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국군춘천병원에 면제 판정 비밀 있다”

이회창 아들 병역기피 의혹 논란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04-09-06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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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 확인, “당시 신한국당 의원들이 병무청 고위관계자 K씨를 만났다는 ‘목격자 진술’ 있다”
    • 97년 당시 병무청 고위관계자 K씨, 2000년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명단에 올랐었다
    • ‘은폐대책회의’ 목격자로 지목된 K씨의 전 수행비서, 최근 병무청에 사표 낸 이유
    • 정연씨 신검판정 관계자, 대선 끝난 후 시말서 쓴 내막
    • 국군의무사령부 정연씨 신검부표 파기 관련자료 요청에 “확인 불가”
    • 정연씨 병적기록표에 나타난 국군춘천병원의 면제판정기록 의혹
    • 이회창 후보측, “터무니없는 얘기” 일축
    뇌관의 심지가 타들어 가는 형국. 5년 만에 재연된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의 큰아들 정연씨의 병역기피의혹 논란이 그렇다.

    지난 5월 하순 주간지 ‘오마이뉴스’의 ‘기습 보도’로 촉발된 이 논란은 잠시 냉각기를 거쳐 월드컵 열기가 가실 6월말 이후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치권에 핵폭풍이 될 수도 있다. 몇몇 기자들이 사실확인을 위해 뛰고 있는 데다 정연씨 병역면제과정에 관계했던 모 인사가 조만간 기자회견 형식으로 ‘양심선언’을 한다고 알려진 까닭이다.

    다소 식상한 느낌마저 주는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면제가 새삼 관심을 끄는 것은 5년 전보다 ‘강력한’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1997년 7월 대선을 5개월 앞두고 불거진 이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은 이후보의 지지율을 크게 떨어뜨렸다. 하지만 야당인 국민회의측은 의혹만 제기했을 뿐 물증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양심선언 기자회견’ 예정

    새로 제기된 의혹의 핵심은 두 가지. 하나는 1997년 7월 신한국당 대선후보인 이회창씨 아들의 병역 문제가 제기됐을 때 신한국당 의원 한 명과 이회창 후보의 측근이 당시 병무청 고위간부와 함께 이른바 ‘병역비리 은폐대책회의’를 가졌다는 의혹이다. 이 두 정치인은 현재 모두 한나라당 의원이다.



    또 하나는 이 논란의 본질적인 사안으로, 이후보 아들이 병역을 면제받게 된 경위와 ‘체중 조작’ 의혹이다. ‘양심선언’을 할 모 인사는 바로 이 부분과 관련해 매우 구체적인 증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아’가 단독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정연씨의 병역면제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그의 증언은 1997년 ‘허위 양심선언’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당시 병무청 직원 이재왕씨의 ‘폭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폭발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한나라당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은폐대책회의’에 참가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두 의원은 “당시 병무청 고위간부와 만난 일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이회창 후보는 5월24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 “은폐했다면 어떻게 대통령 후보가 되겠느냐”며 “(이런 사실이 드러나면) 대통령 후보를 안할 것”이라고 말해 아들의 병역기피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후보직을 사퇴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한나라당은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고, 중재위 결정에 따라 ‘오마이뉴스’는 이후보측의 반론을 실었다. 하지만 애초 계획했던 민·형사소송은 제기하지 않아 그 배경에 의문이 일고 있다.

    한편 민주당은 5월29일 인천시지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아들 병역비리 은폐의혹 진상규명특위’를 구성하고 위원장에 천용택 의원, 간사에 함승희 의원을 임명했다. 특위는 월드컵이 끝난 후 이 문제를 본격 조사할 예정이다.

    5년 만에 이회창 후보의 ‘상처’를 다시 들춰낸 장본인은 ‘병역비리 족집게’로 알려진 김대업씨(41). 김씨는 민간인 신분으로 지난 3년여 동안 진행된 군·검합동 병역비리수사에 군검찰의 ‘정보원’으로 참여했다. 그의 활약상은 그간 일부 언론의 보도로 널리 알려졌다.

