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호

“대북 비밀정보 ‘8자·15자’ 진실은 이것”

한철용 전777부대장 충격 증언

  • 글: 이정훈 hoon@donga.com

    입력2002-11-29 13: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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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관에 대한 777부대의 직보 체계 없앤 것은 현 정부
    • 777부대와 국방정보본부,‘잘 통제에 응하라’라는 북한군 지시를 180도 다르게 해석
    • 6월13일 SI는 99년 연평해전 이후 처음 나온 이상징후
    • 장관은 언론과 대통령을 의식해 판단 미스 범했다
    • 거짓 레이더 정보 주고 경비정 내려보낸 북한군
    • 윤영삼 대령이 추가로 판단 첨부. 그러나 이를 무시한 국방부
    • 국방정보본부는 우발적 교전으로 몰고 가려 했다
    • 한국군은 강제전역시켰으나 미군은 수훈장 수여 통보
    “대북 비밀정보 ‘8자·15자’ 진실은 이것”
    월드컵 기간에 일어난 6·29 서해교전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국방부는 조기경보 부대인 777부대가 계속된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을 단순침범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해군은 무방비로 선제공격을 당했다며 당시 777 부대장이던 한철용 소장(韓哲鏞·육사 26기)에게 1개월 정직이라는 징계를 내리고 전역시켰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한소장은 국회 국방위 국감에서 777부대는 제대로 판단해서 정보를 올렸는데 국방부에서 정보를 왜곡해 예하 작전부대에 전파했다고 폭로했다. 6·29 서해교전은 고조됐던 월드컵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었다. 또 24명이라는 꽃다운 젊은이가 죽거나 부상한 사건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4억달러 북한 지원설 등과 더불어 다음 정부에서 청문회감이 될지도 모른다. ‘신동아’는 ‘사전 청문회’를 연다는 의미로 퇴역 후 집에 머물고 있는 한소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보병 출신이 왜곡시킨 정보체계

    -김동신(金東信) 전 국방장관은 지난 호 ‘월간조선’‘월간중앙’ 인터뷰에서 “군 지휘부가 777부대가 판단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고 판단됐다면, 777부대장은 직속상관인 국방정보본부장과 합참의장을 거쳐 장관인 나에게 보고했어야 한다. 그것이 어려웠다면 전화로라도 ‘장관님, 저희 부대가 이러저러한 내용을 보고했는데 삭제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장관님께서 그런 지시를 내리셨다면 제가 직접 상황을 보고드리겠습니다’라고 해야 그는 777부대장으로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더군요.



    “1999년 4월1일 777부대와 정보사가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통합되기 전까지는 두 부대가 국방장관에게 직접 정보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국방정보의 총수인 국방정보본부장을 우회하는 문제가 있어, 국방정보본부장의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당시의 국방장관께서 ‘정보 보고의 일원화를 위한 정보통합’을 국민의 정부 개혁과제로 채택하면서, 정보통합이 힘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보병 출신으로 야전에서만 근무해온 중장이 정보본부장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두 개 기능사(777부대와 국군정보사)의 경쟁을 통제할 상급부대가 없으면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1999년 4월1일 국군정보사와 777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통합하는 대통령령을 제정케 했습니다. 작전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정보를 하다보니 개선이 아니라 개악(改惡)이 된 것입니다.

    직보가 불가능한 체계를 만들어 놓고 왜 직보를 하지 않았냐니요? 777부대를 대표해서 국방정보본부에 보고하는 사람이 윤영삼 대령이었습니다. 윤대령이 국방정보본부의 정보융합처장에게 우리 정보를 전해주면, 정보융합처장은 다른 기관에서 올라온 정보와 취합해서 장관에게 보고합니다. 장관이 이렇게 올라온 정보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지시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보융합처장이 가장 잘 알 것입니다만, 제가 들은 바로는 김동신 당시 장관은 정보 판단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개입하는 분입니다.

