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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 노트북을 열다

박지만씨가 결혼식 날 현충원에서 눈물로 읽은 편지

“신부는 이천 서씨 가문 규수입니다. 아버님 어머님께 폐백의 예를 올리고자 합니다…”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박지만씨가 결혼식 날 현충원에서 눈물로 읽은 편지

박지만씨가 결혼식 날 현충원에서 눈물로 읽은 편지

2004년 12월14일 낮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가 서향희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왼쪽은 지만씨가 쓴 편지.

2004년1월30일, “결혼할 의사가 있습니까?”라고 판사가 물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는 “예”라고 대답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마약복용으로 붙잡혔다 여섯 번째 풀려난 것이다. 판사는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했다. 9개월 뒤 지만씨는 변호사 서향희(30)씨와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가 됐다.

얼마 후 지만씨는 서씨의 손을 잡고 서울 한남동 박태준 전 총리 자택을 방문했다. 박 전 총리 부부에게 서씨를 인사시키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박 전 총리 부부에게 큰절을 올렸다. 인사를 받는 박 전 총리 부부의 눈엔 눈물이 그렁했다. 옛 생각이 나서였다.

1961년 5·16 당시 박정희 소장은 박태준 대령에게 “자네는 혁명동지회 명단에 넣지 않았네. 일이 잘못되면 내 가족을 부탁하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함께 포항 벌판에서 ‘포스코’를 일군 시절이 박 전 총리의 머리를 스쳤다. 부모를 모두 흉탄에 잃고 방황하는 지만씨를 곁에서 지켜보며 속을 태운 적도 여러 번이다. 어쩌다 교회에 안 나오기라도 하면 측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니 안부를 알아보라”고 했다. 지만씨가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사는 것이 그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예비부부가 인사를 다녀간 뒤 박 전 총리의 부인 장옥자 여사는 한동안 혼수를 마련하는 일로 정신이 없었다. 지만씨가 처가에 들고 간 함도 장 여사가 챙겨준 것이다. 장 여사는 지인들에게 “결혼준비를 하는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다”고 말했다.

12월14일 2000여명의 하객과 언론사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만씨는 서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식이 진행되는 내내 그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예식이 끝난 뒤 지만씨와 서씨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두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안장된 묘소의 분향소에 보자기로 싼 것을 올려놨다.

‘은자동아 금자동아’ 하시며…

그 안엔 장 여사가 정성껏 마련한,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의 몸에 꼭 맞을 폐백옷이 들어 있었다. 폐백음식도 차려놓았다. 박태준 전 총리가 굵은 음성으로 엄숙하게 말했다.

“각하께 보고 드리게.”

지만씨가 쓴 편지가 낭독됐다.

아버님, 어머님.오늘은 불효자 지만이가 한 가정의 지아비가 되어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이 길이 제게는 왜 이토록 길고 힘이 들었는지요. 이제 늦게나마 아버님 어머님께 자식의 도리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신부는 이천 서씨 가문 규수로 이름이 향희입니다. 혼인의 식은 오늘 낮 거행했으며 이제 아버님 어머님께 폐백(幣帛)의 예를 올리고자 합니다. 식장의 혼주석에 두 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영혼이 임하셔서 같이 보내주신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 저희 결혼을 축하해주시는 분들의 뜻을 잘 받들며 사는 것이 곧 아버님 어머님의 뜻을 받드는 길이라 생각하고 꿋꿋하고 의연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은자동아 금자동아’ 하시며 애지중지 길러주신 하해와 같은 은혜에 이제야 보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도 자식을 낳아 아버님 어머님께서 제게 주신 사랑을 그대로 전하겠습니다.아버님, 어머님.오늘은 참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이 아들과 며느리의 큰절을 받아주십시오.

지만씨는 이날 현충원에서 참 많이 울었다. 그는 양친 앞에서 맹세한 바대로 ‘한 가정의 꿋꿋한 지아비’로 달라질까. ‘혼주석 빈 의자’의 존재가 커 보였다.

신동아 2005년 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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