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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 비자금 미스터리

200억 현금화 과정, 계좌추적 결과 현대측 진술과 달라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권노갑 비자금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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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억, 현금화 쉽게 12개 은행에 분산 송금 후 23회에 걸쳐 인출
  • ● 3000만달러는 권노갑에게 전달될 틈이 없었다
권노갑 비자금 미스터리
권노갑씨에게 전달됐다는 현대비자금 200억원 조성경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권씨 변호인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2000년 3월 현대상선이 조성했다는 200억원이 어떻게 은행에서 인출돼 현금화됐는지를 알 수 있는 계좌추적을 실시했다. 그 결과 계좌추적이 아직 완료되진 않았지만, 검찰의 공소사실이 잘못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가 나타났다.

현대상선 관계자들 증언에 따르면 200억원은 2000년 3월7, 8, 13, 14일 모두 4회에 걸쳐 현대상선 외화계정에서 인출됐다. 외화계정을 이용한 것은 해외거래선에 대한 용선료와 화물비를 지급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였다. 검찰은 이 돈이 4~5회에 걸쳐, 그러니까 한번에 50억~40억원씩 3월 중순~4월 초에 권노갑씨(정확히는 김영완씨)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비자금 조성작업의 실무자였던 현대상선 임원 유아무개씨는 현금화 방법에 대해 “일단 외화계정에서 은행이 관리하는 별단구좌로 이체해 매각한 후 별단구좌에서 자기앞수표로 인출한 다음 현금으로 교환했다”고 진술했다. 유씨에 따르면 4회에 걸쳐 별단구좌에 200억원 상당의 외화가 이체됐는데 그때그때 인출을 했다고 한다. 인출 횟수가 4회이므로 한번에 평균 50억원씩 수표로 빼내 현금화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계좌추적 결과 200억원(정확히 말하면 206억원)은 유씨가 말한 ‘은행이 관리하는 별단구좌’로 이체됐다가 4회에 걸쳐 인출된 게 아니라 외환은행 계동지점에 있는 현대상선 계좌에서 한미은행을 비롯한 12개 시중은행으로 분산 송금돼 총 23회에 걸쳐 5억~10억원 단위로 인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수취인은 현대상선이었다. 그중 한미은행 계좌로 송금된 10억원만 한번에 인출되었고 나머지 11개 은행으로 보내진 196억원은 4일(3월7, 8, 13, 14일) 중 2일은 5회씩, 나머지 2일은 6회씩 총 22회에 걸쳐 인출됐다. 여러 은행으로 돈을 나누어 송금하고 이를 억대 단위로 인출한 것은 현금화를 쉽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금화 쉽게 잘게 쪼개 송금

검찰의 수사내용과 다른 이 새로운 사실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200억원을 현금화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가에 따라 권노갑씨에게 돈이 전달된 시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1심 재판의 최대 쟁점은 돈이 전달된 시기였다. 애초 돈 전달시기를 3월 중순~3월 말로 잡았던 검찰은 재판 도중 공소장을 변경해 4월 초까지로 늘려 잡았다.

관련자들 진술에 따르면 이 사건 5인방(정몽헌, 이익치, 김충식, 전동수, 김영완)은 200억원이 권노갑씨에게 전달되는 기간에 모두 국내에 있어야 한다. 돈이 전달될 때마다 정 회장의 지시가 있었고 나머지 네 사람은 현장에서 손발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높아보이진 않지만 정 회장이 해외에서 돈 전달을 지시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나머지 네 사람은 국내에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네 사람이 2000년 3월에 국내에 함께 있던 날짜는 3월11, 12, 25, 26, 27, 28일 등 6일뿐이다(‘신동아’ 2004년 2월호 참조). 다들 해외출장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 중 일요일인 12일과 26일을 빼면(관련자들 진술에 따르면 일요일엔 돈을 전달하지 않았다) 남는 날짜는 4일뿐이다. 그 중 이틀은 토요일이다. 검찰이 재판도중 돈 전달시기를 4월 초로 늘려 잡은 것은 이렇듯 날짜의 경우의 수가 매우 제한됐기 때문이다(현대 관계자들의 애초 진술은 3월 말까지 돈을 날랐다는 것인데 재판과정에서 4월 초까지 나른 것으로 진술이 바뀌었다).

재미있는 것은 1심 재판부가 돈 전달이 가능한 날을 검찰보다 더 늘려 잡았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출입국 당일, 곧 출국 전 혹은 귀국 후에도 돈을 나르는 데 관여할 수 있지 않느냐고 추론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얘기다. 그러나 현실성이 매우 떨어지는 가능성임에 틀림없다.

나아가 재판부는 ‘4월초’라는 개념을 ‘4월 초순’으로 확대해석해 4월1, 3, 4, 10일에도 돈 전달이 가능했다는 분석을 내놓음으로써 ‘날짜에 쫓기는’ 검찰의 숨통을 터주었다. 2일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빠진 것이고 5~9일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정 회장과 이익치씨가 4월5일 정상회담 예비접촉차 출국했기 때문이다(정 회장은 4월17일에, 이씨는 4월9일에 귀국했다).

재판부 견해로는 3월7~14일에 인출한 돈이 권씨에게 전달되는 데 길게는 한달까지 걸린 셈이다. 그러나 이는 “돈을 전달하는 데 보름 정도 걸렸다”는 김충식씨나 전동수씨 증언과 어긋난다. 돈을 마련한 실무자였던 현대상선 임원 유씨는 “별단구좌에서 인출한 수표를 현금화하는 데 짧게는 2~3일, 길게는 일주일 내지 10여일 걸렸다”고 진술했다. 마지막으로 인출한 날짜가 3월14일이므로 ‘10여일’을 최대한 길게 잡아 19일이라 쳐도 4월1일을 넘어서진 않는다. 이렇게 보면 재판부가 돈 전달 가능 기간을 4월10일까지 늘려 잡은 것은 관련자들의 진술을 무시한 것이다.

이처럼 다소 무리해 보이는 검찰과 재판부의 판단을 떠받쳐주는 것은 “현금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현대측 진술이다. 김충식씨 진술에 따르면 정 회장은 “돈이 마련되는 대로 바로바로 (권노갑씨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유씨는 현금화 방법에 대해 “별단구좌에서 인출한 자기앞수표 금액이 너무 커 한 은행에서 (현금으로) 교환하기 어려웠다”며 “직원들을 데리고 직접 은행에 다니면서 자기앞수표를 5000만~1억원권으로 교환한 다음 그것을 다시 현금으로 교환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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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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