이 있다. 리더십 교체의 제도화 기준에서 가장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당도 아직 전임자 단절형 당권이양 패턴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기준이 정당 지배구조다. 우선, 정당지도자에 대한 책임 추궁이 가능하고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수의 당원이 지도자 선출과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어느 정당도 이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로 민주당도 1인 중심의 정당에서 당권의 교체가 가능한 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경쟁 정당인 한나라당이 벌써 세 번에 걸친 당권 교체를 통해 사당(私黨)의 체질을 대폭 정리한 것에 비하면 때늦은 감도 있지만,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수평적 당권교체를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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