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호

김성래 전 썬앤문 부회장 딸 장모씨 격정 토로

“문병욱, 노무현과 모든 걸 ‘공유’한다고 떠벌려”

  • 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4-01-28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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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협에서 대출된 115억원 용처 왜 추적 안 하나
    • 녹취록, 이준희씨가 검찰조사 받은 직후 제작
    • 서울지검은 고소인에게 ‘무혐의처분’ 통보도 안 했다
    • ‘남 죽이면 나도 같이 죽어야 함을 아실 나이 됐다’
    • 김성래의 일관된 진술, “이광재씨에게 500만원 줬다”
    • 문병욱, “노무현 당선됐으니 100만원 내놔라”
    김성래 전 썬앤문 부회장 딸 장모씨 격정 토로

    김성래 전 썬앤문그룹 부회장과 그가 옥중에서 문병욱 회장에게 보낸 편지.

    115억원대 농협 사기대출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김성래(54) 전 썬앤문그룹 부회장은 자신의 ‘입’과 ‘글’로 이른바 ‘썬앤문 게이트’를 촉발시킨 인물이다. 2003년 4월20일 구속된 그는 이후 자신을 사기혐의로 고소한 문병욱(52) 썬앤문그룹 회장이 전 동두천시장에 게 3억원의 금품을 제공한 사실을 폭로해 ‘역공’을 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검찰 진술을 통해 썬앤문그룹 감세(減稅)청탁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같은해 9월말 재판부에 “2002년 대선 막바지에 정신없이 바빴다”는 요지의 탄원서를 냄으로써 정치권에까지 파장을 몰고오는 등 ‘휘발성’ 강한 ‘입’과 ‘글’로 아직껏 세간의 주목대상이 되고 있다.

    김 전 부회장은 2002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양평TPC 골프장 회원권 가입신청서와 이사회 회의록 등을 위조해 농협중앙회 원효로지점에 제출한 뒤 37차례에 걸쳐 115억여원을 불법대출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현재 서울 영등포구치소에 수감중인 그와의 접촉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신 언론은 김성래 전 부회장의 구명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그의 맏딸 장모(31)씨와의 만남을 끊임없이 시도해왔다. 장씨는 김 전 부회장과 문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신동아’는 1월12일 장씨를 최초로 단독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서울 청담동 R호텔 1층 커피숍에서 밤 10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이뤄졌다. 장씨는 수십차례에 걸친 ‘신동아’의 요청 끝에 만남에 응했다. 그는 김 전 부회장과 문 회장의 관계, 노무현 대통령과 문 회장 간의 밀접한 관련성, 농협 사기대출 사건과 관련한 검찰수사의 부당함 등에 관한 이모저모를 강도 높게 털어놨다.

    -김 전 부회장이 한사코 무죄를 주장하는 것으로 안다. 농협 사기대출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를 어떻게 보나.

    “미진하고 부당한 점이 아주 많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농협에서 대출된 115억원의 용처를 왜 추적하지 않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돈의 행방이 정말 의문스럽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회계사에게 이 문제를 의뢰했더니 115억원 중 73억여원은 어머니(김성래 전 부회장)가 회장으로 있던 (주)계몽사에 돌아온 어음을 막는데 들어갔지만, 나머지 돈은 골프장 회원권을 분양하는 대지개발(주) 명의의 통장으로 들어간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또한 그런 거액의 불법대출이 고작 농협 직원 한 명을 뒤늦게 추가구속(농협 사기대출 사건의 공범으로 2003년 12월12일 구속된 농협 정모(32) 대리)시키는 것에 그칠 일인가. 더욱이 불법대출을 해준 농협 원효로지점의 지점장은 어머니를 만난 적조차 없다고 했다.

