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호

강남서 형사과장 직위해제로 본 경찰과 언론의 관계

무분별한 언론, 비겁한 경찰 수뇌부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3-07-28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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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서 형사과장 직위해제로 본 경찰과 언론의 관계
    지난 6월18일 서울 강남경찰서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소동의 진원지는 서장실이었다. 이날 오전 남형수 서장을 찾아간 SBS 기자 2명은 서장실에 손님이 와 있어 바로 들어가지 못하자 부속실에서 서장 면담을 요구하며 고함을 쳤다. “강남서가 먼저 죽나, SBS가 먼저 죽나!” 서장을 찾아온 손님은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김용화 경무관이었다. 강남서 형사과장 황운하 경정이 배석한 상태였다.

    잠시 후 안으로 들어온 기자들은 김수사부장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강남서에서 MBC에 수사보안사항을 유출했는데 관련자들을 문책할 용의가 없냐”고 질문공세를 폈다. 김부장이 “마이크와 카메라를 치우고 차나 한잔 하자”고 제의했으나 기자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김부장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SBS측의 공세는 전날 밤 MBC가 강남 6인조 연쇄납치강도사건을 단독보도한 데 따른 불만의 표출이었다. 이날 오후엔 SBS 시경 캡이 6명의 기자들과 함께 강남서에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시경 캡은 서울경찰청에 상주하면서 일선 경찰서 출입기자들의 취재를 지휘하는 선임기자다. 시경 캡이 특정 경찰서에, 그것도 6명이나 되는 기자들을 이끌고 나타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강남서가 죽나, SBS가 죽나”

    강남서 형사들과 타사 출입기자들의 눈총에 아랑곳없이 ‘강남서 군기 잡기’에 들어간 SBS 기자들은 결국 뜻한 바를 이루었다. 이날 오후 SBS 8시 뉴스에서 다뤄진 강남서 관련 보도는 무려 4꼭지. 하나같이 강남서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그중 결정타는 전직 강남서 형사의 납치사건 관련 보도였다. 이날 송파경찰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4월 발생한 증권브로커 납치사건 전모를 공개했다. 피의자들 중엔 전직 강남서 경사 한아무개(36)씨가 끼여 있었다. 송파서는 보도자료에 한씨의 직업을 무직으로 표기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른 데도 아닌 SBS 취재팀이 한씨가 범행 당시 강남서 형사과 소속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이 뉴스는 다음날 아침 모든 일간지를 장식했다. 언론은 경찰이 현직 경찰관의 범죄사실을 은폐해왔다고 비난했다. 이날 오후 경찰은 황급히 강남서에 대해 문책인사를 단행했다. 남형수 서장을 비롯해 황운하 형사과장, 김종대 형사계장, 한씨의 직속상관이었던 박종무 마약반장이 한꺼번에 직위해제 당했다. 이로써 SBS는 전날 6인조 연쇄납치강도사건 단독보도로 자신들을 물 먹였던 MBC에 깨끗이 설욕했을 뿐만 아니라 MBC 특종을 도와준 것으로 ‘짐작되는’ 강남서 형사라인에 완벽하게 보복(?)했다.

    애초 강남서 간부 4명의 직위해제 사유는 전직 강남서 형사의 납치사건 가담에 대한 지휘책임이었다. 하지만 형사과장과 형사계장의 경우 한씨가 사표를 낸 날 부임했기 때문에 감독책임이 없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자 문책사유가 바뀌었다. 이근표 서울경찰청장은 “서장과 마약반장은 감독책임을 물은 것이고, 과장과 계장은 수사중인 사안을 특정 언론에 발설한 데다 조직 장악력도 약해 교체했다”고 발표했다. 두 사람의 직위해제가 MBC와 SBS의 특종 다툼과 관련된 것임을 인정한 셈이다.

    이 사건은 경찰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찰 안팎에선 두 사람의 직위해제에 대해 지나친 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수뇌부가 비난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한씨는 범행을 저지른 직후인 4월21일 사표를 냈고 5월8일 검거됐다. 당시 한씨를 구속한 양천경찰서는 그보다 일주일쯤 전에 범인 일당에 전직 형사인 한씨가 끼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찰청에 관련 사실을 보고했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경찰 수뇌부에서는 이미 한경사가 범행에 관련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수뇌부가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는 것을 막기 위해 꼬리 자르기식 문책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직위해제할 만한 잘못이 있었다면 진작 했어야지 언론에 났다고 일사천리로 직위해제하는 건 비굴한 처사”라고 수뇌부의 태도를 문제삼았다.

