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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발목 잡은 정수장학회 탄생의 비밀

부산일보· 문화방송 ‘기부 승낙서’ 인감 위조했다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박근혜 발목 잡은 정수장학회 탄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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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뒤 김씨의 부인 송혜영씨도 관세법 위반 및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일본에 머물던 김씨는 4월말 귀국했는데, 김포공항에서 중정에 연행돼 곧바로 부산교도소에 구속 수감됐다. 고등군법회의에 회부된 김씨는 5월24일 결심공판에서 7년형을, 나머지 임원들은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5년까지 모두 실형을 구형받았다.

그런데 이때 군검찰은 김씨에게 농지개혁법 위반 및 관세법 위반에 대한 혐의만 적용했다. 재판부의 선고도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달 남짓 지난 시점이 바로 김씨가 기부승낙서에 도장을 찍은 문제의 6월20일이다.

박정희 “곧바로 내려가 풀어줘라”

당시 김씨로부터 도장을 받았던 고원증 변호사(1963년 준장 예편)는 최근 기자와 두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이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사실을 털어놨다. 바로 김씨의 혐의사실 자체가 터무니없는 내용이었고, 당시 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의 지시로 이틀 뒤에 석방했다는 것. 고 변호사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내가 도장을 받으러 부산에 내려갔을 때 박 의장이 (수사)기록까지 다 보고 올라오라고 했다. 다음날 김용순(군수기지사령관)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박 의장을 만났을 때 김용순이 김지태씨를 집행유예로 석방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면 김씨에게는 전과가 생긴다. 사실 김씨는 명의 신탁한 토지를 등기하는 과정에 몇 사람이 생사도 확인 안 되고 연락도 안 돼 도장을 파서 찍은 것과 부인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준 것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박 의장에게 ‘당시 10억 가까운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는 등 좋은 일을 했는데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그럴 필요 있느냐. 앞으로 경제건설이 중요한데 공소취하해서 풀어주면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랬더니 박 의장이 김용순에게 ‘너 곧바로 내려가서 풀어주라’고 지시했고, 김용순은 그날 전용비행기로 부산으로 내려가 풀어줬다.”

-김지태씨 입장에서는 억울했겠다.

“그렇다. 내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 변호사는 1961년 5·16쿠데타 직후인 5월20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법무장관을 지냈고, 그해 7월 5·16장학회를 설립한 장본인이다. 장학회 설립과 동시에 5·16장학회 상임이사와 문화방송 사장을 역임하는 등 장학회 초기단계에 누구보다 깊숙이 개입했다. 그만큼 내막을 잘 아는 사람도 없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처음부터 모든 게 박 의장의 지시에 의해 이뤄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고 변호사가 5·16장학회 설립작업을 맡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박 의장이 이후락(당시 최고회의 공보실장)을 통해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만나보니 ‘몇 달 전에 기부를 다 받아놓았는데 재산이 자꾸 유출된단 말이야. 자네가 문화방송 사장을 하면서 김지태가 기부한 3개 회사로 장학재단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1주일 후 이번엔 평소 친한 후배인 신직수(다잇 최고회의 의장 법률특보)를 통해 또 연락이 왔다. 장학재단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법률지식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맡아달라는 거다. 두 번씩이나 거절할 수 없어 ‘경험이 없으니 성과가 없더라도 책망은 마시라’며 결국 받아들였다.”

-김지태씨가 박 의장에게 이미 기부를 했다는 이야기인데, 그걸 확인할 수 있는 문서를 본 적이 있나.

“그건 중정이 갖고 있겠지. 난 알 바 아니었고, 박 의장 말만 듣고 법률적으로 필요한 서류가 부족해서 보완작업만 한 것이다. 재단등록을 하려면 기부하겠다는 서류가 필요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걸 받으러 부산에 내려갔다가 온 거지.”

-5·16장학회 30년사를 보면 10만평의 땅을 장학회에서 국방부로 무상 양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떻게 된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전혀 기억이 없다. 내가 장학재단을 설립했을 때 땅은 없었다. 분명히 말하건대 기본재산은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 한국문화방송 등 3사뿐이었다.”

5·16장학회 설립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962년 7월7일 재단법인 창립총회가 열렸고, 1주일 뒤인 7월14일 교육부, 7월18일 서울시로부터 설립허가가 떨어졌다.

고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장학금을 지급할 재원 마련이 시급했다. 3사를 기본재산으로 등록하긴 했지만 이들 회사들은 장학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었던 것. 한국문화방송의 경우 사옥을 지으면서 오히려 2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는 게 고 변호사의 주장이다.

-장학회 창립임원을 보면 이관구 재건국민운동 본부장이 이사장을 맡았고, 윤일선(학술원 종신회원), 김연수(삼양사 회장), 이병철(삼성물산 회장), 김용우(전 국방장관) 등 쟁쟁한 인물들이 많다. 누가 선정한 것인가.

“최고회의 의장이 직접 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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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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