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조풍언, 조세피난처 라이베리아 통해 거액 관리중

무기중개상 조풍언 소유 스몰록 인베스트먼트 주주명단·주식보유현황·KMC 등기부등본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3-09-25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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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정권의 숨은 실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자금관리인으로 알려진 무기중개상 조풍언씨. 국내 언론의 집요한 추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특히 그의 재력과 재산축적 과정은 김대중 정권이 막을 내린 지 7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조씨 소유로 알려진 홍콩의 페이퍼컴퍼니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와 ‘KMC’. 이들 회사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조풍언, 조세피난처 라이베리아 통해 거액 관리중
    ‘스몰록 인베스트먼트(Small rock Investment LTD information)’는 조풍언씨가 국내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홍콩에 세운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2001년 3월2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 소재 삼일빌딩을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502억원에 매입, 정치권 등으로부터 특혜시비를 불러 일으키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삼일빌딩이 2000년 5월부터 모두 네 차례 공개경쟁 입찰에서 유찰된 후 결국 수의계약을 통해 매매가 이뤄졌다는 점과 거래액수가 2000년 4월 한국감정원의 감정평가액 563억원보다 61억원이나 적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이는 정황상 추론에 불과하다.

    스몰록 40만주 매입자 ‘천’은 한국인?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점은 따로 있다. 조씨가 왜 홍콩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건물을 매입했고,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이동시켜 왔는가 하는 점이다. 이처럼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접근이 이뤄지지 못했던 것은 이 회사에 대한 정보의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동안 스몰록 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에 대해 확인된 것이라고는 삼일빌딩 등기부등본 상에 기재된 주소지뿐이다.



    ‘홍콩 완차이 퀸스로드 이스트 145 헹샨센터 23층’. 이곳에는 ‘LOUSICH, LAU & NGAN’이라는 사무변호사(solicitor) 사무실이 있다. 사무변호사는 영국이나 캐나다에서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하급변호사로 법적인 문서를 만들고 법률적 조언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영국령이었던 홍콩도 같은 제도를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의 회계서류를 대신 처리해주거나 법률적 보증인 역할을 해주는 등, 우리나라로 치면 변호사나 법무사보다는 공인회계사에 더 가까운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사무변호사 사무실에서 조씨의 의뢰를 받아 스몰록 인베스트먼트를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에 대해서는 이밖에 더 이상 어떤 내용이나 정보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신동아’는 스몰록 인베스트먼트라는 회사의 실체를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입수했다. 이 회사의 자본금과 주요 주주명단, 그리고 주주들의 주식변동 현황 등을 담은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의 자본금은 미화 100만달러. 한화로 12억여 원이나 된다. 자본금 1달러짜리 페이퍼컴퍼니가 흔한 마당에 자본금이 이처럼 큰 것은 다소 의외다.

    홍콩의 한 기업인은 “홍콩에서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하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이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이용한다. 하지만 이처럼 자본금이 큰 페이퍼컴퍼니는 보지 못했다”면서 “100만달러에 달하는 적지 않은 자금을 자본금으로 묶어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 이 회사는 100만주의 주식을 발행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1주당 가격이 1달러인 셈이다. 그런데 주요 주주와 이들의 주식 보유현황이 흥미롭다.

    2002년 5월21일 이전까지 등기부상 주주는 미국 캘리포니아 거주 미국인 ‘마르코스 린 해롤드(Marcus, Lyn-Harold)’와 라이베리아 국적의 페이퍼컴퍼니 ‘오벨리스크(Obelisk Ltd)’다. 주식 보유현황을 보면 마르코스가 거의 전부인 99만9999주를 보유했고 회사 오벨리스크의 보유주식은 단 1주(1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5월21일자로 주식이동과 함께 주요주주가 변경됐다. 마르코스 소유의 주식 중 39만9999주와 오벨리스크 주식 1주 등 모두 40만주를 홍콩 거주자인 ‘천챙우(Chun, Cheng-Wo)’라는 사람이 매입한 것. 홍콩 현지 관계자들은 천챙우로 발음되는 이 주주가 영문표기 방법상 한국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등록과정에서 가운데 ‘챙-Cheng’자의 알파벳 일부가 잘못 기재됐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마르코스에게 남은 주식은 60만주. 이에 따라 현재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의 이사는 마르코스와 천챙우 두 사람으로 등재돼 있다.