    서울 모 경찰서의 간부는 “언론의 특종 경쟁은 언론사간 문제다. 특정 언론이 어떤 사건을 단독보도했다고 형사과장한테 그 책임을 물어 직위해제까지 한 것은 상식 밖의 조치”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남서를 출입하는 모 일간지 기자는 “수사정보가 유출된 데 따른 관리책임을 물을 수야 있겠지만 직위해제는 과도한 조치”라며 “SBS의 파상 공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도대체 강남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또 경찰과 경찰 출입기자들은 어떤 관계인가. 경찰 출입기자들의 취재관행과 보도행태엔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경찰과 언론의 역학관계는 어떤가. 강남서 사건을 계기로 경찰과 언론의 일그러진 관계를 조명해보기로 한다. 먼저 관련자들 증언을 통해 강남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보자.

    용산서 형사과장이던 황운하 경정이 강남서 형사과장에 부임한 것은 4월21일. 이틀 후 박종무 마약반장이 황과장에게 마약반 한아무개 경사가 이틀 전에 사표를 냈다고 보고했다. 박반장이 곧바로 보고하지 않은 것은 부임 첫날부터 그런 보고를 하기가 껄끄러운 데다가 나름대로 한경사를 설득해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한경사는 사표를 낼 당시 이미 두 건의 범행을 저지른 상태였다. 경찰에 따르면 “아내가 식당을 운영하다가 4억원의 빚을 졌다”는 게 범행동기. 한경사는 4월15일 송파경찰서 관내에서, 4월20일엔 양천경찰서 관내에서 납치사건을 저질렀다. 공범들은 예전에 다른 사건으로 그에게 조사받은 인연이 있는 전과자들이었다.

    황과장은 한경사가 빚 때문에 그만둔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면담을 해보겠다고 박반장에게 말했다. 하지만 박반장은 “설득해봤는데 본인의 뜻이 워낙 완강하다. 만나길 피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4월18일에 이미 사표 제출을 시도했던 한경사는 21일 사표를 낸 이후엔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황과장은 박반장에게 한경사의 사표를 수리토록 지시했다.

    강남경찰서에서 한씨가 납치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5월초 양천경찰서를 통해서였다. 4월20일 관내에서 일어난 납치사건을 수사하던 양천서 형사과는 피해자 조사를 통해 범인들 중에 전직 경찰관인 한씨가 포함된 사실을 알게 됐다. 양천서장으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전화로 통보 받은 강남서장은 황운하 형사과장한테 확인해보라고 지시했다. 확인 결과 강남서에 근무했던 한경사가 맞았다.

    한씨를 수배한 양천서는 5월2일 사건 기록을 검찰에 송부하면서 경찰청에 한씨가 전직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보고했다. 이와 별개로 강남서장도 상부에 보고했다. 한씨가 검거된 것은 5월8일. 검문에 걸려 체포된 한씨는 양천서에서 조사를 받고 구치소에 수감됐다. 이 사건은 양천서가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다.

    누구에게 은폐책임을 묻는가

    한씨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송파서 보도자료를 통해서였다. 4월15일에 관내에서 발생한 납치사건을 수사하던 송파서 형사과는 피의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 이미 양천서 관할 사건으로 구속돼 있는 한씨가 이 사건에도 연루된 사실을 밝혀냈다. 범인들을 다 잡은 후 송파서는 한씨가 가담한 증권브로커 납치사건 전모를 발표했다. 앞서 언급했듯 보도자료에는 한씨의 직업이 무직으로 표기돼 있었다.

