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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대선자금 차떼기 숨기기 위해 비밀장부 차떼기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LG, 대선자금 차떼기 숨기기 위해 비밀장부 차떼기

  •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자정,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선 비밀장부 숨기기 작전이 어둠을 틈타 전광석화처럼 진행되고 있었다. 회사 관계자들이 대선자금 수사 정국에 벌어진 씁쓸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LG, 대선자금 차떼기 숨기기 위해 비밀장부 차떼기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2003년 11월 중순 밤 11시. 단잠에 빠져 있던 LG그룹 모 계열사 본사 간부 K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회사 상층부의 전화였다. 전화를 건 인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밤 12시까지 회사로 나오라”고 말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시작된 뒤 회사측에서 수차례 주지시켰던 ‘비상연락체계’가 이날 밤 실제로 가동된 것이다.

잠시 후 K씨는 회사가 입주해 있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입구에 도착했다. 자신처럼 호출을 받고 달려온 ‘LG맨’이 100명쯤은 되어 보였는데, 대부분 양복이 아닌 ‘작업복’ 차림이었다. 트윈타워에 입주한 LG계열사 일부가 핵심부서 직원들을 동원한 듯했다. 빌딩 입구엔 트럭 세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1층 로비로 들어서니 LG그룹 계열의 한 보안업체에서 차출된 보안요원들이 물샐틈없는 경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외부인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됐다.

이날 동원된 직원들은 불 꺼진 자신의 사무실로 올라가 윗선의 통제를 받으면서 기민하게 작업을 수행했다. 회사의 기밀사항, 자금문제와 관련된 서류들을 상자에 담아 세 대의 트럭 짐칸에 차곡차곡 옮겨 싣는 일이었다.

얼마 뒤 트럭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LG그룹은 본사 빌딩을 순식간에 ‘세탁’했다. 한밤의 해프닝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익명을 요구한 LG그룹 관계자는 “트윈타워내 일부계열사가 야간에 트럭과 직원을 동원했고 장부를 옮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점’과 관련해 그는 흥미 로운 언급을 했다. “LG그룹에 대검 중수부의 수사상황을 알려주는 검찰 관계자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로부터 ‘LG그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임박했다’는 정보를 받은 후 장부를 옮기는 작업을 개시한 것으로 들었다.”

실제로 며칠 뒤인 2003년 11월18일 대검 중수부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LG홈쇼핑에 대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트윈타워에 입주해 있지 않은 LG홈쇼핑의 경우 미리 압수수색에 대비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2003년 초부터 진행된 대선자금 수사과정에서 계열사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재벌그룹은 SK, LG, 삼성, 한화 등 다수다. SK가 압수수색에서 분식회계 장부 등 치명적 자료들을 검찰에 넘겨준 것을 지켜본 다른 대기업들은 정보력을 총동원, 압수수색 직전 중요 문서를 감추곤 했다는 얘기가 재계에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LG홈쇼핑에 대한 압수수색 20여일 뒤인 2003년 12월9일, LG의 불법 대선자금 제공 사실이 검찰에 의해 밝혀졌다. 검찰에 따르면 LG는 현금 150억원이 든 종이 상자 63개를 LG상사 물류센터 소속 2.5t 탑차에 실은 뒤 2002년 11월22일 오후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서 한나라당에 트럭째 넘겼다.

LG 간부 K씨는 요즘 자긍심에 상처를 입었다. “나는 ‘차떼기’를 숨기기 위한 또 다른 차떼기에 동원된 것 같다. 세계적 브랜드인 LG에 근무하는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150억원의 불법자금을 탑차에 실어 트럭째 정치권에 제공하고, 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각종 루트를 통해 압수수색 정보를 사전 입수하고, 야밤에 은밀히 직원들을 동원해 빌딩 전체에 산재한 방대한 비밀 장부를 트럭째 옮기는 일. 한국의 대기업들은 첩보작전 같은 이런 일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

신동아 2004년 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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