    조풍언, 조세피난처 라이베리아 통해 거액 관리중
    홍콩 현지 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사실관계에 기초해 새로운 자금흐름의 흔적과 몇 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들은 조씨가 2002년 5월까지 마르코스라는 차명으로 회사를 관리하면서 홍콩을 거쳐 라이베리아에 소재한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 오벨리스크로 상당액의 자금을 빼돌렸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다. 먼저 오벨리스크가 단 1주의 주식을 보유했지만 주주라는 특수관계인이기 때문에 스몰록 인베스트먼트로 들어오는 자금을 차입할 수 있다는 것.

    삼일빌딩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2001년 8월7일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스몰록 인베스트먼트로 소유권이 넘어온 당일부터 1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5건의 근저당권과 3건의 전세권이 삼일빌딩의 건물과 토지에 설정됐다.

    소유권 이전 당일인 8월7일, 한국산업은행은 종로지점을 입주시키면서 전세금 100억원에 대한 근저당권을 채권최고액 120억원에 설정했다. 이어 8월23일 제이월터톰슨코리아주식회사 전세권 6억6000여 만원, 8월31일 외환신용카드 근저당권(채권최고액 기준) 213억8000여 만원, 9월8일 고려산업개발 전세권 9억2600여 만원, 11월9일 삼성생명 근저당권 2억6700여 만원, 2002년 1월24일 외환신용카드 근저당권 26억7300여 만원, 2월28일 조선해운 전세권 23억2700여 만원, 3월4일 외환신용카드 근저당권 11억4900여 만원, 5월10일 외환신용카드 근저당권 15억2300여 만원 등이 설정됐다. 거의 한달 간격으로 근저당권 및 전세권이 설정된 셈이다.

    채권최고액을 기준으로 삼일빌딩에 설정된 근저당 총액수는 400억원에 이르고 있다. 근저당권자들이 한국산업은행의 경우처럼 채권최고액을 120%로 설정했다고 감안하면 330억원 정도의 현금이 스몰록 인베스트먼트로 건너간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3건의 전세금 40억원을 합하면 370억원에 이른다.

    또 대우정보시스템은 전세권을 설정하지 않은 채 2002년 한해 연간 임차료 38억50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공시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2001년과 2003년 월세분을 합하면 50억원 이상의 임차료를 건물주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에 지급했을 것이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여기까지만 합해도 건물을 통해 건물주에게 흘러간 자금은 420억원에 달한다. 중소규모 기업들의 임대료까지 합하면 건물매입원가 502억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이미 회수된 것으로 추산된다.

    바로 이 회수자금이 앞으로 있을지 모를 사정기관의 자금추적을 피해, 아니면 또 다른 이유에서 차입형태로 라이베리아의 페이퍼컴퍼니로 건너간 뒤 제2, 제3의 계좌로 송금됐을 수도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주식이동은 자금거래 흔적

    우연의 일치일까. 2002년 5월21일 오벨리스크 주식 1주가 천챙우에게 넘어간 이후 삼일빌딩에는 단 한 건의 근저당권이나 전세권도 설정되지 않았다. 반면 황보건설은 시설물 보수공사비 3억1000여 만원을 1년째 받지 못하자 2003년 6월27일 소송을 통해 삼일빌딩을 가압류해놓은 상태다.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오벨리스크가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의 신용보증을 담보로 라이베리아나 홍콩 또는 다른 국가의 금융기관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빌리는 것. 오벨리스크가 주식 1주를 보유해 특수관계인이 된 것과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의 자본금이 페이퍼컴퍼니치고는 과다한 100만 달러에 이르는 것 등이 바로 오벨리스크에 대한 신용보증을 서주기 위한 사전조치일 것이라는 게 일부 전문가의 판단 근거다.

    한편 홍콩 업계 관계자들은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의 주식이동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건물의 실소유주인 조씨가 회사 또는 삼일빌딩을 놓고 누군가와 자금거래를 하지 않은 이상 굳이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한 회사의 주식이동은 불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씨는 왜 홍콩과 라이베리아를 선택한 것일까.

    세계적으로 조세피난처는 크게 4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전형적인 Tax Haven 지역인 ‘세금낙원(Tax Paradise)’과 ‘제세피난처(Low-tax-Havens)’ ‘세금휴양소(Tax Resort)’ 그리고 ‘세금피난처(Tax Shelters)’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홍콩과 라이베리아는 네 번째 세금피난처에 속하는데, 이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상과세를 부과하지만 국외소득에 대해서만큼은 비과세다.