    ‘병역비리수사의 숨은 주역’으로 불리는 김씨는 지난해 4월 채무변제 불이행에 따른 고소사건에 휘말려 사기혐의로 구속돼 1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출소한 것은 지난 4월. 출소 직후 모 시민단체를 찾아갔다.

    김씨는 과거 자신의 병무비리수사를 지원했던 이 시민단체의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제의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자신에 대한 기무사의 내사의혹이다. 군검찰의 병무비리수사팀에서 활동할 때 기무사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았던 그는 지난해 자신이 구속되는 과정에도 기무사가 관여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기자회견을 하려는 또다른 목적은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기피의혹 폭로다. 김씨는 지난해 수감자 신분으로 약 8개월 동안 서울지검 특수1부의 병무비리수사에 협조했다. 서울지검 특수1부는 그의 도움에 힘입어 병무비리에 연루된 지방병무청 고위간부, 고급 공무원, 의사, 자치단체장 등을 구속하고 보훈대상자의 급수판정을 조작하는 보훈신검 비리를 적발하는 등 상당한 실적을 올렸다.

    애초 5월 중순께 갖기로 했던 기자회견은 시민단체의 사정으로 한달 연기됐다. 앞서 ‘오마이뉴스’ 기사를 ‘기습 보도’라고 표현한 것은 이 와중에 김대업씨를 접촉한 ‘오마이뉴스’측에서 ‘기자회견 전까지 보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인터뷰 내용을 기사화했기 때문이다. 반면 일부 언론은 ‘오마이뉴스’에 앞서 김씨를 인터뷰해 ‘전모’를 파악하고도 기자회견 일정을 고려해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씨의 주장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신동아’는 김씨 주장의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해 관련자들을 상대로 확인취재에 나섰다. 그 결과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몇 가지 ‘정황’을 확인했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 그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자칫 나라를 뒤흔들지 모를 이 거대한 진실게임의 승부처는 결국 문서나 ‘결정적 증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은폐대책회의’ 의혹을 검증해 보자. 김대업씨에 따르면 이 의혹이 제기된 것은 지난 1월초 서울지검 특수1부에 소환된 전 병무청 고위간부 K씨의 입을 통해서다. 당시 병무인사비리와 관련해 뇌물수수혐의를 받고 있던 K씨는 부산 P호텔에서 긴급체포돼 서울로 압송됐다. 김씨 주장으로는, K씨의 ‘은폐대책회의’ 관련 진술을 직접 들은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김씨의 얘기다.

    “K씨가 체포된 건 인사비리 때문이었다. 그런데 K씨는 이회창씨 아들 병역문제와 관련해 체포된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그 얘기를 꺼낸 것이다. ‘다 알고 있으니 사실대로 얘기하라’고 하자 한동안 담배만 피워댔다. 담배를 몇 대 피운 후 ‘이거 얘기하면 내가 국회 위증죄로 처벌받는데…’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K씨가 입을 열었다. 요지는 1997년 7월 국회에 출석해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후보 아들의 병적기록표를 공개하기 전 이후보의 K특보와 신한국당 J의원을 만나 이 문제와 관련해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것이다. K씨 얘기로는 K특보가 먼저 찾아와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뒤로는 J의원과 셋이 함께 만났다고 한다. K씨는 대책회의 장소와 횟수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1회, 힐튼호텔에서 2회, 하얏트호텔에서 3회 등 여러차례 만났다는 것이다. K씨는 ‘이들과 만난 후 정연씨의 병적기록표를 변조하고 그때까지 국군춘천병원에 남아 있던 신검부표를 파기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춘천병원측으로부터 파기사실을 확인한 후 국회에 출석해 병적기록표를 공개했다’고 말했다.”

