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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취재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 ‘KMH 오디세이(한국형 다목적헬기)’

꿈은 웅대하나 기반은 취약

  • 글: 이정훈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on@donga.com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 ‘KMH 오디세이(한국형 다목적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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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전에서 기동헬기와 공격헬기는 필수 전력
  • ●한국전과 이라크전에서 입증된 헬기의 효과
  • ●경부고속전철보다 시작 예산이 두 배나 많은 KMH
  • ●싸지만 위험한 ‘프로젝트 매니저’ 방식으로 추진
  • ●입찰 홍수, 그러나 이를 검증할 기관은 태부족
  • ●추력 1만5000파운드급 시장은 과연 만들어질 것인가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 ‘KMH 오디세이(한국형 다목적헬기)’
미국의 항공기 제작회사 ‘시코르스키(Sikorsky)’는 1930년대 말 세계 최초로 현대적인 헬리콥터(이하 헬기)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육군은 1942년 이 회사의 헬기를 처음 구입했으나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끝냈다. 2차대전은 헬기를 등장시켰지만 헬기의 유용성을 제대로 평가해보지 못하고 막을 내린 것이다.

헬기는 1950년 6·25전쟁을 통해 비로소 정식 데뷔했다. 그해 늦여름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UN군은 북진을 거듭해 초겨울엔 한중(韓中) 국경선에 접근했다. 11월24일 UN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연말이 되기 전에 전쟁을 끝내겠다”며 훗날 ‘크리스마스 대공세’라는 별명을 얻은 ‘종전을 위한 총공격(End the War Offensive)’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원산에 상륙했던 미 해병대 1사단이 함경남도 내륙인 장진호 쪽으로 쳐들어갔다.

이 시기 6·25전쟁에 막 참전한 중공군 30여만명은 야음을 이용해 산맥을 타고 남으로 남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적 후방 깊숙한 곳으로 침투해 크게 둘러싸는 대포위 작전을 편 것이다. UN군은 중공군이 얼마나 내려왔는지도 모르고 북진을 거듭하다 완전히 말려들었다. 가장 처절하게 포위된 것이 개마고원 인근의 산악지대로 진격했던 미 해병대 1사단이었다.

하늘이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계곡에 갇힌 미 해병대 1사단은 능선에서 쏘아대는 중공군의 총알 세례에 맥없이 쓰러졌다. 밤에는 영하 30℃까지 떨어지는 강추위에 병사들은 ‘동태’처럼 얼어붙었다. 결국 후퇴가 최선의 선택이 되었는데, 문제는 중국 인민지원군의 대포위 전술로 퇴로 개척이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안전지대에 있는 UN군은 중공군의 저지와 험악한 지형 때문에 구조대를 보내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러다 찾아낸 방법이 헬기였다. 좁은 계곡에서도 이착륙할 수 있는 헬기를 이용해 부상자를 실어 나르기 시작하면서 미 해병대 1사단은 어렵게 어렵게 원산으로 철수해 나올 수 있었다. 훗날 미 해병대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 장진호 후퇴작전을 ‘새로운 방향으로의 공격’으로 치장했는데, 이 공격의 최선봉에 선 것이 바로 헬기였다.

그후 헬기는 6·25전쟁 내내 활발하게 활용되었다. 병력을 수송하거나 적진에 침투한 아군에게 보급품을 전달하거나, 적군의 동향을 추적하는 정찰 목적 등으로 널리 사용된 것이다. 1947년 9월18일 육군 항공대가 공군으로 독립한 후 이렇다 할 항공세력이 없던 미 육군은 이후 헬기를 육군 항공의 주력으로 삼았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은 헬기 편대의 굉음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 육군은 부상을 당해 정글에 고립된 병사들을 안전지대로 데려오기 위해, 그리고 정글 깊숙한 곳에 미군 병사를 투입하기 위해 헬기를 사용했다. 물론 베트콩을 찾는 정찰 임무에도 이용했다. 당시 미 육군은 벨(Bell)사가 제작한 헬기를 주로 이용했는데, 1962년 이 헬기를 ‘기동헬기 제1호’라는 뜻의 UH(Utility Helicopter)-1으로 명명했다.

오래지 않아 미 육군은 UH-1을 공격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냈다. 전투기처럼 기관총을 다는 것. 기관총과 탄약을 실으면 매우 무거워지므로 이 헬기에는 전투병이 타지 못하고 조종사와 부조종사만 탑승한다. 미 육군은 이 헬기를 공격헬기란 뜻으로 AH(Attack Helicopter)-1으로 명명했다. 베트남전이 끝난 후 공격헬기는 적 병사를 잡는 무기에서 전차를 잡는 ‘탱크 킬러’로 발전하게 되었다.

1963년 한국 육군은 처음으로 UH-1을 도입하고 이어 AH-1도 도입했다. UH-1과 AH-1은 현재도 한국 육군 항공의 기본 전력이다. 개발·생산된 지 40여년이 흘러 미국에서는 박물관에 가 버린 ‘구닥다리’를 한국 육군에서는 아직도 주력으로 할용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군은 신규 헬기 사업을 펼치게 되었다.

현재 미 육군 사단은 7개 여단 체제로 조직돼 있다. 3개 전투여단에 포병여단·항공여단(헬기부대)·공병여단·사단지원여단(보급부대) 체제인 것이다. 헬기부대인 항공여단이 사단에 배속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육군이 겪은 가장 큰 조직 변화이다. 110∼122대의 헬기로 편성된 항공여단은 최선봉에서 사단 전투를 이끌어간다. 이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3월 발발한 이라크전쟁이다.

싸울 목표 없애버린 아파치

미군은 이라크군에 항공기와 미사일 전력을 퍼부어 ‘충격과 공포’를 준 후 3사단을 앞세워 지상전을 감행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라크의 정예사단들이 나서서 미 3사단에 강력히 저항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3사단은 ‘거침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빠르게 진격했다. 3사단은 불과 1주일 만에 서울-부산보다도 먼 600㎞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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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훈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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