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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지르포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주경로 답사기

“12개 도시의 여관, 빈민촌 전전했지만 임정은 성공한 정부”

  • 글: 조창완 중국 전문 프리랜서 chogaci@hitel.net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주경로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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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충칭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주경로 답사기

상하이 와이탄

이렇게 항상 위협에 시달리던 임정에 순차적으로 여러 인물이 찾아온다. 1932년 1월8일 일본 천왕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 열사나 나석주 등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윤봉길 의사도 찾아왔다. 훙커우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던 윤의사는 안전을 위해 싱예로 169번지 싱룬(興倫)다원에서 임정 인사들을 만나 의거를 논의했다. 싱룬다원은 지금은 재개발을 마친 고급 소비상가 ‘신톈디(新天地)’를 마주보는 곳으로 최근 재개발 공사가 진행되어 옛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신톈디’엔 서양식 레스토랑과 고급 상가가 즐비하다. 이곳은 중국 공산당 1차회의가 열렸던 곳과도 마주보고 있다. 백 년도 지나지 않은 사이 ‘중국 공산당의 성지’에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최고급 소비거리가 형성됐다는 점은 보는 이에게 묘한 감회를 느끼게 한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1932년 4월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벌어졌다. 1951년 중국 근대 사상가 루쉰(魯迅)을 기념하기 위해 루쉰공원으로 개명된 이곳은 “중국인과 개는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는 곳이다. 1922년에 만들어져 1928년부터 중국인들에게 개방됐다는 기록이 있어 중국인의 출입금지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윤봉길 의사는 지금 루쉰묘와 동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널따란 잔디밭에서 폭탄을 던졌다. 이날 그곳에서 천황 생일기념 축하식을 갖고 있던 상해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白川), 상하이 일본인 민단장 가와바타(河端) 등 군과 민의 상하이 총책임자를 죽이고, 시게미쓰(重光) 대사, 우에다(植田) 중장, 노무라(野村) 중장 등 상하이에 있는 일본 주요인물에게 큰 부상을 입혔다.

이 의거를 정리하면서 김구 선생은 ‘만보산 사건’으로 촉발된 한중간의 감정싸움이 거의 불식되고, 미국에서 활동하던 한인들에게 임시정부의 존재와 가치를 제고시켜 이후에 후원이 느는 등 임시정부 활동 강화의 초석이 됐다고 평가했다.



윤의사의 의거는 중국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중국 정부도 윤의사를 기념하기 위해 공원의 북쪽에 정원인 매원(梅園)과 기념정자인 매정(梅亭)을 만들었다.

윤의사의 의거로 당시 상하이에서의 임시정부 활동은 큰 제약을 받았다. 우선 조계지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이 벌어지는 등 일본의 압박이 거세졌다. 일본은 의거 이후 임정 요인에 대해 처음에는 20만위안의 현상금을 걸었다가 얼마 후 일본 외무성, 조선총독부, 상하이주둔군 사령부 합작으로 60만위안의 현상금을 걸었다. 당시 노동자의 일당이 1위안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다행인 것은 중국 난징(南京) 정부가 윤의사 의거 이후 “김구가 온다면 비행기라도 보내마”(‘백범일지’ 중에서)라고 할 정도로 한국 임시정부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사건 이후 임정측은 20일 정도 미국인 피치의 집에서 은신하다가 기차를 타고 자싱으로 이주했다. 지금 상하이에서 자싱까지는 기차로 1시간 반 남짓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다.

자싱의 임정 유적 곧 헐릴 판

자싱은 도시 전체에 물이 풍부한 전형적인 강남의 도시로 항저우(杭州)와 ‘한국 타이어’가 공장을 건설한 곳이기도 하다. 자싱은 명인의 고장으로도 유명한데, 중국 현대의 문인 마오둔(茅盾), 쉬즈머(徐志摩)를 비롯해 선댜오루(沈釣儒), 왕궈웨이(王國維)를 포함해 무협작가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진융(金庸)을 배출했다. 도시 전체로 수로가 나 있고, 강남식 정원의 품격이 살아 있는 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도 많다. 이 도시에서 휴식을 취하다 보면 왜 많은 문인이 태어났는지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그런 낭만을 느낄 새도 없이 경제공황으로 인해 폐쇄된 면사공장인 수륜사창(秀綸沙廠)에 은신했다. 1932년 이곳에서 시작된 김구 선생의 자싱 생활은 1936년까지 비교적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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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창완 중국 전문 프리랜서 chogaci@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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