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호

경륜인가 젊음인가 눈터지는 계가 싸움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09-09 17:2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서울은 벌써 포연 자욱한 전쟁터다. 5월13일 밤,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 후보와 민주당 김민석(金民錫) 서울시장 후보는 KBS 주최 방송토론회에서 한바탕 접전을 벌였다. 이날 토론은 김후보가 시종 공격을 하고 이후보가 방어에 나서는 식으로 진행됐다. 며칠전 있었던 YTN 주최 토론회 때까지도 화기애애하던 두 사람은 돌연 태도를 바꿔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점퍼차림으로 나타난 김후보는 작심한 듯 이후보의 약점을 무차별 공격했고, 예상치 못한 김후보의 공격에 당황하는 이후보의 모습이 TV화면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생방송중인 TV 프로그램에서 이처럼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이유는 두 후보가 지지도의 격차가 거의 없을 정도로 박빙의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석의 선제공격

    특히 이날 방송에서 공세에 나선 김민석 후보의 경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 결과 이후보에 비해 비교적 여유 있게 앞서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두 후보의 지지도 격차가 좁혀지거나, 심지어 일부 조사에서는 오차범위 안이기는 하지만 순위가 뒤바뀌는 현상이 벌어지자 다급한 마음에 김후보가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는 게 관전자들의 평이다.

    방송 직후 김민석 후보 진영에서는 “서울시장은 정책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며 “정책능력과 더불어 비전과 경륜을 종합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후보의 신상문제를 거론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공중파 방송의 첫 합동토론회였던 만큼 강인한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평온하던 서울시장 선거전이 이날의 치고받는 일전 이후 불꽃튀는 난타전으로 전개될 공산이 커졌다. 서울시장 선거전의 관전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청계천 복원이라는 환경 공약을 선점한 이명박 후보가 과연 청계천프로젝트로 서울시민들의 지지를 얼마나 끌어 모을 것이냐다. 만약 청계천 복원사업이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면 향후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컨셉트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발전과 복원이라는 충돌하는 두 가치개념 가운데 복원에 무게를 두려는 지자체단체장들이 속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 30대 후반의 김민석 후보가 역대 최연소 서울시장으로 입성할 것이냐다. 만약 그가 성공한다면 정치권 세대교체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될 전망이다. 김후보가 내세운 슬로건도 ‘시대교체’다. 서울시민들이 젊은 김후보를 새로운 대안으로 선택한다면 다음 총선에서는 386세대의 진출이 더욱 두드러지면서 정치권 세대교체는 붐을 이룰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민노당의 이문옥 후보는 과연 어느 정도 표를 모을 수 있을까 이다. ‘반부패운동’의 대명사인 이후보가 두 자릿수 이상의 의미 있는 득표율을 기록한다면, 의외의 선거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현재까지 선거운동조직과 정책분야에서 비교적 앞서가고 있는 쪽은 이명박 후보다. 다른 후보에 비해 준비기간이 절대적으로 길었던 까닭이다.

    그의 선거캠프에는 한나라당의 서울지역 초재선 의원들이 모두 모여 있다. 오세훈(강남을) 의원이 선거운동본부 대변인을 맡았고, 김영춘(광진갑) 의원이 기획위원장을, 이성헌(서대문갑) 의원이 조직위원장을 맡아 선거운동본부의 젊은 두뇌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이밖에도 원희룡(양천갑) 의원이 홍보위원장을 맡았고 이승철(구로을) 의원이 수행실장으로 이후보와 지근거리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선거본부의 사령관인 선거본부장은 이재오(은평을) 원내총무가 맡았다. 한나라당의 서울지역 초재선 의원들이 모두 모인 선거운동본부를 통해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 거는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김민석 후보의 선거운동본부는 중량감에서는 한나라당에 미치지 못한다. 선거대책본부 상임본부장을 맡은 이해찬(관악을) 의원이 눈길을 끌지만 이의원을 제외하면 선대본부의 핵심에서 현역 의원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선대본부 대변인인 김성호(강서을) 의원과 김명섭(영등포갑) 의원, 함승희(노원갑) 의원이 캠프 외곽에서 김후보를 지원하고 있는 정도다. 서울지역에 스타급 현역의원들이 즐비함에도 서울시장 선대본부에 참여한 현역의원이 없는 결정적 이유는 혼란스러운 당내 사정 때문이다. 당대표와 대선후보를 뽑는 경선을 거쳤지만 지도부 내부의 갈등으로 당 조직정비가 늦어진 것이 김후보의 선거캠프 구성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청계천 복원을 간판 정책으로 채택한 이명박 후보 진영이 정책 경쟁에서도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서민복지정책과 함께 21세기에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등 환경정책에 시민들의 관심이 높을 것이라는 전망으로 오래전부터 서울의 환경개선을 위해 준비를 해왔고 그 결과가 청계천 복원이었다”며 “이를 위한 고민과 준비가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보는 청계고가 철거 및 청계천 복원 외에도 서울시내 교회당과 성당, 사찰 시설을 활용한 영아 보호시설을 확보해 주부들의 탁아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야심찬 공약도 준비했다. 이후보는 “이 문제와 관련, 종교지도자들과 의견을 나누었는데 아주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후보는 “여야의 대선주자 경선이 끝나고 본격적인 지방선거 국면에 접어들자 나를 좋아하는 유권자층이 서울시장 선거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해 지지율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며 당선을 자신했다.