    월드컵과 6·29 교전이 있기 전인 지난 4월, 우리 부대는 비군사적이지만 매우 예민한 상황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워낙 예민한 것이라 SI(Special Intelligence: 특수정보)를 만들어 국방정보본부에 올렸습니다. 국방정보본부를 통해 이 정보를 받은 김장관이 저를 불러 이것저것을 물어보셨습니다. 장관이 777부대장을 불러 직접 정보 보고를 받은 이 사건은, 777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통합된 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정상이지요. 직보가 불가능하게 돼 있는 체계에서는 장관이 불러줘야 직보를 할 수 있습니다. 6월13일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에 대해 우리 부대가 SI를 올렸고 6월27일 침범에 대해서도 SI를 올렸으면, 장관은 지난 4월처럼 저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물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부대가 올린 6월13일 정보가 묵살되었기에 다음날 열린 국방정보본부장 주재 회의에서, 13일의 SI 사항과 항공사진 내용을 재차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장관의 호출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직보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을 부하에게 전가하려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라고밖에는 달리 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정보가 SI가 됩니까.

    “어떤 정보원으로부터 획득했는지 밝히지 않는 정보가 SI입니다. 만에 하나 고정간첩이 침투해 있을 경우에 대비한 것이라고나 할까…. 상대의 통화 내용을 100% 복원했다고 하면 어디서 이러한 정보를 획득했는지 노출되니까, 출처를 삭제하거나 기밀 내용을 흐리게 표현한 것이 SI입니다. SI를 만드는 것을 전문용어로는 새니타이즈(sanitize: 사전적인 해석은 ‘기밀 부분을 삭제하다’는 뜻)라고도 합니다.”

    -국방을 책임진 장관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고도 판단을 잘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보는 사진을 찍듯이 정확히 전달만 합니다. 판단은 지휘관이 알아서 하는 것입니다. 정보에서는 지휘관에게 판단을 이렇게 하라고까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여기 집이 있다고 칩시다. 정보부대는 사전에 그 집을 정탐해, 불도그가 있는 것을 알고 사진을 찍어서 전해줍니다. 좀더 정탐을 했다면 정보부대는 ‘이 불도그는 순둥이다’ 아니면 ‘지독한 왈왈이다’라는 판단 보고까지 써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보에서 이렇게 판단 의견을 달아 보냈더라도, 최종 판단은 그 정보를 활용하는 지휘관이 결정해야 합니다. 정보 내용과 똑같이 ‘사나운 놈’으로 판단해 강하게 대응할 수도 있고, 정보의 판단과는 달리 ‘별것 아니다’라고 보고 안이하게 대처할 수도 있습니다. 지휘관이 어떤 판단을 하든 자유지만, 그 판단으로 인한 결과는 책임져야 합니다. 사나운 놈으로 알고 대책을 잘 세워 작전에 성공했으면 훈장을 받는 것이고, 정보를 묵살하고 덤볐다가 실패했으면 그에 합당한 징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777부대는 처음에는 ‘불도그가 있다’(6월13일)고 알려주었고, 이어 ‘사나운 불도그다’(6월27일)라고 다시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최고 지휘관은 우리 판단을 묵살하고 예하 부대에 ‘불도그가 있다’는 것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상대의 의도를 간파할 수 없었으니 해군 2함대는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정확한 정보를 줬는데도 이를 묵살해 아군이 피해를 봤으니, 그러한 판단을 한 최고 지휘관은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특조단 조사 미흡하다”

    -777부대에서 제공한 판단을 묵살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국방부 특조단이 밝혀야 할 핵심 사항이 그것인데 그 부분이 빠졌단 말입니다. 그래서 특조단의 조사가 미흡하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특조단이 밝히지 않았으니 현재로서는 누가 삭제했는지 알 수가 없지요.”

    -특조단은 777부대에서 ‘단순침범’으로 보고를 올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 777부대도 ‘상대는 불도그가 아니다’라고 올린 것 아닙니까.

