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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사망 25년, 왜 지금 박정희인가

“나라 위해 흙탕물 뛰어든 지도자, ‘흙 묻었다’고 깎아내려서야…”

‘개발독재 선봉’ 남덕우 전 총리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나라 위해 흙탕물 뛰어든 지도자, ‘흙 묻었다’고 깎아내려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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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 교수, 정부 비판 많이 하던데 이제 맛 좀 봐”
  • ■ 과(過) 합리화도, 공(功) 무시도 옳지 않다
  • ■ ‘IMF사태’씨앗 뿌린 건 사실, 그러나 후대 정부 잘못이 더 크다
  • ■ 지역간 경제 불균형은 성장전략의 부산물
  • ■ 금융기관 부실은 박정희식 관치금융의 폐해
  • ■ 효율적 경제발전 위해 강압정치 불가피
  • ■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 보상해줘야
“나라 위해 흙탕물 뛰어든 지도자, ‘흙 묻었다’고 깎아내려서야…”

남덕우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가경영의 기본원리를 충실히 지킨 현실적 지도자였다”고 회고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치적은 그에 대한 온갖 부정적 평가를 희석시켜왔다. 박 전 대통령을 맹렬히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부분만큼은 인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 정도로 박정희 정권하의 고도성장신화는 한국인의 머릿속 깊이 각인돼 있다. 평균적인 한국인은 이렇게 말한다. ‘박정희가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한 건 맞다. 그러나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았나.’

5공 초 총리를 지낸 남덕우(80) 산학협동재단 이사장은 박정희 정권 때 5년간 재무부 장관을 맡았고 4년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했다. 또 1979년엔 1년간 청와대 경제특보로 일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최후를 지켜봤다. 가히 개발독재의 주역이라 할 만하다.

한국경제 근대화의 산 증인인 만큼 9월10일 산학협동재단 이사장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의 초점은 개발독재의 공과(功過)에 맞춰졌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힘이 있고 여유가 있었다. 차분하게 자신의 논리를 펴는 데서 원로학자의 경륜이 느껴졌다. 인터뷰에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과오와 개발독재의 부작용을 인정하면서도 경제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상황논리를 내세웠다.

그가 박 정권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1961년 미국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따고 귀국했어요. 박정희 정부가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세우고 정책을 펴나가던 때였지. 서강대 교수로 있으면서 평가교수단 일원으로 대통령에게 경제문제에 대해 자문했어요. 그때만 해도 정부관료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어요. 그저 교수를 천직으로 여기고 있었지요. 그런데 자꾸 정부에서 부르는 통에 시간을 뺏기다보니 스스로에 대한 회의가 생겼어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미국에 돌아가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맘먹었죠. 그래서 교수초청 프로그램에 지원했어요.”

1968년 6월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 교환교수로 부임했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평가교수단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가 끝난 후 그가 미국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 대통령이 따로 방으로 불렀다. 평가교수단 회의는 총리실에서 열렸는데, 박 대통령은 매번 참석해 경제문제에 대해 학자들과 토론을 벌이곤 했다.

“청와대에 들어가니 박 대통령이 묻더군요. 아주 가냐고. 1년 후 돌아온다고 대답하자 처자와 부모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요. 두고 간다고 하자 비서실장에게 지시해 내가 없는 동안 가족들의 생활을 돌봐주도록 조치했습니다.”

1969년 6월 그는 미국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석 달 후 재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박 대통령의 제 일성이 ‘거 남 교수, 정부정책을 많이 비판하던데 이제 맛 좀 봐’였어요. 실제로 그 후 13년 동안 쓴맛 단맛 다 맛봤지요.”

“여러분은 부인과 정답게 살라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또 인간적 면모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요.

“강직한 군인 타입이지. 정말 청렴한 사람이고. 정치자금을 많이 거뒀지만 자신을 위해 축재한 건 없어요. 장관 시절 청와대에 보고하러 들어가면 한복 차림의 육 여사가 직접 주스를 쟁반에 담아 내왔지요. ‘이 더운데 얼마나 수고 많냐’고 따뜻한 인사말을 건네곤 했습니다. 육 여사가 서거한 후 빈소에서 밤을 새우는데 박 대통령이 비통한 표정으로 말하더군요. ‘살아있을 때는 저놈의 여편네 없어졌으면 했는데 일을 당하고 보니 정말 통절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러니 여러분은 부인과 정답게 살라’고.”

-박 전 대통령의 치적을 꼽는다면요.

“한마디로 북쪽의 무력적화통일을 거부하는 안보태세를 확립하고 이 나라 국민을 전통적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점입니다. 1960년대 초 우리 현실은 경제적 빈곤과 침체 속에서 북쪽의 적화통일전략의 함정에 빠지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그런데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력과 지도력이 보이지 않았죠. 이런 위기에서 5·16 정변이 일어난 겁니다. 그 후 불과 18년 만에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한국이 각광받는 산업국가로 탈바꿈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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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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