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호

5년 선고받은 獄中 정대철의 격정 토로

“정치 신의라곤 쥐뿔도 없는 이 정권, 넌더리난다”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4-10-25 11:5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어떻게 이런 판결이… 하늘에 다른 뜻이 있는 건가”
    • 김원기 의장, 신당입당조건으로 당 대표, 비례대표 1번, 사건해결 세 가지 약속
    • 대통령 특사 때문에 대법원 상고 포기하지 않을 것
    • 인권위에 ‘인권탄압’, 헌재에 ‘평등권 침해’로 제소 결심
    • 한화갑·정몽준·고건 대안세력 결집위해 정대철측에 ‘노크’
    5년 선고받은 獄中 정대철의 격정 토로
    10월14일 오전 10시, 정대철 전 의원의 변론을 맡았던 이흥수 변호사는 착잡한 심경으로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판결 직전 정 전 의원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 그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이 변호사는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정 전 의원의 질문에 “뇌물혐의에 대해 무죄가 될 확률은 3분의2이고, 유죄가 될 확률은 3분의1이다. 무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자신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검찰조사와 1심 재판에서 정 전 의원에게 건넨 4억원이 뇌물이라고 진술했던 굿모닝시티 전 대표 윤창열씨가 2심 재판과정에서 “뇌물이 아닌 정치자금이었다”고 기존의 진술을 뒤엎는 ‘양심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윤씨는 “검찰조사와 1심 재판에서 뇌물이라고 주장했던 것은 검찰의 강압수사 때문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10월11일 오후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는 정 전 의원에게 뇌물죄를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했다. 윤씨의 ‘양심선언’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이날 판사가 낭독한 판결문 내용 중 일부다.

    “윤창열은 여러 차례 검사의 조사를 받으면서 구체적이고 상세한 진술을 했고, 조서내용과 윤창열의 학력, 경력, 지능 정도를 볼 때 강압수사나 검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허위로 진술한 것으로 볼 수 없다. … 윤창열이 사업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채까지 얻어 돈을 전달한 것을 보면 명시적으로 청탁한 것은 없다고 하더라도 건축허가와 다소 관련된 묵시적인 청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선고한다. 주문. 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5년에 처한다. 금 4억2000만원을 추징한다.”



    재판부의 판결문을 듣는 순간, 이 변호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정 전 의원은 선고가 끝난 뒤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이 변호사에게 조용히 손짓을 했다. 구치소로 바로 와달라는 신호였다. 이 변호사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변호사 가방속 한 장의 사진

    이 변호사는 굳은 표정으로 법원 건물을 나서자마자 긴 한숨과 함께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그러고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늘 판결을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이 거듭되자 겨우 무거운 입을 열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어떻게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나. 재판부는 윤창열의 2심 진술에 신뢰성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어떻게 1심 진술만 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윤창열의 진술에 문제가 있다면 1, 2심 진술 모두 부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을 좀 정리해봐야겠다.”

    이 변호사는 정 전 의원의 심경이 어떨지 뻔히 알면서도 판결이 내려진 뒤 이틀 동안이나 그를 찾지 않았다. 얼굴을 볼 면목도 없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정 전 의원을 접견하기로 마음먹은 날이 3일째 되던 이날 아침이다. 이 변호사의 가방에는 한 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이 변호사가 오래 전 정 전 의원의 모친인 이태영 박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구치소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40분쯤이었다.

    이 변호사는 정 전 의원에 대한 변호인 접견신청서를 내고 접견대기실에 앉아 기다렸다. 잠시 후 정 전 의원이 모습을 나타냈다.

    “이 변호사님, 저 왔습니다.”

    “어…, 왔어.”

    함께 접견실로 들어가 앉자마자 정 전 의원이 웃었다. 허탈함이 짙게 배어 있는 웃음이었다. 이 변호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미안하네.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왔네. 자네가 손 떼라면 당장 그만두겠네.”

    그러자 정 전 의원이 이를 말렸다.

    “아닙니다. 윤창열이 두 번이나 양심선언을 했는데…. 이건 사람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하느님의 뜻이 아니면 이럴 수가 없어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하늘의 뜻이 있는 것 같습디다. 여기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어쩌겠습니까.”

