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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志 兵法 ③

‘안정’에 뿌리박고도 신경지 개척한 子産의 정치·외교력

춘추전국의 인간관계와 전략전술

  • 박동운 언론인

‘안정’에 뿌리박고도 신경지 개척한 子産의 정치·외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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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적 요충지에 자리한 약소국의 정치와 외교는 어떠해야 하는가.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정나라의 정치가 자산은 명쾌한 처신으로 내치와 외치를 조화시켰다. 공자도 탄복한 자산의 언론관과 통치술, 외교 역량.
‘안정’에 뿌리박고도 신경지 개척한 子産의 정치·외교력

일러스트 이우정

약소국으로 전락한 정(鄭)나라를 한계상황에서 구출하고, 결국 국가 위신을 빛낸 역사적 인물이 있다. 다름아닌 자산(子産)으로, 그는 춘추시대 제일의 외교가로 손꼽히거니와 공자(孔子)도 탄복해 마지않은 위대한 정치가다.

우선 슬기롭고 활짝 트인 자산의 언론관부터 살펴보자. 자산이 정나라의 국무총리급 고위직인 ‘집정(執政)’에 재임할 때의 일이다. 정나라 사람들이 자주 향교에 모여 정치의 잘잘못을 비판했다. 그러자 연명이라는 관리가 나서서 향교의 폐지를 건의했다. 이 말을 들은 자산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치도 않은 말일세. 그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는 거기 모여앉아 그때그때의 정치적 득실을 논의하는 것일 뿐이야. 우리는 거기서 좋다는 것을 시행하고, 나쁘다는 것을 고쳐나가는 것이 옳지. 그렇게 활용하면 언론이 스승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돼. 규제란 어불성설이야. 선철(先哲)은 여론을 경청해서 좋다는 것을 실천하라고 가르쳤으나, 결코 반대의 처사로 원한을 사라고는 가르친 바 없네.

설사 못마땅한 언론이 있다 해도 당장 중지시킬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흐르는 강물을 막는 꼴이야. 고이고 고였다가 큰물이 되어 둑을 무너뜨리는 날에는 피해가 더욱 막심하여 우리도 손쓰지 못할 걸세. 언론탄압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기보다는, 미리 적당히 물꼬를 터주고 흐르게 해야 한다. 언론의 비판을 귀담아들어 약으로 삼는 것이 합당할 걸세.”

연명이 경청한 뒤 말하였다.

“저는 오늘 비로소 성심으로 모실 분을 만났구나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습니다. 말씀대로 실천하면 반드시 온 나라가 보람을 입게 될 것입니다. 어찌 소수 관료만 덕 보는 데 그치겠습니까.”

후일 이러한 자산의 정책을 전해들은 공자는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이렇게 평가했다. “그와 같은 언론관으로 미루어 자산에 대해 많은 것을 헤아리고 내다볼 수 있다. 앞으로 어느 누가 자산을 혹평하더라도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春秋左氏傳, 襄公三十一年. 中華書局, 春秋左傳注 1101∼02쪽)

언론자유 창달한 정치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이미 언론자유 옹호의 참뜻을 천명했으니 자산과 공자가 다시 한번 우러러보인다. 또 그러한 가르침을 충심으로 받아들여 실천할 줄 알던 당시의 양심적 선비(우수한 공무원) 역시 높이 칭찬받을 만하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에 ‘정치 규범’으로 널리 읽힌 ‘서경(書經)’은 이미 ‘하늘은 백성의 눈으로 보고, 백성의 귀로 듣는다(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고 썼다. 환언하면 ‘하늘의 뜻은 여론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서구의 고대에도 같은 취지의 정치적 양식이 확고했다. 라틴의 격언은 ‘민중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Vox populi, vox Dei)’라고 했는데, 영어로는 ‘The voice of the people in the voice of God’이다. 이 격언은 각국어로 번역되어 서구사회에 널리 보급됐다. 오늘날 동구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국민여론 존중이 인류의 통념으로 정착되는 가운데, 여론 형성의 모체가 되는 신문방송 매체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 역시 세계적 양식으로 당연시된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세력이 비록 본의는 아니라 해도 언론을 백안시하는 듯한 모습을 비친다면 이는 세계의 여론과 후세의 역사 앞에 중대한 과오가 된다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떤 집권세력은 일부 언론매체, 특히 몇몇 상업지가 마치 국민의 염원과 동떨어진 이기적이고 자의적인 보도와 논평으로 자기들의 개혁성향을 비판하니 방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상업지는 정부 지원이 아니라 시장원리에 따라 존재한다. 독자, 즉 구매자 없이는 생존하지 못하며 광고수입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니 언제나 자의적일 수 없으며 항상 국민의 성향에 민감하다.

그뿐인가. 언론마다 사시(社是)가 있고 이에 어긋나면 국민이 외면하니 탈선적 이기주의도 대체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알기 위해 관용차보다 택시 타기가 권장되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어떤 집권자는 이른바 ‘좋은 신문’과 ‘나쁜 신문’의 편 가르기를 즐겼는데, 이는 특권의식으로 국민의 선택 자유를 대체해보려는 부질없는 시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스티드(H.W.Steed)는 일찍이 ‘좋은 신문이 자유를 누리려면 나쁜 신문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신문학의 격언을 제시했던 것이다.

권력자와 언론의 불협화음

어떤 집권자는 언론의 차원 높은 정치적 시비 가름엔 질색을 하면서도, 중·하급 공무원층에 대한 부패 폭로와 비리 적발 등에는 제법 흥취를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이른바 ‘행정적 민주주의’를 제시하면서 고위층에 대한 비판은 용허하지 않지만, 일반 공무원에 대한 비판은 관용하겠다는 뜻을 비친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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