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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의 ‘수지킴’ 피살사건 7년 추적기

女難에 빠진 윤씨, 수지킴 家의 죽음, 안기부의 인격살인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女難에 빠진 윤씨, 수지킴 家의 죽음, 안기부의 인격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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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신상옥-최은희 납치 사건이기를 기대했던 안기부 ● “윤씨는 북한대사관에서 탈출해 온 것이 아니라, 미국대사관에서 데려왔다” ● 사건 당시 북한대사관은 범행을 부인,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 싱가포르 주재 외교관들은 윤씨의 행적을 의심, 안기부 직원들과 갈등 ● 안기부가 윤씨 기자회견을 열라고 하자, 李長春 대사가 결사 반대 ● “윤씨는 안기부 조사에서 횡설수설한다는 이유로 상당히 맞았다.” ● 진실을 알고도 은폐한 정보기관, 김여인의 人權을 방기한 안기부 ● “안기부와 홍콩 경찰의 對北 커넥션이 윤씨 수사를 막았다.” ● 윤씨는 방송사 PD, 교도소 敎化활동가 등 여러 여성과 동거 및 결혼 ● 윤씨는 여성의 도움으로 일어나, 그 여성과 갈등을 빚으면 헤어졌다. ● 윤씨, 臺灣 여가수의 도움으로 上海 浦東지구 분양사업 펼치기도 ● 윤씨, 모 언론사 사장의 도움으로 지문인식시스템 개발 회사 인수 ● 윤씨 회사는 한때 전직 경제부처 장관을 회장으로 영입했다. ● 김여인 오빠의 비극적인 죽음, “나와 우리 가족은 정말 억울하다” ● 법률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윤씨는 무죄로 석방될 가능성이 높다. --------------------------------------------------------------------------------------

형법 제250조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15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살인할 의도를 갖고 사람을 죽였더라도 15년 동안 수사기관을 잘 피해다녀 기소되지 않으면, 그는 ‘합법적으로’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공소시효 만료를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서울지검 외사부(박영렬 부장검사)에 의해 살인죄로 기소된 ‘불행한 사나이’가 있다. 윤대직(가명·43)씨가 바로 그 장본인.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에 따르면 윤씨가 살인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15년 전인 1987년 1월2일부터 3일 사이다.

윤씨는 결코 단순한 살인 용의자가 아니다. 기소되기 전 그는 ‘미래의 빌 게이츠’로 불릴 정도로 주목받는 벤처사업가였다. 그가 이끄는 회사는 경제부처 장관을 지낸 이모씨를 회장으로 모셨다(현재는 퇴직). 그의 회사는 지문인식이라는 신기술을 개발해 왔는데, 이 기술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이 기술로 인해 그는 여러 차례 국내 언론에 보도됐고, CNN과 AP 등 외신에도 보도됐다. 이 벤처사업가가 살인혐의 시효 만료를 채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기소된 것이다.

살인죄 시효 만료 51일 前에 기소

내년 1월3일만 되면 영원한 자유인(無罪)이 될 수 있었을 윤씨는 왜 살인혐의로 기소된 것일까. 윤씨 사건에는 5공 시절 서슬이 시퍼렇던 안기부의 위세가 숨어 있다. 안기부와 관련된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윤씨 사건을 덮고 있는 것이다. 암울했던 한국 현대사와 연결돼 있는 윤씨 사건의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해, 기자는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취재수첩을 다시 열었다. 윤씨 사건과 기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윤씨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의 한국 현대사를 살펴보자.

윤씨 사건이 일어나기 두 달 보름 전인 1986년 10월14일 신민당의 유성환(兪成煥) 의원이 “88서울올림픽에 동구국가를 참여케 하려면 우리의 국시(國是)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1986년 5월3일 인천에서는 대규모 노동자 시위가 있었는데(5·3 인천사태), 정부는 배후자로 문익환(文益煥) 목사를 지목해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문목사 사건은 1986년 하반기 한국의 핫이슈가 됐다. 문목사 구속과 유의원의 국시 발언은 한국사회가 권위주의적인 5공의 종말을 고하고 민주화로 가는 거대한 진통의 시작이었다.

그 이듬해인 1987년 1월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에서는 서울대생 박종철(朴鍾哲)군이 고문을 받다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민주화의 봇물을 터뜨렸다. 그해 6월 한국은 민주화운동으로 뜨겁게 달아올랐고 전두환(全斗煥) 정권은 마침내 6·29선언을 발표한다.

