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호

MJ신당으로 ‘초당파 대통령’노린다

개봉 박두 정몽준

  • 박성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swpark@donga.com

    입력2004-09-01 1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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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이 배출한 또 한 명의 스타. 하지만 정몽준 의원은 여기에 머물지 않으려 한다. 아버지대에 이루지 못한 꿈에 도전할 계획이다. 지지율에서는 이회창 후보를 앞서기도 한다. 그의 주변에는 함께 당을 꾸리자는 유혹이 넘쳐난다. 정몽준은 어떤 길을 따라 대권도전의 고지를 넘을 것인가.
    ”대통령 5년 단임제에서는 대통령이 당적을 떠나 초당적으로 정치할 필요가 있다. 올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들도 당적을 포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소속 정몽준(鄭夢準) 의원은 7월19일 국회에서 기자와 만나 ‘무당적(無黨籍) 대통령론’을 역설했다. 남북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의 완전한 회복 등 산적한 국정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다음 대통령은 특정 정파에 소속돼 끝없는 정쟁에 시달리지 말고 초(超)정파적 위치에서 일을 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요지였다. 이 말은 곧 무소속인 자신이야말로 딱 떨어지는 대통령감 아니냐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로부터 20여 일이 지난 요즘, 정의원은 각종 대선후보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 일제히 1위로 부상했다. 그는 대선 출마 문제와 관련해 말을 아끼던 이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제 정의원의 대선출마는 가능성이 아닌 실제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심은 그의 출마여부가 아니라 그가 어떤 정치세력을 바탕으로 대선에 도전하려는 것인가로 모아지고 있다. 정의원이 무소속 후보로 나설 것인지, 민주당 인사들이 추진중인 신당 후보로 나설 것인지, 아니면 ‘제3의 신당’을 통해 나설 것인지 여부는 대선 정국의 윤곽을 결정짓는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정의원의 언행은 다소 모호한 대목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비교적 일관되게 발견되는 화두는 바로 ‘초당적·초정파적 대통령’이다.



    정의원 자신은 8월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오! 필승 코리아-2002 감동의 순간’ 사진전 및 프로축구 이천수 선수(울산 현대)의 팬 사인회에 참석한 뒤 ‘초정파적인 대통령이 가능한가’라는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편만 챙기고 상대편은 박탈하는 정치를 하지 말고 월드컵 때처럼 서로 화합하는 정치를 하는 지도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이 5년 단임제를 정한 이유는 자기 정파에만 기울지 말고 국민화합을 위해 열심히 하라는 것인데 그런 정신을 잊은 것 같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도 처음에는 민주당 사람들에만 의존하고 공화당을 적대시하다가 나중에 공화당 의원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비로소 원활하게 국정을 끌어갈 수 있었다.”

    8월15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를 마치고 귀국하던 정의원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민주당에서 추진중인) 신당에는 참여합니까.

    “신당의 실체가 뭔지 이해가 제각각이어서 더 두고봐야 할 것 같아요.”

    -국민통합정당론을 거듭 주장하는데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겁니까.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어 모든 국민의 당면 과제를 효율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참여 방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겁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5년 단임제의 짧은 시간 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만큼 최우선 과제는 국민통합 아니겠습니까.”

    선문답 같은 대화 속에서도 정의원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중인 신당으로는 자신이 내걸고 있는 ‘국민통합 대통령’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비교적 지역색이 엷고, 무소속으로 활동하며 정쟁에서 비켜서 있었던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대선후보로서 국민 지지를 확보해나가야 하는 정의원으로서는 기성 정당이나 기성 정당의 외양만 바꾸어 ‘신장개업’한 정당에 몸담는 순간 자신의 이미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를 했음직하다. 또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노후보와 경선을 벌일 경우 이기기도 쉽지 않으려니와 그 과정에서 정의원이 입게 될 상처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정의원이 민주당 재경선 문제에 관해 “국민경선에 참여한 많은 국민의 의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재경선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듭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정의원은 대통령 아들 권력비리에 대한 책임론으로 국민지지도가 형편없이 떨어져 있는 민주당, 또는 이를 ‘리모델링’한 신당에 섣불리 몸담았다가는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신비감과 이미지에 흠집이 날 수 있다는 점을 은근히 의식하고 있다.

