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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60살 金正日’ 뭘 노리나

강성대국 고집하면 탈레반정권 꼴 난다

미국보수파의 시각

  • 김영훈 < 美연합감리교회 정회원 목사·NSCF(National Security Caucus Foundation) 아시아담당책임자

강성대국 고집하면 탈레반정권 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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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국방부는 1998년 무렵 북한이 공격해올 경우 즉각 괴멸시키는, 이른바 ‘섬멸작전’을 짜놓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북한이 4대 군사노선의 하나로 건설한 땅굴·요새·동굴 등을 탐지해놓고 남한을 공격하기 위해서 뚜껑을 열거나 밖으로 나올 때 공격·파괴하는 작전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이는 북한이 지난 40년 동안 개발한 지하은닉전술이 무용지물이란 사실을 보여준다.
1992년 부시대통령을 물리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클린턴은 ‘외교에 있어서 문외한’이라는 소문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북한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노력했다. 문자 그대로 적시적재를 만났던 것이다. 1993년 2월11일, IAEA(국제원자력기구)에서 북한 영변지역의 건물 2동에 대한 특별사찰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했으나 북한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14일만에 IAEA 이사회 결의로 특별사찰을 재촉구하자, 북한은 마침내 3월12일 NPT(핵확산방지조약)를 탈퇴한다고 선언해 갓 출발한 클린턴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북한은 이미 핵개발을 완료하고 있던 상태였으므로 미 정보당국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던 ‘B-500’을 사찰받을 수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클린턴 행정부는 3월17일 ‘북미고위급회담’을 주선했다. 이는 클린턴 행정부가 김정일 정권을 격상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북한이 바라던 협상테이블을 미국이 스스로 마련한 것이다.

이때부터 클린턴 행정부가 끝나는 2000년 12월까지 조명록 특사가 워싱턴을 방문하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기까지, 클린턴 정권은 8년 동안 온통 ‘북한과의 입씨름’으로 시간을 보냈다. 8년간의 ‘밀월관계’는 문자 그대로 북한에 횡재를 안겨주었다. 북한은 이 기간 동안 엄청난 수지를 맞추었다.



반드시 ‘확인’하겠다


첫째,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금강산 관광, KEDO, DJ의 햇볕자금, 각종원조, 외국원조 등). 둘째, 마오쩌둥의 협상수법인 ‘대화를 하다 타격하고, 싸우다가 대화하는(談談打 打打談)’수법으로 시간을 벌어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생산을 서둘렀고, 대포동 2호를 쏘아올리며 ‘강성대국’의 기틀을 잡아갈 수 있었다. 셋째, 조국통일이라는 구실 아래 그리고 햇볕정책에 편승하여 반미세력을 확산해가면서 남한의 반공세력을 반통일세력으로 약화하는 데 필요한 혁명 역량 강화에 진력했으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에 비해 클린턴 행정부가 얻은 것은 별로 없다. 따지고 본다면 8년 동안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세월을 낭비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국제적 위상을 올려주기만 했을 뿐이다. 특히 1953년 이래 대북 접촉과 대화 창구로 쓰던 판문점 정전위원회를 스스로 무력화시켰다. 외교관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외교관계도 이루어내지 못하면서 처음부터 외교채널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또 소련이 공산당을 해체하고 러시아로 돌아간 직후 탈냉전이란 좋은 기회를 클린턴 행정부는 무의미하게 보냈다는 점이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을 개혁과 개방전선으로 이끈 미국이 북한공산주의자에게는 오히려 놀아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또, 미국은 KEDO를 만들어 북한을 지원했고, 기타 인도주의 명목으로 쌀, 의료품, 의류 등을 공급했다. 미 정부 차원에서 다른 자유국가의 지원을 종용했고, UN을 통해서도 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제국주의 타도만을 외쳐댔다. 결국 클린턴 행정부는 반미주의 확산만 자초한 셈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미 공화당 수뇌부와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담에서 부시대통령이 밝힌 바 있는 ‘확인(verification)’이란 말은 클린턴 행정부가 8년 동안 속은 과오를 씻고 다시 출발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표명한 것이다.

그래서 2001년 부시정권이 출범한 이후 미국은 북한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고, 재래식 무기를 포함한 핵사찰을 요청해서 북한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반드시 ‘확인(verification)’해야 한다는 부시대통령의 강경노선 때문에 햇볕정책을 펼쳐오던 김대중 정부는 곤란하게 되었다.

정확히 10년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1992년 11월 미국에서는 대통령선거가 실시되고 있었고, 걸프전에서 승리를 거둔 부시 대통령은 당시 미국 안보정책에서 가장 골칫거리였던 북한을 강도높게 제재하려 했다. 지구상에서 2개의 주요 갈등지역인 중동과 한반도지역의 외교안보정책은 사실상 미국의 가장 큰 문제였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제압한 부시정권은 북한도 같은 수준에서 타격해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려고 했다.

미국은 걸프전에서 보여준 군사적 압력을 가해서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이끌고, 정치 민주화를 유도하면서 군사력 증대, 특히 핵개발을 저지하려 했다. 만약, 이때 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이 재선됐더라면 오늘날 한반도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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