윤씨 사건은 민주화세력과 권위주의 정권세력이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점에 일어났다. 북한에 납치됐던 신상옥(申相玉)·최은희(崔銀姬)씨 부부가 1986년 3월13일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국대사관으로 극적으로 탈출해 왔다. 신상옥·최은희씨 탈출사건은 남북대결을 핑계로 정권을 재창출하려 한 권위주의 정권의 ‘방패’가 됐다. 이러한 사건이 또 한번 일어난다면, 권위주의 정권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대북공작은 물론이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국내 정치공작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윤씨 사건은 이러한 정치적 구도에서 발생했다.

윤씨 사건은 북한 공작조직에 의한 윤씨 납북 미수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서울지검 외사부가 추정한 김옥분씨 피살 시점(1987년 1월2일)으로부터 6일째 되는 1987년 1월8일자 국내 신문을 통해 처음 보도되었다. 국내 신문은 1면 혹은 사회면 사이드 톱으로 ‘홍콩 교민(윤씨를 지칭), 납북중 극적 탈출’ ‘우리 상사원(윤씨), 납북중 극적 탈출’ “살아서 돌아온 게 꿈만 같다” 등의 제목을 붙여 윤씨 사건을 보도했다.

(注: 이때 윤씨는 살인 혐의를 전혀 받지 않은 때라 실명과 함께 그가 관계한 회사 이름 등이 전부 공개됐다. 지난 11월13일 서울지검 외사부는 윤씨를 기소하면서 연 기자회견에서 윤씨의 실명과 그가 관계한 회사 이름을 공개했고, 언론 역시 사실대로 적었다. 그러나 현재 윤씨는 피의자 신분이므로 여기에서는 가명으로 표기한다. 그와 관계된 사람과 그가 관계한 회사 이름도 이니셜로 처리한다).

포트빌 포트가 19번지

당시 언론에 보도된 북한의 윤씨 납북 기도 미수사건을 상세히 살펴본다.

법인 설립후 윤씨는 사업자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자 김여인이 일본의 친구에게서 빌려왔다며 500만엔(당시 환율로 약 4000만원)을 주었다. 윤씨는 이 돈으로 홍콩 주재 한국총영사관이 들어 있는 코리안센터(韓國大廈) 103호에 ‘유나이티드 모션 픽쳐’의 사무실을 준비했다. 이 사무실은 1987년 1월15일 개업할 예정이었다.

김여인이 윤씨에게 사업자금을 제공한 것은 윤씨의 사무실을 한국 총영사관에 접근하는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한창 사무실 개업을 준비하던 1987년 1월2일 일본에서 온 조총련 공작원 두 명이 윤씨의 아파트로 찾아와, 김여인을 데리고 사업 이야기를 하겠다며 김여인과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다른 방에 있던 윤씨를 불러 담배를 사다 달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윤씨가 담배를 사갖고 돌아오니 세 사람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1월3일) 사라졌던 조총련계 남자 한 명이 아파트로 찾아와 윤씨에게 “김여인이 부채를 갚지 않아 싱가포르로 데려갔으니, 당신이 싱가포르에 와서 대신 부채를 갚겠다는 각서를 쓰고 부인을 데려가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윤씨는 부인을 찾아올 생각으로 그 다음날(1월4일) 유나이티드 에어(UA) 805편을 타고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했다. 싱가포르 공항에는 한 여인이 윤씨 이름을 쓴 종이를 들고 마중나와 있었다. 김여인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여인은 윤씨를 샹그리라(Shangri-La) 호텔로 안내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1월5일 이 여인이 샹그리라 호텔로 윤씨를 찾아와 ‘포트빌 포트가(街) 19번지(19 Fortville Fort Rd.)’라고 씌어 있는 쪽지를 주며 찾아가라고 했다. 이 주소지로 찾아가자, 그곳에는 북괴대사관이 있었다. 북괴대사관임을 확인한 윤씨가 들어갈 것을 망설이자, 안에서 그 여인이 나타나 들어오라고 해 따라들어갔다. 이 여인은 북괴대사관 공관원의 부인으로 보였다. 북괴대사관 안에서 윤씨는 리창용이라고 하는 북괴 대사대리를 만났는데, 리창용은 이렇게 협박했다.

