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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향한 진중권의 직격탄

개혁 팔아 집권했으면 제발 개혁 좀 해라

  • 글: 진중권 칼럼니스트·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com

참여정부 향한 진중권의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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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면 곧바로 ‘개혁의 적’이 된다. 비판의 근거는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은 곧 개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3공 시절 반박(反朴)은 ‘북한’으로 통했고 참여정부에서 반노(反盧)는 ‘수구’로 통한다. 이게 정상인가?
참여정부 향한 진중권의 직격탄
과거에는 정권을 비판하면 정권이 나서서 손을 봐주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요즘은 정권 지지자들이 그 험한 일을 대신 떠맡나 보다. 정권을 비판하면, 사이버 공간에서는 일단 개혁의 적으로 몰린다. 실제로 이 사회에는 개혁의 적들이 있다. 그들은 ‘개혁’이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과는 좀 다른 이유에서 정권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정권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대통령을 비판하면 곧바로 ‘개혁의 적’으로 몰아버린다. 참 피곤한 현실이다.

비판의 근거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대통령은 곧 개혁의 화신이다. 그리하여 ‘대통령도 때로 비(非)개혁적 내지 반개혁적일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가 그들에게는 ‘네모난 동그라미’와 같은 형용모순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대통령이 곧 개혁이라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개혁에 대한 비난이 될 수밖에. 그러다 보니 대통령에게 제발 개혁 좀 하라고 다그치는 목소리마저 졸지에 ‘개혁의 적’으로 몰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판하면 ‘대통령의 실패를 바라는 자’란다. 물론 이 사회에는 대통령의 실패를 정말로 바라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과 대통령은 이제까지 사이좋게 잘 지내왔다. 취임 후 노 대통령이 추진한 대부분의 정책은 보수 야당과 언론의 입맛에 잘 맞았다. 파병, 대미외교, 노동, 자유무역협정(FTA),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환경 문제 등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안에서 대통령은 늘 그들 편이었다. 아닌가?

도대체 누가 대통령의 실패를 바라는가. 개혁의 약속을 배반한 대통령 자신이다. 내 기억에 따르면 지금의 대통령은 ‘개혁’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므로 대통령으로서 그의 성패는 개혁을 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개혁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이미 현실감각을 잃은 일부 열광적 지지자들을 빼면,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진심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는가. 그럼 자신이 약속한 대로 개혁을 하면 된다. 왜 안 하는가. 이해할 수가 없다.

권력은 선출되지 않는다

이게 혹시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서 나오는 실망일까. 그렇지 않다. 대선 전에 노무현 후보의 지지자에게서 원고를 청탁받은 적이 있다. 노 후보에 관한 책을 내는데 글을 기고해달라는 것이다. 그 청탁을 완곡하게 거절하며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내가 글을 쓰면 당신들이 노 후보에 관해 가진 환상을 무참히 깨뜨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당신들이 가진 환상이 정치적으로 필요하다고 보기에, 굳이 그 환상을 깨고 싶지 않다.”

흔히 ‘권력 창출’이니 ‘권력 재창출’이니 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가소로운 소리다. 대통령은 선출해도, 권력은 결코 선출되지 않는 법이다. 진정한 권력이란 정계, 재계, 관계를 이루는 엘리트 사이의 망(網)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그렇게 이루어진 권력의 함수에 불과하다. 때문에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곧 천지개벽에 준하는 일대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실은 문학적 의인법에 기초한 유아적 ‘환상’에 불과하다.

대선자금 수사를 생각해보자.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큰돈 나오는 구멍은 똑같지 않던가. 기업이 한 쪽에 돈을 줘도 다른 쪽에 보험을 들어둬야 하는 처지. ‘노사모’의 어느 시인은 ‘희망돼지’를 추억하며 정치의 본질은 돈이 어디서 나오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여당이나 야당이나 돈 나오는 구멍은 하나. 어차피 자기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고, 발언하고, 법을 만들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대통령이 바뀌어도 권력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 메커니즘의 물적 토대다.

이를 알고 있기에 내가 대통령에게 건 기대는 그 지지자들의 것보다는 훨씬 소박하고, 내가 한 요구는 그들의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었다.

문제는 취임 후 대통령의 행보가 이 소박한 기대, 이 현실적 요구마저 배반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의 직위를 가지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마저 하지 않았다. 그가 특유의 승부사 근성을 가지고 한 것이라고는 오직 하나, 쓸데없는 일에 ‘정권의 명운’을 거는 일뿐이었다. 그 각오로 개혁을 했더라면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노무현 정권의 등장으로 외려 이 사회에 보수성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가령 파병문제를 보자. 만약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되어 파병을 결정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거리는 파병반대 물결로 넘실거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어 파병을 결정하니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당연히 파병에 반대해야 할 지지자의 절반 이상이 대통령의 발자취를 따라서 파병찬성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렇게 개혁정권 덕분에 사회 분위기가 외려 보수화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어디 파병문제뿐인가. 이른바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대통령의 뒤를 따라 함께 보수화하고 있다. 대통령의 행보를 옹호하다가 거의 도착증세를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토록 믿었던 “노 대통령마저 못 하는 개혁이라면, 그것은 애초에 실현이 불가능한 꿈”이라는 식이다. 하긴, 그리스도도 못 하는 일이라면 그 누군들 할 수 있겠는가. 이리하여 그들은 자신의 교리나 다름없던 개혁의 가능성을 스스로 믿지 않기로 했다. 개혁의 사도들이 가장 열심히 개혁의 불가능을 주장하는 역설. 초현실주의적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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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진중권 칼럼니스트·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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