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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 시론

감동의 정치로 신뢰의 씨앗 뿌려라

  • 글: 이명현 서울대 교수·철학

감동의 정치로 신뢰의 씨앗 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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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진정으로 새로운 문명의 중심에 선 일류 국가를 만들려면 우리나라 내부의 다름(차이)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의 다름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사고가 현실화될 때 우리는 한 사회 안에서의 정의인 사회 정의(social justice)와 지구촌 안에서의 정의인 지구촌 정의(global justice)가 동시에 실현되는 살맛 나는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감동의 정치로 신뢰의 씨앗 뿌려라

우리 사회에 신뢰 구조를 정착시킴으로써 살맛 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난 20세기는 한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있는 도전과 시련의 시대였다. 동방의 농경문명에 안주하던 고요한 은둔의 나라가 서양 산업문명의 도전 앞에서 엄청난 충격과 변신을 거듭해야 했으며, 제국주의의 공격적인 칼날 앞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며 고통스러운 생존의 몸부림을 쳐야 했던 시대였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인류 역사상 처음 보는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모순의 처절한 대결을 직접 몸으로 겪었을 뿐 아니라,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근대 문명의 핵심 과정이 너무나 짧은 시간에 동시적이고 압축적으로, 그리고 너무나 고통스럽게 진행된 시대였다.

지난 100여 년과 같이 밀도 높은 역사는 우리의 오천년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참으로 힘겹고 험난하고 복잡한 역사의 용광로였다. 그 용광로 속에서 다 녹아버리지 않고 남은 것,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현존이 아닐까. 참으로 감격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 앞에는 21세기 새로운 문명의 관문이 버티고 서 있다. 21세기와 20세기 사이에는 단순한 연대기적 차이와는 차원이 다른, ‘문명의 대전환’이라는 엄청난 변화가 가로놓여 있다. 지난 20세기에 한민족은 산업문명의 막차에 올라타느라 너무나 진한 땀을 흘렸다. 서양이 선도한 산업문명의 변두리에서 서성거리면서 온갖 좌절과 진통을 겪었다. 지금 우리 앞에 전개되는 역사는 20세기 산업문명과는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문명이 되리라고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은 말한다. ‘지식 사회’ 혹은 ‘정보화 사회’ 혹은 ‘지식 정보화사회’는 그런 새로운 문명에 붙여진 별명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새로운 문명이 움트는 21세기 역사의 첫 무대 위에 곧 새 정부가 등장한다. 새 정부에 거는 우리의 기대가 예사로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이 새로운 문명의 판도에서 어디에 위치할 것인가는 새 문명의 첫 단추를 얼마나 잘 끼우느냐에 달려 있다. 그 첫 단추를 끼우는 중대한 책무가 21세기 벽두에 출현하는 새 정부에 맡겨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새 정부를 이끌어갈 대통령 당선자에게 각별한 축하를 드리지 않을 수 없으며, 지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난 20세기에 산업문명 역사의 변방에서 온갖 고뇌와 좌절을 겪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21세기 새로운 문명에서는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서 살맛 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어찌 이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20세기 역사의 터널 속을 헤쳐나오면서 우리의 어두웠던 역사에 대한 책임을 때로는 우리들 자신에게 돌리고, 때로는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의 탓으로 돌리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에게 절박한 문제는 지나간 역사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당면한 역사적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이다. 그 문제를 풀어나갈 지혜와 백전불굴의 기백과 실천력이 과연 우리에게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과거를 탓할 여유가 없다. 오늘 우리 앞에 놓인 과제 너무나 심대하기 때문이다.

신뢰 구축 없이 일류사회 만들 수 없다.

왜 신뢰가 그렇게도 중요한가? 신뢰는 사회 구성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은 자연법칙이다. 자연은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자연과 대비되는 사회를 지배하는 법칙은 규범이다. 규범은 자연법칙과 달리 인간이 만든 법칙이다. 모든 법과 제도, 규칙과 관습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규범적 질서들이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약속’한다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법은 국민 의사를 대표하는 국회에서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다. 합의란 다름아닌 약속이다. 합의에는 국회에서의 합의와 같은 명시적인 합의와 관습과 관행과 같은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 따라서 규범에는 명시적인 것과 암묵적인 것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를 지배하는 규칙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토대는 약속이다. 약속은 상대방의 말을 믿는 데서 성립한다. 상대방의 말을 믿지 않으면 약속은 성립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금송아지 한 마리를 주겠다”고 하고서도 생일날 아들에게 금송아지를 선물로 주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말은 거짓말이 되고 말 것이다. “생일선물로 금송아지를 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러한 약속의 파기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신뢰를 저버리게 한다. 약속이 성립하려면 상대방의 말에 대한 신뢰가 밑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는 보통 상대방이 어떤 말을 내뱉으면, 그 말을 일단 믿는다(신뢰한다). 그래서 의사 전달이 되고 약속이 성립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말을 내뱉을 때 누구도 그 사람의 말을 믿지 않으면, 그의 말은 말로서의 기능을 잃는다. 의사 전달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약속은 더더구나 성립될 수 없다.

이처럼 신뢰는 언어를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알맹이다. 약속이라는 언어 행위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약속은 신뢰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모든 규범은 일종의 약속이요, 약속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신뢰이다. 따라서 규범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약속이 아닐 수 없다. 신뢰가 없는 곳에 규범은 살아 움직일 수 없다.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규범이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규범이 살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신뢰가 없는 곳에 규범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신뢰는 사회에 생명을 불어넣는 핵심적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신뢰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가 마련된들 무엇하겠는가? 정치와 경제는 법과 제도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데 정치와 경제를 움직이는 법과 제도에 생명을 불어넣는 신뢰가 없다면, 어떻게 정치와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겠는가? 정치와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수준 높은 일류 국가가 될 수 있겠는가?

신뢰가 상실된 사회에서는 모든 법과 제도가 헛바퀴 돌게 마련이다. 겉모양만 그럴듯할 뿐이다. 따라서 아무리 번드르르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신뢰가 부재한 곳에서 법과 제도는 일종의 공수표에 불과하다. 부도가 예정된 고액의 수표와 같다.

신뢰가 상실된 사회는 반칙 사회가 되고 만다. 반칙이 상례화되어 있는 사회가 반칙 사회이다. 규칙을 어기는 것이 정상적 행위로 간주되는 사회가 반칙 사회다. 이러한 반칙 사회에서는 법을 지키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괘씸죄’는 이런 반칙 사회의 부산물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반칙을 하는 사회에서 어떤 특정인을 골라내 반칙을 했다고 벌을 줄 때, 벌받는 사람은 ‘왜 하필 나인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괘씸죄’의 희생자로 여긴다. 신뢰가 상실된 사회에선 많은 사람들이 법을 지키면 손해본다고 생각한다. 법을 어기는 것이 정상이요 주류요, 법을 지키는 것이 비정상이요 비주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법을 지키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괘씸죄’라는 죄명으로 벌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는 우리 사회가 매우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한 채 ‘일류 국가’ 타령을 한다면 공염불이요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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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명현 서울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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