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6자회담 이후 한반도, 어디로 가나

한국도 北 압박 ‘레드라인’ 가져야 한다

  • 입력2003-09-25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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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자회담 이후 한반도, 어디로 가나

    왼쪽부터 윤덕민 교수, 문정인 교수, 신지호 박사

    사회 8월말 베이징 6자회담이 열린 후 이 회담에 대한 평가가 나라별로, 혹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리게 나왔습니다. 회담 직후 미국 일각에선 북한이 또다시 핵위협을 가했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놨는가 하면,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회담에 임한 미국의 자세에 변화가 없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은 6자회담에 대한 모든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국의 기존 입장에도 크게 좌우되는 듯합니다. 다시 말해 북한의 입장을 좀더 이해하는 쪽이냐, 아니면 북한에 부정적인 쪽이냐에 따라 현재의 판세를 읽는 해석법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좌담은 선입견(preconception)을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6자회담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얘기하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문정인 이건 사소한 부분이지만 북한이 6자회담에 반발한 이유 중 하나는 회담 대표에 관한 문제였어요. 회담장에는 각국 대표가 3명씩 앉게 되어 있는데 미국에선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와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 그리고 주중 미국대사가 앉았습니다. 원래 한반도담당 특별대사였던 잭 프리처드의 자리에 국방부 인사가 대신 앉은 겁니다. 게다가 후방석에도 합참에서 나온 군인이 정복을 입고 앉았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에선 외교협상에 왜 군인이 나왔느냐, 우리를 겁주려는 것 아니냐, 이런 거부감이 컸다고 해요.

    윤덕민 그러나 지난해 10월 제임스 켈리가 평양에 갔을 때, 둘째 날에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이 군인을 데리고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첫째 날엔 김계관 부부장과 만났고, 둘째 날에 강석주 부부장이 나와서 우라늄 핵개발 계획을 처음 밝혔는데, 그때 군인이 옆에 배석했어요. 그렇게 보면 이번엔 미국이 북한의 위협에 대한 사전 대응으로 군인을 배석시킨 것으로 봐야 하나요?(웃음)

    문정인 한국도 이번 회담 대표단에 현역 대령이 한 명 포함돼 있었지만 사복을 입고 후방석에 앉혔어요. 중국 러시아 일본 모두 이런 부분에 신경을 썼는데, 유독 미국만 국방부 인사를 전진 배치시켰다는 겁니다. 이건 도발적인 행동이 아니냐, 북한에선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결국 미국이 북핵 문제를 안보 사안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해요. 물론 북핵문제는 다른 나라들에게도 안보사안이지만 어디까지나 외교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었죠. 그런 차이가 대표단 구성에서부터 드러난 것입니다.

    국방부가 전진배치된 美 대표단



    사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다시 말하지만 가급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번 6자회담을 평가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지요.

    문정인 6자회담은 당면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길게 보면 동북아 다자협력이라는 틀 안에서 공동안보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유럽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동북아에서도 우선 여섯 나라가 합의한 공동의 안보현안이 있고, 이것을 협력을 통해 통제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물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나폴레옹전쟁 이후 유럽에 형성됐던 ‘컨설트 오브 파워(consult of powers)’, 즉 강대국 협의체라는 개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주변 4강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남북한이 주가 되고 주변 4강이 중재 역할을 하는 구도라면 그런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이번 6자회담은 북미가 주가 되고 한국과 중·일·러가 나머지 4가 되는 구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북한이 핵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에 모든 참가국들이 동의했고 사실상 북한도 여기에 동의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4월의 3자회담에 비해 진전된 내용은 없었고, 북미간 입장 변화도 없었지만 후속 회담에 합의한 것은 긍정적인 면입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6자회담은 실패도 성공도 아닌 일종의 탐색전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윤덕민 아무래도 이번엔 첫 회담이었기 때문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다 있었던 것 같아요.

    먼저 나쁜 소식은 앞서 문교수께서도 지적했다시피 3자회담 때와 비교해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예의 벼랑끝 전술에 따라 북한은 미국과의 양자접촉 때 핵실험도 할 수 있고 핵선언도 할 수 있다고 위협을 했습니다. 회담 뒤에도 북한은 ‘이런 협상은 백해무익했다’는 식으로 줄곧 얘기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지적할 점은 북한 대표가 김영일 외교부 부부장이라는 점입니다. 이 사람은 아시아통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부부장 중 상대적으로 낮은 서열입니다. 강석주나 김계관처럼 풍부한 협상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만큼 정치적 재량권을 발휘하기가 힘든 인물이기 때문에 결국 중앙의 지령에 따르는 역할밖에 할 수 없지 않느냐, 그런 점에서도 북한이 6자회담에 임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게 아닌가 보여집니다.

