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호

“정치판 망친 DJ와 YS, 국민에 사과하라”

백의종군 선언, 민주당 입당한 김상현 전의원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10-27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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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랑카랑한 목소리,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달변, 세월은 흘렀건만 예전 그대로였다. 후농(後農) 김상현 전의원이 돌아왔다. 정확히 말해 김 전의원은 정치권을 떠난 일이 없다. 2000년 4·11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탈당, 민주국민당 입당, 전국구 출마 등 그는 과거와 다름없이 선거에 나서고 정당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민국당의 실패는 후농을 비롯한 거물 정치인들에게는 지루한 정치적 동면의 시작을 의미했다. 언론의 조명을 단 며칠만 받지 못해도 국민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는 ‘슬픈 운명’을 지닌 정치인. 김상현 전의원도 그런 과거의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던 지난 3월7일 김 전의원이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김부기 경기대 정치학과 교수, 소재선 경희대 법대 교수 등 15명의 교수들과 함께 민주당에 입당한 것이다.

    그의 입당은 이런 저런 추측을 낳았다. 박근혜 의원의 한나라당 탈당, 이어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등 굵직한 정치적 사건 속에 발생할지 모를 정계개편과 관련, 김 전의원이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입당을 둘러싼 소문의 줄거리. 지난 3월15일 아침 신문로 백강빌딩 개인사무실에서 김 전의원을 만나 그를 둘러싼 소문에 대해 들어보았다.

    ―2년 만에 민주당으로 돌아왔는데 느낌이 어떠십니까.

    “어떤 면에서는 나 역시 민주당 창당의 주역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랜 여행 끝에 집에 돌아온 것처럼 아주 푸근한 느낌입니다.”



    ―이회창 총재의 대세론이 파다합니다. 그 와중에 민주당을 선택했는데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이 가능하다고 보시는 건가요.

    “나는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 정치권의 최우선적인 과제는 정치개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측근정치를 청산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지 않고서는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의 민주화가 불가능하다, 이것이 나의 일관된 주장이었습니다. 나는 10여 년 전에 이미 국민경선제를 주장했습니다. 8년 전 내가 지구당위원장으로 있던 서대문 갑구에서 시의원 후보와 구의원 후보 선거를 처음으로 국민경선제로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경선제의 지역적인 모델이었습니다. 민주당 탈당 이후에도 민주당 지도부나 국회의원들, 정부 인사들을 만나면 민주당이 재집권하는 길은 국민경선제의 도입이라고 주장했어요. 선거인단이 최소한 100만에서 200만명 정도가 참여하는 국민경선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최소 100만명이라고요?

    “지금 자금살포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이건 투표인단 수가 적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투표인단이 100만명 이상이면 투표인을 매수하기 위한 자금살포가 불가능합니다. 선거공영제를 실시해 후보자들은 그 지역 대의원들을 상대로 정견발표만 하도록 하는 거죠. 100만명의 대의원이 참가한 경선에서 당선된 후보는 호남사람이라도 호남후보라 할 수 없고, 영남사람이라도 영남후보라 할 수 없는 명실공히 국민후보가 된다 이겁니다. 당을 떠나 있으면서도 이런 예비선거를 통해 후보를 뽑는 것만이 민주당이 재집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동지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민주당 경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민주당은 제한적이나마 지금 최초의 국민경선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나마 하기 때문에 민주당의 지지도가 향상되고 있는 겁니다. 전국 경선이 마무리되면 민주당 지지도가 더 올라가고 여기서 결정된 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보다는 앞설 것으로 봅니다. 신문이나 방송광고를 통해 민주당을 알리려 했다면 몇백억원을 써도 이런 효과 못봤을 겁니다.”

    ―당 지도부를 뽑는 최고위원 경선도 있는데 참여할 생각은 없으세요.

    “그 원인이 무엇이건 간에 탈당한 뒤 돌아와서 경선에 나가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지도부 경선에는 동지들을 격려하며 당의 민주화 과정에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민주당 입당을 전후해 정가에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냥 돌아온 것이 아니라 뭔가 계획을 갖고 돌아왔다, 이런 관측이 있었습니다. 왜 민주당에 돌아왔습니까.

