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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志 兵法 ④

‘춘추 5覇’ 제나라 환공의 탁월한 통치철학

“먹고살 걱정이 없어야 개혁도 한다”

  • 글: 박동운 언론인

‘춘추 5覇’ 제나라 환공의 탁월한 통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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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훌륭한 인재를 활용하려면 통치자 자신부터 훌륭해야 한다. 개혁정치에 성공하려면 분명한 목표설정과 국력집중이 필요하다. 기량 큰 군주로 숭앙받는 제나라 환공, 티끌만한 질투심도 없이 자신보다 나은 인재를 천거한 포숙, 부민화 정책을 통해 민생안정을 이끈 관중. 이들이 엮어낸 제나라의 부흥 이야기.
‘춘추 5覇’ 제나라 환공의 탁월한 통치철학

일러스트·이우정

키가 작은 통치자는 본능적으로 키가 큰 인재를 꺼린다는 말이 있다. 이는 보통 사람에겐 어쩔 수 없는 인간적 약점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고 활용한 통치자라면 먼저 그 통치자 자신이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철강왕 카네기(A. Carnegie·1835∼1919)는 자신의 묘비명에 ‘여기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쓸 줄 알던 사람 잠들다’라고 쓰게 했다. 협력자에 대한 감사와 자기 자신의 부각, 그리고 인류에 대한 교훈을 아울러 남긴 셈이다. 이와 같은 이치를 염두에 두면 제(齊)나라 환공(桓公)과 관중(管仲)의 인간관계를 읽어나가기 쉬울 것이다.

원래 제나라는 서해로 뻗은 산동반도의 북부와 황하 하류 평원지대를 겸유함으로써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또 유명한 태공망(太公望·周나라 초기의 정치가이자 공신)이 봉함을 받았던 동방의 전략적 요충지로 알려져 있어 주 왕조의 제후국들 중에서도 은연 중 위신이 높았다.

그러나 무지몽매한 제14대 군주 양공(襄公)이 즉위하자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음란하기 그지없는 무도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누이동생과도 통정(通情)했다고 한다. 어리석은 ‘가문 타령’으로 자기의 무능을 변호하고 악행을 합법화하려 했으나, 이런 일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난세에 더욱 절실한 親友

양공은 살인과 공포와 정보정치로 그럭저럭 정권을 유지했지만 결국 측근의 손에 제거되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포악한 독재자는 측근의 유력자에게 살해당하기 십상이다. 양공도 믿었던 심복인 두 장군에게 살해당했는데, 그들 역시 다른 대신(양공의 종제)에게 죽임을 당했다. 삽시간에 대혼란이 전국을 엄습했다.

당시는 군주를 태양으로 여기던 때로, 그 자리를 하루도 비워두기 곤란했다. 그런데 양공에겐 아들이 없었고 배다른 두 동생이 있었을 뿐이다. 공자(公子) 규(糾)와 공자 소백(小白)이 그들이다.

두 공자는 양공의 포악무도함을 보자 신변에 위협을 느껴 일찌감치 각기 자기의 사부(師傅·스승 겸 후견자)와 함께 외국으로 망명했다. 공자 규는 외조부의 나라인 노(魯)국으로 갔는데, 그의 사부는 관중과 소홀(召忽)이었다. 한편 공자 소백은 이웃한 거(퀎)국으로 갔는데, 사부는 포숙(鮑叔)이었다. 포숙은 관중의 가장 가까운 친우다.

이들 사부의 선정은 양공과 공자들의 선친인 제나라 희공(僖公)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처음 사부 발령이 발표되자 포숙은 병을 빙자하여 출근하지 않았다. 그가 맡은 소백이 나이가 어린 편이고 서자 출신이라 장래성이 없을 것으로 보아 실망했던 것이다. 그러자 관중과 소홀이 그를 찾아갔다. 관중이 앞일을 내다보며 말했다.

“양공의 타계 후에 제나라를 안정시킬 군주는 두 공자 외에 다른 대안이 없네. 그런데 난세의 사태 진행은 현재의 위계질서대로 나가는 게 아니지. 앞으로 누가 등극할지는 알 수 없네. 나는 공자 소백을 유망주라고 내다본다네. 그 분은 잔재주를 피우지 않고 대소고처(大所高處)로부터 사물을 파악하며 기량이 크네. 인물의 도량이 거대하기 때문에 잘 이해하기 어려울 뿐이지. 미래를 예측하건대, 설령 공자 규가 집권한다 해도 나라일이 어렵게 되면 다스려 나가기 어려울 것 같아. 그때야말로 공자 소백을 받드는 포숙 자네가 나서서 정치안정을 위해 헌신분투할 시기라고 보네.”

관중이 계속 말하였다.

“우리는 임명된 직분이야. 우선 모시는 분을 받들어 충성을 다하며 사생을 초월해야지. 그러나 더 나아가서 국가이익과 민생안정에 이바지한다는 포부를 가지면 좋으리라 생각하네.”

포숙은 관중의 그 같은 충고에 따라 출근해서 공자 소백에게 충성을 고했다. 이로써 장차 어느 공자가 집권하든 사부인 두 친구가 서로 비호하고 천거할 사상적 준비가 갖춰진 셈이다. 이러한 친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성실해야 하며, 허영과 거짓말 같은 잔재주는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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