    게다가 어머니는 구속되기 직전인 2003년 4월2일, 같은해 1월의 계몽사 인수과정에서 자본 규모 등을 속이고 양도했다는 이유로 계몽사 전 대표 홍 ○○씨를 서울지검 서부지청에 고소했었는데, 서울지검 조사부측이 직접 사건을 맡겠다고 가져간 뒤 8개월을 질질 끌다 지난 연말에야 무혐의 처분했다. 그런데도 고소인인 어머니에게 그 결과를 통보하지도 않았다. 이게 말이 되는가. 서울지검 조사부는 2003년 5월에 정치자금 제공 등에 관한 관련자 진술을 다 받아놓고도 그후 한나라당이 특검 한다고 떠드니까 비로소 대검이 나서는 등 검찰이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수사자료를 선택적으로 공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농협사건 검찰수사 미진하다”

    -그렇다면 김진흥 특별검사팀에 바라는 게 있는가.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도 중요하겠지만 특검이 농협 사기대출 사건 수사의 미진함에 대해서도 철저히 재수사해줬으면 한다.”

    -김성래 전 부회장과 문병욱 회장은 왜 사이가 틀어졌나. 당초 무척 신뢰하는 관계였지 않나.

    “항간에선 문 회장이 어머니를 검찰에 고소하자 이에 발끈한 어머니가 문 회장의 동두천시장 금품 제공건을 터뜨리며 ‘응전’한 것으로 보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비록 문 회장이 어머니를 고소하긴 했지만, 어머니는 문 회장에 대해 나쁘게 얘기한 적이 전혀 없다. 문 회장은 어머니가 계몽사를 인수할 의사를 내비치자 5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한 적까지 있다. 한마디로 어머니와 문 회장은 ‘좋은 관계’였다.”

    -그렇지만 파문을 불러온 이른바 ‘녹취록’을 보면 ‘문병욱이가 나한테 와서 쩔쩔 무릎 꿇고 빌게 할 테니까…’ 등 문회장에 대한 반감이 담긴 직설적 표현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문제의 ‘녹취록’은 2003년 3월26일 서울 서초동 M모텔에서 농협 사기대출 사건 수습을 위한 대책회의를 가진 김성래 전 부회장과 그의 측근 3명(이준희씨, 김○○, 하○○)의 대화내용을 김 전 부회장의 오랜 부하직원이던 이준희(41)씨가 녹음한 테이프를 글로 옮긴 것이다. 이 녹취록의 일부 내용이 2003년 10월 공개되면서 농협 사기대출 사건의 불똥은 정치권으로 비화됐다.

    “계몽사의 총괄이사를 맡고 있던 이준희씨는 계몽사 전 대표 홍씨와 공모해 농협 사기대출 사건을 저지른 뒤 문 회장이 사기대출 사실을 알아채자 자신만 빠져나가려 녹취록을 제작했다. 이씨는 2003년 4월23일 농협 사기대출 사건으로 체포돼 서울지검 조사부로부터 조사를 받았는데, 이에 다급함을 느껴 이전에 몰래 녹음해둔 테이프를 급히 번문(飜文)한 뒤 검찰에 제출한 것이다.”

    “어머니와 문 회장은 ‘좋은 관계’”

    -그러나 이준희씨도 결국 2003년 4월26일 김 전 부회장과 같은 혐의로 구속되지 않았나.

    “그가 처음엔 검찰수사에 협조하면 자신이 구속을 면할 줄로 알았던 것 같다. 사실 동두천시장 금품 제공건도 이씨가 터뜨린 것이다. 어머니 집과 사무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당시에도 이씨가 앞장섰고, 이때 국세청 관련자료 등을 다 압수해갔다.”

    -국세청 관련자료라면 썬앤문그룹에 대한 감세 관련자료를 말하나.

    “그런 것으로 안다.”

    -김 전 부회장은 썬앤문그룹 감세청탁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가.

    “…잘 알지 못한다.”

