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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美 비밀문서로 본 격동의 80년대②

글라이스틴의 고뇌와 한 선교사의 현장기록

“광주엔 무자비한 진압만 있었을 뿐 어떠한 폭동도 없었다”

  • 글: 이흥환 美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글라이스틴의 고뇌와 한 선교사의 현장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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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가 5·18에 대한 “가장 균형잡힌 기록이자 분석”이라고 높이 평가했던 한 미국인 선교사의 5·18 광주 현장기록. 이 기록에 따르면 광주는 결코 폭동이 난무한 도시가 아니었다.
  • 광주의 분노는 ‘아주 못되게 행동한’ 공수특전단과 중앙정부에 대한 것이었으며, 중앙정부는 광주가 보기에 형평을 잃고 있었다.
글라이스틴의 고뇌와 한 선교사의 현장기록
광주사태 기간 내내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는 현지의 반미(反美) 분위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반미 분위기 조성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이 신군부의 병력 동원을 ‘승인(approve)’해 주었다는 말이 나돌았기 때문이며, 미국이 사태 악화를 방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광주 현지의 인식도 반미 분위기를 북돋웠다.

주요 임무는 법과 질서 회복

미국의 역할에 대한 광주 현지의 인식이 어떻든 간에 반미 정서나 반미 움직임이 발생한 데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주한 미 대사의 몫이었다. 주한 미 대사는 한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워싱턴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미국의 국익을 해칠 수 있는 반미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주한 미 대사는 워싱턴에 설명을 해야 할 처지였다.

군과 시위대 사이에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던 5월23일 금요일, 글라이스틴 대사는 반미 문제와 미국의 역할을 주제로 한 전문(電文) 한 건을 워싱턴으로 띄운다. 글라이스틴이 광주사태 기간에 워싱턴으로 발송한 전문 곳곳에 반미 감정에 대한 언급이 들어 있지만, 아래 두 장짜리 보고문에서는 반미 문제라는 단일 주제만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이 보고문의 제목은 ‘미국의 위치에 대한 한국 국내의 반응’이다.

『1980년 5월23일 09:03

제목 : 미국의 위치에 대한 한국 국내의 반응

1. 내용 전체

2. 우리는 현 한국 상황에서 미국이 취하고 있는 자세가 일부 지역에서 반미 움직임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음. 특히 미국이 공공질서 유지를 위한 특정 병력의 이동을 승인했다는 점이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될 수 있음. 아무런 무리가 방법으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 곤혹스러우며 이 때문에 이런 비판이 더 커지고 있는 실정임. 이런 감정을 폭발시키기에는 미국이 더없이 편리한 희생양인 셈임.

3. 위의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내의 모든 미국인 근무자와 미군은 지역 문제(광주 건 : 옮긴이)를 언급할 때 극도의 주의를 요하고 있음. 미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을 받을 때에는 근무 요원 모두가 참고 사항에 언급된 공식 문안의 내용만 활용할 것이며, 한국 상황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는 관련되지 않도록 자제할 것임.

미국의 병력 이동 승인 건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을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현재 주요 임무는 법과 질서의 회복이라는 우리의 확신을 재확인할 것임. 우리의 이런 조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임.

4. 워싱턴에서 나오는 그 어떤 공식 언급도 위에서 언급된 사항들을 감안해 주의해 줄 것을 요망함. 예를 들어 국방부 대변인(미 펜타곤 대변인 : 옮긴이)이 공식 회견 자리에서 미국이 광주에 병력을 떼주었다(chopped)고 한 발언이 한국 조간지에 일제히 보도되었으며, 이런 일은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음.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반미 분위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세를 낮추고 불필요한 언급은 삼가기를 요망함.』

신중한 글라이스틴

글라이스틴의 고뇌와 한 선교사의 현장기록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전 주한 미 대사였던 윌리엄 포터나 필립 하비브에 비해 더 신중하고 세심한 편이다. 특히 워싱턴으로 타전하는 문건의 표현이나 기술 방법에 있어 포터나 하비브에 비하면 워낙 완곡하고 조심스러워, 문맥을 잘 뜯어보아야 할 만큼 두드러져 보이는 용어나 어휘는 잘 선택하지 않는다.

물론 재외공관의 전문 작성 원칙과 관행을 벗어날 만큼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실한 문구를 선택하지는 않지만 전문 전체의 분위기가 꽤 차분하다는 것이 글라이스틴 재임시 주한 미 대사관에서 생산된 문서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글라이스틴 대사의 이런 성품이 광주사태 당시 미국의 행동 결정에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작용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원만하고 모나지 않은 원칙주의자로서 선비풍의 글라이스틴 대사가 박정희 시해에서 12·12 군부 쿠데타, 광주사태로 이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한국 정치 현실의 한가운데에 주역의 한 사람으로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뒷이야기는 풍성할 것임에 틀림없다.

광주사태 막바지에 현지 수습대책위원리에서는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행동’을 요구한 적이 있다. 광주 협상이 대책위 내 강온파의 의견 불일치로 난항을 겪고 있던 5월26일의 일로 계엄군이 광주에 재진입하기 하루 전이다. 대책위에서 당시 ‘뉴욕 타임스’ 광주 취재 기자였던 헨리 스캇 스토우크스를 통해 미국에 중재를 요청했던 것이다. 주한 미 대사관은 당시 상황을 워싱턴에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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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흥환 美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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