    홍콩에 소재한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의 경우 국내의 삼일빌딩을 매입해 벌어들인 이득은 사실상 국외소득인 만큼 과세대상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조씨는 수백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얻더라도, 그가 부담해야 할 세금은 ‘0원’이다. 라이베리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자금세탁 조직들이 라이베리아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9·11테러 이후 테러자금과 마약거래대금 등 불법자금의 유통을 저지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대해서도 차명과 익명거래를 금지시켰다. 또 과세정보를 교환하고 특정인의 금융거래 내역도 상황에 따라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자금세탁은 불가능해진다. OECD는 2002년 4월 전세계 35개 조세피난처 지역과 국가들 가운데 이를 거부한 7개국을 ‘비협조적’ 조세피난처로 지정하고 고강도 제재조치를 취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라이베리아가 바로 문제의 ‘비협조적’ 조세피난처 7개국 가운데 하나인 것. 한 조세전문가는 “조씨가 자금추적을 피하는데 가장 적합한 지역으로 라이베리아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조씨는 지난 연말 삼일빌딩을 급매물로 내놨다가 적당한 매수자를 찾지 못해 최근 매각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가 제시한 가격은 800억원대.

    당시 건물을 인수하기 위해 조씨와 협상을 타진했던 한 기업인은 “작년 대선을 앞둔 10~11월경에 (조풍언씨가) 급매하기 위해 여러 군데를 알아보다가 나한테까지 연락이 왔었다”며 “그때 제시한 가격인 800억원 정도였는데 청계천 복구공사가 시작되면서 가격이 더 오를 거라고 생각했는지 지금은 팔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대우정보시스템 최대주주 KMC

    조씨 소유로 알려진 또 다른 홍콩의 페이퍼컴퍼니는 대우정보시스템의 최대주주인 ‘KMC(KMC International Limited)’다. 이 회사를 관리하고 있는 곳도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와 마찬가지로 ‘홍콩 완차이 퀸스로드 이스트 145 헹샨센터 23층 LOUSICH, LAU & NGAN’ 사무변호사 사무실이다.

    KMC는 2003년 5월 현재 대우정보시스템 총 주식 385만4000주의 45.3%에 해당하는 174만7450주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는 이 주식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은닉재산으로 판단하고, 2001년 9월29일자로 가압류 조치를 해놓은 상태다.

    지난 2001년 11월 예보가 발표한 김 전 회장의 은닉재산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1999년 6월 런던의 대우그룹 비밀자금계좌인 BFC에서 인출한 4430만달러 중 일부로 홍콩 KMC를 통해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의 71.59%인 258만주(주당 1만885원)를 281억원에 매입했다가 8개월 만에 95만주(주당 3만5407원)를 처분, 291억원을 다시 홍콩으로 반출했다고 한다. 예보는 이에 따라 KMC가 소유하고 있는 나머지 163만주도 김 전 회장의 재산으로 보고 가압류 조치를 해놓은 것이다.

    그러나 KMC측은 예보측의 발표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양측은 법정 소송중이다.

    KMC 이사는 라이베리아 국적 회사

    이처럼 복잡한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또 다른 목적과 이유가 있는 것일까. ‘신동아’가 입수한 KMC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한때 주요 임원으로 등재돼 있었다고 알려진 조풍언씨의 이름은 없다. 등기부등본은 2002년 5월30일자로 작성된 것이다. 홍콩 현지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홍콩은 1년에 한번씩 등기부등본을 변경 신고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회사의 임원 중 이사로 등재돼 있는 이름이다. 사람 이름 대신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로 보이는 ‘Helmsman Limited’와 ‘Nutdene Limited’로 기록돼 있는 것. 특히 이들의 주소지는 ‘라이베리아 몬로비아 80번가(80 Broad Street, Monrovia, Liberia)’로 돼 있다. 몬로비아는 라이베리아의 수도다.

    결국 KMC도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와 마찬가지로 라이베리아의 ‘정체불명’의 페이퍼컴퍼니와 연계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등기부등본상 KMC의 자본금은 1만 홍콩달러로 한화 15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다만 회사 차입금을 포함한 총자산은 1941만8500 홍콩달러(250만 US달러)로 기록돼 있다. 한화로 치면 30억원 정도다.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가격은 지난해 8월 이후 하락세를 계속해 현재 1주당 4550원. 이를 감안하더라도 KMC 보유주식 174만7450주의 가격은 80억원선이다. 자산보다 많은 주식,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KMC는 올해 3월 국내 시스템 통합업체인 (주)모디아(대표이사 김도현)와 주식양수도에 관한 양해각서까지 체결했다가 협상과정에서 매각에 실패했다. 모디아 한 관계자는 “협상과정에서 가격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협상이 결렬됐다”면서 “그 과정에서 KMC의 실질적인 소유자가 조풍언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미스터리의 인물 조풍언. 철저히 자신을 감춘 채 홍콩과 라이베리아 등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자산을 관리하고 매각을 시도하는 그의 진면목이 완전히 드러나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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