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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정치

앞서거니 뒤서거니 계산 착오, 5년 헛장사

대선 조연 정몽준·이인제 도박 성적표

  • 글: 박성원 swpark@donga.com

앞서거니 뒤서거니 계산 착오, 5년 헛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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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대권을 꿈꾸고 있는 두 명의 50대 정치인 이인제와 정몽준. 그들의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앞으로 5년. IJ는 경선불복이라는 ‘변절’의 딱지를 뗄 수 있을까. MJ는 ‘월드컵 4강신화’에 버금가는 천재일우를 다시금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계산 착오, 5년 헛장사

‘동병상련’의 아픔을 달래고 있을 법한 이인제 의원과 정몽준 대표. 두 사람의 5년 후가 주목된다.

전국을 흥분으로 몰고 갔던 2002 대선 드라마의 막이 내렸다. 이제 정치권에서는 5년 뒤의 주연(主演)을 꿈꾸는 두 정치인의 엇갈리는 행보가 관심을 끈다.

이인제(李仁濟)와 정몽준(鄭夢準). IJ와 MJ로 불리는 두 사람은 모두 50대로 지난 대선을 앞두고 한때 여론조사에서 당선을 넘보던 유력주자였으나, 당내 경선과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에게 뜻밖의 패배를 당해 ‘꿈’을 접어야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야망을 향한 접근 방식은 사뭇 달랐고, 이로 인해 이들이 맞이하는 정치적 앞날도 판이하게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공식 선거운동기간에 들어가기 직전인 11월24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패배 이후 당에서 사실상 마음이 떠나 있던 이인제 의원이 참모들에게 탈당 의사를 밝히면서 말했다.

“호남 사람들하고는 다시는 정치 같이 안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는 절대 화해가 없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 정권이 비참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주겠다.”

이인제의 슬픈 귀환?

그러나 그로부터 3일 뒤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이의원은 참모진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다. 그래도 5년 동안 같이했던 사람들인데 내가 떠날 수야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하지만 다시 3일이 지난 뒤 그는 참모들에게 탈당 결심을 전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이의원은 탈당 직전까지 ‘아침에는 서쪽, 오후에는 동쪽’으로 방황을 거듭했다고 한다.

노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간 후보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가 노후보의 승리로 결론이 난 11월26일 아침 이의원은 충혈된 눈으로 몇몇 측근에게 말했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 급진 좌경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노무현이 대통령 되는 것만은 절대 두고 볼 수 없다. 차라리 한나라당이 낫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그 날 저녁 이의원은 자택에서 참모들과 만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한나라당이 어떤 당이냐. 5년 전 지역주의 광풍으로 나를 버린 ‘동쪽당’ 아니냐. 내가 어찌 거기에 다시 가겠느냐”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다음날 고향인 논산에 내려갔다가 밤 늦게 귀경한 그는 다시 측근들에게 “도저히 안되겠다. 충청도에서 난리다. ‘호남 사람들이 당신을 버렸는데 무슨 미련이 있어서 그런 당에 남아 있느냐. 차라리 한나라당으로 가라’고 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2002년 3월에 있었던 지역별 대선후보 경선에서 부동(不動)의 1위를 자신했던 이의원은 뚜껑이 열리면서 노후보가 속속 1위를 차지하자 ‘배신감’을 감추지 못했다. 광주 경선이 있던 3월18일 아침 이의원은 측근들에게 굳은 얼굴로 “다 끝난 것 같다. 연청이 돌아서고 모든 당 조직도 노무현 쪽으로 정리된 채 연락조차 안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패배가 ‘부산 출신 노무현’을 후보로 내세워 재집권 가능성을 극대화하려는 호남 정치세력의 ‘전략적 선택’에 따른 것이라는 확신이 굳어지면서 노후보와 민주당에 대한 그의 분노는 갈수록 깊어졌다.

측근들은 경선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의원에게 세 가지 선택 방안을 건의했다. 1안은 깨끗이 미련을 접고 노후보를 돕는 것이고, 2안은 후보단일화를 주창해서 정몽준 의원을 돕는 것이고, 3안은 한나라당 탈당의 명분이었던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의혹이 해소될 경우 ‘원인 소멸’을 내세워 한나라당에 ‘복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모두 거부한 채 결국 자민련행을 택했다. 한 측근은 “동쪽당(한나라당)에서 버림받고 서쪽당(민주당)에서 역시 지역주의 ‘음모’에 의해 배신당했다는, 뼈저린 인식을 하고 있는 IJ로선 한국정치 현실에서 역시 믿을 것은 고향뿐이라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충청도당’으로서의 간판 유지조차 어려워진 자민련과 JP가 최소한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줌으로써 고향 사람들로부터 ‘의리와 도의를 지킨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재기를 도모해 보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명분이 있고 없고를 떠나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무기는 지역이고 고향뿐’이라는 IJ의 선택은, 1997년 대선에서 3김 정치 청산과 영호남 지역주의 타파를 외친 그에게 표를 찍어준 500만 유권자들에게 허탈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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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성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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