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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논단

사법부 관여로 공정성 확보해 ‘특검정치’ 막아라

政爭 수단으로 변질된 특검제

  • 글: 홍준형 서울대 교수·공법학 joonh@snu.ac.kr

사법부 관여로 공정성 확보해 ‘특검정치’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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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수사과정에서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옷로비 의혹 사건에 대한 사직동팀 내사동향 및 관련문건을 김 전 총장 부부에게 수시로 전달하고 내사내용도 연정희씨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축소, 조작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전직 검찰총장과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특검의 수사결과 이 사건에 대한 네 가지 의혹이 해소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먼저, 신동아그룹측이 회장구명을 위한 로비의 일환으로 옷로비를 실제로 했는지 여부, 둘째 옷로비 과정에서 대납요구가 있었는지 여부, 셋째 사건 관련자 중 누가 끝까지 거짓말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 넷째 사직동팀 내사부터 검찰수사까지 누구의 주도로 사건이 축소·은폐됐는지에 대한 의혹이 그것이었다.

이처럼 특검팀이 사건의 실체에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권한남용의 방지를 위한 직무범위 제한규정(제6조) 때문에 공소권행사를 포기하고 검찰에 수사기록을 넘김으로써 반쪽 권한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한국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1999년 9월)

1998년 조폐공사의 파업은 검찰이 유도한 것이라는 진형구 전 대검찰청 공안부장의 발언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 발언의 진위여부를 조사한 검찰은 파업유도는 사실이지만 이는 진형구의 단독범행이었다는 결론을 내놓고 수사를 종결하였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결과는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진상 규명과 이를 위한 특검제 도입 요구가 비등했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특검제 도입을 수용했고 관련 법률이 제정되었다. 특검팀은 2개월간의 수사를 통해 사실상 처음부터 파업유도를 위한 계획은 없었고, 그 원인이었던 조폐창 조기통폐합도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의 1인극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검찰은 물론 국가기관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검팀의 수사결과는 노동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노동계는 검찰을 배제한 수사진을 구성해 전면 재수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용호 금융비리 사건(2001년 11월)

600억원대의 횡령과 250억원대의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G&G그룹 이용호 회장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거액의 로비자금을 제공한 사건, 이른바 ‘이용호게이트’가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2000년 5월 서울지검은 이용호씨를 긴급체포한 뒤 단 하루 만에 무혐의로 석방했고, 국세청과 해양수산부 역시 이용호씨와 관련된 비리를 적발하고도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거나 방관했다는 의혹이 대두됐다.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하여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자, ‘주식회사지앤지대표이사이용호의주가조작·횡령사건및이와관련된정·관계로비의혹사건등의진상규명을위한특별검사의임명등에관한법률’(제정 2001. 11. 26 법률 제6520호)이 제정되었고, 2001년 12월 11일 임명된 차정일 특검팀이 수사를 개시했다.

이용호 금융비리 특검팀은 이 사건에서 ‘수사해봐야 특별한 게 없을 것’이라던 주변의 비아냥거림에 대해 보란 듯이 대검의 수사결과와는 확연히 다른 사실들을 밝혀냄으로써 세 차례에 걸친 특검 중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남북정상회담관련 대북송금의혹 사건 (2003년 2월)

2002년 9월26일 한나라당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4900억원(4억 달러)이, 북한 아태평화위원회가 중국 베이징이나 마카오,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서 운영하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평양으로 들어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이 제기한 의혹은 대북송금이 정상회담의 대가인지 여부, 3억달러의 조성과정과 송금경로, 현대그룹에 대한 산업은행의 대출과정에 청와대나 국정원의 외압 행사 여부, 그리고 국정원이 어디까지 개입했는지 등에 대한 것이었다.

2003년 2월19일 민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남북정상회담관련대북비밀송금의혹사건등의진상규명을위한특별검사임명등에관한법률’이란 긴 이름을 가진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라는 당내 요구를 거부하고 법률안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출범한 송두환 특검팀의 수사 결과, 김대중 정부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성사 대가로 북측에 1억달러를 제공키로 약속하고 현대를 통해 이를 송금한 사실이 밝혀졌다. 특검팀은 “당시 정부가 부담키로 한 1억달러는 정책적 차원의 대북지원금 성격을 띤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4억5000만달러가 정상회담 직전에 모두 송금됐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 비밀리에 송금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상회담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북송금의 규모는 일단 남북정상회담 대가 1억달러를 포함, 모두 5억달러(현물 5000만달러 포함)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남북정상회담 대북협상의 두 주역 가운데 박지원이 구속, 임동원이 불구속기소되었고 이들을 포함하여 정몽헌, 이기호, 이근영, 김윤규, 최규백, 박상배 등 모두 8명이 구속 또는 불구속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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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홍준형 서울대 교수·공법학 joon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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