    세 번째로는 문교수께서도 이미 지적했지만 접점이 없었다는 점, 즉 북미 양쪽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2차 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면서도 북한이 아직 그 점에 대해 확약한 것이 아니므로 여전히 대화의 모멘텀이 생긴 것은 아니라는 건 나쁜 소식들입니다.

    좋은 소식 중 첫 번째는 역시 6자회담 자체가 열렸다는 사실입니다. 북한이 지금까지 반대해온 다자회담이 열렸다는 건 대립 국면에서 협상 국면으로 전환됐다고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 언론에서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부분인데, 미국의 입장이 상당히 유연해졌다는 점입니다. 즉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핵시설을 폐기할 때까지는 진지한 논의를 할 수 없고 인센티브도 줄 수 없다는 게 그동안 미국의 기본 입장이었는데 이번 회담에서는 논의도 할 수 있고 폐기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북한에 어느 정도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건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세 번째로는 중국의 달라진 태도를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년 전에는 중국이라는 존재 자체가 희미했었는데 이제는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예요. 중국 외교관들이 워싱턴 도쿄 모스크바 서울을 무대로 셔틀외교를 전개했고, 아주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6자회담의 전망을 밝게 볼 수 있는 요소입니다.

    신지호 이번 회담이 성공이냐 실패냐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가 봤을 때, 차기 회담에 합의하면 나름대로 성과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던 것 같아요. 이 점에서 보면 앞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분명히 얘기하기가 곤란한 게 아닌가, 그러니까 마지막 날 북한 대표단이 베이징 공항에서 발표한 성명만 없었더라도 대체로 성과가 있었다는 분위기가 됐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한국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내심 기대했던 것보다는 진도가 조금 덜 나간 것 아닌가, 다시 말해 기대에 비해 결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는 거지요. 6자회담이 사실상 상견례이고 탐색전인데 우리 정부가 과도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역할과 관련해 또 하나 짚을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공동합의문을 내는 것을 놓고 북한만 반대하고 나머지 5개국은 찬성했다고 합니다. 결국 공동합의문은 북한 반대로 무산됐지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참가국들이 보인 입장 차이를 살펴보면 저는 기본적으로 2 : 3 : 1 구조였다고 봐요. 2는 미·일, 3은 한·중·러, 나머지 1이 북한이라는 건데, 이런 구도가 과연 우리 입장에서 바람직한 구도인지에 대해서는 토론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효과 낸 북미 양자접촉

    문정인 한국은 기본적으로 미국 일본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8월 중순 우리측 회담 대표인 이수혁 차관보가 워싱턴에 갔을 때 미국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신호를 받았다고 해요. 당시 파월 국무장관은 “북한이 원하는 불가침조약은 어렵지만 미 의회의 결의 형식으로 불가침을 담보해줄 수 있다”고 했는데, 이건 지난 4월 베이징 3자회담에서 북한이 내놓은 ‘대담한 제안’에서 “반드시 불가침조약은 아니더라도 불가침을 보장하는 문서라도 좋다”고 한 데 대한 답변이었거든요.

    이런 메시지에 대해 우리 정부가 꽤 흥분해서 베이징 6자회담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8월19일인가 20일에 열린 미국의 안보회의에서 갑자기 기조가 바뀌게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6자회담 기조연설에서 켈리가 내놓은 말이 달라졌다는 것이죠. 이건 미국측 인사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6자회담 때 북미간에 양자접촉이 있었잖아요. 거기서 모종의 돌파구가 나올 거라고 기대했는데 완전히 평행선을 그어버리는 바람에 일이 더 꼬이게 된 측면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북한은 첫째 미국이 안보 위협을 어떻게 해소해줄 것인지, 둘째 북한이 핵을 폐기했을 때 미국의 후속조치는 무엇인지, 셋째 미국이 미사일이나 인권 등 다른 문제들을 들고 나올 것인지, 마지막으로 동시타결에 대한 미국의 의향을 타진했을 것인데, 결국 북한은 미국의 입장이 4월 3자회담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발견합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은 있지도 않다고 우겼고, 다음으로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 나아가 3자회담에서도 하지 않았던 ‘핵 억지’라는 용어까지 쓰게 된 겁니다. 6자회담에서 일이 잘되게 하려고 마련한 북미 양자접촉으로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진 거지요.