    ‘신동아’가 입수한 서울지검 조사부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김 전 부회장은 2003년 4월23일 작성한 자필 진술서에서 (주임검사에게) ‘작년 국세청 일을 보시면 제 능력과 성실함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죽어가는 기업 살려주고 배신당한 제 심정이 어떻겠습니까’라며 ‘땀흘리며 이루어놓은 현재의 환경을 잃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한 바 있어 사실상 썬앤문그룹 감세과정에 깊숙이 개입했었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썬앤문그룹 특별세무조사를 둘러싼 감세청탁 의혹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의혹의 키를 쥔 핵심인물인 손영래 전 국세청장은 1월12일 공판에서도 “외부의 감세청탁을 받은 적도, 내부적으로 감세 지시를 한 적도 없다”며 썬앤문그룹에 부과된 세금 170여억원을 23억원으로 감액토록 부당하게 지시한 자신의 혐의(직권남용)를 계속 부인했다. 그를 수시로 접견하고 있는 변호인 박선주 변호사(동부제일법무법인)나 검찰총장 출신의 김각영 변호사(정진종합법률사무소) 등 5명의 변호인단 역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감세청탁 의혹과 관련, 검찰 일각에선 당시 세무조사 실무자로 썬앤문그룹측으로부터 감세 대가로 5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진 홍성근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3과장(구속) 선에서 감세행위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추론도 조심스레 흘러나온다. 이 같은 추론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다. 홍 전 과장은 검찰조사에서 손영래 당시 국세청장으로부터 ‘감세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지만, 홍 전 과장의 1심 변호를 맡았던 최춘근 변호사(법무법인 나라종합법률)는 “홍 전 과장이 처음엔 5000만원이 아닌 3000만원만 받았다고 변호인인 내게 말했는데, 나중에 검찰의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양성반응(거짓)이 나온 것으로 드러나 솔직히 변호인으로서 의뢰인인 그의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홍 전 과장의 주장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는 해도 그가 썬앤문그룹의 세금액수와 관련해 작성한 개인 메모에 ‘노’라고 쓴 한글표기가 영어의 ‘No’를 뜻한다는 진술에 대해 이를 반박할 결정적 물증이나 정황이 아직 확보되지 않은 만큼 섣불리 결론내리긴 어려운 상황이다. 또 세무전문가인 손 전 청장이 어떤 배경에서 무리하게 감세를 지시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해 감세청탁의 ‘배후’를 가리는 일은 특검 수사대상 중 초미의 관심사로 남아 있다.

    “감세청탁…아는 게 없다”

    -김 전 부회장이 문병욱 회장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낸 사실을 아는가.

    “나중에야 알았다. 어머니가 체포되기 전과 구속된 후 수차례 문 회장에게 농협 사기대출 사건과 관련해 결백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들었는데, 검찰은 무슨 이유에선지 가족인 나의 요구에도 전혀 열람시켜주지 않았다.”

    -편지를 보면 ‘(이준희씨가) 사과박스 이야기도 녹음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건 무엇을 의미하나.

    “아마 동두천시장 금품제공 건일 것이다.”

    ‘신동아’는 지난 1월6일, 김성래 전 부회장이 2003년 4월26일 서울구치소(당시는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에서 문 회장 앞으로 보냈던 편지를 입수한 바 있다. 수신지가 문 회장 소유의 ‘서울시 강북구 미아동 빅토리아호텔’로 돼 있는 이 편지는 일반 편지지 3쪽을 빼곡히 채운 분량. ‘존경하는 회장님께’로 시작하는 편지는 자신을 고소한 문 회장에 대한 원망, 그럼에도 문 회장이 싫지 않다는 자책 등이 담겨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편지는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썬앤문의 한 전직 간부직원은 “문병욱 회장은 김성래 전 부회장을 사기혐의로 고소하기에 앞서 두 달 가량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고소 결심을 굳혔으며, 그후론 김 전 부회장을 완전히 ‘아웃(out)’시켰다고 보고 그가 옥중에서 보내온 편지 2통을 뜯어보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편지의 후반부엔 유독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바로 “남을 죽이면 나도 같이 죽어야 함을 (문 회장도) 아실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이다. 김 전 부회장이 자신을 고소한 문 회장에게 띄운 ‘최후통첩’이었을까. 만일 문 회장이 이 편지를 읽어봤다면 과연 결과는 지금과 달라져 있을까.