“부인을 만나려면 평양에 가야 한다. 그전에 당신은 유고로 가서 우리 안내원을 만나 스위스로 가라. 그리고 스위스에서 ‘나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문익환 목사와 유성환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그런데 검찰이 두 사람을 구속하고 수사를 확대해 홍콩으로 피신해 있다가 이렇게 정치 망명을 하게 된 것이다. 최근 서방으로 탈출한 신상옥·최은희는 남조선에서 살해되었다’고 밝혀라. 우리 말을 듣지 않으면 부인을 만날 수 없고, 한국에 있는 당신의 가족도 죽는다.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부인을 다시 만날 수 있고, 홍콩에서의 사업자금도 지원해 주겠다. 탈출할 생각은 아예 말라.”

이러한 협박을 받고 나온 윤씨는 숙소를 좀더 작은 콕피트(Cockpit)호텔로 옮기고, 다시 리상용 북한 대사대리를 만나 유고행 비행기를 예약하러 여행사에 갔다. 그러나 표가 없어 사지 못하고 호텔로 되돌아왔다. 그러다 그날 오후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윤씨는 콕피트호텔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한국대사관으로 탈출했다.>

북한대사관은 범행 부인

윤씨의 부인 김옥분은 윤씨보다 여섯 살이나 많지만 체구가 작고 예쁘장했다. 일부 언론은 이런 사실에 주목해 북한이 미인계를 써서 윤씨를 납치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보도를 진실로 믿은 것으로 보였다. 외무부의 김흥수(金興洙) 대변인이 “과거 북괴는 영화배우 윤정희(尹靜姬)씨 납치 기도, 신상옥·최은희씨 납치 등 수많은 불법 납치를 자행했다. 이러한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인 행동을 즉각 중단하라”는 논평까지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 주재 북한대사관은 전혀 달랐다. 북한대사관은 “윤씨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우리는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당시 신문 보도). 하지만 북한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윤씨가 싱가포르 주재 한국대사관으로 탈출해온 것은 1월5일 오후고, 국내 신문이 윤씨 사건을 보도한 것은 1월8일이다. 이 3일간 윤씨는 싱가포르 한국대사관에서 여러가지 조사를 받았다. 윤씨 사건에는 북한이 개입해 있었으므로 당연히 안기부도 조사에 참여했다. 그런데 윤씨 조사에 참여했던 외무부 직원들에 따르면 이 3일 동안 싱가포르 대사관에서는 안기부와 외무부 직원들 사이에 엄청난 의견 대립이 있었다. 하지만 언론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외무부와 안기부 직원간의 대립은 뒤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윤씨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인 1월8일 안기부는 윤씨를 태국의 방콕으로 데려가고, 홍콩에 있는 한국 특파원들을 방콕으로 불러 윤씨 기자회견을 가졌다. 안기부가 윤씨에 대한 기자회견을 한다면, 상식적으로 기자회견지는 사건 발생지인 싱가포르여야 한다. 그런데 안기부는 방콕으로 옮겨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이에 대해 싱가포르대사관에 근무했던 외교관들은 하나같이 “이장춘(李長春) 대사를 비롯한 외무부 공무원들이 윤씨 기자회견을 싱가포르에서 여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방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씨는 “북괴의 리창용 대사대리는, 이름을 ‘현정길’로 바꾸고 외출시에는 안경을 끼고 다니고 수염을 길러 일본인 행세를 하라고 요구했다.” “당신(윤씨)은 이미 우리 돈을 썼고 우리 조국에 왔으니 서울에 가도 죽는다고 협박했다.” “한국에서 요즘 벌이고 있는 평화의 댐 건설 모금에 대해 (리창용은) 돈 없는 정부의 인민 착취라고 비방했다.” “그들은 내 처가 지상낙원인 평양에 있다고 말했다. 내가 처의 소재지가 어째서 일본·싱가포르·평양 등으로 종잡을 수 없냐고 묻자, 그들은 미안하게 됐다고 얼버무렸다”고 말했다.

1월9일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한 윤씨는 귀빈실에서 또 기자회견을 갖고 “여태껏 살아오면서 반공(反共)의 참 의미를 이해 못했는데, 이번 일로 반공은 바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수염을 깎지 않은 텁수룩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을 한 윤씨는 회견 내내 오른손으로 가슴을 문질렀다. 기자들이 “왜 가슴을 문지르는가”라고 묻자, 윤씨는 “그동안 너무 공포에 질려 심장이 울렁거린다”고 대답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끝으로 윤씨 납북 미수사건에 관한 기사는 신문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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