    결국 미국의 기본 입장은 ‘선(先) 해체 후(後) 지원 및 관계정상화’니까 순차적 접근을 주장했던 것이고, 북한은 동시 타결을, 양쪽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은 ‘병행’이라는 용어를 들고 나왔던 겁니다.

    이렇게 보면 미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왜 8월 전반부에는 낙관적인 태도로 나왔다가 안보회의 뒤에 바뀌었느냐, 미국이 6자회담에서 북한의 안보 우려에 대해 분명한 입장 표명을 했더라면 돌파구를 만들 수도 있었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동시’, 미국은 ‘순차’, 한국은 ‘병행’이라는 해법을 내놓고 있는데,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면 타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신지호 그런데 미국은 순차적 접근방식이고 북한은 동시타결 방식이라고 하지만, 북한이 내놓은 4단계 해결방안을 보면 사실상 자기들 입맛에 맞는 순차적 해결방식이거든요. 미국이 중유 공급을 재개하고 인도주의적인 식량지원을 하면 핵포기 선언을 하겠다, 핵 폐기는 맨 마지막 단계에서 하겠다는 말이거든요.

    미국이 4월 3자회담 때와 비교해 바뀐 게 없었다고 하지만, 북한 또한 본질적인 변화는 없었어요. 또 핵문제를 풀어가는 순서상의 문제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용적인 측면입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제네바 합의체제로 돌아가자고 하고, 미국은 그건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이 두 가지 입장 사이의 내용적 차이는 엄청납니다.

    윤덕민 동시냐 순차냐 아니면 병행이냐 정도의 입장 차라면 접점이 마련될 수 있겠지요. 문제는 본질적인 데에서 양자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본질적인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데 문제는 시간적 여유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2차 회담 정도는 열릴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모멘텀이 마련되지 않으면 6자회담은 조기에 좌초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그 모멘텀은 뭐냐, 결국은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언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인데, 사실 북한은 의장국 발표문 작성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의장국 발표에서 나온 ‘추가적 상황악화 금지’ 조항은 단순히 나머지 5개국의 희망사항일 수 있다는 거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핵 활동의 동결입니다. 1993년 미북간 고위급 회담 때도 그랬고 미사일 모라토리엄이 나올 때도 그랬지만, “회담 중에는 그런 활동을 동결한다”는 전제하에서 협상이 진행됐었습니다. 6자회담이 앞으로 2차 또는 3차 회담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북한으로부터 핵 활동을 동결한다는 선언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회담이 조기 좌초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그런 합의가 도출되면 6자회담이 순항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봅니다. 최소한 미국 대통령 선거 때까지는 협상 국면이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편 더 본질적인 문제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안보상의 우려를 해소해주면 북한이 과연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지난 20년간 북한의 협상 내용을 볼 때 저는 이 점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항상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 즉 미북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식으로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합의의 마지막 단계에 가서는 그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북한이 이번에도 불가침조약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북한의 핵 포기를 위한 전제조건인지 의문을 갖게 되고, 오히려 북한 자체가 아직 핵무기를 포기할 것인지 아닌지 선택을 하지 못한 상황이 아닌가 봐요.

    문정인 현재 국면에서 흔히들 3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스탠드스틸(standstill), 즉 현 상태를 동결하고 악화를 방지하는 겁니다. 둘째로는 롤백(rollback), 작년 10월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고, 세 번째가 크루즈(cruise), 즉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진전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검증 가능한 핵 사찰 및 폐기가 포함되지요. 처음에 우리 쪽이 이런 단계를 구상했고 여기에 대해 워싱턴측이 솔깃해했던 것 같은데, 나중에 차질이 생겼어요. 미국의 입장은 스탠드스틸이나 롤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핵 및 핵시설의 해체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알기에는 우리 정부도 현재 이 같은 미국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한미일 3국은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해 스탠드스틸과 롤백만으로는 안 된다,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투명성 보장 및 해체와 8000개의 폐연료봉과 관련한 모든 투명성 및 해체에 대한 조치까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한미일 3국이 완전히 동의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번 6자회담에서 미국이 만족했던 것은 바로 이 대목, 즉 해체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나와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북한이 응할 용의가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입니다. 윤박사는 북한의 의도에 대해 회의적으로 말씀했지만, 아무튼 북한은 거기에 응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혔어요. 대신 북한은 자기네도 전제조건이 있다, 지금 롤백을 한다면 그건 제네바 합의로 돌아가는 것이니까 중유 공급을 재개하고 경수로사업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건 현재 미국의 국내정치 상황상 불가능합니다. 일단 예산 상정도 안 돼 있을 뿐 아니라 경수로사업에 대한 회의가 엄청나게 커요. 이 부분에서 북한에 대한 에너지 지원을 위한 대안(代案) 체제가 필요하게 되는 겁니다.