    SBS 취재팀이 아니었다면 한씨가 현직 경찰관으로 범행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영원히 묻힐 뻔했다. 그런 점에서 SBS의 보도내용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은폐책임과 감독책임이 강남서 간부들에게 돌아간 데 있다.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보고 책임은 양천서나 송파서에 있지 강남서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씨가 범행 당시엔 강남서 소속이었지만 그후 사표를 냈기 때문에 한씨의 범행을 인지하고 수사한 양천서나 송파서에 보고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양천서나 송파서도 특별히 잘못한 게 없어 보인다. 경찰청은 양천서 보고를 통해 한씨가 범행 당시 현직 경찰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 수뇌부는 SBS 보도가 있기 전까지 한 달 보름여 동안 이를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다 SBS를 선두로 언론의 비난보도가 쏟아지자 부랴부랴 강남서 관계자들을 문책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굳이 은폐책임을 거론한다면 그 대상은 경찰 수뇌부일 것이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언론은 꼬리 자르기식 직위해제의 문제점에 대해선 눈을 감았다. 한국 언론은 일단 힘을 과시했다 싶으면 더 이상 진실을 추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언론의 보도태도에 유감을 나타냈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 형사과는 한씨가 잡히기 엿새 전인 5월2일 양천서 보고를 바탕으로 한씨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 제목은 ‘전직 경찰관 관련 보도예상 보고’다. 보고서는 ‘인질강도 사건 관련, 前 강남서 근무 경찰관이 미검 피의자로 도피중인 사실 보도 예상’이라는 문구로 시작된다.

    경찰청 형사과장 이동선 총경은 “5월2일 양천서에서 보고가 올라왔다”며 언론에 보도되기 훨씬 전에 한씨 관련 사건을 알고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총경은 문제의 보고서에 대해 “양천서에서 (한씨보다) 먼저 검거한 피의자를 검찰에 송치하면서 전직 경찰관이 범행에 가담한 사건이므로 (검찰을 통해) 언론에 보도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 국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든 형사과 내부 문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고의로 은폐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은폐는 아니다. 전직 경찰관이기 때문에 굳이 공개할 이유가 없었다”며 “검거 당시 (한씨가) 현직이었다면 당연히 상부에 보고했을 테지만 사표를 낸 상태라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강남서 형사과장 직위해제로 본 경찰과 언론의 관계

    6월17일 MBC는 강남 6인조 연쇄납치강도사건을 단독보도했다. ‘물 먹은’ SBS는 다음날 강남서에 대해 무차별 공세를 퍼부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강남서 간부들에 대한 문책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그는 강남서 간부들을 직위해제한 것을 “문책성 인사”라고 규정짓고는 “어떤 조직이든 사람 관리가 중요하지 않느냐. 간부로서 부하 직원이 그런 짓 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면 문제 아니냐”고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를 했다.

    그의 지적은 한씨가 범행할 당시 부임한 지 보름이 지난 강남서 서장과 직속상관이던 마약반장에게는 어느 정도 들어맞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씨의 얼굴도 못 봤던 형사과장과 형사계장한테는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다.

    서장과 마약반장의 지휘책임도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씨의 범행은 직권남용이나 불법체포 등 직무와 관련된 범죄가 아니라 개인적 범죄다. 즉 조직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자질 문제인 것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지휘책임의 범위에 대한 논란이 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경찰 간부는 “부하직원이 업무와 관련해 조직에 해를 끼치는 잘못을 저질렀다면 마땅히 상관이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그가 밤에 다른 여자와 잠자는 것까지 상관이 감독하고 책임질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게다가 한씨는 범행 직후 스스로 경찰복을 벗었고 검거 당시엔 무직이었다. 이 점에서 다음과 같은 경찰 간부의 항변을 ‘조직 이기주의’로 몰아붙일 수만은 없을 듯싶다.

    “현재 경찰이 아닌데 굳이 전직 경찰이라고 공개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만약 어떤 기자가 사표를 낸 이후 기자 시절에 저지른 범죄가 드러나 구속됐다고 치자. 그런데 경찰이 보도자료 직업란에 전직 기자라고 표기하지 않을 경우 은폐라고 난리를 칠 것인가.”

    이제 ‘비극의 씨앗’인 MBC의 6인조 연쇄 납치강도사건 단독보도 경위를 살펴보자. 이 사건은 출입처 기자들의 취재관행인 엠바고(embargo : 일정 시점까지의 보도 통제)와 풀(pool : 공동취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6월17일 오후 강남서 황운하 형사과장실에 MBC 기자가 찾아와 6인조 연쇄납치강도사건에 대해 넌지시 물었다. 황과장은 “이제 범인을 막 잡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공개하냐.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사건은 전혀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MBC 기자가 ‘탐색전’을 끝내고 돌아간 후 강남서 기자실 간사인 경향신문 기자가 찾아왔다. “MBC가 보도한다는데 오늘 (범인을) 잡을 거면 다른 기자들한테도 사건 내용을 알려달라”는 요구였다.