    K씨의 얘기를 뒷받침해줄 증인은 없을까. 김대업씨에 따르면 ‘있다’. 바로 K씨의 부하직원으로 병무청 간부였던 Y씨와 K씨의 비서였던 김아무개씨다. 김대업씨 얘기로는, K씨가 “K특보와 J의원을 만날 때 Y씨가 동행했고 비서인 김씨도 한두 차례 수행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매우 구체적인 증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K씨를 비롯한 관련자들에게 이 주장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보도 후 기자들을 피하고 있는 K씨는 김대업씨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K씨와 함께 대책회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Y씨는 지난해 미국에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다. K씨의 수행비서를 지낸 김아무개씨도 입을 다물고 있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

    K씨는 당시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적기록표를 임의로 한달 동안 자신의 책상 서랍에 넣어뒀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와 관련된 증언은 최근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확인된 것이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그해 7월초 야당인 국민회의측은 국방부에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적기록표, 신검부표 등 병역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병적기록표 등 관련 서류는 보존기한 3년이 지나 파기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7월28일 고건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의 답변과정에서 “병적기록표는 영구 보존한다”고 말해 국방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고총리는 또 “정연씨의 최초 신검 당시 체중을 확인한 결과 63kg은 사실이 아니고 55kg이 맞다”고 말함으로써 정연씨의 병적기록표가 남아 있음을 시사했다.

    다음날 고총리의 지시에 따라 국방부는 국회에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적기록표를 제출했다. 파기돼 없다는 병적기록표가 나타난 데 대해 국방부는 국회 답변서에서 “귀향자 병적기록표는 관계규정에 의거, 3년 보존 후 파기하도록 돼 있어 그런 줄 알았으나, 전시근로수집을 위해 제2국민역(징집면제자)에 대해서는 40세까지 보존한다는 규정에 따라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국방부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애초 국방부가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적기록표가 없다고 발표한 것은 고의로 감춘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병적기록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지방병무청 지하창고에 있어야 할 두 아들의 병적기록표가 실종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K씨의 사무실 서랍에 한동안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목격자도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증언이다.

    지난 1월 부하직원 6명으로부터 인사청탁과 관련해 44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K씨는 현재 병보석으로 풀려나 있다. 가족에 따르면 그간 통원치료를 받아오다 최근엔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6월11일 오후 5시. 서울지방법원 421호에 K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재판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날 재판은 K씨의 비서실장을 지낸 핵심증인 P씨가 출석하지 않아 검사와 변호인 간에 이 문제로 몇 차례 의견을 나누고는 별도의 심문 없이 10여 분 만에 끝났다.

    법정 밖으로 나와 의자에 앉아 쉬는 K씨에게 다가가 ‘은폐대책회의’ 의혹에 대해, 또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적기록표를 사무실에 보관한 일이 있는지 물어봤다. K씨는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걸로 답변은 끝이었다.

    K씨는 법원을 나설 때까지 이와 관련된 기자의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몸이 아프다는 것만 강조했다. K씨의 변호인은 “5년이 지난 일을 이제와 물어보면 기억할 수 있겠냐. 우리가 알기로는 검찰 수사기록에 그런 진술이 없다. 검찰에서 확인해 보라”고 했다.

    재판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K씨는 법정에서 뇌물수수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비서실장이었던 P씨가 받았는지 모르지만 자신은 인사청탁과 관련해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주장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K씨가 6명의 병무청 직원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은 건 아니다. P씨가 전달자다. K씨 주장대로라면 ‘배달사고’가 난 것이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돈을 준 사람들의 진술이 있고, P씨도 검찰에서 K씨에게 돈 건넨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고 밝혔다.

    6월초 기자는 K씨가 이회창 후보의 K특보와 J의원을 만날 때 수행했다는 K씨의 전 비서 김아무개씨를 만나기 위해 이틀 동안 OO지방병무청을 찾았다. 김대업씨에 따르면 그는 올초 자신의 옛 상관인 K씨가 체포된 지 며칠이 지나 비슷한 혐의로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 K씨의 ‘은폐대책회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진술, 즉 “K씨가 이후보의 K특보와 J의원을 외부에서 만날 때 따라간 적이 있으며 무슨 일로 만났는지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으로서는 ‘은폐대책회의’의 유일한 목격자인 셈이다.