    “민주당은 집권당임에도 그 기능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4년 동안 한나라당 총재가 조순, 이기택, 이회창씨로 바뀌었습니다. 민주당을 보면 조세형, 이만섭, 김영배(이상 국민회의 시절), 서영훈, 김중권, 한광옥 대표로 이어져왔습니다. 그런데 4년 동안 집권당 대표가 제1야당 대표와 차 한잔 마신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한국정치의 현주소예요. 야당은 있어도 여당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여야 정당간의 대결이 아니고 건건이 야당과 청와대가 정면 대결하는 양상이었어요. 집권당은 실종됐다 이겁니다.

    김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종식시키고, 외환위기를 조기 졸업하는 등 업적이 있었다고요. 그런데 대통령 지지도가 20%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이유가 뭡니까. 정치가 실종됐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정치의 구심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내가 민주당에 들어가서 해야 할 일은 민주당이 나머지 1년 동안 집권당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게끔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나의 입당동기입니다.”

    한마디로 바깥에서 보니 엉망이다, 과거 경험을 살려 민주당의 기를 한번 살려보겠다, 뭐 이런 호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지난 4년 동안 민주당 대표들이 모자란 사람들이어서 ‘정치실종’을 방치한 것은 아닐텐데, 김상현 전의원이라고 달리 뾰족한 수가 있을까.

    ―그럼 어떻게 해야 되죠?

    “앞으로 민주당의 새로운 지도부가 탄생하면 그 사람들이 해야죠. 문제가 있을 때 이를 기회로 창출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해요.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새로운 창조와 발전의 돌파구로 만드는, 그런 지도력을 갖게끔 우리가 뒷받침해야죠. 그래서 지도부가 생산적이고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을 갖게끔 우리가 도와주면 정당정치 의회정치가 제 모습을 찾을 수가 있다고 봅니다.”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나요.

    “우선 새로운 지도부가 탄생하면 여야간 대화를 복원해야죠. 지금은 대화 자체가 없거든요. ‘올 오어 낫싱’의 정치가 아니라 공생의 정치를 하기 위해 스스로 상대방에게 명분과 실리를 주는, 그런 식으로 정치를 풀어나가면 되는 거예요. 집권당이 모범이 돼야죠. 야당의 건설적인 대안이 국민복지에 도움이 된다면 수용하고, 그러면서 대화의 정치를 만들어내야 해요. 상대를 비방하는 국회 대정부 질문이나 여야 대변인 성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이제는 비전을 얘기하는 정치, 상대의 긍정적 측면을 서로간에 밝히는 그런 정치문화를 만들지 않으면 한국정치는 국민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때가 된 것 같았다. 대화복원, 공생의 정치…, 지난 4년간 늘 맞붙는 여야 대결구도에서 정말 국민들이 그리워했던 표현들을 김 전의원은 술술 쏟아냈다. 정치권의 변화를 머릿속에 그리고 민주당에 돌아왔다는 항간의 추측은 과연 사실일까. 본격적으로 그의 포부를 들어보았다.

    ―비전의 정치를 얘기했는데 김 전의원이 여야의 대표가 만날 수 있도록 모종의 역할을 하겠다는 뜻입니까?

    “당대표가 뽑히면 그가 그 역할을 해야겠죠. 당 대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우리 같은 사람이 야당 대표하고도 만날 수 있겠죠. 결과적으로 양당의 공식채널이 가동 돼야죠. 우리는 막후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민주당에 입당했으니까, 민주당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 진력하겠다는 뜻이군요. 구체적으로 잘못된 관행이란 뭡니까.

    “예를 들면 총재 눈치나 보고, 총재에게 듣기 좋은 소리나 하고, 총재와 시시비비 논쟁을 하지 못하고 그저 면종복배해온 것이 민주당 지도부의 모습이었습니다. 정치가 실종되고 김대통령 지지도가 낮아진 것은 김대통령 개인에게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민주당 지도부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필요할 때는 아무 말 못하다가 대통령이 총재 그만둔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대통령이 뭐가 어떻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구상유취(口尙乳臭)하다 이겁니다. 사람이란 불이 나가 있을 때나 켜 있을 때나 한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평소 ‘만장일치는 무효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어도 그 사람 얘기를 경청해줄 수 있는 자세는 돼 있어야 합니다.”

