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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美 비밀문서로 본 격동의 80년대③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OPCOM)과 5·18 이후

美, 전두환 퇴진시키려 주한 미군 감축 검토했다

  • 글: 이흥환 美 KISON 연구원 leescorner@hotmail.com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OPCOM)과 5·18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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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피살 이후 워싱턴의 최대 관심사는 전두환이었다. 권력실세로 떠오른 전두환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백악관과 CIA는 전두환에게 퇴진압력을 가하기 위해 주한미군 감축방안까지 검토했다.
  • 카터 대통령은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직후 보낸 축하메시지에서 “내년 초 새 헌법으로 선거를 치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OPCOM)과 5·18 이후
1989년 6월19일, 한국사에 영원히 남게 될 그야말로 ‘역사적인’ 공식문서 하나가 탄생한다. 이른바 ‘1980년 5월 대한민국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미국 정부 성명서’라는 것이다.

1988년 여름 국회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이하 광주특위)를 설립하면서 글라이스틴 주한 미대사와 위컴 장군에게 광주특위에 출석해 증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미 정부에 의해 거절당했다. 그러자 다시 48개항의 서면 질의서를 미 국무부에 전달했고, 이에 미 정부가 ‘성명서’라는 이름으로 미국 입장을 전달한 것이 바로 이 문서다.

이 문서를 ‘역사적’이라고 한 것은, 담고 있는 내용이 광주 5·18의 진상을 밝히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도 아니고, 미 정부가 발표한 공식 성명서이기 때문은 더욱 아니다.

우선 광주특위의 질의 내용과 형식이 ‘역사적’일 만큼 유치하기 짝이 없다. 전문가들이 작성한 질의서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도대체 어떤 답변을 기대하고 이런 식의 질문들을 던졌을까 싶을 정도다.

- 한국군 특전사가 연합사 작전통제권에 속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 폭동 진압 임무인 ‘충정 작전’ 수행을 북한에 대한 공격 수행을 주임무로 하는 특전사 부대에 맡긴 근거는 무엇인가?

- 당시 위컴 장군과 글라이스틴 대사는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실권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 광주사태가 있은 후, 주한 미대사관은 공정한 선거를 통한 문민정부의 수립을 원했고, 한편 유엔군 사령부는 한국의 안보를 위해 군사정권 수립을 원했다는 설이 있다. 이것이 사실인가? 전두환씨가 권력을 강화하는 것을 위컴 장군이 도왔는가?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미 정부의 답변은 이런 것들이다. ‘결정을 내린 한국 당국에 물어봐야 할 것이다.’ ‘앞의 성명서와 논평을 참조하라.’ ‘그런 소문과 주장은 아무런 근거도 없고 사실이 아니다.’

특위는 신군부에 물어야 할 사항들을 미국에 물었고, 국가간 공식 질의서를 통해 술자리에서 입씨름하기에나 알맞은 질문을 던졌다. 결국 특위가 미 정부로부터 얻은 것이라고는 ‘제대로 알고나 물으라’는 식의 ‘훈계’ 정도였다.

“12·12 이후 미 국익 큰 변화 없다”

광주특위가 미국의 입을 통해 광주사태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나 자료를 얻고자 했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광주특위는 미국의 답변을 듣기보다는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추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민주화를 원한다는 미국이 12·12와 광주사태를 지켜보기만한 속셈과 꿍꿍이가 무엇이었느냐는 게 정말 묻고 싶은 내용이었고, 결국 미국의 국익을 위한 잘 계산된 대응이었다는 것이 정작 듣고 싶은 대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광주특위는 질의를 할 적절한 주체가 아니었고, 질의 형식도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특위의 질문 가운데에는 이런 것이 들어 있다. ‘인권 옹호 정책을 펴던 카터 행정부였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미국의 국익이 한국 민주화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결과, 한국 군사당국의 폭력 사용(쿠데타)을 묵인했던 것이 아닌가?’

질문이라기보다는 추궁과 단죄에 더 가깝다. 특위가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짐으로써 만족했다면 미국을 상대로 하고 싶은 말을 했을지는 모르나, 정작 추궁과 단죄의 대상인 신군부에 광주의 참극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나 광주사태 규명을 위한 객관적인 자료는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꼴이 되고 말았다.

광주특위의 이 질의서를 받은 후 미국은 질의에 직답하는 형식을 취하는 대신 먼저 75개 항목으로 자신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밝힌 성명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특위의 질의에 대해서는 간단한 논평과 함께 성명서를 참고하라는 형식의 답변서를 첨부함으로써 특위의 질의서 자체를 평가 절하하는 노련미를 한껏 과시했다.

광주특위는 신군부의 일원인 노태우 정권하에서 가동되었기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입법부가 상식적으로 봐도 답변의 주체가 아닌 것이 분명한 미국 정부에 터무니없는 형식의 질의서를 작성해 보내고, 국가 공식문서로 훈계를 들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부끄러운 역사적 사건이다.

5·18은 광주에서 시작해 광주에서 끝난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미 정부도 위의 ‘성명서’ 서론에서 ‘미국의 견해와 행동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부터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과 이에 따른 일련의 사건 속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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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흥환 美 KISON 연구원 leescorner@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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