    김씨의 업무는 공익 근무자들을 관리·감독하는 일. 그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그의 직장상사는 그가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계속 지방출장을 다니고 있는데 현지출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씨가 OO병무청에 근무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 그전까지는 줄곧 서울에 있는 본청 비서실에 근무했다고 한다. OO병무청의 한 관계자는 “김씨가 최근 ‘그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으며 근무지를 옮기거나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김씨에게 생긴 ‘문제’가 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에게 김씨를 찾아온 용건을 말하고 “김씨에게 전해달라”며 명함을 건네줬다. 하지만 김씨는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휴대폰은 착신금지 상태였다. 그후 며칠에 걸쳐 김씨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동료직원의 답변은 “출장중”이었다.

    당사자인 K씨가 부인하고 ‘목격자’인 K씨의 전 비서 김씨가 입을 열지 않는 한 ‘은폐대책회의’에 관한 김대업씨 주장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관련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이를 뒷받침해줄 제3자의 증언도 없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는 김대업씨의 ‘말’밖에 없다. 당시 상황에 관한 얘기를 조금 더 들어보면 김씨 주장의 진위를 가리기는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K씨로부터 관련 진술을 들은 후 곧바로 옆방에 있는 노명선 검사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K씨의 변호인이 찾아왔다. 변호인이 K씨를 면담하고 돌아간 후, ‘은폐대책회의’와 관련된 K씨의 진술을 조서로 받으려 했으나 K씨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나름대로 각오하지 않겠나”

    김대업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당시 검찰 관계자들은 K씨의 진술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에서 병무비리수사를 주도했던 노명선 검사는 지난 2월 주일한국대사관 파견근무 발령을 받아 현재 그곳에서 법무협력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노검사는 ‘은폐대책회의’와 관련된 K씨의 진술을 자신에게 보고했다는 김대업씨의 주장에 대해 “그런 보고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답변했다. 김씨가 말하는 당시 정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재차 답변을 요구하자 “기억이 확실치 않아서…”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수감자 신분으로 검찰수사에 협조했던 김대업씨가 검사를 상대로 허위주장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자 “그런 말을 할 때는 나름대로 각오하고 있지 않겠나” 하고 에둘러 대답했다.

    다음은 김씨에 대한 노검사의 기억.

    “김대업씨는 병무비리수사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면이 있었다. 정의감이나 공분으로 볼 측면도 있었지만 검찰 수사에 대한 반감으로도 비쳤다. 병무비리수사에 참여하며 자신이 많은 자료를 제공했는데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자신은 그 일로 인해 모 기관으로부터 보복을 당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김씨가 지난해 4월 사기혐의로 구속된 직후 검찰에는 그의 비위사실이 적힌 진정서가 접수됐다. 진정서에 병역비리와 관련된 사항이 많아 구치소에 있는 김씨를 불렀다. 피진정인 조사 차원이었다. 그는 전에 병무비리수사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알게 된 정보를 많이 얘기했는데, 확인해보니 대체로 사실이었다. 그의 협조로 수사실적이 좋았던 게 사실이다. 기록을 보고 비리의혹을 찾아내는 능력이 대단했다. 기억력도 매우 뛰어났다. 몇년 전 일도 정확히 기억해냈다.”

    노검사에 따르면 올해 1월초 부산에서 긴급체포된 K씨가 서울지검 특수1부에서 조사 받을 때 김대업씨가 조사실에서 K씨와 마주앉았던 것은 사실이다. 담당계장이 병무비리 관련 피의자를 조사할 때 김대업씨를 동석케 했는데 K씨 조사 때도 마찬가지였다는 것. 다만 “김대업씨가 따로 K씨와 얘기한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시 K씨가 자신의 인사비리혐의를 부인하는 탓에 그에게 돈을 줬다는 사람들과 대질신문을 벌이는 등 구속영장을 청구하기까지 무척 바빴다. 그런데 김대업씨가 K씨한테 따로 그런 얘기를 들을 여유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K씨에 관한 보고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 김대업씨한테 ‘은폐대책회의’와 관련된 얘기는 몇 번 들은 기억이 난다. (국군)춘천병원 관련 얘기도 들었다.”

