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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사망 25년, 왜 지금 박정희인가

“박근혜 대표는 부친 과오 제대로 알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유신 피해자’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박근혜 대표는 부친 과오 제대로 알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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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 사회로의 진입 가로막는 ‘박정희 신화’
  • ■ 박정희 리더십 칭송은 동양적 전제주의 발상
  • ■ 독재 아니면 경제개발 안 된다는 건 세계적 논쟁거리
  • ■ 밀고꾼, 기회주의자가 국가지도자 돼서야
  • ■ 유신 때 덕 본 사람들은 입 다무는 게 역사에 대한 도리
“박근혜 대표는 부친 과오 제대로 알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유신시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던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박정희 부활현상에 대해 “독재에 대한 병적인 향수”라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이부영(62) 의장은 유신의 직접적인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이 의장은 민주화운동을 하는 동안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투옥됐는데 그중 두 번이 유신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첫 번째는 1975년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 대변인 시절 언론자유를 외치다 긴급조치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년6개월간 옥살이를 한 것, 두 번째는 1979년 민주화 요구 집회를 주도하다 계엄령위반으로 구속된 사건이다.

그런 만큼 유신의 심장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평가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그와 맞서고 있는 야당 대표가 박정희 정권 시절 퍼스트 레이디 노릇을 했던 박근혜 의원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의장은 9월초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정당회의 참석차 3박4일간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인터뷰는 그가 중국에서 돌아온 직후인 9월6일과7일 이틀에 걸쳐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인터뷰에서 그는 유신시절 ‘가해자’들의 참회를 요구하는 한편 ‘박정희 신화’가 우리 사회가 열린사회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터뷰 전날인 9월5일 노무현 대통령은 MBC 시사프로그램 ‘2580’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소신을 밝혀 이 법을 둘러싼 논쟁의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이 논쟁을 바라보는 이부영 의장의 마음은 한없이 무겁다. 다섯 번의 구속 중 네 번이 이 법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유신시절 이 법은 전가의 보도였다. 국가안보를 지키는 법이라기보다는 정권안보를 수호하는 무법의 칼이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로서 폐지 논쟁을 바라보는 소회가 남다를 텐데요.

“애초 좌익이나 공산주의자들을 처벌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 정치권력에 의해 악용된 거지요. 유신시절 수많은 민주화단체가 이 법에 의해 빨갱이 조직으로 몰렸어요. 당시 공안기관에 있으면서 용공조작에 관여했거나 유신의 덕을 봤던 사람들이 현 정부를 좌파정권이라고 얘기할 때마다 묵은 상처가 도지는 느낌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들은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되죠.

이번에 내가 중국에 갔다왔잖아요. 중국 공산당이 주최한 제3회 아시아정당대회였는데 35개국 82개 정당대표가 참석했습니다. 공산당에서 극우정당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정당이 모였어요. 회의장에서 필리핀 우파 정당인 라카스당의 총재인 아로요 대통령이 ‘ideological richness’, 즉 ‘이념적 풍요로움’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아시아 대륙만큼 다양한 민족과 인종, 종교가 얽혀 있는 곳도 없습니다. 각양각색의 정당을 보며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왜소하고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왜 그렇게 드는지…. 그들은 좌파 우파 따지지 않고 더 잘사는 방법에만 관심을 갖고 있어요. 정당의 이념과 관계없이 서로 교류하고 평화번영을 얘기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좌파니 빨갱이니 하고 따지고 있잖아요.”

‘이부영은 빨갱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음 구속된 게 동아일보 해직기자 신분이던 1975년이죠?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데에는 정권의 압력이 작용했던 것인가요.

“알 수 없지. 1975년 3월 동아일보에서 쫓겨나왔다가 6월에 끌려갔어요. 동아일보 광고 사태가 해결될 즈음이었습니다. 중앙정보부의 공작에 의해 좌파로 몰렸어요. 우리(동아투위)와 동아일보를 분리시킬 목적에서 그런 사건을 일으킨 겁니다.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운동을 좌파들의 소행으로 꾸미기 위해. 그런데 잡혀가기 전에 이미 ‘이부영은 빨갱이’라는 소문이 사내에 돌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정권 차원의 공작이라고 봐야 하나요.

“권력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빨갱이로 몰아 사상적으로까지 죽인 건 심했죠.”

이 의장은 1961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애초 기계공학도를 꿈꾸었던 그가 정치학과를 지망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어난 4·19 때문이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가 시위 도중 총탄에 숨지는 것을 지켜보며 정치를 공부해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의장이 대학에 입학한 지 3개월 후 5·16이 일어났다. 이 의장에게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은 ‘4·19로 움튼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은 자’일 뿐이었다.

“입학하자마자 그런 시련에 직면했어요. 5·16은 내 젊은 시절을 반독재민주화투쟁에 바치는 계기가 됐어요. 그 무렵 장준하 선생을 만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지 깨우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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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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