    정 전 의원의 말에는 깊은 자조가 묻어났다. 판결 3일 전 “나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은 사람들은 다 나갔는데 왜 나는 못 나가나. 이번에도 잘못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불만을 터트리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이 변호사는 정 전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내심 바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판결 직후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과 유인태 의원, 문학진 의원 등 여당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연일 구치소로 정 전 의원을 위로차 방문해 “조금만 참아라. 얼마나 오래 있겠느냐”며 ‘조만간 풀려날 것’ 같은 뉘앙스의 이야기를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어머니 사진 앞에 흘린 눈물

    이 변호사도 올해 안에는 풀려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정 전 의원이 특별사면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특사로 풀려나려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야 하고, 그러면 정 전 의원은 ‘뇌물 전과자’라는 오명을 영원히 벗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특사라는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는 정 전 의원이 못마땅했다.

    “왜 굽실거리며 기어나오려 하느냐. 나는 반대다. 내가 너라면 끝까지 간다. 특별사면으로 나오면 그건 송장이다. 5년 실형 받은 놈이 노무현이 봐줘서 나왔다는 낙인이 찍힌다. 네 건강이면 앞으로 20년 동안은 치매 안 걸리고 살 수 있다. 20년 동안 그런 굴레 속에서 살고 싶은가. 내가 비록 거칠기는 해도 비굴하게 살지는 않았다. 우리 비굴한 인생 살지 말자.”

    이 변호사는 “그동안 속에서 천불이 나서 여러 차례 변호를 그만두려 했지만 이 사진을 보고 계속 맡기로 했었다”며 준비해간 사진을 보여줬다. 정 전 의원은 그 사진을 보고 한참 울었다.

    이 변호사는 정 전 의원의 부모와의 인연으로 5년 전 경성사건 때부터는 정 전 의원을 위해 무료변론을 해주고 있다. 정 전 의원은 중요한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이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은 번번이 이 변호사의 뜻과는 다른 선택을 해왔다. 지난해 신당 추진세력이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도 이 변호사는 정 전 의원의 신당행을 강력히 반대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한 달 후 신당을 택했다.

    김원기의 세 가지 약속

    이 변호사의 이야기다.

    “그때 정대철이 일본으로 나갔을 때 김원기(현 국회의장)가 일본까지 찾아와 집요하게 신당 입당을 설득했다. 그러자 김상현 민주당 의원이 나가서 만류했다. 정대철이 들어와서 고민하기에 내가 그랬다. ‘너 들어가면 죽는다. 한나라당이라는 거대한 바위를 들기 위해서는 지렛대 밑에 괼 돌멩이가 필요하다. 작은 돌멩이로는 들 수가 없다. 너 정도 돼야 쓸모가 있지. 가면 그 돌멩이밖에 더 되겠느냐’고. 그렇게 신당행을 말렸지만 신당으로 갔고 결국 구속되지 않았나. 정대철이 나중에야 ‘형님 말씀이 맞았다’고 후회하더라.”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 전 의원은 구속된 후 김원기 의장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변호사는 정 전 의원의 그 속내도 잘 알고 있다. 2심 판결이 나오기 며칠 전 이 변호사는 기자에게 정 전 의원이 김 의장에 대해 왜 그토록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털어놨다.

    “김원기는 일본에 있는 정대철을 찾아와 세 가지 카드를 제시했다. 당 대표와 비례대표 1번, 그리고 굿모닝시티 사건을 원만히 해결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민주당도 비슷한 제안을 해왔지만 결정적으로 사건을 해결해줄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정대철이 신당을 선택한 이유이자, 김원기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김 의장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혀 상식 밖의 이야기다. 분당 될 때 김 의장과 정대철 의원은 방법의 차이가 있었을 뿐 같이 갈 운명을 갖고 있었다”며 “두 사람은 입당의 조건을 주고받을 사이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서로가 위험에 처했을 때 이심전심으로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 만큼 별도의 약속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전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대해서도 몇 차례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추석 직전인 지난 9월21일부터 25일까지 지병인 고혈압이 악화돼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바 있다. 당시 그는 병원을 찾은 지인들에게 “정치 신의라곤 쥐뿔도 없는 이 정권, 정말 넌더리난다”면서 “밖으로 나가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 변호사도 “지난번 병원에 있을 때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몇 차례 했고, 그 이야기가 노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법적 해결 가능하면 특사 포기

    사실 정 전 의원의 성토가 구치소나 병원 밖으로 새어 나온 것은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 또는 여당 지도부가 2심 재판부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주거나, 아니면 재판부가 알아서 처신하기를 바라는 정 전 의원측의 노림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일 정 전 의원측에서 그런 기대를 했다면 2심 재판부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한 셈이다.