    이에 황과장은 김종대 형사계장을 통해 “(범인을) 잡아야지 알려줄 수 있다”며 검거할 때까지 엠바고를 요청했다. 그런데 MBC가 이를 거부했다. 자체 취재한 내용이 많다는 이유였다. 엠바고는 한 언론사라도 거부하면 성립될 수 없다. 이후 연합뉴스 기자가 찾아와 또다시 풀을 요구했지만 황과장은 “범인 검거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황과장이 풀을 거부하자 기자들은 서장실로 몰려갔다. 서장은 “형사과장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고 기자들의 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서장은 황과장에게 “‘9시 뉴스’가 끝나는 대로 기자들에게 알려 주라”고 지시했다.

    황과장은 서장실에서 기자들 대여섯 명과 함께 MBC 9시 뉴스를 지켜봤다. 6인조 연쇄납치강도사건 관련 보도는 두 꼭지였는데 예상 밖으로 매우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범행 시기와 수법, 납치 및 감금 장소 등 경찰 내부에서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파악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흥미를 끈 것은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형사 인터뷰.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변조한 형사의 멘트가 두 차례 등장했는데, 정제되지 않은 말투나 말하는 태도로 미뤄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듯 싶었다.

    “MBC에 특종 준 것 아니냐”

    황과장은 뉴스가 끝난 직후 기자들에게 사건 전모를 설명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황과장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MBC에 특종을 만들어 주기 위해 풀 요구를 거부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뉴스가 끝나고 한 시간쯤 후 범인 한 명이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간지 기자들은 MBC에는 보도되지 않은 범인 검거사실을 다음날 아침에 기사로 내보낼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MBC의 경쟁매체라고 할 수 있는 타 방송사 기자들은 황과장을 몹시 원망했다. 황과장에 대한 불만은 다음날 오전 SBS 기자들이 서장실을 방문해 시비를 벌임으로써 표면화됐다.

    그렇다면 기자들이 의심한 대로 형사과장이 MBC에 정보를 흘려준 것일까. 6인조 연쇄납치강도사건을 단독보도한 MBC 여기자는 이런 추측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분명히 말하건대 형사과장과 계장한테서는 아무것도 확인한 게 없다. 두 사람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다른 기자들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황과장은 수사정보를 함부로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이번에도 ‘답변할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밤 늦게까지 취재구역을 돌다 우연히 취득한 정보를 토대로 확인 취재를 했을 뿐이다.

    화면에 나온 경찰관은 자신의 얘기가 방송에 나가는 줄 몰랐다. 또 내가 사건 내용을 자세히 안다는 것도 몰랐다. 형사들은 이미 처리한 사건인 양 편하게 얘기했다. 범인 검거를 눈앞에 둔 시점이라 보도에 앞서 고민을 많이 했다. 각자 자신의 일을 하는 과정에 발생한 일인데 담당 경찰관들이 피해를 당해 신경이 쓰이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기자는 당시 SBS측의 강한 반발에 대해 “정보수집과 마찬가지로 취재원과의 친분도 기자의 능력이잖은가”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또 경찰 수뇌부가 MBC 보도와 관련해 형사과장과 계장을 ‘수사기밀 유출’이라며 직위해제한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SBS가 전직 형사의 납치강도사건 연루 사실을 밝혀낸 건 분명 특종이다. 하지만 6월18일 SBS 보도는 ‘보복성’으로 비쳐질 만한 몇 가지 오류를 범했다.

    SBS의 ‘보복’

    먼저 SBS는 한씨가 전직 경찰관임에도 전직이라는 표현을 전혀 쓰지 않아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또 “두 달이 넘도록 경찰이 검거사실을 숨겼다”고 보도했는데, 두 달이 아니라 40일이었다. SBS는 또 한씨가 사표를 내기 전 강남서에서 그의 범행사실을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경찰은 사건 직후 한씨로부터 사표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씨는 범행을 저지른 직후 자발적으로 사표를 냈으며, 강남서에서 한씨의 범행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사직한 지 열흘쯤 후 양천서로부터 연락을 받고서였다.

