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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정치

‘첩첩산중’ 최병렬의 공천개혁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 글: 정연욱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yw11@donga.com

‘첩첩산중’ 최병렬의 공천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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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배수의 진을 쳤다.
  • 대대적인 당 개혁 없이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패배할 것이 뻔하기 때문. 하지만 당내 반발도 만만찮다. 예상치 못한 걸림돌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다.
  •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첩첩산중’ 최병렬의 공천개혁

1월1일 한나라당 서울시지부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최병렬 대표(가운데).

갑신년 새해를 맞은 한나라당엔 훈훈한 덕담 아닌 ‘내전(內戰)’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해 연말 불거진 당무감사자료 유출 파문으로 최병렬(崔秉烈) 대표의 주류 진영과 서청원(徐淸源) 전 대표의 비주류 진영이 한치 양보없이 맞붙은 세(勢) 대결이 정점(頂点)으로 치닫고 있다. 당내 일각에선 분당(分黨)의 전초전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돌 정도다.

1월1일, 새해 내방객을 맞은 서 전 대표의 서울 상도동 자택 분위기는 그만큼 험악했다. 지난해 12월31일 최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 서 전 대표의 노기(怒氣)는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특유의 독설은 더욱 거칠어졌다.

“보도된 당무감사 결과는 명백히 조작된 것이다. A, B 등급으로 판정됐다는 비공식 통보를 받은 원외 지구당위원장의 성적이 왜 C,D 등급으로 바뀌었나. 이런 정치적 학살을 감행하고도 ‘나 몰라라’하고 있으니 모종의 음모가 깔려 있는 것이 명백하지 않냐.”

이날 오후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의 핵심 측근인 하순봉(河舜鳳) 의원은 서 전 대표에게 급히 연락을 취했다. 공조 방안을 논의하자는 메시지였다. 두 사람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극비 회동, 향후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최 대표 진영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무감사자료 유출 파문을 방치할 경우 본격적인 공천작업을 앞두고 당이 걷잡을 수 없는 내홍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최 대표는 1월1일 상도동 자택으로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을 방문한 자리에서 “누군가 당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의도로 (당무감사자료를) 고의로 유출한 것 같다”고 일갈했다. 당 지도부가 고의적으로 당무감사자료를 흘려 공천 물갈이의 기반 조성 작업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비주류 진영의 공세를 차단하려는 계산에서였다.

최 대표는 ‘개혁 공천’의 명분을 앞세워 강공으로 나갔다. 그는 “원칙을 놓고 타협은 있을 수 없다”며 물밑 협상론을 일축했다. 현역 의원에 대한 과감한 물갈이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이 힘이 됐다. 최 대표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이재오(李在五) 사무총장과 박승국(朴承國) 사무부총장을 경질하면서 파문 수습에 나섰다. 대신 공천심사위원회 재구성 등 비주류 진영의 요구는 거부했다. 마냥 끌려다닐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나라당의 세 격돌은 결국 ‘개혁 공천’의 명분을 앞세운 최 대표 진영의 ‘판정승’으로 가닥이 잡혔다. 당무감사자료 유출 파문으로 불붙은 중진들의 잇단 불출마 선언도 최 대표의 당 장악력에 힘을 보태줬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의 단합이 절실한 과제라는 당내 요구는 서 전 대표가 꺼내든 공세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었다. 2003년 6월말 출범한 최병렬 체제는 이렇게 6개월여 만에 닥친 시련의 고비를 넘겼다. 이번 파문은 오히려 당내 기반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5,6공 이미지에 고령도 걸림돌

당내 분란이 수그러진 1월12일 최 대표는 당 출입기자들과 모처럼 저녁을 함께했다. 소주잔도 거나하게 돌렸다.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긴 최 대표는 “젊을 때 등산하면서 자주 불렀던 노래”라며 ‘전우여 잘 자라’란 군가를 힘차게 불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당시 출입기자들은 최 대표의 노래 에 4월 총선에 정치적 명운을 건 착잡함이 배어난 것으로 보았다. 최 대표는 “4월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되지 않으면 정계를 떠나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총선 고지를 넘지 못하면 1938년 생인 최 대표는 자연스럽게 정치권의 중심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앞으로 남은 3개월은 최 대표가 걸어온 정치 역정의 대미(大尾)를 마무리할 ‘길지 않은’ 시간이다.

당무감사자료 유출 파문을 봉합한 최병렬 체제가 4월 총선에서 무난히 ‘원내 1당’이 될 수 있을까. 넘어야 할 산은 많고 곳곳에 ‘암초’가 포진해 있다. 최 대표의 리더십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라선 것인지도 모른다.

우선 당내에서 총선을 총괄할 최 대표의 ‘상품성’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66세의 고령인 데다 5, 6공 출신 인사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는 최 대표를 앞세워 선거를 치를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만만찮은 것이다. 특히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에서 최 대표가 지원 유세에 나설 경우 득(得)보다 실(失)이 많을 것이란 수도권 의원들의 위기감은 심상찮을 정도다.

특히 1월11일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이 51세의 젊음과 패기를 ‘트레이드 마크’로 삼은 것은 최 대표에게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여권이 ‘젊음과 변화’를 앞세워 대립구도를 만들 경우 꼼짝없이 올가미에 걸려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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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연욱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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