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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정치

노무현의 ‘腹心’ 이광재, 밀사·메신저로 종횡무진

  • 글: 이 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reamland@donga.com

노무현의 ‘腹心’ 이광재, 밀사·메신저로 종횡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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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10월 청와대를 떠났다가 17대 총선으로 국회 입성에 성공한 이광재 의원. 그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여전하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서 국회의원으로 신분이 바뀌었을 뿐 노무현 대통령을
  •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李光宰) 전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이 의원 ‘배지’를 단 지도 두 달 가까이 흘렀다. 이른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많지만, 노 대통령의 속내를 정확히 읽고 이해하는 사람은 이광재 의원이 유일하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공통된 평가다.

16년간의 보좌관 생활 끝에 배지를 단 이 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해서 많은 이가 궁금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난 두 달간 그의 활동은 거의 알려진 바 없다.

탄핵바람을 타고 17대 국회 입성에 성공한 열린우리당 초선 정치인들이 자신의 존재와 얼굴을 알리기 위해 이슈가 있을 때마다 튀는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고, 때로는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의원은 당선 이후 의원총회를 비롯해 본회의 상임위원회의 등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공식행사에는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언론과의 인터뷰라든지 개인적 소신을 밝혀야 하는 자리는 ‘은둔’에 가까울 정도로 피했다. 기자들의 전화에 응답하지 않는 것은 국정상황실장 시절과 다름없고, 현안에 대해서도 일절 말하지 않아 이제는 기자들의 취재원 ‘리스트’에서도 빠져 있다.

현 정권에서 노 대통령을 빼고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이 의원은 지금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을까.

“4년 뒤 다시 모시겠습니다”

이 의원의 과거 청와대 생활은 오전 7시부터 자정을 넘기는 시간까지 계속되는 ‘중노동’이었다는 게 본인의 고백이다. 술고래로 알려진 이 의원은 전날 아무리 과음을 해도 오전 7시에는 정확하게 사무실에 나와 일을 챙기는 성실성으로 노 대통령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한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은 통치권자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비중이 달라지는 위치다. 전직 대통령들은 이 자리를 그다지 크게 활용하지 않았지만 이 의원의 기획력과 통찰력을 높이 평가하는 노 대통령은 국가의 주요 현안에 대해 공식적인 보고라인 이외에 이 의원이 국정상황실을 통해서 다양한 정보를 입수하고 최종 의사결정을 위한 해법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국정상황실을 초호화 멤버로 꾸렸다. 연세대 화학과에 입학했다가 법학과에서 졸업한 그는 최종학력이 학사지만 실원 대부분은 해외 유수 대학의 박사 출신이었다.

이 의원의 업무 능력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폭넓은 독서에서 나오는 전문가 이상의 식견, 정치 감각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특히 16년간 ‘정치인 노무현’을 보좌한 ‘동지’이면서, 주요 국정 현안을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자리를 맡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은 곱지 않았다. 늘 그를 시기의 대상으로 삼아 비판했고, 행여 꼬투리라도 잡히면 사정없이 ‘물어뜯기’ 일쑤였다.

이런 분위기 탓에 이 의원은 청와대 생활 8개월 동안 인생에서 가장 조심스럽게 살았다고 자부할 만큼 금욕적이고 모범적인 생활을 했다는 게 주변의 공통된 평가다.

문희상 비서실장의 출근 시각에 맞춰 현관에 나와 대기하면서 승용차 문을 열어주고 가방을 들고 사무실까지 안내한 일화는 이 의원의 청와대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의원과 절친한 사람들은 그가 ‘룸살롱’이라고 부르는 포장마차를 안다. 서울 평창동 집 주변에 있는 이 포장마차에서 소주 폭탄주를 마시는 게 이 의원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금욕적인 생활’에도 이 의원은 지난해 10월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현재 열린우리당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당시 통합신당 의원총회에서 “정보와 권력을 독점하는 문제의 핵심인물을 반드시 경질해야 한다. 이 실세를 바꾸지 않고는 전면쇄신해봐야 실효가 없다”며 이 의원을 겨냥했다. 명백한 잘못이 없는 한 부리는 수족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스타일로 정평이 난 노 대통령은 곧바로 사의를 표명한 이 의원을 끝까지 만류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대통령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다”며 며칠 뒤 사표를 제출했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이 의원이 대통령에게 ‘저 때문에 의원님(이 의원은 대통령을 지금도 노 의원이라고 부른다)이 부담을 갖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직을 훌륭히 수행하시고 은퇴하시는 4년 뒤에 다시 모시겠습니다’고 말하자 노 대통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물을 흘렸다.”

할 수 있는 게 출마밖에 더 있나

이 의원은 사표 제출 후 “나에게 이 자리는 권력이 아니라 의무였고 사명이었다. 열심히 그리고 바르게 하려고 노력해왔다. 나 때문에 대통령에게 누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깨끗이 물러나는 길을 선택하겠다. 대통령에게 힘과 용기를 모아 달라. 그래서 대통령과 나라를 소중히 여기는 성숙한 풍토가 조성되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 의원은 곧바로 고향인 강원도로 내려갔다. 그때부터 강원도의 산을 오르며 인생에 대한 장고(長考)에 들어갔고, 총선 출마를 결심하게 된다. 물론 이 의원의 총선 출마는 본인이 원해서라기보다는 노 대통령을 위한 차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1남 5녀 중 둘째로 태어난 이 의원은 수줍음이 아주 많다. 1만여 권의 장서가 말해주듯 책읽기와 사색을 좋아하지만, 남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성격이다. 이 의원은 총선 출마를 결심하고 나서 아내에게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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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 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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