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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사망 25년, 왜 지금 박정희인가

박정희 리더십 다시 보기

‘인권 희생’으로 이룬 ‘경제성장 영도력’ 재평가 돼야

  • 글: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학 tgpark@snu.ac.kr

박정희 리더십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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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를 평가하면서 경제성장의 영도력만 기억하려는 시도가 그의 유산인 IMF 환란 이후에도 지속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보편적인 규범을 잣대로 시대상황과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장교로, 남로당 당원으로, 쿠데타의 주동자로, 경제개발 명분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무시하면서 장기집권한 대통령으로서 박정희는 특정 시기나 특정 활동만으로 평가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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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26일 오후 박정희 대통령이 그의 마지막 공식행사가 된 삽교호 준공식에 참석해 배수갑문 스위치를 누르고 있다.

역사학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주제이면서 가장 다루기 힘든 분야가 인물연구다. 한 인물의 생애는 개인사(個人史)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과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따라서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가 한 인물의 생애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대상 인물의 가족문제는 대표적인 사적 영역에 속한다.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가족의 재산정도, 가족의 성격, 그리고 몇째아이로 태어났는가 등은 사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요소다. 이와 함께 학업기간에 만났던 스승과 친구들, 학업성적 및 태도 등도 인물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사적 영역이다. 사적인 영역은 주로 대상 인물의 성격을 판단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공적인 영역은 주로 대상 인물이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 인물의 사회적인 경력과 관련된다.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인 만큼 시대 배경과 특징은 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대상 인물이 살았던 시기의 시대적 사명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여러 가지 행동을 평가할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예컨대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에 대한 평가가 식민지 시기와 민주화된 시기에서 동일하게 나타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 영역과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연구보다도 어렵다. 대상 인물의 사적인 영역에 대한 정보가 풍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인물이 풍미했던 시대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객관적인 인물연구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국가개입 극대화의 성공

박정희는 역사연구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다. 지금은 과거사 청산 논란이 불거지면서 새삼 부각되고 있지만 역사학계에서 박정희를 주목한 것은 꽤 오래 전 일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개발시대’의 정상에서 한 사회를 이끌었던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한국현대사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서는 후진국의 경제개발에 있어 ‘국가’의 역할과 관련된 논쟁이 연결돼 있다. 이는 사적인 영역보다는 공적인 영역의 문제로 개인 박정희의 역할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박정희가 주도했던 시기의 한국정부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의 문제다. 그럼에도 당시 한국정부에서는 지도자의 의사가 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박정희 정부에 대한 평가는 곧 박정희 개인에 대한 평가와 직결된다.

1970년대 후반 이후, 후진국의 경제성장과 관련해 한국의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경험은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돼왔다. 1950년대부터 여러 국가가 경제개발을 추진했지만 한국과 대만 등 극소수의 국가만이 성공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했기 때문에 그 비밀을 찾는 것이 연구대상이 됐던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추동했던 것은 ‘개발국가’와 관련된 논의였다. 즉 한국과 대만, 그리고 두 나라보다는 좀더 일찍 경제성장을 이룩한 일본의 경우에서, 국가가 경제체제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자본주의적 시장논리 속에서 국가의 개입은 원칙적으로 부정됐음에도 이들 동아시아 3국에서는 경제개발 과정에 국가의 개입이 극대화됐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개발국가의 경제성장에서 국가의 개입 정도는 1929년 경제대공황 이후에 나타났던 케인스의 ‘보이는 손’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때로는 시장질서를 왜곡하면서까지 국가가 경제체제를 흔들었으며, 가격제도는 물론이고 금융기관을 국가가 장악하는 현상까지 있었다. 지금 국제무역제도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공정거래의 대표적인 사례로 국제통화기금(IMF)나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불공정거래라고 판정받을 수도 있는 심각한 정도의 개입이었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대만의 경제성장 과정을 연구한 학자 차머스 존슨, 앨리스 암스덴, 그리고 로버트 웨이드는 이러한 현상과 관련, 국가 전체가 하나의 ‘주식회사’로 운영됐다고 평가했다. 국가, 경제체제, 국민이 하나의 주식회사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운영되는 형태를 띠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나중에 ‘개발국가론’으로 체계화됐다.

박정희의 좌익경력에 대한 미국의 고민

이후 개발국가론은 후진국이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 불가피한 시스템으로 평가됐다. 즉 자원과 자본이 극히 한정된 후진국에서 효율적으로 경제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한 곳을 상정하고, 한정된 자원과 자본을 전략적인 지점에 투입해 효율을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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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학 tgpa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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