    김 전의원은 김대통령을 ‘그 양반’이라고 불렀다. 김대통령을 ‘상전’이 아닌 ‘정치적 동지’로 보는 김상현 특유의 오기가 실려 있었다. ‘그 양반’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김 전의원의 열변이 이어졌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는 50년 동안 형님 아우하며 지냈습니다. 그 양반하고 보낸 50년 동안 항상 논쟁하고 시시비비해왔지 그 양반한테 잘 보여 그 양반 대통령 되면 나 한자리 해야겠다, 이런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정치사에서 만약 이승만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국부로 평가받고 퇴임했더라면 4·19 같은 불행한 일도 없었고 5·16 쿠데타도, 5·18 쿠데타도 없었을 겁니다.

    새천년민주당 창당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지도부 30여 명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신당 지도부가 다 있는 자리에서 ‘새정치국민회의가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끌어낸 정당인데 무엇 때문에 국민회의 간판을 내리고 신당을 창당하냐’고 비판했어요. 또 ‘국민회의를 강화하고 격상시키는 것이 총선 승리의 길’이라고 대통령에게 얘기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 말도 못하고 분위기도 엄숙했습니다. 나는 당시 우리 지도부들이 좀더 대통령과 논쟁하며 시시비비를 가렸으면 오늘 같은 어려운 상황이 오지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민주당을 창당한 것이 오히려 정권을 더 어렵게 했다는 얘기군요.

    “어렵게 했죠. 나는 민주당 창당이 결과적으로 총선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청와대의 그 발언이 결국 부메랑이 돼서 김 전의원의 공천 탈락 계기가 되지 않았나요.

    “하하… 그뿐만 아니었죠. 나는 한 50년 동안 대통령하고 논쟁만 해왔는데….”

    ―번번이 논쟁을 벌이니까 대통령도 김 전의원을 안 좋아하는 것 아닙니까.

    “하하… 나는 그 양반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국부, 민주주의의 모델로 남는 것이 소망이고 꿈입니다.”

    ―현재 진행중인 ‘아태재단 게이트’니 하는 사건들로 봐선 대통령의 지지도가 올라갈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김대통령이 전략을 가지고 인사(人事)를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경영이라는 전략개념이 빈곤한 것 아니었는가 하는 느낌입니다. 인사에 다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김대통령은 단지 민주당의 총재도, 동교동의 보스여서도 안됩니다. 국가를 경영하려면 사람 쓰는 것부터 적재적소의 원칙을 지켰어야 합니다. 교육부장관이 일곱 번이나 바뀌었다는 것만 하더라도 납득이 안가는 일입니다. 각종 게이트 사건이 대통령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죠. 대통령의 측근이랄까, 그런 사람들이 자기관리에 실패한 데서 오늘날 게이트 사건의 원근(原根)이 있지 않느냐….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정계개편 논의가 활발합니다. 박근혜 의원의 탈당에서 비롯된 신당의 출현 가능성도 나돌고, 민주당 내에서도 현재 지지도로는 대선승리가 어려우니까 어떤 식으로든 정계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혹은, DJ가 선거 때마다 해왔던 신당창당 얘기도 들립니다.

    “거기에 대해 직접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1987년 양 김씨가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오늘날 지역패권주의를 낳은 가장 큰 원인이라 봅니다. 양 김씨가 후보단일화를 하지 못함으로써 노태우 정권을 탄생시켰고,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 공히 집권과정에 5·6공 세력과 야합할 수밖에 없었던 데도 양 김씨의 책임이 있어요.

    1987년 양 김씨가 후보단일화를 못해 지역감정이 심화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온 거예요. 나는 한사람은 대통령을 지냈고 한 사람은 임기를 마쳐가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공동으로 후보단일화를 못해 지역감정을 심화시키고 민주세력을 분산시킨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합니다. 양 김이 만나서 화해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두 사람이 만나서 국민에게 사과부터 하라는 겁니다. 두 사람이 화해하고 안하고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이런 뜻으로 얘기했는데 일부 언론에서는 내가 양 김씨 화해시키려 민주당에 들어갔다고 썼는데, 그건 아닙니다.”