    북한이 핵 포기 선언을 하게 되면 미국도 보다 가시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대한 안보 우려의 해소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국무부는 이미 여기에 대한 구상을 갖고 있었어요. 북한은 그 구상에 대해 내심 상당히 솔깃해 있었는데, 이번 6자회담에서 그 카드가 나오지 않은 거예요. 회담 후 북한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던 겁니다.

    6자회담은 북한에 기회

    사회 윤교수와 신박사도 말씀했지만 역시 문제해결의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결국 북한이 핵 포기를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있는데….

    문정인 나는 이렇게 봐요.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느냐, 지금 상태라면 당연히 안 하지요. 그러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게 바로 외교입니다. 따라서 명분을 주지 말아야 해요. 지금은 미국의 강경파 네오콘들이나 북한의 강경파가 모두 상대에게 명분을 주고 있는 상황이에요. 나머지 4개국이 할 일은 이 악순환을 깨고 신뢰 구도를 만드는 겁니다.

    인간관계만 해도 얘기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불신하면 신뢰가 생길 수 없어요. 부정적인 점이 있어도 시도를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사회 굉장히 낙관적이시군요(웃음).

    문정인 그래요.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한 것 같은데, 지난번 청와대에 가서도 이런 얘기를 했어요. 6자회담을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마라, 이것도 실패하면 갈 곳은 유엔안보리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의장 성명에서 시작해서 결국 경제제재, 해상봉쇄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그러면 1994년보다 더 나쁜 상황이 되는 건데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6자회담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건 북한도 잘 알고 있어요. 북핵문제가 유엔으로 넘어가 해결될 경우 에너지, 경제지원 문제는 패키지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북한 입장에서도 6자회담을 잘만 활용하면 안보 우려도 해소하면서 에너지난,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는 겁니다.

    신지호 앞으로 6자회담이 지속되려면 먼저 북한이 핵 포기 선언 정도라도 내놓고, 핵 활동을 동결하고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겠다고 천명해야 할 겁니다. 미국도 대화가 진행되는 중에는 군사행동을 안 하겠다, 그 다음 북한이 제대로 응해오면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결해줄 의사가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해요. 그리고 이것을 나머지 4개국이 보장하는 형식이 있어야 하겠지요.

    윤덕민 6자회담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전기입니다.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입장은 여전히 파키스탄식일 겁니다. 핵무기도 갖고 싶고 국제사회의 지원도 얻어야 하고, 이런 매직 포뮬라(magic fomula)를 만들어야 하는데 상황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죠. 6자회담 참가국 5개국이 모두 북한의 비핵화에 동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담이 실패하면 제재 국면으로 간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나름대로 계산을 많이 할 겁니다.

    문제는 부시 행정부도 북한의 이런 속셈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경제적 압박과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구상(PSI) 등을 통해 북한에 압력을 가할 것이고, 중국에 대해서도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그래서 시한을 정하는 게 필요한데, 사실 미국으로서도 시한을 설정하는 건 부담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해결이 안 되면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은 중국과 지역 국가들을 적극 활용해서 북한에 압박을 가하는 쪽으로 문제 해결을 꾀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아닌가, 그래서 북한이 핵 활동을 동결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일단 내년 대선까지는 소강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6자회담 이후 한반도, 어디로 가나

    윤덕민

    신지호 미국과 북한은 서로 시간은 자기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시간적 압박을 받을 수 있지만, 저는 북한의 내부 경제사정도 중요한 변수라고 생각해요. 지금 북한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곤경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에 거의 근접해가고 있는 게 아닌가 봅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김정일 정권에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문정인 북한이 내년 대선까지 버티다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클린턴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그건 한마디로 넌센스예요. 민주당이 집권하면 오히려 부시 행정부보다 더 강경기류로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북한이 미국을 초대강국으로 인정해주고 협상과정에서 성실성과 진실성을 보여줘야만 부시 이후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북한이 바라는 방향으로 관계정상화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될 뿐입니다.

    미국도 오산에서 벗어나야 해요. 미국의 네오콘들은 PSI를 하면서 북한에 대해 다중적이고 다면적인 압박을 가해 고립 봉쇄하면 길어봐야 1년 이상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1년 동안 한편으론 협상하면서 다른 한편 북한을 고립시키면 체제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겁니다.

