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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분석

조평통 서기국 ‘이회창 죽이기’ 나섰다

북한의 2002 대선 개입 내막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조평통 서기국 ‘이회창 죽이기’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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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은 5월 이후 노동신문을 동원하여 이회창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6월13일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명의로 이회창 고발장까지 냈다. 북한은 왜 한국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은 정황까지 들어가며 이회창을 ‘때리는’ 것일까? 잠재적 대선 후보인 박근혜에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속셈을 분석했다.
5월과 6월 내내 북한 언론은 시리즈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5월17일자 평양 조선중앙통신 보도다.

‘리회창이 깨끗한 핏줄을 타고 서민행보를 걸어온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 것은 정치 협잡꾼의 너절한 추태다 … 리회창의 애비는 일제 때 일본인도 오르기 힘든 검찰서기 노릇을 하면서 애국적 독립운동가를 처형·학살하는 도적질을 수많이 감행했고, 8·15 광복 후에는 친미주구로 둔갑하여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리회창은 잔뼈가 굳기 전부터 일본옷을 입고 일본말을 하며 일본인 행세를 하고 돌아쳤으며 8·15 후에는 미국을 섬기며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광신자로 악명을 떨쳤다. 리회창은 자기가 법관 출신으로서 법치주의자, 원칙주의자로 자처하지만, 직권을 이용하여 수많은 부정부패 행위를 감행하였다. 그는 그 무슨 후원회요 혁신위원회요 하는 것을 만들고 긁어 모은 돈으로 밀자금을 조성하고 부정협잡 선거를 치렀으며 호화주택을 사들이고 부화방탕한 생활을 했다. 리회창은 청렴결백한 척하지만 그의 행적을 들추면 더럽고, 너절하며 악하기 그지 없다.

대통령 선거를 6개월 정도 앞두고 이른바 북한의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의 이런 작전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남북간에 대화가 시작된 때부터 대선과 총선 등 한국의 주요 선거마다 북한은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간접적인 시도를 해왔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일어난 사건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1980년대 후반 이후 그런 시도는 두드러졌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1987년 대선 직전에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고를 보자. 폭파범 김현희는 선거 하루 전날 서울로 압송되었다. 국내 입국 시점을 두고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이 사건은 집권여당이던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992년 대선 때는 ‘이선실 간첩단’이라 불리는 남조선노동당 사건이 대선 정국을 강타했다. 이 사건은 신한국당 김영삼 후보의 당선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됐다. 15대 총선을 일주일 남짓 앞둔 1999년 4월4일 북한은 일방적으로 정전협정 파기를 선언하고 5일부터 7일 사이 매일 수백명의 무장병력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투입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판문점무력시위 사건이다.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은 유세현장에서 ‘안정론’을 강조했고 선거 결과 신한국당은 130석, 국민회의는 79석을 얻는 데 그쳤다. 당시 국민회의는 이 사건을 총선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과거 일어난 북풍이 북한의 단독 도발이었는지, 아니면 한국 정부와 교감을 이룬 상태에서 일어난 것인지 그 내막은 남북한의 최고 권력자만이 알겠지만, 적어도 1996년까지만 해도 북한 변수는 확실하게 먹혀들었다.

그러나 1997년 대선부터는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997년의 북풍은 좀더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1차 북풍으로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의 김대중 후보 지지 편지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사건은 여당의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국민회의측은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과 북한 조평통 안병수 부위원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접촉했다며 맞불 작전을 폈다. 이 사이에 ‘김대중 X파일 사건’ ‘윤홍준 기자회견 사건’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1997년의 북풍은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번졌다. 1997년의 ‘북풍’은 선거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국민들은 선거 때마다 고질적으로 등장하는 북한 변수를 냉철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정부 들어서도 북풍은 그치지 않았다. 2000년 4월10일, 16대 총선 투표일을 사흘 앞두고 정치권은 충격에 휩싸였다. 청와대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었다. 민주당은 정상회담 발표가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고 실향민과 부동층을 움직일 수 있는 변수가 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발표시기를 문제삼으며 선거용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한나라당이 133석, 민주당은 115석으로 야당인 한나라당의 승리였다. 선거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정상회담 발표가 수도권 일부에서만 민주당 득표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지역에서는 오히려 이 발표가 역풍으로 작용하여 한나라당 표를 결집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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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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