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김대중·카터·고르바초프 ‘대북 특사’ 파견설

북핵 해결 위한 ‘저어새 프로젝트’

  • 글: 엄상현 gangpen@donga.com

    입력2003-03-25 19: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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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핵 문제의 해결 기미가 좀처럼
    •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국내 일부
    •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인사들이 북핵 문제와 한반도 긴장 완화를
    •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김대중·카터·고르바초프  ‘대북 특사’ 파견설
    새로운 프로젝트의 명칭은 이른바 ‘저어새 프로젝트’다. 저어새는 세계적 희귀종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철새다. ‘저어새’란 이름을 사용한 것은 한반도의 긴장을 상징하는 DMZ(비무장지대)가 이 새의 세계 최대 번식지이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은 대통령직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을 지냈던 이종석(李鍾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을 비롯, 김기식(金起式) 참여연대 사무처장, 정현백(鄭鉉柏) 한국여성단체 공동대표, 김제남(金霽南) 녹색연합 사무처장,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정욱식(鄭旭湜) 평화네트워크 대표 등 10여 명선.

    3월초 이들은 ‘북핵문제 자문회의(이하 자문회의)’라는 명칭을 사용키로 하고 비정기적인 모임을 계속해오고 있다. 자문회의 내부 논의의 핵심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학계 ‘북핵 문제 자문회의’ 구성해 논의중

    “자문회의는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를 이끈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지속적인 역할을 맡도록 추동해야 한다는 데 의견접근을 보고 있다”는 게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모임에 실무적 역할을 맡은 김기식 사무처장은 이와 관련 “아직은 초기 논의단계에 불과하다”고 전제한 뒤 “북핵문제 해결을 통한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다양한 안들을 논의중이고 김 전 대통령의 남북화해 특사안도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밝혔다.

    김처장에 따르면 자문회의는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논의하고 있다. 국내 시민사회단체 및 학계인사뿐만 아니라 외국 시민사회단체까지 연대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범국제NGO(비정부기구) 평화연대’를 결성하는 방안이 그 하나다.

    이같은 연대의 상징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DJ 활용안이다. 김 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아 세계적 평화인사라는 강한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한 답방 약속을 지키지 않은 상황에서 DJ의 방북은 북측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한몫하고 있다.

    이와 함께 김 전 대통령과 평소 유대관계가 깊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등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전직 지도자들이 북핵문제 해결에 함께 노력할 수 있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시민단체와 학계 관계자들이 이처럼 북핵문제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한반도 위기상황이 자못 심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실제로 핵을 보유하게 된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김처장의 우려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독일 베를린 접촉 등 북미간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북미간 양자협상만 고집하던 북한이 유엔을 중심으로 한 다자간 협상 틀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비관론보다는 낙관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담보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북핵문제는 결코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국내 정치적 상황뿐만 아니라 남북, 한미, 북미 관계를 모두 고려해야 할 만큼 복잡한 문제여서 이에 대한 접근도 쉽지 않다.

    자문회의가 가장 고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당장 지난 3월14일 노무현 대통령이 공포한 현대 대북송금사건 특검법부터가 걸림돌이다. 이로 인해 남북관계가 경색될 것은 뻔하다. 북한은 그동안 특검법이 통과될 경우 남북관계가 동결될 것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경고해왔다.

    특검 수사 진행상황에 따라 수사대상에 포함될지 모를 김 전 대통령도 앞으로 당분간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노대통령의 입장도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노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의 역할을 부담으로 받아들일 경우 시민단체에서 아무리 특사파견을 요구하더라도 이를 수용하기 어렵고 실효성도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의 방북에 무게와 의미가 실리기 위해서는 정부와의 합의뿐 아니라 미국 정부측과의 긴밀한 협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또 카터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특사로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미국과 러시아 등 해당 국가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김기식 사무처장이 구체적인 논의 내용에 대한 질문에 “아직 익지 않았다. 조금 기다려달라. 그리고 이 문제는 단순하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면서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인 것도 이처럼 복잡한 상황 때문이다.

    ’DJ·카터·고르비’ 3자회동 시동

    한편 이와는 별도로 정치권 내에서도 비슷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남·북)+4(미·중·러·일)’ 국의 의회 국방위원장급 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민주당의 장영달 국회 국방위원장에 의해서다.

    장위원장은 조순형 의원을 단장으로 한 방러 특사단의 일원으로 지난 2월12일부터 16일까지 러시아를 방문해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을 만났다. 장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게 한반도 긴장완화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요청했다. 장위원장은 “방러 특사단과의 대화 말미에 북핵문제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한반도 상황을 전하고 지미 카터와 고르바초프,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 등 평화를 상징하는 세 지도자가 서울에서 회동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면서 ‘DJ-카터-고르비 3자회동’을 즉석에서 제안했다”고 밝혔다. 장위원장은 “고르바초프는 내 제안에 ‘good idea’라고 흔쾌히 받아들이고 주선하면 기꺼이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답했다”며 “세 지도자가 판문점이나 복원된 남북간 철로를 통해 북한을 방문, 평화의 사절 역할을 해준다면 한반도의 긴장이 크게 완화되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장위원장은 조만간 동교동을 방문, 고르바초프의 입장을 김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은 정치권 인사나 종교계 인사들의 면담 요청을 일절 거절하고 있는 상태다. 동교동계 의원들의 출입도 금지시켰다고 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국내 정치인 가운데 카터, 고르바초프 등 세계적인 전직 지도자와 개인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바로 DJ다. 만일 DJ가 퇴임 이후 북핵문제 해결에 역할을 해야만 한다면,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아마도 직접 나서서 연락하고 만났을 것”이라며 “DJ의 대북 특사 역할을 논의하기에는 아직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동교동측도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계속 보좌를 맡고 있는 김한정 전 청와대 부속실장은 “대북송금 특검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김 전 대통령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조용히 지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법 공포 담화를 발표하던 3월14일 오후 동교동. “김 전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TV를 지켜보면서 이따금 지그시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기는 듯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자리에 함께 했던 한 관계자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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