    사회 앞에서 북미 양쪽이 조금씩 양보를 해서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다고 말씀했지만, 그게 과연 타협이 가능한 사안일까요? 단적으로 어느 시점에 핵 포기를 하느냐를 놓고 북미가 각각 양극단에 서 있는데 말입니다.

    윤덕민 북한으로선 핵을 가지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국제사회의 입장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될 때 결국 핵을 포기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더 큰 당근도 필요하고 더 큰 채찍도 필요하다는 거지요. 북한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인식해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만 갖고는 해결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문정인 핵 포기는 선언만 있을 뿐이지 자발적인 해체는 있을 수 없어요. 핵무기 및 핵시설 해체는 결국 미국이 단독으로 하든지, 6자회담 참가국들이 사찰단을 구성하든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맡든지, 어떤 형태든 강제적인 수단이 동원돼야 합니다. 이게 어려운 부분인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옵션을 쓸 수 있어요. 북한이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남북 경협관계도 끝나는 겁니다. 여기엔 중국도 동참할 가능성이 많아요.

    두 번째로 북한은 핵 억지력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요. 북한이 얘기하는 핵 억지력은 진정한 의미의 억지력이 아닙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쏘기 전 단계에 초토화시킬 수 있어요. 북한의 핵무기는 파키스탄이나 인도처럼 목표가 분명한 나라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미국이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어요. 북한 핵이 주일미군이나 괌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에요. 수사학적으론 북한이 말하는 핵 억지력이 말이 되는 것 같아도 실제로 정량분석, 정성분석을 해보면 북한의 핵 억지력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겁니다.

    세 번째로 북한이 핵을 갖는다는 것은 북한체제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협상이 성공해서 북한이 핵 사찰을 받고 해체작업에 들어갈 때에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처럼 장난치고 숨기고 한다면 결국 북한도 이라크처럼 될 수밖에 없어요.

    윤덕민 동감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오판을 해서는 참 곤란하다고 보고요. 6자회담에서 북한이 만약 사태를 악화시키는 쪽으로 간다면 그건 세계를 상대로 하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승산이 없습니다. 6자회담은 또 북한이 당근도 얻을 수 있는 틀이므로 나쁘게 말하면 일단 회담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함정에 걸려든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북한이 현 상황에서 현명하게 핵을 포기하고 정상적인 길로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신지호 사실 제가 만약 김정일 위원장이라도 완전히 발가벗는 짓은 안 할 것 같아요. 예컨대 핵개발을 추진하는 방법이 10가지가 있다면 협상을 통해서 그 중 8가지 정도는 포기하고 2가지는 감추려고 하지 않겠어요? 특히 문교수 말씀처럼 북미간에 불신이 그 정도로 심각한데, 설령 불가침 보장을 받는다고 해도 김정일이 무얼 믿고 다 발가벗을 것인가….

    제네바 기본합의에 대해서도 저는 같은 맥락으로 봅니다. 북한은 여러 가지 핵 활동 중에서 주요 부분을 포기한 거지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흔히들 제네바 합의에 대해 ‘필요한 것이었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북한의 의도도 제네바 합의로 돌아가자, 그게 어렵다면 제2의 제네바 합의라도 만들자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보면 상황이 조금 비관적이 됩니다. 미국이 강조하는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핵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1993, 1994년 상황을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한편으론 회담이 진행되면서 다른 한편으론 유엔 안보리로 간다며 긴장이 고조되고, 1994년 5~6월에는 미국의 실제적인 군비증강 움직임도 있었고, 그 와중에 카터와 김일성의 극적 타결이 나왔단 말이죠. 그러니까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도 중요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무언가 압박이 없을 때 북한이 과연 미국이 바라는 대로 해줄 것인가….

    문정인 부시 행정부는 바로 제네바 합의 때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사회 북미간에 타협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접점은 어디일까요? 북미가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거래의 조건, 우리 입장에서 볼 때 가장 바람직한 조건은 어떤 것일까요?

    윤덕민 그거야 물론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지요.

    사회 폐기라는 것이 말은 쉬워도 미국이 말하는 대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수준의 사찰은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보통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윤덕민 보통 다른 국가들처럼 하면 되는 거지요. IAEA 사찰 받고, 특별사찰에서 제기된 것들도 다 밝히는 겁니다.

    IAEA 사찰 받아야

    문정인 이 문제를 순차적으로 접근해 보지요. 우선 지난해 10월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먼저 북한이 해야 할 일은 핵실험이나 재처리, 미사일 발사시험 등으로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것,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는 것, IAEA 사찰관을 평양에 다시 불러들이는 것, 영변 핵시설의 모니터링 카메라에 쳐놓은 테이프를 떼어내는 것, 재가동시킨 5MW, 50MW급 원자로를 중단시키는 것 등이 있어요.

