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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유태준, 연출 어머니 코믹출연 김정일…

희극이 된 유태준 재탈북 소동 전말기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주연 유태준, 연출 어머니 코믹출연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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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의 어머니 안정숙씨는 엘리트 여성이다. 북한에서 손꼽히는 명문인 김책공대를 졸업한 안씨는 1965년부터 1992년까지 8개 국어로 출판물을 제작하는 평양의 외국문출판사에서 연구사 생활을 했다. 일본어로 제작되는 ‘조선화보’(朝鮮畵報)는 한국인에게도 매우 익숙한 북한의 출판물인데, 조선화보를 제작하는 곳이 바로 외국문출판사다.

안씨의 아버지는 1943년 일본 순사를 죽이고 가족을 데리고 중국으로 도주했다. 이때 안씨의 오빠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광복 후 안씨의 오빠는 북한으로 돌아와 인민군 군관(장교)이 되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오빠는 대대장으로 참전해 경북 영덕에서 전사했다. 그리고 4년 후인 1954년 안씨 가족은 북한으로 돌아왔다.

북한 정부는 죽은 오빠에게 ‘열사증(烈士證)’을 발급했는데, 열사증 덕분에 안씨의 가족은 성분을 인정받는 계층이 될 수 있었다. 외국문출판사 연구사를 할 때 안씨는 인민경제대학 교원(교수)과 결혼해, 유태준을 잉태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잉태 4개월 뒤 병사했다. 유복자를 낳은 안씨는 10여 년을 수절하다 아내와 사별한 고급 군관을 만나 재혼했다. 안씨의 두 번째 남편은 소장(한국군에서는 준장)까지 진급해, 전 인민군에게 의약품을 공급하는 후방총국의 군의(軍醫)국장을 맡았다. 두 번째 남편에게는 사별한 전처에게서 얻은 장성한 자식이 있었다. 안씨는 둘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이근혁을 낳았다. 근혁은 안씨의 큰아들인 유태준과 13살 차이가 난다.

유태준은 새 아버지를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청소년기 때부터 집밖으로 돌며 공부를 게을리했다. 대신 광적으로 소설을 탐독했다. 북한 소설은 전혀 읽지 않고 알렉산더 뒤마, 세익스피어 등 서양 작가들의 명작을 탐독했다고 한다. 이때 그는 라디오를 조립해 KBS를 비롯한 한국 방송을 들으며, 한국을 동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내로라 하는 엘리트들인 안씨 부부도 김정일 체제에 혐오감을 품기 시작했다. 안씨는 “평양에서 남들이 보기에는 분명 호의호식하고 살았지만 우리는 북한은 곧 망한다, 아니 망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부지불식간에 북한체제에 대한 불만이 노출됐는지 1992년 남편은 함남 함흥으로 철직(좌천)되었다. 안씨는 외국문출판사를 그만두고 함흥으로 따라가 함남도일보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1994년 두 번째 남편이 또 병사했다. 그러자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남편의 자식과 안씨는 자연 멀어지고, 안씨는 성 다른 두 아들을 거느린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공부에 취미가 없었던 큰아들 태준씨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그러나 생모와 계부가 막강한 자리에 있었던 만큼 ‘빵빵한 직장’인 함흥 연료판매소에서 지도원으로 일할 수 있었다.

둘째아들 이근혁이 사춘기에 들어서자 두 형제는 서로를 싫어해, 자주 다투었다. 계부가 사망한 이듬해 유태준은 함남도 국가보위부 지도원 집안의 딸인 최정남과 결혼했다. 북한은 여권(女權)이 신장되지 않은 사회라 여성은 남성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문화가 남아 있다. 최정남이 그러한 문화에 젖은 여자였다. 최정남과 결혼한 유태준이 분가하여 나간 후 안씨와 둘째 아들은 북한 체제에 대해 심각한 불만을 주고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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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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