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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부 인프라 혁신해 ‘중진국 함정’ 넘어라

정덕구 전 산자부 장관의 ‘2만달러 시대’를 위한 긴급 제언

  • 글: 정덕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전 산업자원부 장관 duke@snu.ac.kr

정부 인프라 혁신해 ‘중진국 함정’ 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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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인당 국민소득을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올리는 데 싱가포르는 5년, 호주는 16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한국은?
  • 수많은 나라들이 2만달러 문턱에서 마(魔)의 분수령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2차 세계대전 후 고소득 국가대열에 진입한 중진국은 일부 도시국가와 산유국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정부 인프라 혁신해 ‘중진국 함정’ 넘어라
노무현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이루기 위해 국가 역량을 결집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그간 혼란과 갈등을 빚어왔던 경제·사회 발전방향과 정책 우선순위를 명확히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구상이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지만, 이를 계기로 흐트러진 국론을 통합, 힘과 기(氣)가 빠져나가 무기력 현상을 보이고 있는 우리 경제를 일신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넘는 나라는 G7 등 강대국, 유럽의 소규모 개방경제국가, 그리고 산유국 등 자원부국들로서 2002년 말 기준으로 22개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선진국다운 경쟁력과 삶의 질, 안정, 그리고 높은 복지수준을 향유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는 어느 정도로 높은 소득일까.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가 되려면 4인 가족 한 가구당 연간 5000만원을 벌어야 하는 데 비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되려면 가구당 1억원을 벌어야 한다. 국가 전체로는 1조달러 규모의 GDP를 창출한다는 의미다. 단순한 산술이지만 그 내용은 매우 복잡하다. 그러려면 임금을 배로 올려야 할까? 부부가 같이 버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부부가 같이 벌려면 일자리가 두 배로 늘어야 되지 않을까? 일자리를 늘리려면 어떤 산업을 키워야 할 것인가. 환율이 1달러당 1000원 밑으로 내려가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 쉽게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10·5·3·2·1’ 가설]

연구기관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앞으로 10년 내에 2만달러 소득 시대를 맞으려면 매년 10%의 수출 증가율, 5%의 실질 경제성장률, 3%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2%의 환율절상, 그리고 1% 수준의 인구 증가율을 유지해야 한다. 이른바 ‘10·5·3·2·1’ 가설이다.

1인당 국민소득을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늘리는 데에 짧게는 5년이 걸린 나라(싱가포르, 이탈리아)도 있고, 길게는 무려 16년이 걸린 나라(호주)도 있다. 싱가포르에선 성장률과 환율의 기여도가 높았던 데 비해 이탈리아는 물가와 환율의 기여도가 높았고, 일본은 환율의 기여도(61%)가 유난히 높았다. 인구가 밀집된 한국의 경우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매우 중요하며, 아울러 국가경쟁력과 무역수지의 균형 내지 흑자를 반영하는 수준으로 환율이 완만하게 하락, 달러표시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 하겠다. 따라서 한국이 추구해야 할 모델은 성장률이 55%, 환율이 29% 기여했던 싱가포르 모델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의 고소득 국가 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은 1995년 1인당 1만달러 소득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마이너스 성장과 환율 상승으로 인해 6000달러대로 추락한 바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만달러 소득 국가로 복귀했지만, 중진국 대열에서 선진국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데 따르는 수많은 장애와 마(魔)의 분수령을 통과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시각이 공존한다. 선발 중진국을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초시키는 마의 분수령은 대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첫째, 개도국은 국민소득 증가 등에 따른 욕구체계의 변화와 이로 인한 갈등구조를 효율적으로 관리,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일부 중남미 국가들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사례를 들어 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노사·빈부·지역갈등 등을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고서는 선진국에 진입하기 힘들 것이다.

둘째, 고도성장 과정에서 팽창적 경제정책에 익숙한 중진국은 그로 인해 잉태되는 위험 요소를 쉽게 간과한다. 그래서 자주 외환위기에 직면한다. 우리나라도 외환위기를 맞으며 1만달러에서 무너졌다. 앞으로도 위기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제2, 제3의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잠재해 있는 형편이다.

셋째, 개도국 정치의 후진성을 들 수 있다. 이 경우 정치가 국민의 생각과 국론을 하나로 묶는 끈 노릇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치 제도나 관행의 선진화가 시급하다.

넷째, 지속적인 성장엔진 창출과 기술진보에 실패하여 경쟁국가들과 경합적 위치에 머물게 됨으로써 성장여력을 상실, 외부 여건이 크게 악화될 때 경제가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개도국이 선진국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 좌절하고 마는 것은 그들 앞에 다가오는 이같은 고비들에 부딪혀 결국 마의 분수령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부 도시국가와 산유국을 제외하면 중진국에서 선진 고소득 국가 대열에 진입한 나라가 거의 없음을 들어 ‘중진국 함정’에 의한 태생적 한계론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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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덕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전 산업자원부 장관 duk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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