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실종’된 정수장학회 토지 2만평의 행방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4-09-22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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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장학회 전신인 5·16장학회가 부일장학회 이사장 김지태씨로부터 강제 기부받은 부동산의 일부를 부산시에 매각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정수장학회측이 김씨의 부동산 전부를 국방부에 양도했다는 그간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특히 매각 시점이 국방부에 땅을 양도하기 직전이어서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부일장학회 이사장 고(故) 김지태씨의 유족이 박정희 군사정권에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땅은 모두 10만147평이다. 지금까지는 10만950평으로 알려졌지만 김지태씨가 1980년 5·16장학회에 보낸 ‘반환청구서’와 국방부 각종 공문에는 10만147평으로 기록돼 있다. 800평 정도의 차이가 있는 셈인데 누군가의 계산상 실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땅은 1962년 5·16장학회를 거쳐 1963~64년에 국방부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또 그후 국방부가 땅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의 땅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씨의 기부 토지 중 국방부가 증여받은 것으로 확인한 토지는 8만4712평. 1만5435평이 사라졌다. 또 현재 국방부 소유로 남아 있는 것은 2만5734평에 불과하다. 나머지 7만4413평 중 1991년 부산시의 땅과 맞교환하면서 넘어간 7580평을 제외한 부분에 대한 기록은 없다는 것이 국방부의 공식 답변이다. 결과적으로 6만6800여평의 땅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현재로서는 오리무중인 셈이다.

    일부 언론에서 땅의 일부를 국방부가 일반인에게 매각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지만 수박 겉핥기 수준. 과연 그 넓은 땅이 어떤 절차를 거쳐 누구에게 넘어간 것일까.

    열린우리당 조성래 의원(정수장학회진상조사단 단장)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관할법원인 부산지방법원으로부터 과거 김씨 및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명의신탁된 땅 일체의 등기부등본 사본을 요구해 받아냈다. 그러나 사라진 땅의 행방에 대한 의문을 푸는 데는 실패했다. 40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땅 필지가 분할 또는 다른 번지수로 통합되면서 등기부에 남아 있는 것은 20~30%에 불과했던 것.



    하지만 확보된 등기부등본을 통해 몇가지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가 국방부로 양도하기 직전 김씨의 땅 일부를 부산시에 매각한 것이 드러난 것.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1125-9번지 외 5필지 약400평으로 지목(地目)은 도로.

    해당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땅의 명의는 1962년 7월22일 김지태씨로부터 5·16장학회로 바뀌었고 1963년 6월27일 부산시로 넘어갔다. 5·16장학회에서 부산시로 넘어간 등기원인은 ‘매매’. 지목은 도로라 해도 사유지인 만큼 등본에 ‘기부체납’이 아닌 ‘매매’로 기재됐다면 분명 5·16장학회가 돈을 받고 부산시에 팔았다는 이야기다.

    더욱 의아한 것은 매각 시점. 5·16장학회가 1963년 6월24일 기본재산변경을 위해 문교부 장관에게 제출한 공문을 보면 이사회는 6월21일 문제의 땅 10만147평 전부를 국방부에 기증하기로 의결했다. 그해 3월27일 ‘땅을 양여해달라’는 김성은 국방부 장관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되면 5·16장학회는 이사회에서 국방부 기증을 의결한 지 불과 1주일 만에 땅의 일부를 부산시에 매각한 셈이 된다.

    그랬음에도 5·16장학회는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65년 3월12일, 문교부 장관에게 김지태씨의 땅 10만147평을 국방부에 양여한 것처럼 보고한 것으로 당시 ‘기본재산변경보고’ 문건에 기록돼 있다.

    조성래 의원실 정광모 보좌관은 “아무리 도로라도 엄연히 사유지였던 만큼 5·16장학회가 부산시에 매각하고도 국방부에 양여한 것처럼 서류를 작성한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부산시와 정수장학회측은 문서상으로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당시 전후 상황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할 입장이다. 워낙 오래 전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

    정 보좌관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땅이 무려 6만6000여평에 이르는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며 “지금까지 확보한 등기부등본은 관련 땅의 4분의 1밖에 안 되지만 가능한 한 서류를 모두 찾아서 땅의 행방을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수장학회 소유재산 처리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주변의 이사장직 사퇴권유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노무현 정부를 상대로 대표직을 건 ‘국가보안법 수호’라는 정면승부수를 띄웠다. 정수장학회 재산 처리문제는 이제 여야간 정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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