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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ㅣ 정년퇴직 외교관 3인의 회고담

권력 눈치 보는 외교관에 외교정책은 공염불

  • 이동진 < 시인, 전 주나이지리아 대사 >

권력 눈치 보는 외교관에 외교정책은 공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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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은 엉터리다. 영어는 그것으로 밥벌이할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90% 이상은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영어만으로도 해외여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미국인도 영어문맹률이 20%라고 아우성이다.
외교관 생활 30여 년 끝에 남은 것이라고는 ‘낡은 트렁크와 늙은 마누라가 고작’이라는 말이 있다. 어딘가 자조적으로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외교관들은 자부심을 갖고 신사답게 우아한 노후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내 경우는 어떤가. 특정인 또는 그룹의 눈에 벗어났다는 이유로,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노래한다는 정권 시절인 2년 전에 55세의 나이로 본의 아니게 퇴임했으니 나로서는 회고담이란 말이 좀 어색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어제라는 거울에서 반사된 빛으로 오늘과 내일의 삶을 비추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의무라고 믿고, 그런 의미에서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만 솔직하게 정리해본다.

나는 1969년 여름에 외무고시 2기에 응시해서 9명의 합격자 명단에 들었다. 졸업하려면 아직 한 학기가 남아 있었고, ROTC 생도 신분이어서 군복무도 마쳐야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나는 외무사무관 시보로 발령났다. 그해 9월1일부터 근무하라는 것이었다. 졸업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아마도 총무처에서는 내가 재학생인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아니면, 당시 중앙청에 자리잡고 있던 외무부(현재 외교통상부)로서는 직원이 한 명이라도 급하게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졸업을 해도 취직자리가 별로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나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고시합격자가 희귀하고 여권을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그 시절에 외무부의 사무관, 즉 앞으로 해외에 나가서 근무할 외교관이라는 신분은 매우 근사한 것이었다. 여대생들이 배우자 선택의 우선 순위를 꼽을 때 첫번째가 외교관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당시 신문의 설문조사 결과는 그랬다.

그때 젊은 외교관과 결혼한 부인들 가운데 지금은 상당수가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객지생활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외교관이란 외로운 직업이고 영원한 뜨내기 인생이라고도 한다. 외교관 자신은 직업상 해외근무가 필수적이니까 고생이다 뭐다 얘기할 것도 없지만, 부인들은 집안살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하는 데 전념해도 바쁜 판에 본국에서 오는 높으신 분들 접대하느라 관저 만찬이 있을 때면 뻔질나게 불려가 부엌데기 노릇을 해야 하는 신세니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고위층 손님이 촌지를 놓고 가도 수고한 부인들에게 분배된 예는 극히 드물었다.

무료로 근로봉사를 하는 것인데, 그게 좋게 말해서 자원봉사이지 사실은 강제노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공관장이 관저에서 밥장사를 한다는 말이 이제는 사라졌으리라 믿는다. 외교관의 부인도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보낼 인권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물론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외교관 부인의 활동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 자질을 높이는 제도적인 장치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외교관은 시험으로 뽑지만, 그들의 부인마저 시험을 쳐서 뽑을 수는 없다. 그러니까 별도의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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