    이 변호사가 전하는 정 전 의원의 심경에서도 그런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판결에 대한) 불만은 정치권력이 사법부에 영향을 미칠 때 하는 소리다. 지금 보면 정치권력은 사법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공소장을 변경해서 출소했는데 집권당 대표는 못 나가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다. 검찰에 대한 불만이 크다. 그런데 검찰의 태도가 과연 독자적인 건지, 아니면 집권층의 의지인지 모르겠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두 사람은 더 이상 권력에 기대지 않고, 권력을 믿지도 않을 생각이다. 이 변호사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한다. 그동안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는 전원 철수한다. 그 변호사가 해볼 만하다고 판단하면 특별사면도 포기한다. 그게 우리가 내린 결론이다”고 전했다. 정치적 해법보다는 법적 해결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내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이 변호사가 밝힌 인권위 제소 이유다.

    “검찰은 2003년 6월28일 윤창열을 구속한 뒤 7월2일 서울구치소에 수감할 때까지 5일 동안이나 검찰청 수사관실에서 재웠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그 후 164회나 부르고, 공판에 앞서 리허설까지 했다. 과연 이게 공정한 재판인가. 다른 사람들의 재판도 이렇게 하는가. 수백억 원씩 받은 사람은 자진해서 출두하게 하고 왜 정대철만 집에서 강제로 구인했는지도 의문이다.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했는데 아직까지 진정인 조사 한번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조사를 해서 결론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검찰은 이 진정건에 대해 아무런 답변 없이 법원으로 추송했다. 법원이 무슨 조사권한이 있다고 조사를 하라는 것인지 정말 기막힐 노릇이다.”

    청와대 진정건이란, 올해 1월9일 정 전 의원이 자택에서 강제 구인되자 부인 김덕신씨가 1월20일 “체포여부를 두고 논란이 인 국회의원 8명 중에서 검찰이 정대철 의원 한 사람만 물리적인 방법으로 강제구인하고 나머지 7명은 평온하게 자진 출석하도록 배려한 것은 불공평한 차별적 공권력 행사”라며 청와대에 진상규명과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 변호사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이 진정건은 2월2일 대통령 비서실에서 검찰총장에게 이첩된 뒤 2월26일 서울지검으로 넘어왔다. 서울지검은 6월8일 이 진정건을 정대철 뇌물사건 담당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 22부로 추송했다.

    정대철의 복잡한 옥중 셈법

    헌재에 위헌소송을 내는 이유도 비슷하다. “국회의원도 국민의 한 사람인데, 다른 국민에 비해 과도하게 조사한 것은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고, 오히려 집권당 선대위원장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와 정 전 의원이 이처럼 법적 해결에 무게를 두는 것과는 달리 정 전 의원의 가족과 측근은 무조건 특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아도 건강이 좋지 않은 데다 날씨까지 추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치권 안팎에서는 선고 이후 과연 정 전 의원이 ‘폭탄 발언’을 할 것인지에 주목해왔다. 하지만 그의 입은 아직 열리지 않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 한화갑 대표와 무소속 정몽준 의원, 고건 전 총리 등이 물밑 접촉을 갖고 있으며 정 전 의원측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진 상태이고 호남민심의 이반현상 등을 고려할 때 새로운 대안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는 계산에서다. 이 변호사도 이들과의 접촉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정 전 의원과 접촉하고 있는 또 다른 쪽에서는 그를 내세워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 불씨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전 의원은 구 민주당에서 분당 목소리가 나왔을 때 통합신당을 주창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새로운 대안세력을 모색하는 측이나 합당을 시도하는 측 모두에게 정 전 의원의 효용가치는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 정치적 재기를 모색해야 할 그로서는 결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그가 폭로를 자제하는 것도 이처럼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