    -2003년 1월16일 열린 김 전 부회장의 계몽사 회장 취임식에 썬앤문그룹 감세청탁 의혹과 관련해 이름이 거론된 민주당 P의원이 참석했었다는 썬앤문 전 직원의 말을 들었다. 사실인가.

    “참석 여부를 알지 못한다.”

    -취임식 행사를 촬영한 비디오테이프가 있을 것 아닌가.

    “그런 건 보지 못했다.”

    -김 전 부회장이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게 500만원을 줬다는 건 사실인가, 아닌가.

    “어머니의 일관된 진술이다.”

    이광재 전 실장은 2002년 11월 문병욱 회장에게서 1억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해 12월초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인 국민은행 간부 김모씨의 소개로 김성래 전 부회장을 만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500만원을 받은 사실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김 전 부회장은 지금도 “이광재 전 실장이 500만원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하지만, 내가 100만원어치 현금다발 10개를 가져가서 그중 5개를 이 전 실장에게 건넨 건 사실이다. 당시 문병욱 회장이 이 전 실장에게는 돈을 많이 줄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해서 절반만 준 것”이란 진술을 거듭하고 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아울러 감세청탁 의혹과 관련해서도 김 전 부회장은 특검수사에 임해 별도로 풀어놓을 만한 내용들을 감춰두고 있다는 뜻을 외부로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대선 개표일 새벽 걸려온 문 회장 전화

    -평소 문 회장을 만날 기회가 자주 있었을 텐데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던가.

    “‘나는 선배와 모든 것을 나누기로 한 관계’라는 말을 종종 했었다.”

    -그게 언제쯤인가.

    “2002년 12월20일 대선 개표일 새벽에 문 회장으로부터 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문 회장은 ‘지금 노무현 후보와 같이 있는데 그의 당선이 확정됐으니 내게 100만원을 내놓으라’며 ‘앞으로 나는 선배(노무현 대통령)와 모든 것을 함께 나누기로 했다’고 어머니한테 말했다. 알고 보니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어머니와 노무현 후보를 민 문 회장이 누가 당선될 것인가를 두고 100만원을 걸고 내기를 한 거였다. 문 회장이 2003년 1월4일 노무현 당선자의 명륜동 자택을 찾아 ‘호텔 한 채를 드리고 싶다’고 한 말을 나도 들은 적이 있는데, 문 회장은 그후로도 ‘노무현 대통령과 모든 걸 공유하기로 했다’는 취지의 말을 곧잘 했다. 어쨌든 노 대통령은 문 회장이 예전부터 알던 사람이지 어머니와는 원래부터 알던 사이가 아니다. 이광재 전 실장, 안희정씨 등도 애당초 문 회장이 먼저 알던 사람들일 뿐이다.”

    -김 전 부회장이 2003년 9월말 재판부에 제출한 자필 탄원서 외에도 몇 개의 탄원서를 더 써낸 것으로 안다.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나.

    “탄원서는 특정 내용을 폭로하기 위한 게 아니라 어머니가 자신의 날짜별 동선(動線)에 따른 알리바이를 입증하려 제출한 것이다. 탄원서가 더 있다는 사실은 나도 들었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살펴봐야 할 일이다.”

    장씨는 인터뷰 내내 김 전 부회장의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한껏 목소리를 높였지만, 감세청탁 의혹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그리고 그는 인터뷰 이튿날 기자와 다시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전날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깼다. 김성래 전 부회장은 오는 1월26일 1심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다.

    농협 사기대출 사건에서 썬앤문그룹 감세청탁 의혹, 그리고 대통령 측근비리로까지 번진 무성한 의혹들은 어떻게 귀결될까. 김진흥 특검팀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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