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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7년... 여전한 전위부대, 그러나 주류 꿈꾸는 파워맨들

  • 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386’ 7년... 여전한 전위부대, 그러나 주류 꿈꾸는 파워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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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6과 80년대 코드는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맛없는 식은 피자인가. 30대라는 생물학적 연령에 제한받는, 유효기간이 지난 패스트푸드인가. 80년대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살기를 원했고 90년대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외쳤던 그들에게 386이란 무엇인가 다시 물었다.
‘386’ 7년... 여전한 전위부대, 그러나 주류 꿈꾸는 파워맨들

386이란 용어를 처음 만들어낸 ‘열린공간30’ 회원들. 98년 8월 사노맹 사건으로 구속 됐던 백태웅씨 (서울대 법학81·앞줄 왼쪽에서 세번째)의 출소를 기념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사진은 ‘신동아’ 98년 12월호 ‘우리는 동인’에 게재됐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정신적 83학번’이니 ‘386정치인’이니 하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1946년생으로 오십대 후반줄에 접어든 노대통령이 주변의 386참모들을 거리낌없이 ‘내 친구’ 혹은 ‘동지’라 부르는 데 기인한 것이지만, 노대통령 스스로 “(1987년) 6월항쟁은 내 존재의 근거”라 할 만큼 80년대 정서를 소중히 여긴 것도 사실이다.

노대통령은 올 6·10항쟁 16주년 기념식에 보낸 메시지에서 “4·19혁명과 부마항쟁, 광주항쟁에 이어 6월항쟁에서 분출된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열망이 참여정부를 탄생시켰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무현 코드’는 80년대 정서요, 참여정부의 정신적 지지기반은 386세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 386이란 말은 식은 피자처럼 느껴진다. 1999년 정가에 ‘젊은피 수혈론’이 일 때만 해도 386은 갓 구워낸 따끈따끈한 피자였다. 2000년 총선을 전후로 386은 각광을 받았지만 이내 ‘386과 기성세대가 다를 게 뭐냐’는 질책이 쏟아졌다. 그리고 잠시 묻혀있던 386은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참여정부의 주역’이란 이름으로 재등장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얼마 못 가 ‘세대갈등의 진원지’ ‘무능한 아마추어’라는 빈축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386은 끝났다’는 비판도 들린다.

과연 그럴까. 386과 80년대 코드는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맛없는 식은 피자인가. 아니면 30대라는 생물학적 연령에 제한받는, 유효기간이 지난 패스트푸드인가. 7년 전 세상에 386이란 용어를 처음 선보였던 ‘열린공간30’의 회원들이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근황을 추적했다. 이 모임은 오늘의 386을 이해할 수 있는 축소판이다. 80년대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살기를 원했고 90년대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외쳤던 이들에게 386이란 무엇인가 다시 물었다.

휴화산 같은 30대

“지나간 세월을 한번 접어 아직 남은 열정에 지혜를 모아야 할 나이, 30대. 그 이립(而立)의 나이 30대에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고 싶은 충동을 어쩌지 못하는 휴화산입니다.” 이것은 김종민씨(서울대 국문83)가 쓴 ‘열린공간30’ 창립 취지문의 일부다. 김씨는 현재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으로 재직중이다.

1996년 12월7일, 80년대 초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던 30대 200여 명이 ‘열린공간30’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대학로에 둥지를 마련했다. 이름하여 ‘동숭동에서’. 점잖게 무슨무슨 포럼이나 학생운동세대답게 서클룸도 아닌 그냥 술집이었다. 부담 없이 만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는 의미였다.

“90년대 초 우리는 성취하지 못한 자괴심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뿔뿔이 헤어졌다. 그리고 각자 진로를 모색하며 거처를 마련했다. 고시준비를 하거나 학교로 돌아가거나 학원 강사가 되거나 벤처기업가라는 타이틀을 마련했어도 가슴에는 어쩌지 못한 ‘열정’을 품고 있었다. 3년 뒤 누구랄 것도 없이 ‘더 늦기 전에 저지르자’며 하나둘 다시 모였다.”(김종민)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은 “뚜렷한 목적의식보다는 화롯불처럼 몸을 맞대야 꺼지지 않는다는 연대의식이 강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모임의 대표는 이정우 변호사(서울대 법학81)가 맡고 송영길(연세대 경영81), 이왕준(서울대 의대83), 한창민(연세대 철학82), 김종민 등 81·82·83학번이 주축이 됐다.

이정우 변호사는 연세대 송영길, 고려대 김영춘(영문81)과 함께 1984년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들 삼총사는 대학의 학도호국단을 해체하고 직선제 총학생회를 부활시켰지만 이후 수배, 구속, 제적의 수난을 겪었다. 80년대 중반 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이들 불법 총학생회장 삼총사는 96년 ‘열린공간30’에서 다시 의기투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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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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