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호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를 위한 시대가 온다

중국의 부상과 아시아적 발전 모델

  • 글: 조 순 서울대 명예교수· 전 부총리

    입력2003-11-25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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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발전은 아시아를 세계 3대 중심의 하나로 만들 것이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아시아가 독감에 걸리는 일 역시 점점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아시아는 자체 시장을 통해 부가 창출되고 고용이 이뤄지면서 아시아 내부의 분업이 발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적 발전모델이 자연스레 생겨날 것이다.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를 위한 시대가 온다

    지역통합을 가속화하는 유럽이나 미주와 달리 한중일 FTA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련이 붕괴한 지 이제 12년, 그동안 세계는 유일 초대강국으로 남은 미국이 모든 분쟁을 잠재워, 평화롭고 살기 좋은 시대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해왔다. 그러나 그같은 기대는 거의 완전히 빗나가고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분란이 이어지는 혼탁한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이 어지러운 상태를 끝내기 위해서는 미국이 힘의 행사를 줄이고 좀더 너그러워져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미국의 심리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역사는 흐른다. 새로운 역사의 장(章)이 열리고 있다. 이 장(章)에는 지금까지의 역사책에서 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담겨질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시아 국가들의 새로운 모습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 역사는 서양 중심의 역사였다. 앞으로도 서양의 우위는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제부터의 역사책에는 동양의 발전에 관한 이야기가 상당 부분 실릴 것이고 서양 국가들도 동양의 발전 모형을 어느 정도 본받게 될 것이다.

    지난 1세기반 동안 아시아는 서양의 침략에 시달리면서 근대화(서양의 모방)를 위해 몸부림쳤다. 그 1세기반 동안 아시아는 세 번의 근대화를 성공시켰다. 최초의 성공은 19세기 후반 일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서양의 시각에서 볼 때, 일본의 성공은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오직 일본 국민의 필사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일본의 눈부신 근대화 성공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후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많은 나라들이 일본을 모방하고자 사절단과 학생을 보냈다. 그러나 일본은 서양을 본받아 이웃나라들에 대해 무자비한 침략을 감행함으로써 끝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었고 아시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두 번째의 근대화 성공은 1970~80년대에 이른바 ‘신흥공업국’ 칭호를 받은 4룡(龍), 즉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 의해 이루어졌다. 세계은행은 이것을 ‘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것도 엄밀한 의미에서 기적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대내적 요인과 대외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여 이뤄낸 성과였다.

    이 글의 관점에서 볼 때, 4룡(龍)이 공업화를 달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당시의 냉전질서가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중요시해야 한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이 격화되면서 미국은 일본, 한국, 대만 등 아시아 반공국가들의 경제건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들 나라는 국방문제는 미국에 맡긴 채 모든 국력을 경제발전에만 투입했다. 이들 나라에서 추진한 국가주의와 중상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수출주도형 정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 일본은 대내지향적 정책에 머물러]

    아시아에서 세 번째, 그것도 가장 극적인 경제발전 및 사회 근대화는 중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 그리고 인도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이 세 번째의 발전은 그 규모에 있어서나 여타 세계에 대한 영향에 있어서 일본 및 4룡(龍)의 발전을 훨씬 능가한다.

    일본 및 4룡의 발전과 중국 등의 발전의 차이는 무엇인가. 첫째, 일본, 한국, 대만 등은 나라의 크기가 작고, 세계관은 대내지향적(對內指向的)이며, 정책기조는 대체로 중상주의적이었기 때문에 이웃나라들의 발전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이 나라들의 발전의 원동력은 미국과의 교역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발전은 이웃나라들과는 서로 격리 내지 독립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이나 아세안 및 인도는 그 면적이나 인구가 방대하고, 고대로부터 이어받은 세계관이 전통적으로 대외지향적(對外指向的)인 데다 경제정책도 중상주의가 아니고 국제간의 교류를 전제로 한 것이다. 이같은 특징은 이들의 발전이 일본이나 4룡(龍)의 발전에 비해 이웃나라들과 연계관계를 갖기 쉽도록 만들고 있다.

