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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정치

참여정부 인사시스템의 명암

투명해진 인사절차, 그러나 아직 엉성한 ‘그물망’

  • 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참여정부 인사시스템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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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는 만사(萬事)다. 하지만 잘못하면 망사(亡事)다.
  • 2005년 첫 개각에서 불거진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인사파동이 단적인 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출범 3년째를 맞는 참여정부 인사시스템을 짚어봤다.
참여정부 인사시스템의 명암

2005년 1월5일 임명장을 받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을 뒤따르고 있는 이기준 신임 교육부총리(왼쪽). 그는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에 커다란 상처를 입히고 이틀 만에 자진 사퇴했다.

2004년 7월, 안주섭 당시 국가보훈처장을 교체하려 던 청와대는 돌연 이 계획을 취소했다. 후임자로 내정된 김진 당시 대한주택공사 사장을 검증하는 과정에 비리혐의가 포착됐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인 김 전 사장이야말로 국가유공자 예우 업무를 맡는 국가보훈처의 수장으로서 가장 적격인 인물로 보았고, 인사추천회의에서도 큰 이견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 정권에서 대개 군 출신을 배려하던 자리인 국가보훈처장에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기용함으로써 유공자 예우의 의미를 더욱 살릴 수 있다는 취지에서 김 전 사장을 0순위 후보로 꼽은 것이었다.

그러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의 지휘로 진행된 마지막 검증단계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당연히 국가보훈처장 내정은 취소됐고, 비리첩보는 검찰에 넘겨졌다. 김 전 사장에겐 장관급인 보훈처장으로 승천할 수 있던 기회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올가미가 되고 만 셈이다. 만일 김 전 사장이 국가보훈처장 후보에 오르지 않았다면, 검증작업은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고 화를 면했을지도 모른다.

이 일로 인해 이미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던 안주섭 당시 처장은 2개월을 더 재임했다. 한 차례 경을 친 청와대가 새로운 보훈처장 감을 물색하면서 더욱 엄격한 검증작업을 벌이느라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중이던 2004년 9월, 상하이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의 손자이자 광복군 사령관 박시창 선생의 아들인 박유철 현 처장을 임명함으로써 ‘보훈처장 인사 소동’은 끝맺을 수 있었다.

최근의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인사파동이 부실검증으로 인한 최악의 실패사례라면, 일반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보훈처장 내정 취소 소동은 인사검증의 진가를 발휘한 성공사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2003년 6월 김 전 사장을 주공 사장으로 발탁하는 검증과정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당시 김 전 사장은 무엇보다 청렴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무렵 여권 내에서는 2002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한이헌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주공 사장으로 배려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김 전 사장은 청와대 인사추천회의에서 김구 선생의 손자라는 점과 비리가 만연한 공기업에서 4년 넘게 감사로 재직하면서 깨끗하게 처신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돼 경쟁자인 한 전 수석을 물리쳤다.

김 전 사장의 구속사유가 된 혐의사실이 2001년 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공 사장 발탁 당시 청와대는 제대로 검증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인사는 통치자의 국정 철학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일이다. 그래서 ‘인사는 만사(萬事)이자, 잘못하면 망사(亡事)’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2월 취임 때 ‘행정의 달인’인 고건씨를 삼고초려 끝에 국무총리로 기용한 것은 이른바 ‘개혁 대통령-안정 총리’라는 집권 초반의 국정운영 기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각에 개혁 성향의 인물들을 파격적으로 기용함으로써 관료사회에 개혁의 고삐를 죄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우식 실장 기용은 ‘분권형’ 전주곡

반면 탄핵사태에서 벗어난 뒤인 2004년 6월 이해찬 국무총리 기용은, 대통령 자신은 정쟁의 대결구도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분권형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들은 내각으로 끌어들여 여권 내 권력투쟁의 불씨가 될 수 있는 요소를 제거했고, 동시에 대권 수업의 기회를 주는 효과를 노렸다.

그에 앞서 2004년 2월 정치인 출신이 아닌 김우식 전 연세대 총장을 권력의 핵인 대통령비서실장에 기용하고 정무수석비서관직을 없앤 것, 2003년 12월 개각에서 관료 출신을 대거 기용한 것 등도 초기의 강렬하던 ‘정치색’을 엷게 하는 분권형 국정운영 기조를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그만큼 최고권력자의 용인술은 국정의 풍향을 알리는 바로미터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권의 흥망을 가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가 대통령비서실에 인사수석비서관을 별도 신설해 ‘인사업무’를 특화한 것은 인사정책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또한 추천기능과 검증기능을 분리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인사정책에 도입함으로써 고위공직자 인사의 시스템화를 최초로 시도한 것도 눈길을 끈다. 과거 정부에서는 대개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추천과 검증을 도맡았고, 각종 고위공직 인사에서는 권력 실세의 입김이 만만치 않았다.

노 대통령이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인사파동 후속 대책의 일환으로 인사 검증업무를 부패방지위원회 같은 외부 기관에 맡기는 방안을 제시한 것은 ‘추천’과 ‘검증’의 분리를 더욱 명확하게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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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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