    “6월13일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했을 때 우리는 결정적인 SI 여덟 자를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침범 목적은 1)북한 해군의 연례적인 전투검열 2)월드컵과 관련한 한국 내 긴장고조 3)우리 해군의 작전활동 탐지일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국방부에서 나온 블랙북에는 결정적인 도발징후인 SI가 빠져 있고, 침범 목적도 우리 부대가 보고하지도 않은 ‘단순 침범’으로 돼 있었습니다.

    국방정보본부 등과 업무연락을 위해 국방부에 가 있던 우리 부대의 윤영삼 대령에 따르면 ‘정보융합처장은 장관이 단순침범으로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블랙북 내용을 그렇게 바꾸었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부대는 주요 작전 부대에 보안통제장교를 파견해 놓고 있습니다. 보안통제장교는 우리가 만든 SI가 밖으로 누출되지 못하게 막는 일을 하면서 우리 부대가 보낸 SI를 받아서 작전부대 지휘관에게 보고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국방정보본부에서는 우리 부대가 보안통제장교에게 보내는 정보도 블랙북처럼 ‘단순침범’으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국방부 특조단은 이러한 지시를 내린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혀냈어야 합니다.”

    “대북 비밀정보 ‘8자·15자’ 진실은 이것”

    6월29일 교전에서 희생된 해군 장병 장례식. 한철용 소장은 “우리 군 지휘부가 제대로 판단했다면 고귀한 젊은이의 희생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조단은 8자 SI는 과거에도 수집된 것이라 이상징후로 보기 어렵다고 발표했습니다.

    “1999년 6월15일의 연평해전 이전에는 그런 SI가 있었지요. 그러나 연평해전 이후 이러한 SI가 수집된 것은 6월13일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상징후라고 판단한 것인데 특조단은 전혀 다른 판단을 했습니다.”

    -장관은 정보를 판단하는 자리 아닙니까. 지휘관이 정보를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대해 정보기관에서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맞아요. 우리가 그러한 보고를 올렸는데 장관이나 다른 지휘관이 다르게 판단해도 우리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야 옳습니다. 그런데 국방부는 우리가 올린 것과 다른 판단을 해서 전투부대에 블랙북을 내려보냈으니, 정보를 왜곡한 것입니다. 이 것은 우리가 올린 정보와 판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판단을 왜곡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고속정 357호의 침몰과 24명에 이르는 우리 병사의 사상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판단을 잘못한 지휘관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국방장관께서는 국방부가 판단을 잘못해 일어난 일을 우리 부대 책임으로 돌리려고 했습니다. 777부대장으로서 저는 이러한 작태를 절대 묵과할 수 없습니다.”

    -국방부는 왜 그런 판단을 했다고 보십니까.

    “햇볕정책을 의식했기 때문이겠죠. 언론도 많이 의식했을 것이고….”

    -언론을 의식했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죠. 대부분의 언론은 햇볕정책을 비판적으로 봐 왔는데.

    “북한 경비정은 6월13일 이전에도 여러 번 NLL을 침범했습니다만 그때는 우리 부대도 단순침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월드컵 기간인 지난 6월11일 북한 경비정이 월선했을 때도 우리 부대는 단순침범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6월13일 월선에 대해서는 단순침범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그때까지는 단순침범으로 보인다고 해온 국방부가 갑자기 의도적인 침범인 것 같다고 발표하면 언론이 주목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보도가 나가면 청와대를 비롯한 관계기관에서 국방부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올 것이고, 그 중에는 ‘월드컵이 잘 되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는 것이냐’고 타박하는 곳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국방부가 햇볕정책을 힘으로 뒷받침하겠다고 했으면 그것에 충실하면 됩니다. ‘힘으로 뒷받침한다’는 것을 버리고 무조건 햇볕정책을 지지하려고 한데서 사단이 생겨났습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입니다. 월드컵 기간에 국민을 긴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햇볕정책을 무조건 지원해야 한다는 작은 욕심이 큰 손실을 불러온 것입니다.”

