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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광수·南 이종갑, 두 戰士의 엇갈린 운명

‘동해안 무장공비 소탕작전’ 그후 7년北

  • 글: 이형삼 hans@donga.com

北이광수·南 이종갑, 두 戰士의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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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수 : 전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3기지 22전대 잠수함 조타수.
  • 1996년 동해안으로 침투했다 생포.
  • ●이종갑 : 전 대한민국 육군 3군단 정보처 전투정보장교.
  • 1996년 동해안 침투 간첩 소탕작전 중 총상.
  • ●이광수 : 현 대한민국 해군 군무원. 2003년 경남대 졸업, 대학원 진학.
  • ●이종갑 : 현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회원. 2003년 현재 일정한 직업 없음.
北이광수·南 이종갑, 두 戰士의 엇갈린 운명

이광수씨

지난 2월18일 아침, 조간신문을 뒤적이던 이종갑(李鍾甲·46)씨는 한 장의 인물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부인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 어딘지 낯익은 얼굴이다.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잠수함 간첩 이광수씨, 전향 7년 만에 학사모’.

“1996년 9월 북한 잠수함의 동해안 침투사건 당시 무장간첩 26명 중 유일하게 생포됐다 전향한 이광수(李光洙·38)씨가 경남대에서 학사과정 졸업장을 받는다. 경남대는 ‘1999년 법행정학부(야간)에 입학한 이씨가 행정학 전공 과정을 모두 이수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3월부터 이 대학 행정대학원 안보정치과에 진학, 학업을 계속한다. 그는 ‘공부를 시작한 만큼 북한학 박사학위에도 도전해 대학 강단에 서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종갑씨는 왼팔에 갑작스런 통증을 느꼈다. 잊을 만하면 이렇게 한번씩 쑤시거나 저려온다. 오른손으로 왼팔을 살짝 주물러본다. 팔은 한 손으로 감싸질 만큼 가늘어져 있다. 결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숲 속의 조준사격

1996년 11월5일 새벽 4시30분경,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3리 연화교 계곡 자연휴양림 매표소.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투입돼 밤새 매복 근무중이던 육군 불사조 부대 병사가 산에서 차도로 내려오는 두 명의 괴한을 발견했다. “누구냐”며 수화를 건네자 암구호 대신 “3중대 중사다”라는 대답이 들렸다.

그러나 병사는 ‘찰칵’ 하는 소총 장전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순간 그는 “적이다”고 외치면서 함께 매복하고 있던 동료와 방아쇠를 당겼다. 두 괴한은 수류탄을 던지며 대응사격을 하다 한 명이 총에 맞자 다른 한 명이 부축해 숲 속으로 달아났다. 병사들은 사격을 계속했지만, 짙은 어둠 때문에 괴한들의 행방은 이내 묘연해졌다. 아군은 경계를 강화하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北이광수·南 이종갑, 두 戰士의 엇갈린 운명

이종갑씨

그 무렵 3군단 정보처 전투정보장교인 이종갑 소령은 군단 작전사령부에서 군단장에게 작전상황을 브리핑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용대리에 공비 잔당이 나타났다”는 다급한 전갈이 왔다. 이소령은 군단 기무부대장 오영안 대령, 특공연대 중대장 서형원 대위 등과 함께 합동신문조를 구성, 현장으로 급파됐다.

9월18일 무장간첩 26명을 태운 북한 잠수함이 강원도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한 채 발견된 지 49일째 되는 날이었다. 26명 가운데 한 명인 이광수씨는 잠수정 발견 당일 민가에 숨어 있다 생포됐고, 그후 11명은 자살했으며 11명은 사살됐다. 남은 3명 중 2명이 용대리에 나타난 것이다.

합동신문조는 현장 주변을 살피며 예상 도주로와 탄피 흔적, 대공 용의점(괴한들이 탈영병일 가능성도 있었다) 등을 조사했다. 아침 7시20분경, 오대령 등이 연화교 위를 수색하고 있을 때였다. “뻥!” 하는 총성과 함께 오대령이 힘없이 쓰러졌다. 가슴에 총을 맞은 오대령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황급히 자세를 낮추고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찾는 순간 또 한 발의 총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이소령이 쓰러졌다. 왼팔이 마비되기라도 한 듯 아무 감각이 없었다. 지프 뒤로 몸을 피했다. 서대위가 피를 흘리는 이소령에게 달려와서는 자신의 야전상의를 벗어 팔을 동여맸다.

그때 다리 난간에 있던 한 병사가 총을 맞고 비명을 질렀다. 서대위는 이소령에게 “엄호사격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병사 쪽으로 기어갔다. 이소령이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총을 쏘는 동안 산에서 날아온 또 한 발의 총알이 서대위의 급소에 명중했다.

새벽 교전 후 도주한 줄 알았던 간첩들은 숲 속에 그대로 숨어 있었다. 한 명이 총상을 입어 포위망을 못 뚫게 되자 최후의 일전을 각오했던 것. 김정일이 “1개 군단과도 못 바꾼다”고 한 정예 침투조였다. 그들은 ‘독 안에 든 쥐’ 신세임에도 자포자기해서 마구잡이로 총을 쏘지 않았다. 아군을 향해 지휘관부터 정확하게 한 발씩 조준사격을 했다.

이소령에게도 M16 소총을 가슴에 정조준하고 쐈지만, 그가 순간적으로 몸을 조금 트는 바람에 치명상을 면했다. 총알은 왼쪽 상박의 뒤쪽으로 날아들어 관통했다. 총을 맞은 부위는 상처가 크지 않았으나, 총알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뚫고 나가는 바람에 팔 앞쪽으로는 뼈와 살이 거의 다 뜯겨나갔다. 이소령은 팔꿈치께에도 두 발을 더 맞았다. 한 발은 언제 맞았는지도 모르고 맞았고, 또 한 발은 앰뷸런스로 후송될 때 차체를 뚫고 들어온 총알이었다.

두 번째 교전이 시작된 지 세 시간 만인 10시20분경, 무장간첩들은 뒷산으로 우회해 덮친 특전단 대원들에게 사살됐다. 49일에 걸친 대간첩 작전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간첩 잔당 3명 중 나머지 한 명의 소재가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시체를 찾지 못했거나 이미 월북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교전 현장을 빠져나온 이소령은 원통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원주병원으로 옮겨졌다. 뼈가 없어 흐늘거리는 팔에 두 개의 금속 지지대를 달아 나사로 고정하고, 뒤틀린 뼈를 어렵사리 끼워맞춘 뒤 서울 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됐다. 원주에서 기상 여건이 나빠 헬기가 뜨지 못하고 있는 동안 이소령의 머릿 속엔 지난 17년간의 군 생활이 무성 영화 돌리듯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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