    북한이 이런 일련의 조치를 취할 때 미국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겁니다. 첫째, 과거에 북미간에 서명했으나 부시 행정부가 완전히 무시해버렸던 세 가지 문건, 즉 1993년 북미 공동선언과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2000년 조명록-올브라이트 공동선언을 존중한다는 것을 불가침 관련 문건 형식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요. 둘째가 중유 공급 재개이고 세 번째는 경수로 사업을 지속하는 문제예요. 그 외에 클린턴 시절 때처럼 북일 및 남북간 경제관계에 대해 미국이 심각하게 방해하지 않는 게 있겠고,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주는 것도 있겠지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중유 공급과 경수로 문제에 대해선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기서 새로운 레짐의 필요성이 제기돼요. 제네바 기본합의의 중심 내용은 북한의 현재 핵문제, 즉 8000개 폐연료봉의 재처리와 5MW, 50MW급 흑연감속로의 활동을 동결하는 것이었어요. 여기에 북한의 과거 핵 활동에 대한 의혹을 규명하는 것은 빠져 있었고, 미래 핵문제로 드러나고 있는 고농축 우라늄 문제도 빠져 있었어요. 그러니까 어차피 이런 모든 것을 담아낼 새로운 틀을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포괄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신지호 하지만 고농축 우라늄의 경우 북한이 이번에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윤덕민 북한은 부인했지만 정황 증거로 보면 고농축 우라늄 관련 활동을 한 흔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문교수님 말씀 중 북한의 과거 핵문제는 IAEA가 사찰을 하면 해명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문제는 고농축 우라늄 활동에 대한 사찰 문제를 기술적으로 어떻게 푸느냐는 건데, 이건 북한이 수천 개의 동굴 안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특단의 사찰방법이 도입되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저도 제네바 기본합의가 예전 모습대로 부활하기는 어려우리라고 봐요. 그렇다면 말씀하신대로 에너지 레짐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경수로 사업도 이젠 사실상 불가능해진 게 아닌가 하고요. 지금 경수로 사업을 유지하는 데만 하루에 100만달러가 들어가는데 이것이 언제 재개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게다가 경수로라는 게 공기가 늦어지면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올라가요. 더 큰 문제로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원자력 협정이 체결돼야만 경수로 핵심 부품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정도는 사실상 아무 일도 못한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경수로 문제는 가급적 빨리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될 상황입니다. 경수로를 대신해 화력발전소라든가 아니면 가스전을 도입하는 식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경수로, 북한이 포기해야

    문정인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3월에 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도 지금 당장 경수로 사업을 본격화하기는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송배전 문제를 비롯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당신네가 재고해야 한다, 우선은 전기를 공급받는 게 중요하니까 단기적으로는 화력발전으로 새로운 레짐을 만들어야 하고, 가스전은 6자회담의 틀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하고 말이죠. 가스전은 중기적인 사업으로서 에너지 협력이라는 수단을 통해 동아시아 신뢰구축과 안보구축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죠. 반면 경수로 문제는 장기적인 문제이고 이건 한국이 주된 당사국입니다. 한국은 내심 경수로 사업을 통해 수출기반을 세우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잖아요? 아무튼 북한의 에너지문제는 이렇게 단기, 중기, 장기별로 구분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신지호 그런데 미국의 북한전문가인 케네스 퀴노네스의 증언에 따르면 1993~94년 북미협상 당시에 북한이 가장 집착했던 부분이 경수로 그 자체였다는 것 아닙니까? 북미관계 개선보다도 오히려 경수로 사업이 우선순위가 더 높았다는 건데, 그 사람도 그걸 의외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과연 그 사이에 북한의 입장이 바뀌었는지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물론 얼마 전 한 여당 의원이 북한측 인사로부터 ‘경수로가 아닌 방식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식의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말이지요. 즉 북한이 경수로 문제에서 유연하게 나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고….