    노검사의 답변을 들려주자 김대업씨는 “노부부장(당시 노검사의 직책)은 공무원이다. 그런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검사를 상대로 거짓말할 수 있겠나” 하고 반박했다. 노검사는 기자가 좀더 명확한 기억을 요구하자 “검사는 사건화되지 않은 것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해 달라”고 여운을 남겼다.

    당시 상황을 잘 알 만한 검찰의 한 간부는 “언론에 (그 일과 관련해) 얘기했더니 정치권에서 ‘정치검사’라고 하더라. 그 건에 대한 질문에는 ‘노 코멘트’ 하겠다”며 확인요청을 거부했다. 일부 언론에는 이 간부가 “K씨가 그런 진술을 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으나 비슷한 내용을 정보로 들어 알고 있다. 병역문제 자체는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기록변조 및 파기는 시효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의문이 제기되면 수사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문제의 한나라당 K의원과 J의원은 ‘은폐대책회의’와 관련, “당시 병무청 고위관계자 K씨를 만난 적이 없으며 ‘대책회의’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라고 부인하고 있다. 남경필 대변인은 “K의원이 당시 이정연씨와 함께 서울지방병무청에 병적확인서를 발급받기 위해 간 적은 있지만 병무청 사람들과 따로 접촉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에 따르면 K씨의 전 비서 김아무개씨가 지난 1월 검찰에 불려왔을 때 이 문제와 관련해 진술한 것은 사실인 듯싶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김씨가 당시 여당 의원들이 병무청에 찾아와 고위인사인 K씨를 만난 사실을 진술했다”며 “조서에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외부에서도 만났다는 진술을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 주변에선 K씨가 소환되기 전부터 ‘은폐대책회의’와 관련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6월12일 오후, 그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K씨의 전 비서 김씨와 가까스로 통화가 이뤄졌다. 김씨는 “내일 자로 사직한다”며 “그 일에 대해선 말해 줄 게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다른 병무청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직장을 찾았다는 것이다. “왜 갑자기 그만두느냐. 그 일 때문이냐”고 묻자 “좋은 직장이 생겨서”라고 대답했다. 그는 “지난 1월 서울지검 특수부에 불려가 조사 받은 적 있느냐” “97년 당시 K씨와 여당 의원들이 만났다고 진술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런 적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에서 확인했다”며 재차 확인을 요청하자 “‘노 코멘트’ 하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김대업씨에 따르면 K씨는 지난 1월 김씨 앞에서 이런 얘기도 털어놓았다고 한다.

    “저쪽(신한국당)에서 ‘정권을 잡으면 전국구의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Y국장이 옆에서 ‘(병무청 고위직을) 마치면 의원 한 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거들었다.”

    확인결과 K씨는 2000년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 내정자 명단에 올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K씨는 선거사무실도 냈다. 공천문제로 K씨와 여러 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진 이회창 후보의 측근 Y의원은 K씨를 공천한 이유에 대해 “지역에서 유력한 후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K씨는 나중에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 이유에 대해 Y의원은 “당선 가능성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며 앞의 말과 모순된 얘기를 했다. Y의원은 또 K씨의 전국구의원 공천설에 대해서는 “모르는 얘기”라고 말했다.

    K씨는 1997년 7월31일 국회 기자실을 방문해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적기록표를 공개하면서 그 내용을 설명한 바 있다. 또 그해 10월엔 병무청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이후보 아들의 병적기록표 변조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하나회 출신으로 중장으로 예편한 K씨는 문민정부에서 2년 가까이 병무청 고위직을 지내다 정권이 바뀐 후 물러났다.

    ‘고무줄 몸무게’의 비밀

    이회창 후보의 큰아들 정연씨는 애초 현역 입영 대상자였다. 정연씨가 처음 신체검사를 받은 것은 만 19세 때인 1983년 3월. 본적지 병무청인 서울지방병무청에서 징병검사를 받았는데, 키 179㎝에 몸무게 55kg으로 현역판정을 받았다. 대학 진학으로 입대를 미룬 정연씨는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다시 병역이행시기를 늦췄다.