    -6월13일의 SI는 어떤 내용입니까. 777부대는 그때 북한군이 도발할 것을 알았다는 이야기인가요.

    “그것을 말하면 군기법 위반입니다. 6월13일 획득한 정보에서 우리 부대는 북한군이 공격을 할 것이라고까지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평소와는 매우 다른 징후가 발견됐으니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판단이 장관을 거치면서 단순침범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6월27일에도 15자의 SI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특히 논란이 이는 것이 이 SI인데, 도대체 어떤 정보를 잡았습니까. 777부대는 이러한 SI에도 불구하고 단순침범을 1번으로 판단해서 올리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군기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지요. 작전지시는 음어나 암호로 이뤄집니다. ‘이번 작전은 이러이러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작전지시도 없습니다. 따라서 전후 상황을 유추해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NLL 상에는 북한 어선이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북한 해군 지휘부가 ‘NLL선 부근에 북한 어선이 있다. 빨리 내려가서 단속하라’고 지시하면, 북한 경비정은 NLL로 내려오게 됩니다. 이러한 지시가 수상쩍은 행동에 해당합니다. 이럴 때는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6월13일 장관께서 단순침범으로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6월27일에도 우리는 1번을 단순침범으로 보인다고 판단해서 보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속마음을 보이기 위해 북한의 수상쩍은 행동을 묘사한 SI를 첨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깐, 북한 어선이 없는데 북한 경비정이 단독으로 내려온 것이 왜 수상쩍은 행동이 됩니까. 그리고 북한 경비정은 레이더가 있어 어선이 있는지 없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을 텐데요.

    “레이더 허상(虛像) 정보를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는 배가 없는 데도 북한 해군 지휘부는 ‘우리 레이더에는 북한 어선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니, 내려가서 확인해 보라’고 지시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지시가 왜 교전으로 확대됩니까.

    “그렇게 해서 한번 연습을 시키고, 교전 당일에는 감청이 되지 않는 방법으로 연평해전의 복수를 하고 오라고 지시하면 교전이 되는 것 아닙니까.”

    -북한의 등산곶 경비정은 선제사격을 하고도 우리의 역습을 받아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배 또한 반파돼서 돌아갔고 사망자는 우리보다 많은 12명으로 알려졌습니다. 자기도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금방 알 텐데, 등산곶 경비정은 왜 홀로 교전에 참여한 것일까요.

    “등산곶 경비정이 노린 것은 초전에 우리 경비정을 격침시키는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전차에서 떼어낸 85㎜포 첫발로 우리 고속정을 격침한 후 퇴각하려고 했는데, 현장에 있던 우리 고속정의 대응이 빨라 도망치지 못하고 심하게 당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777부대는 6월27일 국방정보본부에 보낸 자료에서는 단순침범일 가능성을 뺐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희도 장관을 의식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침범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SI를 첨부했습니다. 상급부대에서 하급부대로 정보를 전파할 경우, 하급부대는 상급부대가 판단한 것보다 강하게 판단할 수는 있어도 약하게 판단하는 것은 금지돼 있습니다. 그래야 최악의 경우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가슴’인 우리는 장관을 의식해 1번을 단순침범으로 적고, 대신 우리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 SI를 첨부해서 국방정보본부로 보냈습니다. 그걸 본 우리 부대의 국방부 파견단장인 윤영삼 대령이 우리 의도를 알고, 더 강력한 판단을 붙여주었습니다. 위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면 윤대령은 별도의 종이에 이러한 문구를 추가한 것이 됩니다.

    ‘단순침범으로 판단됨.