    두 번째는 가스전 문제입니다. 가스전은 이르쿠츠크와 사할린, 두 곳에서부터 연결되는데 이르쿠츠크에서 오는 것은 벌써 중국까지 파이프라인 노선이 확정됐어요. 중국에서 북한을 통과해서 남한으로 연결될 것인가, 아니면 서해안을 경유해 남한으로 바로 끌어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데, 북한 쪽은 아직 타당성 조사조차 하지 못한 상태예요. 그런데 전문가들 말에 따르면 북한지역에 대한 타당성 조사는 하나마나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북한을 경유하는 것보다 서해를 통과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도 훨씬 싸게 들고 안보상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파이프라인이 서해안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다시 북한 쪽으로 보내주는 형식이 될 터인데, 과연 이런 내용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에너지 문제와 관련해선 여러 가지 방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구체적이고 합의 가능한 방안은 무엇인가를 따지다 보면 사실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사회 제네바 기본합의의 대안체제를 생각할 때 핵과 에너지 이외에 다른 문제도 포괄하는 형태를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컨대 남북간 군비통제 같은 문제도 포함하는…. 이건 물론 6자회담 이후의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윤덕민 6자회담에서 원칙이 마련되면 소규모의 다양한 대화가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북일간, 북미간 관계개선을 위한 대화 채널이 생길 수 있고,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 일본 한국 북한이 참가하는 채널도 생길 수 있고요, 이런 식으로 6자회담은 한반도 문제를 망라하는 갖가지 대화 채널이 가지치기를 할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앞에서 6자회담을 다자간 안보와 관련지어서 말씀했지만 이런 구도에 긍정적 측면만 있는 건 아니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6자회담은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인정한 상황에서 열리게 된 겁니다.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요. 앞으로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데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부담이 있을 겁니다.

    6자회담 이후 한반도, 어디로 가나

    신지호

    신지호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말씀과 관련해서 6자회담은 아쉬움이 있어요. 이번 6자회담은 남북한과 주변 4강으로 나뉘는 2+4 형식과는 다릅니다. 과거 4자회담 때도 마찬가지로 2+2 형식은 아니었어요. 윤박사께서 지적한 대로 우리의 운명이 걸린 사안인데 2+4 형식이 안 됐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입장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이번 6자회담에서 마지막 날 합의문을 만들 때에는 5:1의 구도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회담 내용을 보면 보는 이에 따라서 3:2:1로 해석하거나 2:3:1로 해석하는 입장이 갈려요. 한국이 미·일 쪽에 섰느냐, 중·러 쪽에 섰느냐가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는 겁니다. 문 교수께서는 3:2:1로 보시는 것 같은데요(웃음).

    문정인 북한이 핵을 폐기해야 한다는 부분은 분명히 5:1이었고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에 대해서는 3:2:1이었어요. 이 점에서 한국은 분명 미일과 공동보조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한국의 입장은 일본 말로 혼네(본심)와 다테마에(겉모습)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테마에로는 미국 쪽에 섰고, 혼네는 중·러 쪽에 가 있지 않았나…. 그런 게 바로 한국의 어려운 점이라고 봐요.

    신지호 문제는 그런 자세로 2+4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문정인 기본적으로 한국이 주도권을 잡는 구도가 만들어지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의 요구를 한국이 모두 들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해 안보 위협을 해소시켜줘서 대화로 핵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 중국 러시아가 모두 같은 입장 아닙니까? 심지어 미국의 국무부도 이런 입장인데, 문제는 부시 행정부의 다른 일각에서 북한에 제동을 걸고 신뢰감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 부분만 잘 추스르면, 미국의 대선 변수도 있으니까, 핵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급한 것은 북한 핵의 완전 동결과 작년 10월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한국 입지 더 좁아졌다

    사회 6자회담이 끝난 뒤부터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상당히 유화적인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최근엔 평화협정을 체결해줄 수 있다고까지 나왔어요. 이게 물론 북미 갈등관계를 푸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 주한미군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고…. 그런 점에서 앞으로 우리의 외교 방향과 전략에 대해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신지호 이건 앞에서 다 말하지 못한 건데, 이번 6자회담으로 2+4 체제가 바로 탄생하기는 힘들겠지만 2+4 체제로 갈 수 있는 근거는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게 우리 외교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진정한 의미의 민족공조를 해야 해요. 지금 북한이 말하는 것은 경협만 민족공조를 하고 핵문제는 미국하고 하겠다는 건데, 이건 민족공조가 아니지요. 그나마 6자회담을 계기로 우리가 들어가게 됐지만, 핵문제를 놓고 남북간에도 제대로 된 대화가 시작돼야 합니다.