    그가 군에 입대한 것은 1991년 2월. 해외유학에 따른 병역 연기 시한인 만 28세가 되던 해였다. 2월11일 강원도 춘천에 있는 102보충대에 입소한 그는 이틀만에 제대(?)했다. 첫날 그는 다른 입영장병들과 함께 신체검사를 받았다. 이날 그의 체중이 얼마로 측정됐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는 상태다.

    다음날 그는 국군춘천병원으로 가 4급(보충역), 5급(면제) 및 7급(질병 관련 재검대상) 대상자에게 해당하는 정밀신검을 받았다. 여기서 최종 측정된 체중이 45kg. 키 179㎝인 사람이 체중미달로 면제판정을 받으려면 48kg 이하여야 한다. 이로써 5급 면제판정을 받은 정연씨는 귀가조치됐다. 흥미로운 것은 1997년 정연씨가 다녔던 직장에서 측정된 체중은 58kg이라는 점이다. ‘체중 조작’ 의혹은 이처럼 현역 대상이었던 정연씨의 몸무게가 8년 만에 10kg이 줄어들었다가 다시 6년 후엔 13kg이 늘어난 ‘수수께끼’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대업씨 주장에 따르면 1997년 7월경 국군춘천병원에서 여당 대선후보인 이회창씨의 장남 정연씨의 신검부표가 파기됐다. A4 용지 크기의 신검부표는 각 병원부대에서 보관하는 것으로 신장, 체중 수치와 그에 따른 신체등급이 기록돼 있다. 또 판정 담당자와 진료부장 병원장 결재란이 있다.

    1997년 7월 국민회의 천용택 의원은 국방부에 이후보 두 아들의 병적기록표와 신검부표 제출을 요구했다. 앞서 설명했듯 병적기록표는 우여곡절 끝에 공개됐지만 신검부표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국방부는 공문을 통해 “개인의무기록 보존기한 규정에 따라 이미 파기했기에 신검부표 제출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규정에 따르면 정례신검의 경우 보존기한이 3년, 정밀신검의 경우엔 5년이다.

    정연씨가 5급 면제판정을 받은 것은 1991년 2월이므로 규정대로라면 보존기한이 지났기 때문에 파기돼야 마땅하다. 문제는, 김대업씨에 따르면, 1997년 7월 정연씨 병역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이 신검부표가 실무자의 ‘느슨한 행정처리’ 탓에 파기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야당이 정연씨의 병역기피의혹을 제기하자 ‘위쪽’으로부터 파기지시가 내려와 서둘러 파기했다는 게 김대업씨 주장이다.

    김대업씨는 이 사실을 자신이 ‘수사보조원’으로 참여했던 군·검합동병무비리수사 당시 신검부표 파기 경위를 잘 아는 국군춘천병원 관계자로부터 직접 들어 알게 됐다고 한다. 김씨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대선이 끝난 후 ‘신검부표를 임의로 파기했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썼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기록이 국군의무사령부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기자는 6월8일 국군춘천병원을 찾아갔다. 공보담당자를 면담, 정연씨의 신검부표 파기 사건을 잘 아는 사람과 병무비리수사 당시 이와 관련된 자료를 군검찰 수사팀에 제공한 사람을 찾았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소득도 있었다. 정연씨의 신검판정에 관계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국내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신동아’는 국군의무사령부에 이 문제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다. 당시 신검부표를 파기한 ‘죄’로 시말서를 쓴 국군춘천병원 관계자의 인적사항과 시말서를 쓰게 된 경위, 그리고 문제의 신검부표가 누구 것이었는지 알려달라는 게 질의서의 주 내용이다. 아울러 당시 국군춘천병원의 원장, 행정부장, 진료부장의 인적사항을 물었다.

