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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北核비상

北 ‘핵 보유 선언’ 결정 메커니즘

‘강석주 팀’ 8개월 사전분석 ▶외무성·인민군 총참모부 난상토론 ▶ 서기실 집중검토▶ 국방위 최종 보고

  •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 yoohy@korea.com

北 ‘핵 보유 선언’ 결정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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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는 ‘핵 보유 선언’을 과연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결정했을까. 단순히 임기응변이나 즉흥적인 세력갈등을 통해 나온 결론일까. 1990년대 초반, 1차 북핵 위기 당시의 정권 내부 사정을 보여주는 북측 자료를 근거로, 이번 결정 또한 김정일 위원장의 진두지휘 아래 장기간의 사전준비와 토론, 합의를 거쳐 내린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라는 분석을 제시한다.
北 ‘핵 보유 선언’ 결정 메커니즘
북한외무성은 2월10일 성명을 통해 북한이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으며 6자회담에도 잠정적으로 불참하겠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이 같은 결정은 그 동안 공개적으로 천명해온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나 핵 능력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않는다는 기존의 정책을 정면으로 번복하는 것이다. 미국은 물론 가장 든든한 후원세력인 중국의 입장과도 배치되는 이번 성명발표는 북한으로서는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한 매우 중대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핵개발을 빌미로 사용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카드이자 최후의 승부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결정이 즉흥적이거나 어떠한 종류의 파벌간 다툼을 통해 도출되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 북한 내부에서 오랜 고심을 거쳐 나온, 합의된 결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살펴볼 것은 이른바 2차 핵 위기가 발생한 2002년 당시의 상황이다. 1994년 10월 제네바합의 이후 이 시기까지 북한은 표면적으로 핵 동결 약속을 준수해왔다. 미국에 경수로건설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을 미국에 요구할 정도로 당당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2002년 미국의 켈리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농축우라늄에 의한 핵개발계획을 시인함으로써 상황은 전혀 다르게 바뀐 것이다.

북한이 농축우라늄에 의한 핵개발을 추진했다 하더라도 비밀리에 추진했을 것이고, 설사 비밀계획이 노출되었더라도 이를 부인하고 은폐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강석주 외무성 부부장을 통해 부시 행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방문한 미국의 공식대표에게 농축우라늄 핵개발 계획을 시인하는 발언을 했다.

북한이 비록 핵무기를 ‘가지게 되어있다’라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고, 이후에도 ‘핵 폭탄보다 더 위력한 무기도 얼마든지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민들의 일심단결’이라는 식으로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문장을 구사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북한식 주장은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북한 체제의 속성상 선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그러한 선전구호가 처음 제기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국 대표단을 마주한 공식석상에서, 과거 북미협상에서 냉철한 협상가로 명성을 얻은 강 부부장이 단순히 구호차원에서 핵개발 계획을 즉흥적으로 시인했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약하다. 따라서 당시 강석주 부부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클린턴 행정부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접근하는 부시 행정부 대표단을 처음 대좌하는 자리에서 보다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즉 ‘충분히 계산된 발언’이었으리라는 분석이다.

1차 핵 위기 때 2개월간 사전준비

북한의 정책, 특히 핵 문제와 같이 체제생존과 직결되는 고도의 전략적 사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결정 됐는지 파악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1990년대 1차 핵 위기 당시 북한 내부의 정책결정과정을 묘사하는 실명소설 등 평양에서 출간된 자료를 검토해보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다.

1994년 북한 핵 문제가 위기국면으로 접어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지시를 받은 강석주 부부장은 중대결정에 앞서 관련사항에 관해 치밀한 사전조사와 면밀한 검토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물론 최소한의 체계를 갖춘 국가의 정부라면 당연한 과정이다. 대략 2개월 가량의 준비기간을 가진 강석주 부부장은 분석이 완료되자 이를 김일성 주석의 참석 하에 김정일 위원장이 주재하는 국방위원회에서 보고한 바 있다. 핵 문제와 관련한 정세분석 결과를 보고하고 최종지침을 하달 받은 것이다.

1997년 평양의 문학예술종합출판사가 발행한 ‘영생’이라는 제목의 기록소설을 보면, 이 시기 강 부부장이 이끄는 북한 당국자들은 현안에 관한 분석자료를 심도 있게 검토한 것으로 되어있다. 정책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사건의 본질을 검토하는 작업은 물론, 주변 국가들의 판단자료를 참고하고 과거 협상결과까지 세심하게 분석했다. 또한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자체역량을 광범위하게 점검하는 한편 이후 상황에 미리 대비하는 치밀함도 보여주었다.

‘영생’에 의하면 강 부부장은 보고에 앞서 “미국의 동향을 포함한 유엔과 국제원자력기구의 립장을 타진”했으며 “‘적국’과 ‘친선국가’들의 견해도 연구”한 것으로 되어있다. 또한 관련 정세자료는 물론 1차 핵 위기가 발생하기에 앞서 2년 동안 개최된 북미회담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던 미국의 회담자세 등을 분석하고, 그에 기초해 관련 실무자들의 토론을 거쳤다는 것이다. 국방위원회에 대한 강 부부장의 최종보고는 이러한 복잡한 절차를 거친 것이었다. 당시 강석주 팀에서 상정한 ‘향후 최악의 사태’는 물론 전쟁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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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열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 yoohy@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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