    그러나 어선이 실제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레이더 경보 허상으로 인한 대응활동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함’

    판단 보고서에는 문단을 바꾸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위에서처럼 ‘단순침범으로 판단됨’이라고 쓰고 줄을 바꿔 ‘그러나 어선이…’라고 쓴 것은, 장관의 의도를 알기 때문에 1차로는 단순침범으로 적었지만, 실제로는 레이더 경보 허상으로 인한 대응활동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윤대령은 우리 부대에 오래 근무해온 베테랑인지라 우리 보고서를 보고 그 자리에서 자기 판단을 추가한 보고서를 만들어 국방정보본부장(중장)과 군사부장(소장), 정보융합처장(준장)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지휘부는 경계강화를 하라는 재(再)지시를 내리지 않고 있다가 6월29일 선제공격을 당했습니다.

    국방부 특조단은 윤대령이 추가한 문구를 확인하고서도 ‘그것으로는 의도적인 침범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어찌되었든 저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워야 하니까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특조단의 조사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6월26일 합참은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과 관련해 징후 목록을 격상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연평도에 고속정 1개 편대를 추가 배치한 것이고.

    “그런 조치를 취했으면 당연히 예하 작전부대로 가는 블랙북에는 우리 부대가 올린 15자의 SI가 실려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부대에 ‘또 다른 이상징후는 없냐’고 물었어야 할 텐데, 작전 부대로 내려간 블랙북에는 15자의 SI가 삭제돼 있었습니다. 6·29 교전 때 큰 함포를 달고 있는 초계함은 교전 현장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15자의 SI가 해군에 전파됐으면, 해군 2함대는 두 척의 초계함을 그렇게 후방에 배치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통제에 잘 응하라’

    -6·29교전 직후 국방부는 우발적인 충돌이며, 북한 경비정의 단독행위로 본다고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7월3일 의도적인 도발로 본다고 바꾸었고, 7월4일에는 상급부대 지시에 의한 도발이라는 쪽으로 판단을 바꾸었습니다. 왜 이렇게 판단이 바뀐 것입니까.

    “6월 중순쯤 북한군의 상급기관이 예하 부대에 ‘통제에 잘 응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국방정보본부는 인민군 지휘부가 통제에 잘 응하라고 요구한 대상을 북한 경비정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대는 북한 어선과 외화벌이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판단을 뒷받침할 수 있는 SI를 세 가지나 뽑아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대는 국방정보본부의 판단이 어떠했는지는 몰랐습니다. 국방정보본부의 판단이 우리와 달랐다는 것은 7월4일 열린 한미군 회의 때 처음 알았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6·29 교전이 단독행동이냐 상급부대의 지시에 의한 도발이냐가 논의 주제였습니다. 이때 국방정보본부장은 경비정의 단독행동이었다고 주장해 저와 목소리를 높여가며 언쟁을 벌였습니다.

    국방정보본부의 군사부장은 자기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6월 중순 북한군이 예하 부대에 내려보낸 SI(통제에 잘 응하라)를 거론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국방정보본부가 SI를 아전인수로 해석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소리냐. 북한군이 자제하라고 한 대상은 경비정이 아니라 어선과 외화벌이선이다’라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미군은 우리와 같은 의견을 보여, 6·29 교전은 인민군 상급부대의 지시에 의한 의도적인 침범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부대의 판단이 옳았고 국방정보본부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인데, 처벌은 반대로 갔습니다. 국방정보본부장이 전역서를 내자 이를 수리하는 선에서 그에 대한 처벌이 끝났습니다. 그래서 저도 전역서를 냈는데 반려되고, 정직 1개월의 중징계와 함께 10월31일부로 강제전역을 시켰습니다.”

    -북한이 어선과 외화벌이선에 통제에 잘 응하라는 뜻을 지시한 것은 무슨 의도일까요.

    “7월4일 회의 등에서 나온 결론은, ‘곧 군사 작전을 벌일 테니 꽃게잡이 등을 위해 멀리 나가지 말라’는 뜻이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6·29 교전이 있기 전에는 실제로 북한 어선이 NLL 부근으로 내려오지 않았나요.