    그날 SBS가 강남서와 관련해 다룬 나머지 세 꼭지의 보도에서도 ‘의도성’을 엿볼 수 있다. 한씨가 범행 직후 경찰을 떠났음에도 그 사건이 그보다 두어 달 전에 시작된 6인조 연쇄강도납치사건의 원인이라도 되는 듯 “경찰이 이러니 떼강도들이 활개를 치는 것도 이해가 간다”고 비아냥거렸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범인을 바로바로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또 수사기법에 따라 사건을 공개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SBS는 “경찰은 쉬쉬하는 데 급급했다” “지금도 변명에 더 바쁘다” “여전히 넋을 놓고 있었다” “경찰도 믿을 수 없고 주민들의 불안이 커져가고 있다” 등의 표현으로 시청자들을 자극했다.

    모 일간지의 시경 캡은 당시 SBS 보도에 대해 “물 먹고 ‘반까이(벌충이라는 뜻의 언론계 은어)’하기 위해 무차별 공세를 편 것”이라며 “올바른 보도태도가 아니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는 그날 오후 자사의 강남서 출입기자로부터 “SBS 기자 7명이 강남서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형사들이 욕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SBS 시경 캡인 김아무개 기자는 당시 6명의 기자를 데리고 강남서에 갔던 사실을 시인했다. 하지만 “당시 강남서에 사건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보복 의혹을 부인했다.

    “우연히 다음날 (강남서가) 걸린 것뿐이다. (전날 경쟁사에 물 먹었으니) 반까이하려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판단할 일이다.”

    그는 당시 SBS 고위간부가 경찰청 수뇌부에 강남서 형사라인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다는 소문에 대해 “나는 잘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을 출입하는 한 일간지 기자는 사건 당시 경찰청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사건이 나기 전날 최기문 경찰청장은 경찰 간부들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한테 ‘강력범죄소탕 100일 작전계획’을 보고하고 격려를 받았다. 바로 그 시점에 경찰을 망신스럽게 하는 사건이 터지니 수뇌부로서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남서를 강도 높게 문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말대로라면 경찰 수뇌부의 체면 때문에 무더기 직위해제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할 만하다.

    경찰 법규에 따르면 직위해제를 하려면 다음 세 가지 사유 중 어느 하나에 해당돼야 한다. 첫째, 직무수행능력이 부족하거나 둘째, 형사사건으로 기소됐거나 셋째,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경우다. 직무수행능력 부족은 몸이 아파 도저히 직무를 수행할 수 없거나 근무실적이 현저히 나쁜 경우에 해당한다.

    직위해제 당한 강남서 간부들은 이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직위해제는 징계가 아니다. 서울경찰청의 한 간부는 “직위해제가 때로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방편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경찰청 공보과장 이연수 총경은 강남서 형사과장(또는 형사계장)의 직위해제 사유를 묻자 이렇게 답변했다.

    “수사지휘능력이 부족하고 수사보안을 유지하지 못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관내에서 납치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는데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 또 조직장악력이 부족했다. 형사들을 장악하지 못해 수사정보가 언론에 유출됐다. 또 강남서 형사들이 문제가 많지 않았나. 경찰관(한씨)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발생책임을 물었다.”

    공보과장의 답변 중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관내에서 납치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는데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는 부분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강남에서 납치강도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것은 서장과 형사과장, 형사계장이 부임하기 전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건 발생 후에 부임한 황운하 형사과장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부임 후 한 달여 만에 MBC가 단독보도한 대로 문제의 6인조 연쇄납치강도사건을 해결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경찰대 1기 출신으로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운동에 앞장서온 황과장은 지난 6년 동안 일선 경찰서 형사과장만 지내면서 수사 경력을 쌓아왔다.

    강남서의 한 출입기자는 “황과장은 연예기획사 대표 피살사건과 여대생 납치사건 등 부임하자마자 터진 큰 사건들을 성공적으로 수사했으며 부임하기 전에 발생한 6인조 연쇄납치강도사건도 깔끔히 해결했다”며 “형사과장을 오래해서 그런지 수사 마인드만큼은 최고였다”고 평가했다.