    이밖에도 이후보는 ‘한 역 건너뛰기 운행’으로 지하철의 운행 속도를 높이는 아이디어도 공약으로 채택했다. 또 대중교통으로 환승할 경우 현행 10%인 할인폭을 50%까지 늘려 도심 교통체증을 해결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밖에 노인전용병원, 공익근무요원을 활용한 장애인 전용택시 운행 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공약들이 적지 않다.

    김민석 후보는 젊음의 역동성으로 승부를 건다는 전략이다. 12일 TV토론에 점퍼 차림으로 등장한 것도 “과감하게 틀을 깨는 개혁성을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 전략”이었다고 한다.

    김후보 측은 이명박 후보 진영의 최대 공약인 청계천 복원 계획이 사실상 환경친화적 복원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후보 선대본부의 김성호 대변인은 지난 14일 성명을 발표하고 “이명박식 청계천 복원’은 냇물이 흐르고 아낙네가 빨래하고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는 원형 그대로의 청계천이 아니라, 폭 6m 정도의 획일적인 인공냇가를 도심공간에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며 “옛날의 향수가 젖어 있는 청계천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와 선조들의 정취가 사라진 ‘이명박 청계천’만 서울 도심에 남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대변인은 “김민석 후보처럼 완전한 대책을 세운 뒤 추진하는 책임 있는 공약을 내세울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김후보 측은 “최근에 지지율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바닥을 치는 과정이라고 본다”며 “두 후보간의 정책대결이 본격화되면 다시 김후보가 앞서나가며 지지율 격차를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두 후보의 청계천 복원을 둘러싼 논쟁이 서울시장 선거전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두 사람 외에 민노당 이문옥 후보가 서울시장을 향해 뛰고 있고, 사회당 원용수 후보도 출사표를 던진 상태. 이 가운데 이문옥 후보의 경우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바람몰이를 하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선거전에 적지 않은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문옥 민노당 후보가 공직선거에 출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4대 총선 때 광주동구에, 15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을구에 출마해 화제를 낳은 바 있다.

    이문옥 후보는 “서울은 복마전이었다. 국가적으로 큰 비리들이 많다보니 서울시의 비리는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중앙인 서울시부터 수술해야 부패방지가 실효를 거둘 수 있다”며 서울시장 출마의 변을 밝혔다.

    민노당의 후보답게 이후보는 공무원 노조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시장이 되면 노조설립에 힘을 모을 생각이다. 악법은 어겨야 고쳐진다. OECD 가입국 가운데 공무원 노조가 없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밖에 ‘시민참여예산제도’라는 독특한 제도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시민들이 요구해서 올라온 안을 근거로 예산을 편성함으로써 예산편성에 시민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면 예산낭비도 막을 수 있다. 시민이 직접 편성한 예산이므로 집행에도 엄격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예산절감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박빙의 대결, 활발한 정책대결에 예상 밖의 치열한 설전, 서울시장 선거전은 일단 흥행이 될 만한 요소를 고루 갖춘 채 유권자들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