    일본, 한국 및 대만은 냉전체제의 수혜국(受惠國)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발전전략의 패러다임은 본질적으로 국가주의적, 중상주의적, 그리고 배타적인 면이 농후하다. 지금 일본이나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 나라들의 사고와 체제가 본질적으로 세계화 추세에 적응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는 데에 그 원인의 일단이 있다.

    이에 반하여, 중국 및 아세안은 글로벌화 시대의 수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전통적인 국제적 시야와 비교적 개방적인 발전 전략은 글로벌화 시대에 적응하기 쉬운 측면이 있다.

    동아시아 발전의 주역은 중국이다. 중국의 발전은 아시아 전체에 폭넓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다. 이 나라의 발전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지금까지 몇 번의 혁명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루어져왔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창업한 마오쩌둥(毛澤東) 사후, 중국에서는 세 번에 걸친 지도자의 교체가 이뤄졌다. 새 지도자가 등장할 때마다 일련의 자유화 조치가 취해지면서, 경제 발전과 근대화는 탄력을 받았다.

    이러한 방향 전환이 이루어질 때마다 중국은 공산주의를 탈피하여 자본주의 방식에 따른 경제운영의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 중국이 갖는 잠재력을 살려서 부유한 나라로 만들고, 국제적인 고립을 탈피하여 중국의 위상을 높이자는 것이 4대에 걸친 지도자들의 일관된 방향이었다.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역사의식 없이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실패했던 것과 달리, 중국의 지도자들은 충분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나라의 실정에 맞게 개혁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첫 번째의 방향전환은 1978년말,제2세대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덩샤오핑(鄧小平)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들이 추진한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는 엄청나게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92년에야 비로소 확고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 후 2002년에 제3세대 지도자들에 의해 채택된 또 하나의 대담한 자유화 조치가 ‘3대 대표론’이다. 이는 기업가,전문가 및 중산층을 공산당으로 편입시킴으로써, 당의 지지기반을 넓히면서 국민의 에너지를 촉발시키자는 목적을 가진 것이다.

    제4세대 지도자인 후진타오(胡錦濤)는 최근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앞으로 정치국에 대해 비판할 것이 있으면 해도 좋다는 정치 자유화를 제창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개혁을 통해 중국 공산당은 이미 ‘공산(共産)’당이라고는 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당의 이름이야 어찌 됐던,성과만 좋으면 된다는 것이 중국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공산당이 공산당의 이름으로 비공산당적인 방향을 거리낌없이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반세기 동안, 중국이 달성한 경제발전의 성공담은 이미 진부한 이야기가 돼가고 있다. 여기서 그 지루한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다만, 1978년부터 2002년까지의 중국의 실질 GDP 성장률이 연평균 9%를 능가한다는 사실만은 지적하고자 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성장률 수치보다도 중국 국민이 나라의 앞날을 밝게 보고 화합과 정치안정을 이루면서 고도의 활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역사상 국민의 에너지가 이렇게 발휘된 시대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의 이러한 심리 상태가 얼마나 오래갈 것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나는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것으로 본다. 그것이 단절될 만한 이유는 없다.

    서방국가에서는 ‘중국경제는 곧 붕괴한다’ ‘(중국의) 금융은 밖으로 폭발하든지 속으로 터지든지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당하고야 만다’ ‘정치적 자유가 없기 때문에 발전은 곧 멈춰진다’는 등의 주장을 담은 책이나 논문이 수도 없이 쏟아져나왔다.사실, 서양 사회과학의 좁은 시각에서 본다면 중국은 곧 붕괴할 나라로 비춰진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중국과 같은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를 잘 설명해줄 과학적 방법이 서양에는 없기 때문이다.