    이에 대해 의무사령부 관계자는 “해당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시일이 오래 경과돼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또한 당시 주요 관계자들의 인적사항에 대해서는 “관련자 중엔 현역도 있고 전역자도 있는데, 당사자들이 그 일과 관련해 ‘할 얘기가 없다’며 자신의 인적사항이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는 이유로 공개요청을 거절했다.

    김대업씨에 따르면 이 신검부표에 바로 ‘면제판정’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김씨가 자신있게 정연씨의 병역기피의혹을 주장하는 것도 이 부분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김씨는 이와 관련해 당시 국군춘천병원에 근무했던 사람으로부터 ‘확실한 증언’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정연씨의 병역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의혹을 발견했다. 바로 병적기록표에 있는 면제판정 관련 기록이다. 1997년 7월에 공개된 정연씨의 병적기록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국군춘천병원에서 최종 면제판정을 받았는데, 병적기록표에 그와 관련된 기록은 없고 입영부대인 102보충대에서 5급 판정을 받은 기록만 있다.

    군병원에서 정밀신검을 받았다면 당연히 병적기록표에 관련사항이 기록돼야 한다. 예컨대 체중미달로 면제판정을 내렸다면 해당 군병원의 이름과 면제사유, 판정일, 담당자 이름 등을 기록해야 한다. 담당자의 직인도 찍어야 한다.

    정밀신검 관련기록 누락 의혹

    병적기록표 기록만 놓고 얘기한다면 정연씨는 비정상적 절차를 거쳐 면제판정을 받았을 개연성이 있다. 현역 대상자가 입영부대에서 신검 결과 5급을 받았다면 반드시 해당 군병원에 가 정밀신검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도 5급 판정이 나와야 귀향조치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연씨의 병적기록표에는 국군춘천병원의 판정기록이 없다. 기록만으로 보면 입영부대에서 자체적으로 면제판정을 내려 귀가조치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군병원이 신검 판정권과 귀향조치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만약 국군춘천병원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연씨에게 면제판정을 내린 것이라면 왜 관련기록을 따로 남기지 않아 의혹을 자초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신검행정을 알아야 한다.

    입영부대에서는 체중의 경우 최초 징병검사 당시와 비교해 신체급수에 변동이 없으면 병적기록표에 따로 기록하지 않는다. 그 상태로는 군병원에서 판정기록을 남기고 싶어도 남길 수가 없다. 군병원에서 정밀신검을 받는 사람은 입영부대 신검 결과 신체이상이 발견돼 신검 급수가 변동된 사람이다. 따라서 입영부대에서 아무 이상 없던 사람을 군병원에서 이상이 있는 것으로 기록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작을 하려면 입영부대와 군병원의 판정기록을 맞추어야 한다. 예컨대 군병원에서 5급 판정을 조작하려고 시도한다면 일단 입영부대 관련기록란을 채워야 한다. 그 이유는 신검행정을 아는 사람이 병적기록표를 보면 ‘표’가 나기 때문이다. 입영부대 기록이 없을 경우, 아무 이상 없는 사람을 군병원에 데리고 와 이상이 있게 만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만약 정연씨의 면제판정기록이 국군춘천병원에서 조작된 것이라면, 입영부대인 102보충대 관련기록란에 ‘5급’이라는 인쇄체 글자를 찍은 사람은 국군춘천병원 관계자일 것이다.

    정연씨의 병적기록표에는 102보충대에서 5급 판정을 내린 기록이 있다. 담당자 직인도 있다. 이 담당자가 102보충대 소속이었는지 국군춘천병원 소속이었는지 밝혀진다면 정연씨의 병역기피의혹 논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만약 이 직인이 국군춘천병원 관계자의 것이라면 당시 국군춘천병원에서 병적기록표에 따로 면제판정 관련기록을 남기지 않은 의문이 풀릴지 모른다. 똑같은 직인을 입영신검을 하는 입영부대와 정밀신검을 하는 군병원 양쪽에 찍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김대업씨는 “정연씨가 정상 절차를 거쳐 면제판정을 받았다면 이런 병적기록표 기록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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