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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美 비밀문서로 본 격동의 80년대⑤

전두환-레이건 서울 정상회담

“저는 각하의 ‘힘을 통한 평화정책’을 지지합니다”

  • 글: 이흥환 美 KISON 연구원 leescorner@hotmail.com

전두환-레이건 서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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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3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전두환-레이건의 정상회담.
  • 전두환은 2차 비공개 회담에서 레이건을 앞에 두고 민주주의에 대한 ‘강의’를 한다. 이에 레이건은 “미국에서는 무력으로 정부를 뒤엎을 수 없다”고 뼈 있는 대꾸를 하는데…
전두환-레이건 서울 정상회담
전두환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레이건 미 대통령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번은 1981년 2월초 전두환의 방미로 이루어진 워싱턴 정상회담이고, 또 한번은 2년 후인 1983년 11월 중순 레이건의 방한으로 성사된 서울 정상회담이다.

이 두 정상회담은 장소와 시간이 다른 만큼 회담의 겉모습이나 기본 성격도 판이했다. 대통령이든 총리든 ‘아쉬운 쪽’이 상대방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첫 번째 워싱턴 정상회담 때의 전두환이 그랬고, 두 번째 서울 정상회담의 레이건이 그랬다. 어쨌든 전두환 입장에서 보면 첫 번째는 제 발로 워싱턴을 찾아갔고, 두 번째는 앉아서 레이건을 맞았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문서는 전두환-레이건의 서울 정상회담 대화록이다. 배석자 없이 두 사람만이 마주 앉는 소위 ‘비공개 단독 회담’의 대화록도 있고, 실무 관계자가 배석하는 ‘확대 정상회담’ 대화록도 있다.

1983년 11월 당시 한미 관계나 국제 정세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전두환-레이건 두 사람의 대화록은 마지막 한 구절까지 읽어볼 만한 재미가 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들이 만나면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 정상은 ∼을 재확인하고 ∼에 이해를 같이했다’ 따위의 외교적 수사가 덧칠해지기 이전의 ‘날것’이고, 두 정상간의 공동성명이니 합의문이니 하는 이름의 ‘문패’가 붙기 이전의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대화 속에는 격식을 차리기 위한 인사말이나 상대방에 대한 찬사가 들어 있긴 하지만, 이런 의례적인 인사말에 이어 본론을 끄집어내는 대화술도 엿볼 수 있다.

정상회담은 가장 치열한 외교전의 현장이고, 대통령은 한 나라의 국익을 대변하고 관철해야 하는 최고위급 외교관인 만큼 말 한 마디, 단어 하나, 토씨 하나에도 의미가 담겨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정치철학, 지도력, 성품, 국제 조류를 들여다보는 통찰력 등이 모두 드러나게 마련이다. 물론 말 속에 뼈가 들어 있을 것이고, 허튼소리인 듯싶지만 괜한 말 따위는 늘어놓을 시간조차 없는 것이 정상회담이기도 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론과 실제가 꼭 일치하란 법은 없다. 전두환-레이건 대화록이 그 이론과 실제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우선 두 사람 사이의 비공개 회동 대화록이다. 미 국무부의 2급 비밀 문서다.

“그레나다 개입은 평화유지의 최선책”

『다음은 1983년 11월12일 오후 2시30분, 한국 서울의 청와대에서 있었던 레이건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 간의 비공개 회동 대화 내용을 메모 형식으로 기록한 것임(통역관이자 외교관인 데이비드 스트라웁이 작성했음).

레이건 대통령 : 오찬석상에서 영부인(이순자 : 옮긴이)께도 말씀드렸듯이, 우리 미국과 전세계는 랭군 참사와 사할린의 대한항공기 격추사건 당시 각하께서 보여주신 신중한 대처에 존경을 표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베이루트 사건 때 각하와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우리가 행동하기를 원했지만 그렇게 했더라면 그건 전쟁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저는 나카소네 총리를 만났을 때 일본이 북한을 응징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뻤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 점심식사 때도 말씀드린 바 있듯이 올해 우리는 두 번의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각하와 미 국민이 보여준 지지에 한국민은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1981년 각하를 뵈었을 때 저는 오늘날의 국제 상황이 아주 불확실하다는 점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지금은 국제 상황이 더욱 위험해졌습니다. 이 시대는 용기와 지도력을 갖춘 위대한 정치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각하와 같은 지도자를 갖게 된 점을 우리는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각하의 힘을 통한 평화정책을 지지합니다.

일부에서는 각하의 그레나다 개입(그레나다 침공 : 옮긴이)을 비판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평화를 유지하는 최선책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각하의 선택을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리고 전세계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각하께서 취한 행동의 동기와 정당성을 이해하리라고 믿습니다.

레이건 : 대단히 감사합니다. 워싱턴을 떠나기 하루 전날, (그레나다 침공을) 비판하는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가라앉을 만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레나다에서 구출된 400여명의 의과대학생들이 자신들을 구출해준 젊은 병사들과 해병들을 만나기 위해 백악관에 온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위험에 처해 있던 우리를 구해줘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젊은이들이 함께 자리한 것을 보길 잘했습니다.

우리는 그레나다에서 소련제 무기와 수백만 발의 탄알로 가득한 창고들을 찾아냈습니다. 갖가지 문서도 그 창고에서 나왔는데, 그것들을 모두 공개 전시하기 위해 앤드루 공군기지로 실어왔습니다. 워싱턴에 주재하는 각 나라의 대사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할 참입니다. 인구가 고작 10만명뿐인 이 작은 섬에 무려 1만5000명의 병사들이 있었다는 것이 상상이나 되십니까? 그레나다에 있던 수백 명의 쿠바인들은 단지 건설노동자였을 뿐이라는 쿠바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일부 문서도 찾아냈습니다. 그중에는 건설노무자 명단으로 보기에는 이상한 문서도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대공포 부대와 박격포 부대원의 명단이었습니다. 그들이 거주하던 막사도 모두 군대 막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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