    [2041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한다(?)]

    반면,중국에 대한 낙관론도 대단히 많다.중국에 대한 GDP 추계나 예상 중에는 중국의 GDP가 머지않아 세계 최고가 된다는 것도 있고 2041년 중국의 GDP가 미국의 그것을 추월하게 된다는 설(說)도 있다.하기야 40년 후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다만 최근 들어 중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많아진 것만은 확실하다.

    중국에 대한 학문적 소양이나 현지 경험이 많은 인사들 가운데에는 중국의 장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중국 문명을 잘 아는 철학자, 역사학자, 중국 사정을 잘 아는 기업가, 정치가, 그리고 중국의 심리를 잘 아는 소설가 등은 과학적 방법에 의존하는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들보다는 중국의 장래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펴는 경우가 많다. 최근 영국에서 중국을 배경으로 한 베스트 셀러를 펴낸 작가 애덤 윌리엄스(Adam Williams)는 중국의 장래에 관하여, ‘엄청나게 낙관적(enormously optimistic)’이라고 했다. 중국이 문화대혁명으로 시달리던 암울한 시기에도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21세기에는 중국이 세계의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만년에 펴낸 그의 저서에서 만일 중국 국민들이 공산주의자이기에 앞서 중국인이라는 의식을 갖는다면, 중국은 자원도 많고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국민 (world’s ablest people)’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도 중국의 장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경제 분석을 통해서나, 나 자신의 역사관 그리고 세계관에 의해서나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이 많다고 본다. 중국의 장래가 낙관적인 이유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

    첫째, 중국 지도층의 질이 좋다. 그들은 확실한 비전과 전략을 가지고 있다.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설정된 목표를 일관성 있게 추진한다. 둘째, 중국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다. ‘글로벌화’라는 세계적 추세와 무한경쟁의 시대정신이 중국인의 기질에 잘 맞는다. 셋째, 중국의 문화가 현세적(現世的)이고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이며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한다. 넷째, 내가 관찰한 바, 중국 대학생은 엄청나게 열심히 공부하고 공무원도 대체로 성실하다. 다섯째, 중국의 발전이 이어지면서 서서히 중국식 관행(institution)들이 제도화되고 있다. 중국이라는 고목(古木)이 지난 150년 동안 온갖 시련을 겪어오면서 몸통은 거의 죽었지만 그 뿌리는 튼튼해서, 새 움이 나오자마자 엄청나게 많은 영양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적 발전모델 탄생할 것]

    중국의 발전은 아시아 전체에 대하여 일찍이 보지 못한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이다. 그리하여 아시아를 세계 3대 중심의 하나로 만들 것이다. 지금까지의 발전에서처럼 미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는 줄어들 것이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아시아가 독감에 걸리는 일 역시 점점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아시아는 아시아 자체의 시장을 통해 부가 창출되고 고용이 이루어지면서 아시아 내부의 분업이 발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적 발전 모델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날 것이다.

    지난날, 일본에 이어 한국과 대만이 일본 방식을 모방해 공업화에 성공하고, 그 뒤를 태국이나 말레이지아가 뒤따르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이른바 ‘기러기가 나는 모형(Flying Geese Model)’이라는 발전이론이 나온 적이 있다. 이 이론은 정보화, 글로벌화 시대의 개막과 함께 이제는 별로 설득력이 없게 됐다. 중국인의 ‘일보도위(一步到位)’라는 표현이 말하듯이 이제부터의 발전은 과거와는 달리 여러 단계의 발전과정을 한꺼번에 뛰어넘는 경우가 많게 되었다.

