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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형제’ 황장엽·김덕홍 결별 내막

황장엽, 김덕홍의 ‘訪美’와 ‘망명정부’를 거부하다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의형제’ 황장엽·김덕홍 결별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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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년 2월 전세계를 놀라게 하며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김덕홍씨가 서로를 비난하며 갈라섰다. 왜 두 사람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가. 두 사람 사이의 담합과 이별 과정을 정밀하게 추적해 보았다.
1997년 2월12일 중국 베이징에서 전세계를 놀라게 하며 한국대사관으로 망명한 황장엽(黃長燁·79)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김덕홍(金德弘) 전 여광무역 사장이 최근 사이가 크게 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은 탈북자들을 상대로 한 폭넓은 취재로 확인한 것이다.

사선을 함께 넘은 동지인 두 사람이 멀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외부에 알려진 이유는 황장엽씨의 방미 문제 때문이다. 지난 1월17일 황씨는 성명을 통해 “내가 미국 방문을 그만두면 마치 국정원이 개인연구소를 지어줄 것처럼 회유하였다는 것은 전혀 사실에 맞지 않는다”며 “국정원은 이런 작용을 하려고 시도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황씨는 “내가 국정원의 회유로 정치적 주장을 바꾸고 양심을 판 것처럼 주장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며 “이미 작년 9월 ‘월간조선’ 등에 (내가 할 이야기들을) 다 발표했는데, 그런 문제(북한 핵·생화학무기 실태 따위)를 되풀이해 논증하기 위해 미국에 갈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덕홍씨는 다음날 발표한 성명에서 ‘황씨와 국정원 간의 유착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이 성명에서 김씨는 “나는 국정원이 형님(황장엽)의 개인연구소 건설에 대한 집착을 미국 방문과 대치시켜 배후공작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우리 두 사람의 방미를 저지하기 위한 국정원의 배후공작은 현정부의 정책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날짜 조선일보는 김씨가 측근을 통해 “현재 황씨는 국정원과 이해관계 차원에서 야합해 있다”는 주장을 전해왔다고 보도하였다. 김씨의 이러한 주장은, 황씨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서 미국 방문을 포기했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과연 황씨는 자신의 신조를 바꾼 것일까. 두 사람이 갈라서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主體라는 용어를 소개한 지식인


황장엽씨는 북한에서 조선로동당 비서 등의 공직을 맡긴 했지만, 그의 인생은 학문연구로 점철된 학자의 길이었다. 소련 모스크바국립대학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54년 이후 황씨는 김일성대학 철학과에서 강의를 하며 철학과 강좌장(철학과 학과장)을 맡았다. 1956년 황씨는 김일성대학 창립 10주년 기념 논문집에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황씨는 세계 역사는 정(正)-반(反)-합(合)의 변증법적 논리로 발전해왔다고 주장했다. 헤겔의 변증법적 사관을 소개한 그는 이러한 역사 발전을 걸어온 나라는 역사를 정-반-합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주체성이 있었다며, ‘주체’를 강조했다. 이것이 북한사회에 주체라는 단어를 공식 등장시킨 최초의 계기였다.

1970년 조선로동당은 제5차 당대회에서 ▲주인다운 태도인 자주적 입장을 견지한다 ▲창조적 활동으로 자기혁명을 시도한다 ▲남으로부터 원조를 받지 않고 자기 갱생을 해야 한다는 것 등을 주내용으로 한 주체확립 중심개념이라는 개념을 채택하였다. 이렇게 해서 김일성 정치체계에 채택된 ‘주체’는 이후 김일성 유일지배 사상을 만들어내는 키워드가 되었다.

북한은 황장엽씨가 주체라는 말을 소개하기 전에 이미 김일성이 주체라는 말을 썼다며 역사 조작까지 하였다. 1926년 10월 김일성이 만주에서 항일 빨치산 투쟁을 할 때 결성했다고 하는 타도제국주의동맹(약칭 ‘ㅌㄷ’)에서 주체사상이 처음 언급되었다고 조작한 것이다. 그리고 1930년 6월 열렸다는 카룬회의에서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는 주체형(主體型)으로 당조직을 운영하였다고 주장했다.

1950년대 중반 북한에서는 유일한 철학박사였던 황씨는 학문적 실력을 인정받아 1965년 김일성대학의 총장으로 승진했다. 단순한 학자에서 공적인 인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김덕홍씨는 한국의 경찰청과 유사한 사회안전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김일성대학의 교무지도원(교직원)으로 옮겨옴으로써 총장이던 황씨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1979년 황씨는 조선로동당 사회교육 담당 비서 겸 주체사상연구소장으로 옮겨가고 1984년에는 조선로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되었다. 학문의 세계에서 정치의 세계로 몸을 옮긴 것이다.

이러한 황씨를 약간의 시차를 두고 따라간 것이 김덕홍씨다. 황씨 밑에서 일하던 김씨는 조선로동당에서 운영하는 여광무역이라는 무역회사를 맡게 되었다. 이 회사는 중국에 사무실을 두고 있어, 김씨는 베이징에 자주 머물렀다. 1995년 황씨는 국제주체재단 이사장이 되었다. 국제주체재단 이사장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자리라 황씨의 외국행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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