    모 경찰서 형사과장은 황과장의 직위해제 사유 중 하나인 조직 장악력 부족과 관련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출입기자라고 형사과장이 다 알고 지내는 건 아니다. 언론사에 따라 1진부터 3진까지 있다보니 개중에는 얼굴도 잘 모르는 기자도 있다. 보안유지가 필요한 사건인 경우 형사들에게 입단속을 당부하곤 한다. 그런데 기자들이 담배 피우는 장소에서 형사들과 뒤섞여 있다가 형사들끼리 말하는 것을 듣고 취재하는 것은 막을 도리가 없다.”

    이연수 공보과장은 “언론의 특종 경쟁이 직위해제 조치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언론에 강남서 관련 사건이 시끄럽게 보도되지 않았나. 언론보도에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라며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거듭된 질문에 “자세한 사정은 주무부서 책임자인 (서울경찰청) 형사과장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경찰청 형사과장 김동민 총경은 내키지 않은 듯 소관사항이 아니라며 “감찰에서 취한 조치니 그쪽에 알아보라”는 말만 했다.

    서울경찰청 감찰계장 이호준 경정은 “직위해제는 주무부서 판단을 바탕으로 윗분들이 결정한 것이다. 감찰계는 언론에 보도된 사실이 맞는지 안 맞는지를 조사했을 뿐”이라며 직위해제 결정과 감찰 결과가 관련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직위해제에 대한 감찰계의 판단을 재차 묻자 “소속 경관이 납치사건에 가담한 것에 대한 지휘책임뿐 아니라 여러 사건이 관내에서 일어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경찰의 한 간부는 “형사과장은 수사책임을 질 뿐이다. 범죄 발생 책임은 형사과장이 아니라 방범과장에게 물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모 일간지 강남서 출입기자는 “황과장은 확인해줄 것과 안 해줄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당시 MBC 특종은 황과장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MBC 기자의 증언을 뒷받침했다. 이 기자에 따르면, MBC 보도는 감금장소를 화면에 담고 다음날 2차보도에서 피해여성 인터뷰까지 한 점에 비춰 경찰 관계자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이를 두고 조직 장악력 부족이라고 직위해제한 건 전근대적 처사”라고 경찰 지휘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수사계통에 오래 근무한 한 경찰 관계자는 언론과 경찰 지휘부를 싸잡아 비판했다.

    “형사가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이 상사의 직위를 해제해야 할 만큼 중대한 과오인가. 언론에 먼저 보도된 탓에 범인 검거에 실패했다면 조직 장악력을 문제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강남서 형사과는 언론보도와 상관없이 사건을 잘 해결했다. 수사정보가 모든 언론에 넘어가면 괜찮고 특정 언론에 넘어가면 수사기밀 유출인가. 물 안 먹게 배려해달라는 언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보복을 당하고 지휘부는 또 그런 언론의 공세에 굴복하는, 이런 한심한 관행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엠바고를 거는 것은 보통 두 가지 목적에서다. 첫째는 수사상 목적이고 둘째는 취재편의를 위해서다. 엠바고는 취재과정에 생기는 혼란과 무질서를 방지하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엠바고에 대한 경찰과 언론의 시각은 약간 차이가 있다.

    모 일간지 시경 캡은 “당시 강남서에서 범인 검거를 앞두고 있었다면 형사과장이 미리 기자단에 내용을 알려주고 엠바고를 요청하는 게 순리였다. 그랬다면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개인적 의견”이라며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

    “엠바고가 설정되면 기자들 맘이 편한 게 사실이다. 적어도 물 먹을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특정 언론사가 독자적으로 취재한 내용을 경찰이 확인해주는 것을 뭐라 그럴 순 없다. 나아가 경찰이 아예 특정 매체를 선택해 기사거리를 제공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슴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론이 그것을 문제삼을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모 경찰서 형사과장은 엠바고와 풀의 문제에 대해 “어떤 기자가 독자적으로 취득한 정보를 토대로 확인 취재하는 경우는 단독보도를 인정해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경찰이 의무적으로 기자들에게 풀을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보안이 꼭 필요한 사건인 경우엔 절대 풀하지 않는다. 그런데 엠바고를 걸면 기자들과의 약속에 따라 풀을 해야 하는 책임이 생긴다. 서로 합의해놓고도 엠바고가 종종 깨지는 것은 기자들간의 과도한 경쟁 때문이다. 경찰도 취재원이다. 그런데 경찰과 언론의 관계가 잘못 설정되다 보니 다른 취재원들과는 달리 보호는 받지 못하고 의무만 강조되는 잘못된 관행이 자리잡았다.”