    중국과 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이 거의 동시에 발전하면서 서로의 교역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아시아 국가들이 일방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라는 딱지를 붙인 중국의 수출품은 원료, 원자재, 부품 및 중간재들의 많은 부분이 다른 나라에서 조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메이드 인 아시아(Made in Asia)’, 또는 많은 경우에 ‘메이드 인 더 월드(Made in the World)’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중국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의존 못지않게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 심화될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중국과 아시아 국가 사이의 분업 증가를 가져 온다. 다만 이제부터의 분업은 제품간의 분업이 아니라 공정(工程)간의 분업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글로벌화의 시대에는 우선 지역경제의 통합이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이 이미 성립되어 있고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결성이 임박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아시아에 있어서도 ‘아시아 자유무역지대(FTA)’ 또는 ‘한중일 FTA’ 같은 것이 결성될 수 있을 것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어려울 것 같다. 서로간의 교역은 크게 진전되고 있으나, ‘아시아 FTA’는 말할 것도 없고 ‘한중일 FTA’도 현재로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중국과의 이같은 협정을 매우 꺼리고 있다.

    [‘아시아 FTA’는 쉽지 않아]

    일본의 유명한 경제학자 모리시마 미찌오(森嶋通夫) 교수는 여러 저서와 강연을 통해 일본, 중국, 남북한, 대만 등을 포괄하는 동아시아 FTA 결성이 일본 경제가 살 길이라는 이론을 제창하였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반응은 극히 냉담했다. 모리시마 교수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준백인(honorary white men)’으로 자부하고 메이지(明治) 유신 때부터 내려온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이념이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에, 중국과 같은 상대와 FTA를 체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모리시마 교수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일본이 중국과 이런 종류의 협정을 맺자면 미국의 승낙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을텐데, 이 또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은 중국과의 FTA는 극도로 꺼리는 반면, 한국과의 FTA 결성에 대해서는 최근 들어 매우 적극적이다. 경제적으로는 한국을 끌어들여 일본의 구조적 불균형을 해결하는 초석을 삼고, 정치적으로는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하여 중국과의 사이에 선을 긋자는 전략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한국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쓰다 달다 아무 소리가 없다. 식자(識者)들로부터 FTA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무역역조가 심화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된다는 희망사항만 나오고 있을 뿐이다. 여하튼, 한일 FTA가 성립된다면, 일본은 이것을 2차대전 이후 최고의 외교적 승리로 치부할 것이다. 반면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떤 득(得)을 기대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를 위한 시대가 온다

    중국은 민주화를 위한 첫발을 이미 내디뎠으나 서구식 민주주의는 채택하지 않을 것이다.

    한중일 FTA가 이루어진다면 한국이 두 나라 사이에 서서 나름대로의 외교력을 발휘할 것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일 두 나라만의 FTA는 경우가 다르다. 국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한일 FTA가, 한국을 동북아 중심국가가 아니라 일본의 주변국가로 만들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한일 두 나라는 원래 배타적인 성향이 있기 때문에 외교에는 능숙치 못하다. 지난 180년간 양국의 교섭역사를 볼 때, 일본은 보통 타산형(打算型·calculators)인 데 반해 한국은 항상 돌진형(突進型·plungers)의 성향을 보여왔다. 그러나 일본의 타산은 흔히 대국(大局)을 보지 못하여 장기적으로 아시아의 재앙을 가지고 왔고, 한국의 돌진은 항상 눈앞의 이해(利害)도 분간하지 못하여 당장의 재앙을 자초했다. 이번 한일간 FTA 협상에서 양국의 기질을 또 한번 보게 됐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중국, 시장원리주의와 패권주의 포기할 것]