    정의원측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정치권의 한 원로는 정의원이 민주당발(發) 신당이 아닌 ‘진짜 신당’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민주당이 만드는 신당에 정몽준이 얹혀가는 것은 곧 죽는 길이다. 그런 신당은 민주당의 일종이며 ‘DJ당’일 뿐이라고 국민들이 낙인찍어 버릴 것이고, 그 얼굴마담으로 나서는 정몽준은 현재의 지지도 가운데 상당부분을 잃어버릴 것이다.”

    실제 최근 민주당 인사들이 추진중인 신당 합류 가능성이 일부에서 보도되자 “큰일 날 일”이라고 만류하는 인사들이 많았다는 게 정의원측 얘기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국민정당을 민주당 외곽에서 만들어 70~80%는 새로운 인적자원으로 채우고 나머지 20~30%는 기존 민주당 세력을 흡수 통합하는 방식이어야 명실상부한 신당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게 정의원측이 그려보는 신당의 모델이다. 태생부터 김대중 대통령과 무관한 정치세력을 규합해야 혼란을 겪고 있는 민주당 세력의 흡수통일까지 이뤄낼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5공시절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이 이민우(李敏雨) 총재의 신민당을 껍데기만 남긴 채 흡수해 통일민주당을 건설했던 것처럼 새로운 토양 위에 깃발을 꽂아야 국민의 변화욕구에 부응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다고 정의원이 민주당 인사들과의 접촉마저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의원은 실제 박상천(朴相千) 최고위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여러 차례 신당 참여를 권유받았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정의원이 우리 측과 무슨 담을 쌓은 것처럼 언론에 비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정의원은 결국 우리와 함께하기로 이미 다 얘기가 돼있다”고 단언했다. 정의원 자신도 민주당 의원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한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또한 정의원이 무소속 출마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여러 차례 “(무소속 출마에 따르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불리하다면 (다른 방도를)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특히 ‘신당 참여 의사표시’로 확대돼 전파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의원은 “동료의원이 만나자고 제안해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어 만나고 얘기를 들어본 것 뿐인데 이상한 해석이 나돌곤 해 곤혹스럽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따라서 ‘초정파적 후보’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어하는 정의원은 민주당이 추진중인 신당 참여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는 한편 ‘제3 신당’을 구축하려 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 정의원 주변에서는 민주당내 신당 논의와 거리를 유지한 채 일단 ‘독자세력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광화문에 있는 정의원의 후원회 사무실을 중심으로 옛 통일국민당 출신 인사 60여 명이 ‘유사시’에 대비, 조직을 점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와 함께 정의원은 최근 후원회 조직을 대폭 확충, 1만명이 넘는 후원회원을 확보하는 한편 정책기능 강화를 위해 모집한 300여 명의 정책인턴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의원도 기자들에게 “여러분이 생각하는 신당과 내가 생각하는 정치 변화가 일치하는지 모르겠다”며 ‘독자 신당’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같은 ‘제3 신당’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특히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의원, 한국미래연합 박근혜(朴槿惠) 대표 등 정의원과 우호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반(反) 이회창(李會昌), 비(非)노무현’ 인사들과의 연대 가능성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의원이 9월초 먼저 독자적으로 출마를 선언한 뒤 정치권의 향배를 봐가며 뜻이 맞는 정파들과 통합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제3 세력 결집을 도모하며 민주당 내분이 심화될 경우 민주당 이탈세력까지 포괄하는 거대 신당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이후에도 구체적인 방식을 결정하지 않은 채 민주당의 신당 창당 흐름 등을 지켜본 채 한동안 관망하리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그가 즐겨 인용하는 미국 격언 가운데 “틀린 판단보다 더 나쁜 것은 너무 빨리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다소 우유부단하다는 평을 듣는 그의 성격에 딱 맞는 말이다.