    경찰과 언론의 관계는 “경찰은 언론의 밥”이라는 표현으로 상징된다. 한마디로 언론이 경찰보다 힘이 세다는 얘기다. 많은 경찰관이 이에 공감한다. 특히 법조기자들과 비교해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기자들도 굳이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모 일간지 시경 캡의 얘기.

    “우선 출입기자들 연조에 차이가 난다. 연차가 얼마 되지 않은 경찰기자들의 취재방식이 상대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다. 검찰보다 경찰을 만만히 보는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 검찰 수사는 비교적 신뢰하는 반면 경찰 수사는 감시하고 의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경찰 간부들을 만나 얘기하다 보면 열이면 아홉이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 서울경찰청 공보과에서 근무했던 모 경찰서 간부는 “언론은 경찰로부터 기사거리를 얻고 경찰은 언론을 통해 홍보목적을 달성하므로 대등한 관계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표면적이 넓은 집단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그러니 수뇌부로서는 언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수뇌부가 언론에 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하니 경찰 전체가 언론에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대문서 형사들의 울분

    2000년 7월초 MBC C기자가 술을 마시고 남대문서 형사들과 싸웠던 사건은 지금도 많은 경찰관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당시 사회부 초년병이었던 MBC C기자는 술에 만취한 채 새벽 4시께 남대문서 형사계에 들어가려다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형사들과 시비가 붙어 수갑까지 차는 수모를 당했다.

    남대문서 형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C기자가 20∼30분 동안 형사들에게 욕을 하고 전화기를 집어던지고 피의자 진술용 녹음기를 빼앗는 등 행패를 부려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해 긴급체포했다는 것. 하지만 ‘언론의 힘을 과소평가했던’ 이 형사들은 서울경찰청 감찰과에서 조사를 받은 후 문책성 인사를 당했다. 다른 경찰서 파출소로 전보된 것. 이는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MBC측의 징계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3명의 형사 중 50대의 K경사는 서울대에 다니는 아들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에 ‘법 위에 군림하는 기자’라는 제목의 글을 띄워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MBC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형사들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C기자가 오히려 피해자”라고 반박했다.

    일선 경찰서 형사과장들은 수사정보 공개 여부를 두고 기자들과 자주 마찰을 빚는다. 지난 5월 모 경찰서는 이른바 A양 납치사건을 수사하며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 그런데 KBS가 낌새를 채고 형사과장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형사과장은 피해자의 사생활 보호를 내세워 KBS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 A양은 경찰에 신분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상태였다.

    다음날 KBS 아침뉴스에 이 사건이 단신으로 보도됐다. 곧 타사 출입기자들의 확인 요구가 빗발쳤지만 형사과장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이번엔 서울경찰청 측에서 “시경 캡들이 난리를 친다”며 수사내용을 공개하라고 권유했다. 형사과장은 이에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끝내 기자들은 원하던 정보를 손에 넣었다. 출처는 서울경찰청을 거쳐 수사내용을 보고받은 경찰청이었다.

    작위적인 보도도 흔한 시비거리다. 시위진압 중대장을 맡았던 경찰의 한 간부는 “갈등구조를 즐기는 언론의 짜맞추기식 보도 때문에 곤욕을 치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한총련 집회나 촛불시위 등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시위가 예정돼 있을 경우 언론은 전날 보도에서 ‘경찰 강경대응 방침’ ‘대규모 충돌 예상’ 따위의 표현을 써가며 긴장감을 조성해 양측의 갈등을 조장한다. 그러고는 시위 당일 경찰에 ‘원천봉쇄 안 하냐’며 은근히 ‘강경 진압’을 주문한다. 전날의 예상보도가 맞아떨어져야 하는 데다 대규모 충돌이 발생해야 기사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초에 있었던 MBC의 순찰지구대 비판 보도도 논란을 일으켰다. 순찰지구대는 파출소 몇 개를 통합해 운영함으로써 기존 파출소 체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방범체제다. MBC는 6월2일 밤 9시뉴스를 통해 순찰지구대를 신랄히 비판했다. 화면에는 순찰지구대 소속 경찰관이 폭력사건 현장인 나이트클럽을 황급히 빠져나와 도망가는 듯한 모습이 비쳐졌다. 이 화면은 나이트클럽 폐쇄회로에 녹화된 동영상이었다. 그런데 확인 결과 이 동영상은 고속으로 저장된 것으로 화면 속 움직임은 실제보다 빠른 것이었다. 순찰지구대를 비판하기 위해 그에 맞는 ‘그림’을 만들어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일선 경찰서의 한 간부는 “전후사정에 비춰 SBS 뉴스의 강남서 관련 보도는 명백한 보복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보복성 보도’ 시비는 언론에 대한 경찰의 피해의식을 심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다.