    그렇다면 긴 안목으로 볼 때, 중국은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중국의 강점과 약점을 비교하고, 그 역사를 회고함으로써 짐작할 수 있으리라 본다. 중국은 강점 못지않게 약점도 많은 나라다. 우선 자연환경상 약점이 대단히 많다. 첫째, 수자원이 부족하다. 특히 북부지방이 그렇다. 남쪽의 양쯔강 물을 북으로 조달할 계획을 하고 있지만 이는 엄청난 작업이다. 둘째, 북부의 사막지대가 남쪽으로 번져가고 있다. 인공적으로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 셋째, 에너지 자원이 부족하다. 서쪽의 천연 가스를 동쪽으로 운반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 역시 보통 일이 아니다. 이러한 자연현상과 아울러 인문적인 문제도 많다. 부정부패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자유화의 진전에 따른 공산당의 지도력 약화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미국의 도전은 물론 그 연장선상에서 일본과 대만의 도전 등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중국은 보다 좋은 나라가 되고 문화적으로 국제사회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앞으로 시장원리주의의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경제정책에서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며 상당한 수준의 복지정책을 고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정치체제에 있어서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통적 인본주의에 입각한 정치와 행정의 제도화를 이루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교육과 문화정책에 있어서는 어느 나라 못지않게 과학기술을 강조하면서도 전통적 가치관을 추구하게 될 것이며, 국제관계에서는 영구적으로 패권주의를 포기하고 평화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합리성, 균형과 절제, 자연중시 전통]

    이 글을 마치면서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를 간단히 부연하면서 독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첫째, 나는 중국이 현재 자유시장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하여 앞으로도 고도성장을 이룩하겠지만, 미국식 시장원리주의는 머지않아 탈피할 것으로 본다. 경쟁 지상, 이윤 지상, 민영화 지상, 그리고 약육강식의 살벌한 세상은 중국의 전통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 뿐만 아니라 13억이라는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강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지는 시장 원리주의를 가지고는 사회의 평화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학자 케인스(J. M. Keynes)는 1928년에 ‘백년 이후에 인간은 의식주와 같은 경제문제는 거의 해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경제학자는 경제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중요시하지 말고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에언한 바 있다. 나는 지금부터 25년 후면 중국-아직은 가난하지만-도 현재 소득의 몇 배를 달성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부의 창출에만 전력을 다하지 말고 문화의 고도화에 응분의 힘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것을 못하고 소득의 증대에만 국력을 쏟는다면, 중국의 발전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토인비가 중국에 대해 큰 기대를 건 것도, 중국이 부의 창출 능력이 탁월하다고 봤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합리성, 균형과 절제, 그리고 자연을 중요시하는 전통이 서양 문명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정치적인 민주화로 갈 것인가. 나는 갈 것으로 보고 이미 그 제도화에 조심스러운 일보를 내디뎠다고 본다. 다만, 서구식 제도는 채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13억의 인간이 TV를 통해 지도자를 뽑다가는 중국 전체가 제대로 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중국인들이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 ‘예기(禮記)’에 나오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이상에 따른 일종의 인본주의적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18세기 영국 최대의 지성인인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한 사람의 통치는 작은 나라에서는 좋지 않으나, 큰 나라에서는 이 길이 좋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앞서 말한 애덤 윌리엄스는 중국은 ‘시민사회(civil society)’를 만드는 길목에 있지만, 그들의 모형은 구미 식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조지 워싱턴의 모델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체제를 만들 것(They won’t follow George Washington model, they will do their own thing)”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중국은 패권주의로 갈 것인가. 나는 그런 일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그 런 방식으로 나가다가는 견디기 어려운 저항에 부딪치리라는 것을 중국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은 주변의 거의 모든 나라들과 국경분쟁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양보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라크 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면서도 조용한 자세를 취했다. 중국의 비교우위는 군사에 있지 않다. 문화에 있다. 물론 국방을 소홀히 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기술도 중요시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 못지않게 중국은 평화를 필요로 하는 나라이다.



    중국의 발전은 세계 평화와 공생(共生)의 경제정책을 국제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왜 그런가. 중국 사람들이 특별히 천성이 착한 국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지 않고서는 중국 스스로가 편한 날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난관은 많을 것이다. 적대감을 가지고 도전하는 나라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평화와 공생을 위한 장정(長征)에 올랐다고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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