    “그럼요. 군사부장은 6월19일 국방부 출입기자들 앞에서 그런 사실을 브리핑까지 했습니다. 군사부장은 북한은 NLL 부근에서 북한 어선의 조업을 적극 통제하고 있으며 외화벌이선의 남진을 통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브리핑했는데, 이 내용은 6월20일자 경향신문에 자세히 보도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북한이 우리의 월드컵에 협조하는 것으로 이해됐었죠. 그런데 이제 와서는 경비정을 통제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니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군에서 24명의 사상사자 발생하고 고속정이 침몰했으면 억울해서라도 북한의 의도적인 도발이었다고 외쳐야 하는데, 정보본부는 거꾸로 북한 편을 드는 주장을 펼치게 된 것입니다.

    -정보사가 온라인으로 영상정보를 제공하던 KCITS를 차단한 것은 어떻게 일어난 것입니까. 이에 대해서는 777부대도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일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KCITS 차단 사실을 제게 보고하지 않은 부하들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더 큰 잘못은 차단한 정보사에 있습니다. 정보유통체계는 작전망인데 이를 고의적으로, 그것도 장기간 차단한 것은 군법회의감입니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KCITS를 차단한 정보사 대령에게 겨우 경고유예 1개월을 주었습니다. 우리 군 지휘부의 정보 불감증이 6·29 때 무방비로 당하게 된 원인(遠因)입니다.”

    -10월4일 국방위 국감에서 777부대의 일일보고를 공개함으로써 우리의 대북 감청능력이 공개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방위 국감에서 제가 진실을 밝혔다고 해서 북한이 암호체계를 바꾸는 게 아닙니다. 6·29 교전 같은 것이 일어나면 그 즉시 북한은 암호체계나 주파수 체계를 싹 바꿔버립니다. 7월4일 우리 국방부가 북한의 의도적인 기습공격이었다고 발표하고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도 북한이 도발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하면, 북한은 그 즉시 암호나 주파수를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10월4일 진실을 밝혔기 때문에 북한이 암호체계를 바꾼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미군은 수훈장 수여 통보

    한소장은 대령이던 49세 때 후배 장교의 소개로 39세이던 추순삼(秋順三) 여군 중령을 만나 결혼했다. 두 사람 다 초혼이었으니 지독히 늦게 결혼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다섯 살 된 딸 은비를 낳았다. 은비가 태어난 1997년 10월22일은 그가 소장으로 진급해 사단장이 되는 날이었다. 아버지가 투 스타가 되는 날 태어났다고 해서 은비의 별명은 ‘별이’(별이 두 개라는 뜻)가 되었다.

    그로부터 만 5년이 지난 2002년 10월31일 한소장은 강제전역을 당했다. 같은 날 부인 추순삼 대령이 교장을 맡고 있던 여군학교가 폐교되었다. 다행히 추대령은 새로 창설된 여군발전단장을 맡게 돼 부부 동시 전역은 면했지만, 10월31일은 한소장 가족에게 가장 슬픈 날이 됐다.

    인터뷰를 거의 끝낼 때쯤 한소장은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더니 “감사합니다. 우리 식구 모두가 참석하겠습니다”하며 밝게 웃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군 측 전화입니다. 11월22일 한미연합사에서 제게 ‘수훈장(the Legion of Merit)’을 주겠다는 연락입니다. 수훈장은 대개 연합사에 근무해온 한국군 장군이나 중장급 이상 한국군 지휘관에게만 수여하던 것이랍니다. 연합사에 근무하지 않은 한국군 소장으로서는 제가 최초의 수여자라고 하는군요.

    국방부는 제가 잘못했다고 강제전역시켰는데, 미군측은 훈장을 주겠다니, 나 원 참…. 우리는 777부대가 노출된 것을 문제 삼아 국가안보가 뚫린 것을 덮으려고 하는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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