    ―지난 3월6일 김영삼 전대통령을 만났는데 그때 이런 얘기도 했습니까.

    “그랬지요.”

    ―뭐라고 하던가요.

    “내가 그런 얘기하면 가만히 있어요. 만날 때마다 그런 얘기를 하니까요. 박종웅 의원도 나보고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두 분이 국민 앞에 나서야한다’고 해요.”

    ―1987년 이후 민주화운동 세력들은 일부는 YS를 따라 민주당, 민자당, 신한국당을 거쳐 한나라당으로 가기도 했고, 일부는 DJ를 따라 평민당, 신민당, 국민회의를 거쳐 민주당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분열이 이념과 노선의 차이가 아니라 출신지역에 따른 분열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경상도 출신 민주화운동 세력은 한나라당으로, 전라도 출신 민주화운동 세력은 민주당으로 지역에 따라 갈라져 버렸거든요. 이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는 정계개편을 하려면 출신지역이 아닌 ‘진보 대 보수’ 이렇게 이념과 정책에 따라 하라는 요구도 적지 않습니다.

    “정치권 내에서도 민주대연합 같은 주장이 나왔죠. 사실 1987년 후보단일화 실패의 책임이 전적으로 양 김씨에게만 있다고 보지는 않아요. 양 김씨 주변 인물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그때 분열을 막는 데 전부 동참했어야지요. 나는 당시 전국을 돌며 후보단일화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였는데 만일 상도동과 동교동 진영에서도 이 운동에 참여했다면 어떻게 양김이 후보단일화 안했겠습니까. 그저 양 김에게 잘 보여 국회의원 공천이나 받고, 좋은 당직이나 받으려고 아첨하다가 결국 양 김 분열을 만든 것 아닙니까.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은 다 조용한데 김상현이 혼자 떠들고 다니니까 저건 손좀 봐야겠다, 그랬던 것 아닙니까.”

    이 대목에서 김 전의원은 목소리를 높였다. DJ에 대한 섭섭한 심정을 토로했다.

    “DJ가 어려울 때면 언제나 내가 있었어요. 5년여 동안 감옥살이를 했지만 나는 내 문제로 수사관한테 따귀 한대 맞아본 적이 없습니다. 김대중의 여자관계 대라, 정치자금 줄 대라, 군 관계 대라, 이래서 거꾸로 매달리고 전기고문당하고 그랬던 것 아닙니까? 나는 17년 동안 공민권을 박탈당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고생했습니다.

    내가 당내 민주주의를 주장할 때 동지들이 참여했으면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 거예요. 전부 침묵하고…. 오히려 4자 필승론이니, 3자 필승론 같은 헛소리를 해서 양 김을 분열시켜서 결과적으로 지역감정을 심화시키고 민주화 동지들이 설 땅조차 기반이 무너져가지고…. 요즘 옛날 동료들 만나면 통곡을 해요. 이게 뭐냐는 겁니다. 양 김이 성공적인 대통령이 돼야 우리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는데 양 김이 다 그렇지 못해 통탄한다 이겁니다. 동지들 중에 속상하니까 술만 먹다가 죽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김 전의원은 양 김 분열의 과거사를 울분을 실어 토해냈다. 분열의 역사를 극복해보겠다는 김 전의원의 실천은 ‘화해와 전진포럼’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침 인터뷰 전날(3월14일) 아침 화해와 전진포럼의 정기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에는 최근 한나라당 탈당이 점쳐지는 김덕룡 의원도 참석했다.

    ―어제 ‘화해와 전진포럼’에 참여하셨는데 그 모임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임 구성원들이 여야를 떠나 정계개편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2002년은 3김씨가 역사적으로 퇴장하는 시기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3김씨는 1970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정치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지난 30여 년 3김씨가 한국정치의 중심에 있으면서 구호만 민주화였지 정당민주화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직 그만두기 전에 민주당을 지금의 민주당으로 정착시켰다면 역사의 평가가 달라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했어야 할 일이 김대통령이 총재직 그만두니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이건 김대통령에게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변화는 곧 한국정치가 새로운 정치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다는 국민정서의 반영입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신당을 희망하는 수치가 높습니다. 이를 근거로 언론에서는 정계개편 얘기를 한다고 봐요. 나는 정계개편을 정치의 변화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정치권을 인위적으로 개편하는 게 아니라 정치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 변화 속에서 새로운 정치중심세력이 탄생할 수 있느냐, 새로운 정치중심을 창조할 수 있느냐, 이것이 쟁점이라고 봅니다.

