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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권노갑 현대비자금사건 최후의 미스터리

“박지원한테 안 줬는데 검찰이 자꾸 그쪽으로 몰아서…”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박지원·권노갑 현대비자금사건 최후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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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의 입구와 출구에 도사린 이익치·김영완의 ‘치고 빠지기’
  • ●정몽헌·이익치·김영완 진술은 모순투성이
  • ●이익치 회사와 김영완 회사의 비밀계약
박지원·권노갑 현대비자금사건 최후의 미스터리
2003년 8월4일 아침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현대그룹 계동사옥 12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이다. 검찰(대검 중수부)에 세 번째로 불려가 조사를 받은 지 이틀 만의 일이었다.

정 회장은 죽기 전 메가톤급 진술을 남겼는데, 그 내용은 정경유착비리의 전형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핵심실세 박지원, 권노갑씨에게 각각 150억원, 200억원을 건넸다는 진술이 그것이다.

박지원씨가 2000년 4월 정 회장에게 150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는 2003년 6월 대북송금 특검조사과정에 불거진 것이다. 권노갑씨의 수뢰혐의는 원래 두 가지였다. 정 회장은 검찰조사에서 2000년 1월과 3월경 권씨에게 각각 3000만달러와 200억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그중 200억원 부분에 대해서만 기소했다.

정 회장 진술에 따르면, 박씨에게 건넨 돈은 현대건설에서, 권씨에게 전달한 돈은 현대상선에서 빼낸 일종의 비자금이었다. 박씨가 돈을 요구한 명목은 남북정상회담 준비자금이었고, 권씨는 총선자금 명목으로 받았다. 반면 정 회장이 두 사람에게 돈을 준 목적은 카지노 허가 청탁이었다.

의혹투성이이던 이 사건은 정 회장이 자살한 지 1년 3개월여가 흐른 지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1월12일 대법원(2부·주심 유지담 대법관)이 박씨의 수뢰혐의에 대해 원심을 깨고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기 때문이다.

박지원씨가 상고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을지 모른다는 추측은 10월8일 대법원 3부(주심 박재윤 대법관)의 권노갑씨 수뢰사건 상고심 선고 직후 조심스레 제기됐다. 재판부가 비록 권씨의 유죄를 확정했으나 이 사건의 핵심증인이라 할 만한 김영완씨의 자술서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해외도피중인 김씨는 지난해 8월과 12월 두 차례 검찰에 자술서를 보내왔다).

실제로 박지원 사건을 뒤집은 대법원 2부는 판결문에서 이 점에 대해 언급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 사건의 핵심증인인 이익치씨의 진술도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배척했다. 그렇다면 권노갑씨도 재심의 희망을 가질 만하다. 권노갑 사건에서도 이씨의 증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김씨의 자술서와 이씨의 진술은 정몽헌 회장이 남긴 진술서와 더불어 박지원·권노갑 사건의 세 축이었다. 대법원 판결로 그중 두 축이 무너진 것이다. 남아 있는 한 축인 정몽헌 회장의 진술서는 당사자의 사망으로 증거로서 한계가 있다. 결국 사건의 주요 얼개가 완전히 엉클어진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수수께끼를 푸는 중요한 단서는 정몽헌 이익치 김영완 세 사람 진술의 모순점이다. 또 하나의 실마리는 핵심증인인 이익치, 김영완 두 사람의 특별한 친분관계다.

박지원 사건에서는 이익치씨가, 권노갑 사건에서는 김영완씨가 돈 전달자 노릇을 했다. 이씨는 권씨 사건에서는 4단계에 걸친 돈 전달과정에 연락책으로 활약했다. 반면 김씨는 박지원 사건에서 환전소 구실을 했다.

권씨의 3000만달러 수수의혹도 두 사람을 빼고는 말이 안 된다. 이씨가 정 회장에게 건네준 김씨의 해외계좌로 3000만달러가 입금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박지원·권노갑 사건의 입구와 출구에는 이씨와 김씨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이 발자국들을 좇다 보면 검찰수사가 믿음직스럽지 못한 이유가 드러난다.

검찰은 정몽헌 이익치 김영완 세 사람의 진술이 큰 틀에서 일치한다는 이유로 기소했고, 1· 2심 재판부(권노갑 사건의 경우 상고심까지)도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세 사람의 진술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에서도 엇갈릴 정도로 상호 모순점이 많다.

먼저 박지원 사건부터 보자. 정몽헌 회장의 진술에 따르면 김영완씨의 역할이 매우 돋보인다. 김씨가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와 박지원(당시 문광부 장관)씨의 부탁이라며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필요하니 150억원을 무기명 CD(양도성 예금증서)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현대건설 김재수 부사장을 시켜 돈을 마련한 다음, 이익치(당시 현대증권 회장)씨를 통해 박씨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영완씨는 자술서에서 정 회장을 찾아가 ‘박지원 장관이 어려운데 좀 도와달라’고 말한 사실은 있지만 150억원이나 CD 얘기를 꺼낸 적은 없다고 밝혔다. 또 ‘정 회장이 150억원을 박지원씨에게 직접 건넨 것으로 생각했으며, 이익치씨를 통해 전달했다는 사실은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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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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