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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중국의 로버트 김”

對北 공작원 첩보활동 돕다 간첩죄 복역중인 조선족 최모씨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나는 한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중국의 로버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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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중령 사건을 확인해준 정보당국 역시 최씨의 수감 사실에 대해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반적으로 정보활동에 협조해 온 상대국 관계자의 신병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하거나 해당국 정보기관이 나서 가족들만이라도 보호한다. 그러나 최씨의 경우 현재로서는 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블랙’과 ‘화이트’

제3국에서 대북 첩보 활동을 벌이는 특수요원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우선 외교관 여권을 갖고 현지 공관을 무대로 활동하는 국정원 소속 해외공작요원들이 있다. 이들은 외교관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기는 하지만 상대국과의 ‘선린우호(善隣友好)’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외교적’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국에서 접할 수 있는 군사정보나 첨단기술 관련 동향 등을 수집하는 ‘정보원’의 역할을 한다.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한 정보요원인 셈이다. 이를 ‘공식 위장(official cover)’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정보기관들 사이에서는 이들을 ‘화이트’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이 이른바 ‘블랙’이다. ‘블랙’들은 외교관 신분을 갖지 않고 현지 공관에도 몸담고 있지 않은 비공식 정보요원들이다. 국방부 정보본부 산하 모부대 현역 장교들이 이런 정보활동을 담당하기도 하고 퇴역 영관장교들이 ‘신분 세탁’을 거친 뒤 정보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암호명 ‘흑금성’으로 널리 알려진 박채서씨도 1993년 예비역 소령으로 전역한 뒤 안기부에 들어가 대북 공작원으로 활동한 경우이다. 한편 HID나 UDU 같은 육·해군 첩보부대 소속 공작원들이 해외공작 임무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이들 ‘블랙’은 활동이 노출되면 최악의 경우 ‘본국 추방’조치 정도를 받게 되는 ‘화이트’들과는 달리 외교관으로서 최소한의 예우조차 적용받을 수 없기 때문에 상대국의 법정에 넘겨질 가능성도 있다.



K중령 경우가 전형적인 ‘블랙’에 해당하는 셈이다. ‘블랙’들은 자신의 첩보활동을 흔히 ‘사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은 현지 사업가 등 별도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있기 때문에 정작 자신들의 본연의 임무인 ‘사업’은 어쩌다가 이뤄질뿐 평상시에는 ‘진짜 사업’에 전념한다고 전해진다. ‘블랙’으로 활동한 바 있는 한 정보기관 현직 관계자의 경험담.

“정보활동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 신분을 사업가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평소에는 다른 사업가들과 똑같이 사업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 싶으면 그때 ‘사업’에 뛰어들어 고급 정보를 캐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순간순간에 첩보 활동이 이뤄진다.”

그만큼 이들의 첩보 활동이 상대국 정부의 안테나에 걸려들 확률은 높지 않다. 이 말을 뒤집으면 첩보 활동이 적발된 데는 무언가 미숙한 구석을 노출했거나 사생활과 관련해 소문이 날 만한 일을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내의 한 정보소식통은 “해외에서 활동하다 보면 보통 돈 문제나 여자 문제 등이 불거져 해당 국가에 신분이 노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K중령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 K중령 사건을 확인해준 국내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도 “돈 문제나 여자 문제가 연관된 것 같지는 않다”고 개연성을 부인했다.

‘조국은 나를 구하러 올 것이다’

K중령은 체포 직후 간첩 혐의를 적용받고 구금됐다. 해외의 주요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대북 정보 활동을 벌이는 특수공작원들의 존재 자체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양국 정보기관들이 이들의 활동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일정한 수준, 즉 ‘레드라인(red line)’을 넘지 않는 범위내에서 암묵적으로 용인해온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특수 공작원의 신분이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활동 대상국 정부가 공작원의 활동을 노골적으로 문제삼아 전격 체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베이징 주재 한국공관을 중심으로 중국내 정보라인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럴 경우 가장 큰 위험은 그동안 공들여 구축해놓은 정보 공급 라인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면서 현지 정보원들은 물론 본국에서 파견된 특수 공작원들의 신분도 낱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정보당국 한 관계자의 이야기.

“특수 공작원들은 ‘사업’ 도중 활동이 발각돼 상대국에 체포되더라도 스스로 취할 수 있는 별다른 조치가 없다. 외교관 신분도 아닌 데다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와 달리 간첩 혐의에 관한 한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결국 ‘언젠가 조국이 나를 구하러 올 것’이라는 신념만으로 감옥 생활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판 로버트 김’조선족 최모씨에게만큼은 이러한 기대마저도 ‘남의 일’이었다. 현재 우리 정보당국 어디에서도 최씨와 관련해 속시원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다만 베이징의 한 정보 소식통은 “최씨가 중국 군사법정에서 비공개 재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하며 “현재 최씨와의 면회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40대 후반의 조선족 사업가 최모씨는 조선민족학원 조선어과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학원은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 중 엘리트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고등교육기관. 현재 중국 전역에 12개밖에 없을 정도로 소수정예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족학원 출신들은 각 성(省)과 자치구에서 간부 역할을 맡고 있는가 하면 경제 문화 과학 교육 등 각 분야 전문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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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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