    나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변화와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나의 민주당 입당 동기예요. 제한적이지만 현재 진행하고 있는 국민경선제와 당내 민주화실천이 변화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기회가 오면 세를 확산해야죠. 필요에 따라 다른 정파와 연대를 모색할 수도 있어요. 지금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김덕룡 의원의 탈당설도 나도는데 그분들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도 있죠. 신당이 성공할지는 누구도 몰라요. 그런 정파와도 언제든 연대해 정국 주도권을 민주당이 장악할 수 있도록, 리더십의 중심이 민주당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외부세력과 연대할 수도 있는데 그 과정에서 김 전의원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긴가요.

    “아니 내 역할보다는 당 지도부를 돕겠다는 겁니다. 조직에는 룰이 있습니다. 지도부가 중심이 돼 연대를 해나가게끔 힘을 보태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 거죠.”

    ―어제 ‘화해와 전진포럼’에서 김덕룡 의원을 만났을 텐데 한나라당을 탈당할 결심이 확고하던가요.

    “허허, 그건 김덕룡 의원에게 물어봐야죠. 고민을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민주당은 지금 한참 경선중인데요, 김 전의원이 보기엔 누가 대선후보가 될 것 같습니까.

    “누가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군요. 당원과 국민경선단이 선택할 것이므로 설령 예측을 하더라도 이를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총재에 맞서 경쟁력이 있을까요? 지금까지의 여론조사로는 줄곧 민주당 후보가 이총재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왔는데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경선 뒤에 제주도에서 여론조사를 하니까 민주당 지지도가 13%나 올랐다고 합니다. 3월15일 현재 투표자 수가 전체의 3%이니까 나머지 97% 투표가 끝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거듭 묻습니다만, 김 전의원의 민주당 입당을 두고 ‘정계개편과 관련한 모종의 임무를 갖고 들어왔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나는요, 민주당을 강화하러 왔지 민주당을 깨뜨리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민주당에 들어온 것을 두고 무슨 정계개편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러 온 것이 아니냐 하고 기자들이 자꾸 물어보는데 아주 곤혹스럽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개혁입니다. ‘개편’이 아니고 ‘개혁’입니다.”

    사실 고향인 민주당으로 돌아왔지만 김 전의원 주변에서는 한나라당으로 가라고 주문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공천탈락의 아픔을 줬던 민주당을 택했다.

    공천탈락, 정당정치를 하려는 정치인에게는 어쩌면 사형선고일 수도 있다. 인터뷰 말미에 김 전의원은 자신의 공천탈락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도저히 마음속으로 수긍할 수 없는 일을 당할 때 사람들은 하늘을 탓하기도 한다. 아마 김 전의원도 이런 심정이었던 듯했다.

    “민주당에서 공천을 못 받는다고는 꿈에도 생각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탈락했습니다. 속으로 참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인간의 지혜로서는 이해가 안돼 마음속으로 ‘이건 사람의 지혜로 이뤄진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이뤄진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공천 안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공천이 안된 거다’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편안하대요.

    우리 동지들 중에 한나라당 가면 편히 대접받을 수 있는데 계속 고생만 하는 민주당에 가냐고 해요. 그러나 정치는 갈등과 대립 속에서 조화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갈등과 대립이라는 것은 자연적 산물이라는 얘기죠.”

    “갈등을 즐기러 일부러 민주당에 재입당한 것 같다”고 농을 건네자 김 전의원은 크게 웃으며 “즐기지! 갈등이 없으면 재미가 없잖아요”라고 답했다.

    갈등을 즐기는 승부사 김상현, 67세의 노정객에게서 새삼 젊은 날의 패기에 찬 후농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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