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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權府’ NSC, 조정·통제 권한 막강한 ‘정보의 저수지’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shamora@donga.com

‘新權府’ NSC, 조정·통제 권한 막강한 ‘정보의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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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참여정부 들어 외교안보정책의 사령탑으로 떠오른 이 기관이 주요 안보부처들과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는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NSC는 어떤 조직이며 어떻게 움직여왔고, 타 부처와의 갈등은 왜 불거졌나. 또 이를 해결할 방법은?
‘新權府’ NSC, 조정·통제 권한 막강한  ‘정보의 저수지’

지난해 9월 이라크 파병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NSC 상임위원회.

1998년 5월 세종연구소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외교안보정책 운영시스템을 들여다보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당시 새로 집권한 김대중 정부 외교안보수석실의 주요 인사들이 수 차례 연구소를 방문했을 만큼 정권 핵심부와의 깊은 교감하에 이루어진 이 연구는 특히 미국의 NSC 사무처를 공들여 탐구했다.

완성된 보고서는 백악관 NSC를 모델로 한 청와대 안보시스템 개편을 건의하면서 ‘NSC 사무처를 만들어 100명 규모의 스태프를 확보할 것, NSC로 정보보고를 일원화할 것, 정책조정을 체계화할 것’ 등을 주문했다. 당초 공개 예정이었던 이 보고서는 청와대에 전달된 후 공개하지 않기로 방침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했다. 정원 10여명의 NSC 사무처 조직은 만들어졌지만 실무기능과 권한은 임동원씨가 맡고 있던 외교안보수석실로 집중됐기 때문. 이후 5년 가까이 탁상공론으로만 떠돌았던 ‘NSC 강화방안’은 2003년 초 노무현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구성될 무렵 화려하게 부활했다. 모습을 드러낸 새 정부의 외교안보시스템은 1998년의 보고서에 담긴 건의내용과 거의 일치했다.

당시의 프로젝트를 총괄 진행했던 사람은 인수위에 참여했다가 훗날 NSC 사무차장이 된 이종석 당시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실장. 백악관 NSC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우연치고는 묘한 우연이다. 인수위에 참가했던 인사들은 “NSC 강화는 안보분야 인수위원들의 공통된 견해였지 이 사무차장 개인의 생각은 아니었다”며 “후보시절부터 여러 자문위원들이 NSC 강화를 건의해왔다”고 말한다.

당시 인수위는 왜 NSC 강화를 결정했을까. 인수위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우선은 2003년 초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한반도의 위기상황 때문에 보다 정밀한 위기관리시스템이 필요했다는 것. ‘북핵이 없었으면 NSC도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임동원 시스템’에 대한 반성. DJ 정부 시절 처음 마련된 NSC 상임위원회는 그 운영을 임동원이라는 개인의 역량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회의는 열렸지만 그 결과를 정책화하는 것은 외교안보수석의 결정에 달려 있었던 것. 이후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 통일 외교안보특보를 거친 임동원씨의 거취에 따라 논의구조와 결정방식도 바뀌었다. 각 부처의 정보가 통합·공유되지 못했고 부처간 이견을 조율하는 차관보급 회의는 상징적인 수준에 그쳤다. 한 인수위 참여인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임동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체제였다는 점이었다. 노 대통령에게는 임동원의 역할을 맡아줄 사람이 없었다. 외교안보현안을 직접 챙겼던 DJ와는 달리 노 대통령은 이 분야의 경험도 부족하다. 인수위원들은 여러 사람이 시스템에 따라 함께 고민하는 NSC로 임동원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다행히 당선자도 흔쾌히 응했다. 인수위 후반 무렵 백악관 NSC를 모델로 조직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1947년에 만들어진 백악관 NSC도 처음 한동안은 자문기구에 불과했다. 한국과 마찬가지였던 것. 그러다 1969년 닉슨 행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현재와 같은 위상과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100여명에 가까운 사무처 직원을 충원해 전략기획 등 독자적인 정책능력을 갖추고, 상황실 운영을 통해 각 부처 정보를 일괄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 둘러싼 정치환경

정치학자들은 닉슨이 이렇듯 NSC를 강화하게 된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키신저라는 강력한 인물이 NSC의 수장인 외교보좌관으로 입성했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국무부와 국방부, CIA의 전문관료를 신뢰하지 못했던 닉슨 본인의 성향과 당시 백악관을 둘러싼 불리한 정치 환경이다. 공화당 출신인 닉슨에게는 케네디와 존슨으로 이어진 민주당 집권기간 동안 이들의 안보철학에 익숙해진 관료조직도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때문에 닉슨에게는 기존의 관료조직을 견제하고 자신의 철학을 실현할 강력한 보좌진이 필요했다. 또한 계속되는 의회와 언론의 공격에 대항해 대응논리를 개발해 자신을 방어해줄 시스템도 필요했다. 이러한 필요성이 키신저의 임명과 NSC 스태프 조직 강화로 연결된 것이었다. 이 같은 닉슨의 NSC 강화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참여정부 출범 당시 노 대통령이 처해 있던 상황을 연상케 한다. 비록 정권교체는 아니지만 자신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정부 관료들,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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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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