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겹눈으로 본 정치

2% 부족한 고건, 정치총리로 거듭날까

  • 글: 김승련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srkim@donga.com

2% 부족한 고건, 정치총리로 거듭날까

3/4
두 사람은 목욕 친구이기도 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살았기 때문인데, 노대통령이 살고 있던 서울 명륜동 빌라와 고총리의 혜화동 집은 직선거리로 1㎞가 채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울시장 선거 이후 고 전 총리가 20년간 매일 아침 다니는 ‘동네 대중목욕탕’에서도 몇 차례 만났다. 30대에 도지사가 된 이후 공직자로 승승장구해온 고총리가 허름한 동네 목욕탕을 즐겨 찾는 것을 노대통령이 높이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노대통령은 1999년 해양수산부 장관이 된 뒤 고건 당시 서울시장과 국무회의에서 간간이 마주쳤다. 노대통령은 올 초 “고총리가 국무회의 배석자 신분인 서울시장으로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두 마디 던지는 것을 들었을 때 ‘행정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천만근의 무게로 느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고총리에 대한 노대통령의 신뢰는 한때 흔들리기도 했다. 지난해 11월말 후보시절 단일화를 앞두고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자 노대통령은 민주당 김원기(金元基) 고문을 특사로 보내 ‘지지 선언’을 요청한 적이 있는데, 그때 고총리는 난색을 표했었다.

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올 초 책임총리제 논란이 빚어지자 기자들에게 “고총리는 실세총리가 될 수 없다. 지난해 그렇게 어렵게 민주당 영입을 시도하면서, 지지선언을 해줄 경우엔 ‘진짜 실세’ 총리로 대접하겠다고 요청했지만, 끝내 거절했다”는 이색 논리(?)를 내놓기도 했다.

고총리는 올 6월 초 기자를 만나 노무현 선거운동 캠프의 영입제의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노대통령측이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 10일 전에 김원기 고문을 내게 보냈어요. 김고문은 피난시절 부산에서 다녔던 학교의 1년 선배로 가까운 편입니다. 서울 여전도회관에 있는 사무실에서 김고문을 만났는데, 노후보가 당선되면 총리로 쓰겠다고 제안하면서 지지성명을 내달라고 요청하는 거예요.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어요. 총리도 할 수 없고, 지지표명도 할 수 없다고 했지요. 당시 난 서울시장을 그만두고 국제투명성기구(Tran sparency Interna tional Korea) 한국지부장을 맡고 있었거든요. 이 조직은 정치성을 배제해야 하는 곳이에요.

나는 당시까지 내가 당적을 유지했는지도 몰랐어요. 서울시장 입후보 할 때 국민회의에 입당하고 공천 받았는데, 민주당으로 당이 바뀌었으니까. 당적 여부를 확인하려고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당시 민주당 종로지구당 위원장)에게 전화했는데, 유수석은 나보다도 모르더라고요(웃음). 내가 여차여차해서 당적 정리해야겠다고 말했었습니다.”

이런 곡절을 거쳤지만, 노대통령은 당선 이틀 후 신계륜(申溪輪) 의원을 고총리에게 보냈고, 1개월쯤 지나서 거듭된 요청 끝내 총리직을 결국 수락했다는 것이 고총리의 설명이다.

고총리에게 부친은 거의 절대적인 존재다. 총리 제의를 받은 직후 부친이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있어 고총리에게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내 운전기사밖에 모를텐데. 내가 혼 좀 내야겠네(웃음). 아버님은 올 98세, 내년에 만 99세인 백수(白壽)를 맞으십니다. 아버님은 ‘신동아’ 기자를 지내셨어요. 경성제대 법문학부 철학과를 나오고 대학원을 다닐 때 신춘문예에 당선됐지요, 소설가 염상섭 등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아버님이 처음에 반대하신 건 사실입니다. 아들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를 따지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맡아서 하라”고 하셨어요. 그땐 아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대통령이 몽돌이면 총리는 나무받침

다시 재신임 정국을 맞은 고총리 문제로 돌아가보자. 고총리는 그동안 의전총리를 넘어선 수준의 일을 해왔다고 자부하고 있을까. 노대통령은 “내가 몽돌이라면, 총리는 나를 안정적으로 보필할 나무받침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며 행정의 달인으로 통하는 고건을 일찌감치 참여정부의 첫 총리로 점찍은 바 있다.

고총리가 국정을 주도하는 상황은 취임 3개월 후인 5월22일 시작된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라는 다소 긴 이름의 회의체가 구성된 때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회의에는 교육 법무 재정경제 건설교통 행정자치 환경 노동부 장관 등 사회적 갈등요인을 안고 있는 사안과 관련된 장관들이 참석해 대책을 논의한다.

이 회의가 시작된 계기는 1차 화물연대 파업이다. 화물연대 소속 지도부가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을 때 그들을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건설교통부 간부에 대한 면담신청도 거절됐다. 그 결과 대규모 시위가 시작됐고, 뒤늦게 TV를 보고 상황을 파악한 노대통령은 국무위원을 질책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총리가 노동 환경 교육 복지분야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직접 챙기라는 지시를 내리게 된다.

고총리가 의전총리를 넘어섰다고 평가받는 것은 헌정사상 최초로 총리의 헌법상 권한인 국무위원의 임명제청 및 해임건의를 문서형태로 하게 됐다는 점때문이다. 허상만(許祥萬) 농림부 장관 임명 때부터 시작된 관행이다.

3/4
글: 김승련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srkim@donga.com
목록 닫기

2% 부족한 고건, 정치총리로 거듭날까

댓글 창 닫기

2019/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