    모 경찰서 형사과장은 몇 년 전 형사계장으로 근무할 때 이런 일을 겪었다. 어느날 모 신문사 기자의 친척이 도난발생 신고를 했다. 경찰은 현장감식을 하는 등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범인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자 그 기자는 얼마 후 ‘구멍 뚫린 치안’이라는 제목으로 이 경찰서를 공격하는 기사를 썼다. 형사과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 기자는 자기 친척이 도난당했던 지역을 샅샅이 훑었다.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취재를 해 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 중 범인이 잡히지 않은 사건을 기사화했다. 그 중엔 경찰서에 신고되지 않은 사건도 포함돼 있었다. 경찰이 신고되지도 않은 사건까지 어떻게 책임지나. 그런 식으로 문제를 삼으면 어느 경찰서가 자유로울 수 있겠나.”

    “강남에만 범죄가 있나”

    2000년 7월말에 있었던 남대문서 여경과 경향신문 여기자와의 충돌도 기억할 만한 사건이다. 7월27일 오전 남대문서 정보과 D경장은 시위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전화를 걸어온 경향신문 J기자와 통화하다 심한 말다툼을 벌였다.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는 말투가 발단이었다. D경장에 따르면 여기자가 하대 말투를 쓰며 무례하게 굴었고, J기자에 따르면 여경이 퉁명스레 대하면서 취재에 협조하지 않는 등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

    어쨌든 수모를 당한 것은 경찰 쪽이었다. 여기자와 통화를 끝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D경장은 경향신문 시경 캡의 항의를 받은 상사들한테 시달려야 했다. 상사들은 D경장을 크게 나무라고 “기자에게 사과하라”고 종용했다.

    잘못한 게 없다고 버티던 D경장은 상사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날 밤 경향신문사를 방문, 굴욕감 속에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 사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틀 후 경향신문에는 ‘현장클릭 입 험한 여경’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물론 J기자가 쓴 것으로 D경장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D경장은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 정정보도를 신청했다. 하지만 상부의 압력으로 중재위 결정이 내려지기 직전 소를 취하하고 말았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언론의 합리적 비판을 강조했다.

    “언론이 경찰을 견제하는 건 당연하다. 경찰 비리를 밝히면 양식 있는 경찰관들은 고마워한다. 다만 비판을 하되 합리적인 비판을 해야 한다. 6월에 있었던 MBC의 순찰지구대 관련 보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통합순찰의 긍정적인 측면은 외면하고 사소한 부분을 갖고 비난하기에 급급했다.

    반면 ‘강력범죄소탕 100일 작전계획’ 같은 전시성 이벤트는 언론이 마땅히 비판해야 한다. 그런데 경찰 상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오히려 띄워줬다. 강남서 사건 이후 강남 지역에 경찰 병력이 추가 배치된 것도 문제다. 강남에만 범죄가 있나. 부자들 사는 동네는 더 보호를 해줘야 하는가. 언론은 왜 이런 문제점에 대해선 눈을 감는가.”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사건은 어디서나 일어나고 범죄는 어디서나 발생한다. 다만 언론이 무엇을 선택해 보도하느냐에 따라 사건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시각으로 보도하느냐에 따라 진실이 바뀐다. 강남서 황운하 형사과장의 직위해제는 언론의 무분별한 공세와 경찰 수뇌부의 비겁함이 빚은 합작품으로 경찰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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