    윤덕민 저는 10년 전과 비교해볼 때 우리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우리로서는 역시 한·미·일 공조가 가장 중요하고, 이 틀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해요. 무엇보다 한국은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입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정통성을 갖고 있고요. 또 어떤 식으로든 합의가 이루어질 때 가장 많은 것을 부담할 주체는 역시 한국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적극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개진해야 합니다. 한·미·일 사이에는 어떤 의견이든 자유롭게 개진하면서 이해를 구할 수 있지만, 일단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공동보조를 맞춰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 역할은 대화의 ‘촉진자’

    사회 앞에서 신박사도 말씀했지만 최근 한미관계, 나아가 한·미·일 대북공조에 대해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각에선 노무현 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상상 외로 크다는 말도 나옵니다. 반면 문교수께서는 요즘의 한미관계에 대해 그다지 비관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만….

    문정인 우리가 미국을 필요로 하는 만큼 미국도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 이건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문제이고, 이해관계로 보면 한·미가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어요. 또 한·미 협력관계에 일본이 동참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미·일 협력은 구조적이고 운명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미국이 노무현 정권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한미관계가 멀어진다고 보는 것은 국제정치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한반도 비핵화와 전쟁은 안 된다는 것에 대해 한미 양국은 완전하게 의견이 일치되어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일부 강경파들이 다른 시각을 갖고 있지만, 적어도 양국 정상 간에는 확실한 공감대를 갖고 있어요.

    사회 물론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과 당위론적인 측면에서는 한미간에 공감대가 되어 있을지 몰라도 북핵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에서는 다른 면도 있는 것 아닙니까?

    문정인 그건 차이가 날 수 있어요. 동맹국간에 의견이 모두 똑같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겁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수렴해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게 동맹의 진정한 의미 아닙니까?

    사회 한미간에 서로 다른 입장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북한의 입장을 두둔해주고 더 이해해주는 식으로 일관한다면 한미간에 갈등이 커질 수도 있잖아요.

    문정인 우리가 북한의 입장을 미국에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요. 만약 미국의 네오콘들이 북한을 봉쇄해서 체제변화를 시키고 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면 우리가 반대 의견을 분명히 개진해야 해요. 그건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고, 그러다가 북핵 문제의 해결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3국 공조의 틀 안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인식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다음으로는 우리의 외교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중국이 바람직한 중재자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되겠지요. 일각에서는 한국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북미간의 불신감을 해소시키고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대북 협상을 돕는 촉진자(facilitator) 역할입니다. 그 다음에 구체적인 현안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선 가령 에너지 문제나 교류협력 분야에서 우리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요.

    북한에 할 말 분명히 해야

    윤덕민 한국이 촉진자가 되기 위한 전제는 북한에 대해 할 말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게 없다면 우리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문정인 물론 “우리는 전쟁도 원치 않고 북한 핵도 원치 않는다”는 참여정부의 원칙은 확실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핵을 가지려고 한다는 것이 분명해지면 남북경협이나 대화는 상당히 어렵게 될 겁니다. 저는 4월 3자회담에서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한 뒤부터 참여정부는 북한에 대해 전임 김대중 정부와는 꽤 다른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고 봐요.

    신지호 저는 참여정부의 대북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정몽헌 회장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부가 그 일을 계기로 그동안 북핵 문제 때문에 동결돼 있던 금강산관광 지원을 재개하려고 시도한 것이라든가 개성공단을 무리하게 진전시키려는 모습 등이 비근한 예입니다. 그렇다면 5월 노대통령이 워싱턴에 갔을 때 핵과 남북 교류협력을 연계시키겠다고 한 정신은 어디로 갔느냐는 거지요. 정부의 그런 모습은 우리가 미·일에게서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다른 한 편으론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핵문제와 남북경협과 관련해서 저는 완전 연계나 완전 병행은 사실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봐요. 예컨대 인도주의적 지원은 조건 없이 계속되어야 하고 더 늘려야 합니다. 민간기업의 대북사업은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기업에 맡겨놓으면 돼요. 그러나 정부 지원이 들어가는 프로젝트, 결국 국민 세금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핵문제와 연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문정인 그런 점에서 정부는 북한이 핵문제에서 어느 선을 넘을 때 우리는 경협관계를 중단한다는 분명한 가이드라인 혹은 레드라인을 갖고 있어야 해요. 그렇지만 그 전 단계에선 기왕에 추진하고 있던 사업은 계속 해야겠지요.

    윤덕민 바로 그 레드라인을 북한에게 분명히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신지호 저는 사실 정부가 그런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는지, 그것을 북한에 전달했는지가 의심스러워요.

    사회 정부가 나름의 레드라인을 갖고 있는 것은 국민을 설득하고 안심시키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전략 차원에서 그것을 공개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단호한 의지와 전략을 갖고 있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심어주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 장시간 토론해주셔서 감사합니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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