    당장 민주당 등 특정정파와 연대하거나 ‘제3 신당’을 창당하기보다는 일단 출마를 선언한 뒤 9월 남북한 축구경기, 아시안게임 등을 통해 계속 여론의 흐름을 타면서 ‘초당파적’ 이미지를 유지하며 정쟁에 초연한 후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나가는 데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의원이 이러저러한 방안들을 고민하다가 결국 출마를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선출마 가능성을 띄우며 지명도를 한껏 높여놓고 적절한 대선후보를 지원하는 선에서 물러나 호흡을 조절한 뒤 ‘차차기’를 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중도포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한 정치권 원로의 말.

    “현재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도 마땅치 않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로도 안된다는 생각을 가진 유권자가 적지 않다. 뭔가 새로운 지도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정의원이 대선출마를 안한다면 다음번에는 국회의원도 못된다. 이 이상 여건이 좋은 때가 언제 또 다시 오겠느냐. 정치인에게 다음 기회란 없다는 것을 정의원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정의원 본인도 “당선 가능성이 100%가 안되고, 50%에 그치더라도 출마를 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기존에 거론되는 후보들로는 안된다는 바람이 있기 때문으로 본다”고 말하고 있다. 차차기 도전을 위한 입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그 어느때보다 조건이 좋은 이번 대선에 나서 득표기반을 확보해둬야 한다는 게 측근들의 논리다.

    정의원 진영은 이런 맥락에서 ‘정풍(鄭風)’으로 불리는 급속한 인기상승을 옹호하고 지속시키는 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정의원실 명의로 언론사에 배포된 ‘정풍이 일과성 바람이라는 주장에 대해’라는 문건에서 정의원측은 “한나라당이 정풍을 일과성 바람이라며 애써 폄하하고 있으나 역사에서 중요한 일들은 모두 일회성이고 순간의 결단에 의한 것이다. 한번의 바람으로 낡은 정치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후보 정몽준’ 앞에 놓여 있는 길은 월드컵과 함께 순풍가도를 달려온 지금까지와 달리 험난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당장 한나라당에서는 ‘노풍(盧風)’을 꺼진 불로 보는 시각이 늘면서 ‘잠재적 적장’이 될 수 있는 정의원을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이 최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제주도 답방 추진설’을 제기하며 “정권 차원에서 정몽준 의원을 띄워주기 위해 김위원장이 제주도를 방문해 정의원을 면담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정의원을 견제해야겠다는 한나라당의 분위기가 깔려 있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정몽준 의원은 그같은 정형근 의원의 ‘신북풍’ 주장과 관련, “매사를 공작이나 음모로 보려는 더러운 정쟁주의자들에 연연치 않고 국민이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특히 재벌 2세의 권력 장악 문제를 집중 공격할 태세이다. 공적자금 청문회에서 하이닉스 구조조정과 관련한 정권과의 ‘거래’ 의혹도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정의원은 금력과 권력을 함께 가질 수 있느냐는 부정적 인식에 대해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을 인용, “명예를 지키려는 욕심이 없는 공직자는 부패한다”고 반박한다. 재벌가문 출신으로서 정치자금 조달에 목 맬 필요가 없어서 도리어 덜 부패한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원은 나아가 ‘여유있는 지도자론’을 내세우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 국민을 실망시킨 것은 집권기간 본인 또는 ‘식솔’들이 뭔가 자꾸 모으려고 집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이미 여유있는 지도자로서 마음을 비우고 오로지 국정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을 갖췄다는 주장이나, 일각에서는 비전과 정치력을 검증받지 않은 채 ‘이미지 정치’로 일관해온 그의 실체가 대선주자로서의 본격 검증을 통해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가 많다.

    검증과정은 후보에게는 피를 말리는 절차다. 검증을 통해 강해지는 후보가 있는 반면, 약점을 노출하고 만신창이가 되는 후보도 적지 않다. 당내경선이라는 검증절차를 거쳐 내성을 키워온 여야의 대선후보들과 달리 정의원은 단 한번도 냉혹한 심판대에 올라본 경험이 없다. 과연 재벌가의 2세로 태어나 평탄한 삶을 살아온 정의원이 살벌한 후보 자격검증의 터널을 통과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인가. 9월부터 시작할 정몽준 의원의 모험과 도전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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