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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일(전 주미 무관) 로버트김 사건 전모 밝히다

한국 해군 무관과 美 FBI의 숨막히는 첩보전

  • 구술: 백동일 (예)해군대령, 전 주미 해군무관 정리: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oon@donga.com

백동일(전 주미 무관) 로버트김 사건 전모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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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군 비밀 첩보부대 출신으로 무관이 된 백동일 대령
  • ●2년간 1300여 건의 첩보보고 보내 최우수 무관으로 선정
  • ●한미 해군회담에서 미국측 소개로 로버트김 만나
  • ●로버트김 “한국의 대북첩보 여건이 그렇게 열악한가. 그렇다면 도와야지”
  • ●우편으로 美 해군 중요 자료 전달
  • ●FBI, 우편물 개봉하고 CC-TV로 두 사람 만남 촬영
  • ●FBI의 경고, 백대령 ‘올 것이 왔구나…’ 위험 직감
  • ●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첩보 수집에 대한 보복?
  • ●“나는 실패한 첩보원, 내 사례를 냉정히 분석하라”
  • ●“로버트김과는 식사 한번 한 것이 전부, 금품 수수 결코 없었다”
  • ●로버트김은 애국자, 노대통령은 그의 석방을 요구하라
백동일(전 주미 무관) 로버트김 사건 전모 밝히다
1996년 9월24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김(한국명 金采坤·63)이 주미 한국대사관의 해군무관인 백동일(白東一·해사 27기, 55) 대령에게 미국 군사기밀을 제공한 혐의(간첩죄)로 FBI(연방수사국)에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당시 로버트김은 ONI(Office of Naval Intelligence)로 불리는 미 해군성 정보국에서 정보 분석을 하는 컴퓨터 전문 문관으로 19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ONI는 첩보 수집부대였던 미 해군 정보사령부(NIC:Naval Intelligence Command)의 후신으로 세계 각처에서 수집한 첩보를 취합, 분석하는 곳이다. 특수한 부서인 만큼 외부로부터의 도·감청이 불가능하도록 특별한 격벽(隔壁)을 설치한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FBI로부터 로버트김을 송치받은 미국 연방검찰은 김씨를 간첩죄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이 사건은 곧 한미간 외교 마찰을 불러왔다. 한국 정부는 “김씨가 적국(敵國)이 아닌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에 정보를 제공했는데 왜 간첩죄에 해당하느냐”고 항의했으나 미국은 들어주지 않았다.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된 로버트김은 배심원들이 유무죄를 평결하기 전에 자신이 미국 법을 어기고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는 ‘플리 바기닝(plea bargaining)’을 선택했다.

플리 바기닝은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고 2심 항소를 포기하는 대신에 검찰은 적은 형량을 구형하는 제도다.

그러나 미국 연방검찰은 로버트김에게 군사기밀유출죄를 적용한 후 법정 최고형(10년)을 구형하였다. 연방검사는 플리 바기닝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간첩죄로 기소하지 않았다며, 군사기밀유출죄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최고형을 구형한 것이었다.

“나는 한국 정부 스파이가 아니다”

1997년 7월12일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연방지방법원의 브링크마 판사는 로버트김에게 “피고는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해 한 충성 서약을 배반했다”며 징역 9년에 주거 및 활동을 제한하는 보호감찰 3년형을 선고했다.

이날 로버트김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한국 정부(에 고용된) 스파이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저지른 엄청난 실수에 대해 모든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사과한다”는 내용이 담긴 최후진술을 했다. 김씨는 펜실베이니아주 앨런우드 연방교도소에서 구속 기간을 포함해 7년째 수감 생활을 해오고 있다.

한국에선 대통령에 의한 특별사면이 간혹 실시되지만, 미국 사법제도에서는 특별사면의 예를 찾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재소자가 성실히 수감생활을 할 경우에만 형을 감해주는데, 로버트김은 모범적인 수형 생활을 해옴으로써 15% 감형을 받아 내년 7월26일 출소할 예정으로 있다.

그러나 로버트김은 보호감찰 3년형을 함께 선고받았기 때문에 출소 후 3년간은 거주지(집) 인근에만 머물러야 한다. 미국 법무부는 보호감찰형을 선고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사면해주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로버트김이 보호감찰 3년형을 사면받으려면 정부를 비롯한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각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로버트김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가운데 그와 함께 이 사건을 만들었던 당시의 해군무관 백동일씨가 처음으로 사건경위를 털어놓았다. 사건 당시 백씨는 ‘면책특권’을 가진 외교관이어서 미국 시민권자인 김씨와 달리 체포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 직후 미국 정부는 그를 사실상의 ‘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목해 한국으로 데려가도록 했다.

그날 이후 백씨도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실상 그를 추방한 미국 정부는 한국 국방부에 백씨를 진급시키지 말 것과 주한미군과 접촉할 수 없는 부서에만 근무케 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백씨를 전역시키라는 압력이나 다를 바 없었다. 결국 백씨는 눈에 띄지 않는 부서를 전전하다가 2001년 1월말 대령 계급을 끝으로 쓸쓸히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이익은 백씨가 받은 심적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백씨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고통받는 한국을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도와주었던 김선생(백씨는 로버트김을 김선생으로 불렀다)이 간첩으로 몰리고 옥살이까지 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괴로워했다. 이러한 고통이 백씨의 가슴에 사무치게 파고들어 백씨의 얼굴과 가슴에는 깊고 깊은 주름이 팼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미국에서 양식 있는 화이트 칼라가 재소자가 된다는 것은 일평생 쌓아온 명예와 재산과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이다. 실제로 로버트김은 모든 수입이 끊어지고 은행 거래마저 중지되었다. 또 19년간 ONI에서 일해오면서 기대했던 연금이 날아가버려 상당한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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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백동일 (예)해군대령, 전 주미 해군무관 정리: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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